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미군의 오마하 해안은 사정이 달랐다.오마하는 썰물 때 갯벌의 길이가 최대 270m나 된다.깍아지는 듯한 절벽도 버티고 있다.그 절벽에는 해안포 진지가 늘어섰고,기관총 진지가 85곳이나 된다.넓은 갯벌을 뛰어야 하는 상륙군은 절벽 위에 설치된 기관총의 총알 세례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곳에 1사단 16연대와 29사단 116연대의 8개중대 1450명이 1진으로 상륙했다.미 2레인저 대대 일부 병력도 상륙했다.이들은 영화 ‘지옥의 영웅들’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보듯 해안에서 무참하게 살육을 당한다.대전차 장애물을 제거할 공병대는 30분만에 40%가 몰살했다.간신히 살아남은 공병대원들이 장애물을 제거했으나,전차는 29대 중 단 2대만 무사히 해안에 도착했을 뿐이다.
미 해군 상륙함이 독일군의 해안포를 피하려고 일찌감치 상륙정을 바다에 풀어놓았고,이 때문에 전차 등을 실은 상륙정이 해안 포대의 타깃이 되었기 때문이다.또 상륙군 병사들도 심하게 흔들리는 상륙정을 너무 오래 타고 가는 바람에 구토를 하고,해안에 발을 디뎠을 때에는 뛰어갈 힘조차 없어 빗발치는 총탄에 맥없이 쓰러졌다.미군은 또 오마하에 약체인 독일군 716사단만이 방어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 전선에서 갓 돌아온 정예 352사단의 2개 연대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에는 몰랐다.
미군 병사들은 4시간째 해변에 누워 꼼짝을 못하다 간신히 독일군의 저항을 무너뜨린다.이때 미 1사단 16연대장 조지 테일러 대령은 “이 해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이미 죽은 자와 곧 죽을 자다.앉아서 죽겠는가,싸우다 죽겠는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영화에서는 미 29사단장이 이 말을 하는 것처럼 표현된다.
유명한 종군사진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년·헝가리 출생)는 오마하 해안에 1진 상륙군과 함께 상륙해 당시의 참상을 담은 유명한 사진을 남겼다.사진은 빗발치는 총격으로 초점이 많이 흔들렸지만 나중에 영화 등을 만드는 데에 귀중한 자료로 쓰였다.카파는 독일군의 저항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거세자 사진 10컷만 찍고 부상병을 후송하는 상륙정을 타고 상륙함으로 되돌아갔다.
소드 해안에는 영국 3사단 소속 8여단과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벳 프레이저 경이 이끄는 6코만도 연대가 백파이프를 불면서 페가수스 다리에 접근,영국 6공수와 합류한다.후속으로 영국 3,4,6코만도 연대와 영국 41,45해병코만도 연대도 합류,독일군 21기갑사단과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캉 점령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독일군은 해안에 전차부대를 출동시키려 했지만 늘 늦잠을 자는 히틀러의 허락을 받지 못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당시 독일 전차부대는 노르망디 북동쪽 캉 근처에 21기갑이 주둔했고,파리 근처에는 정예 12SS기갑사단(히틀러 유겐트)과 전차교도사단이 있었다.히틀러 유겐트 사단은 충성심이 강한 18세 이하 청소년들로 구성됐고,전차교도사단은 전차부대원 학교다.이들은 서유럽 전선에서는 보기 드믄 타이거 전차를 보유함으로써,실전 경험이 별로 없으면서도 노르망디에서는 최정예 부대로 통했다.두 전차부대는 12시간이나 늦게 출동해 연합군을 해안에서 봉쇄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은 D-day의 하루를 나열식으로 묘사하면서도 미 82공수와 미 29보병사단의 활약상에 무게를 두었다.이 때문인지 이후에 만들어지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2001년)’는 미 101공수사단을,‘지옥의 영웅들’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각각 미 1보병사단과 미 2레인저 대대를 주인공으로 삼아 눈길을 끈다.미 29사단은 태극 문양 비슷한 부대마크를 사용하고 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미 101공수가 점령하는 카랑탕 입구의 ‘노르망디 카페’는 훗날 101공수 참전용사들이 해마다 모이는 유명한 관광명소로 변했다.또 ‘지상 최대의 작전’에서 미 82공수가 낙하한 생트 메르 에글리즈 마을의 교회의 종탑에는 낙하산이 걸린 군인 인형이 내걸려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 육군은 4형제가 모두 전쟁에 참전한 101공수사단 소속 라이언 일병이 잇따라 형 3명을 모두 잃은 사실을 발견한다.1명은 오마하에서,1명은 유타에서,나머지 1명은 일본군과 싸우던 뉴기니에서 전사했다.조지 C.마샬(1880∼1959년) 미 육군참모총장은 막내 제임스 프랜시스 라이언 일병을 귀향시키라는 특별명령을 내린다.적진에 있는 라이언을 데려오는 임무는 미 2레인저 대대 C중대장 밀러 대위와 대원 6명에게 맡겨진다.통역을 위해 미 29사단 소속 행정병 엄헴 상병도 참여한다.
