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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요시다 시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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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시기에 일본의 총리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였다. 둘 다 영어가 유창하였고 국제 감각이 뛰어났으며 나름대로의 카리스마를 지녔던 인물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 한 가지가 있다. 이 대통령은 후계자가 될 인재를 전연 기르지를 못하였음에 반하여 요시다 총리는 여러 명의 후계자 깜을 길렀다는 점이다. 요시다 총리는 재임 중에 젊은 국회의원들이나 소장 관료들 중에서 탁월성이 있는 인재들을 발탁하여 수시로 관저에 불러 비전을 심어주고 국가경영의 요체를 가르쳤다. 일컬어 요시다 정치학교라 부른다.
그렇게 길러진 인재들이 요시다가 권좌에서 물러난 후 번갈아 가며 일본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인맥이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을 세워왔다. 그렇게 요시다가 길러낸 인재들 중에 우리들의 귀에까지 익숙한 이름들로는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 다나카 가꾸에이, 미키 다케오 등이 있다. 이들 인맥의 마지막 주자가 미키였다. 공교롭게도 미키 수상 이후로 일본정치가 균형을 잃고 흔들려 왔다. 말하자면 요시다 총리가 기른 인재들의 시대가 끝나면서 일본을 이끌어나갈 지도력에 공백이 생긴 셈이다.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같은 시기에 한국을 통치하였던 이 대통령은 어떠하였던가? 이 대통령의 정적이 될만한 인재들이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쓰러져 갔다. 김구, 여운형, 송진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김규식, 조봉암에 이르기까지 겨레의 장래를 위하여 꼭 살아 있어야 할 인재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그 후로 지금껏 이 땅엔 사람을 기르는 풍토가 사라졌다. 글을 줄여 3김 시대가 남긴 가장 큰 과오가 무엇인가? 30여년에 걸친 3김 시대 동안에 3김 시대를 넘어설 국가적인 민족적인 지도력을 기르지 못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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