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침공 위기서 탈출… 제3세계 리더 국가로 자리매김 김철민 한국외대 교수 주장 사회주의 국가 중 유일하게 남침설 지지 소련과의 전쟁 피하고자 '중립노선' 지켜 유석재 기자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은 전쟁 뒤에도 줄곧 '북침설'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일부 서구 지식인들에게까지 퍼져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Sartre)조차 한때 북침설을 신봉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독 유고슬라비아만은 계속 '남침설'을 지지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도서출판 아카넷은 최근 우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은 '한국의 젊은 지성' 시리즈 10권을 출간했다. 그 중 김철민(金喆珉) 한국외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과 교수의 《한국전쟁과 동유럽》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10년 전 유고측 자료를 뒤지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만리타국에 6·25 전쟁과 관련된 문서가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료들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대신 대단히 객관적인 시각에서 6·25 전쟁을 바라보고 있었다. 1948년,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자 했던 유고의 티토와, 유고를 통제하려던 소련의 스탈린 사이의 갈등은 '코민포름 갈등'으로 표면화됐다. 유고는 주변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고립됐고, 친(親)서구 노선을 걸어야만 했다. 소련이 언제 침공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비밀 해제된 유고측 문서를 조사해 보니, 소련은 유고 주변 국가들에 무기와 군수물자를 제공하면서 1950년 여름 이후 대대적인 유고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고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봐야만 했고, 그 결과 '남침설'을 지지하게 됐다는 것이 김 교수의 분석이다. 중공군이 참전할 무렵 유고측의 비밀 문서에는 "소련이 중국을 한반도에 밀어 넣고선 동유럽 군대를 동원해 우리와 서구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자칫 3차 대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공포 섞인 상황인식도 나타난다. 당시 유엔 안보리 의장국이었던 유고는 전쟁 기간 내내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했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미국도 소련도 아닌 유고슬라비아였다"고 주장한다. 목전에 닥친 전쟁을 피해 국가적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고, 6·25 전쟁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냉전세력들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어느 한 블록에 편입되기 어려운 국가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유고가 비동맹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제3세계의 리더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바탕은 바로 '6·25 전쟁'이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연구 결론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09/2008060901579.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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