대원들은 라이언 일병을 찾아가며 희생자가 생기자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목숨을 거는 일이 합리적인가.”라는 의구심을 갖는다.소수의 동료들과 함께 강의 다리를 지키고 있는 라이언을 어렵사리 만난다.라이언이 “힘겨운 상황을 모른 척하고 자신만 돌아갈 수 없다.”고 버티자 레인저 대원들은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다리를 지키기로 한다.타이거 전차 2대,돌격포,‘Sdkfz251 하노마그’ 장갑차 등을 앞세워 다가오는 독일군을 막아 장렬하게 싸우다 밀러 대위 등이 전사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허구지만 등장하는 소품 등은 매우 정확하다.미 레인저는 야전 상의 ‘M1941’의 겉에 주머니가 많이 달린 그믈형 조끼인 ‘어설트 베스트’를 입었다.공수부대는 ‘점프 슈트’라고 부르던 고유한 ‘M1942’ 상의를 입었다.이 점프 슈트는 주머니 모양 등이 보병 상의와 달라 퇴역병들도 즐겨 입고 있다.
또 레인저는 일반 보병처럼 단화에 각반을 착용했으나 공수부대는 지금처럼 목이 긴 ‘워커’를 신었다.총도 공수부대는 접철식 개머리판이 달린 ‘M1카빈’ 반자동소총을 많이 사용했다.레인저 저격병 잭슨 일병(배리 펩퍼 분)이 사용하는 총은 미군이 1차대전 때 제식소총으로 사용했던 ‘스트링필드 M1903’ 볼트액션 소총에 망원렌즈를 별도로 부착한 총이다.
2차대전 때 미군은 최초의 반자동식 제식소총인 ‘M1개런드’를 사용했다.흔히 M1이라고 부르는 이 총은 전쟁 기간에 수많은 미군 병사들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는 호평을 들었다.독일군(Kar98k)은 5발,영국군(리엔필드)은 10발짜리 클립을 넣은 뒤 한 발씩 장전해 발사하는 볼트액션 방식의 총을 사용했다.하지만 M1은 8발 클립을 끼우고 한번만 장전하면 방아쇠를 당기는대로 8발을 연속적으로 쏠 수 있다.근접전에서 갑자기 적과 마추쳤을 때 한 발씩 쏘고 장전해야 하는 쪽은,연속사격이 가능한 쪽에게 먼저 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독일군은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MG34’‘MG42’ 등 기관총을 분대마다 지원했다.엄청난 화력의 기관총이 적의 공격과 시야를 제압하는 동안 소총병의 정확한 사격으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한 편성이다.이 같은 독일군의 분대 사격 전술은 오늘날 미군이 이라크 전쟁 등에서 다시 채택함으로써 독일군 보병 편제의 우수성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밀러 대위가 들고 있는 기관단총은 1942년에 만든 ‘M1A1’으로 1928년에 나온 ‘M1928A1’을 더 싸고 단순하게 만든 개량형이다.흔히 ‘토미건’‘톰슨’이라고 부르던 두 총은 모두 200만정이 생산됐을 정도로 명품으로 인정받았다.이 총의 초기 모델은 1차대전 당시 참호전에서 필요성 때문에 개발됐으나,전선에 보급되기 직전에 전쟁이 끝나고 말았다.결국 톰슨의 우수함은 미국의 마피아 갱이 톡톡히 누렸다.마피아는 주로 초기형 톰슨에 72발 드럼형 탄창을 사용했다.빠른 연사력이 장점이다.
뉴욕 출신의 반항아로 묘사되는 라이번 일병이 든 총은 ‘M1918BAR’라고 부르는 20발 탄창의 자동소총이다.1차대전 때 등장한 구형이지만 M1과 똑같이 위력적인 7.62㎜ 탄환을 사용하기 때문에 2차대전에서도 강력한 지원화력의 역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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