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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 김 용택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거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야"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 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 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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