- ▲ 릭 러핀(Rick Ruffin)·프리랜서 작가
나는 한국에서 13년 이상 살았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약간의 진전은 있었다. 그런 변화 중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진짜 긍정적일까.
수퍼 하이웨이의 도래(到來)로, 여행 시간이 상당히 단축됐다.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는 '긍정적인' 피드백 고리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더 많은 교통 혼잡으로 이어졌다. 인터넷 접속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됐다. 오히려 시간과 생산성 낭비의 문제, 인터넷 중독의 문제도 생겼다. 한국 영화감독들은 저예산의 성공 스토리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김연아·박태환·장미란·박지성 등과 같은 한국 선수들은 스포츠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모든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에도, 한국은 여전히 상당 부분 역사의 십자선상에 갇혀 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고, 침체의 신호들은 많다.
지리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도 그렇다. 남북한 간의 끝없는 군사·이념적 갈등은 계속된다. 이전보다 더 위험한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6자 회담도 풀리지 않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미군이 필요한 실정이다. 냉전의 추한 얼굴은 사라지지 않을 기세다. 체스의 고수라면 '교착상태(stalemate)'라고 말할 법하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어떤가. 한국 경제는 10년 이상 세계 지수에서 '13번째 규모'라는 데에 묶여 있다. 한국인들의 연간 평균 수입도 나아질 조짐이 없다. 외국 투자펀드 회사인 론스타가 빚은 금융 뉴스는 사라지지 않고,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외환은행의 미래는 불분명하다.
교육 면에서 한국인들은 계속 토익과 토플, 텝스라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면서, 시험을 치르는 데에만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시험 결과를 보면 전체 한국인들의 영어 능력이 나아지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세계에서 한국 학생들은 여전히 비판적 사고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의 질을 개선하려는 희망에서 수많은 돈이 투자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 대학들의 평가가 크게 향상됐는가.
불만에 쌓인 한국인들은 계속 서울시청을 포위하고, 뭐든지 다 항의한다. 한국인들은 서구(the West)를 더 닮을 것인지, 덜 닮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 같다. 반대파들은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놓는다.
어떻게 이 교착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분명히 전면적인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은 융통성을 갖춰야 한다. 한 외국 칼럼니스트가 말했듯이,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고집스러운" 사람들이다. 한국인들은 서구나 일본을 벤치 마킹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일궈나가야 한다. 한국은 이 작고 인구가 조밀하고 자원은 없고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에 가장 잘 맞는 지속가능한 경제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의사소통을 더 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있다.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유교의 영향이라고 할 만한 요인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인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어로 말하든 한국어로 말하든 듣지 않는다. '문화적 장벽', '언어 장벽'을 자신들이 의사소통할 수 없는 이유로 든다. 그러나 그건 핑계다.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어떤 것이든 모두 버려야 한다. 발전하려면 서구를 닮아야 한다는 선입관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은 들을 필요가 있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디를 가든 온갖 종류의 시계들이 도처에 걸려 있었다. (상징적 의미로)그 '시계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2009년이고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나는 말하고 싶다. 그 모든 시계들의 시각을 정확히 일치시킬 수 없다면, 그걸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