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軍事 資料 綜合

굴욕의 고개 [ 2 ]

鶴山 徐 仁 2008. 6. 7. 20:16

august 의 軍史世界

 

굴욕의 고개 [ 2 ]

 

 

 

건방의 콧대 하늘을 찌르다

 

제2차 대전에 참전하였던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 미 24사단 내에서 Smith TFT 의 차출 동원은 거의 하루 만에 완료되었을 정도로 신속히 이루어졌으나 명령을 내린 미 극동군사령부, 미 8군사령부 그리고 미 24사단의 어느 지휘부도 막상 Smith TFT 가 싸워야 할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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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북한군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 1948년 북한군 창설식 모습 ) ]

 

당시 미 극동사령부가 어렴풋이 파악한 한국전 개전 직후 북한군의 규모를 단지 보잘 것 없는 구식장비로 무장한 7만 명 병력의 4개 사단 정도로 오판하고 있었는데, 미군이 참전하면 지레 겁을 먹고 곧바로 전쟁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때문에 최초 동원될 미 24사단이면 북한군의 남진 속도를 충분히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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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보 당국은 북한군을 전형적인 후진국군대로만 오판하고 있었습니다 ]

 

맥아더가 최초 세운 작전계획은 미 24사단이 일단 북한군의 남진 속도를 늦추면 후속하여 출동 할 미 25사단 예하 27연대전투단으로 하여금 차령산맥 ~ 금강 ~ 소백산맥을 연하는 선에서 전선을 고착화시키고, 해병대미 1기병사단을 7월 22일경 인천에 상륙시켜 북한군을 협공하여 7월 말에 전쟁을 끝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Smith TFT 가 할일은 24사단 본진이 도착하기 전에 북한군 선봉을 타격하여 미군의 존재감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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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선을 직접 시찰하였던 맥아더조차도 처음에는 전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

 

일본 이다스께 비행장에서 모여 부산으로 날아가기 위해 준비하던 Smith 중령에게 내린 명령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 부산에 도착하면 대전으로 가라.  그리고 사단과 연락을 취하라.  만일 연락이 되지 않으면 대전에서 가능한 더 북으로 전진하라.  더 이상의 정보는 없다 " 였습니다.  한마디로 최대한 전선으로 달려가 알아서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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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열차편으로 대전역에 도착한 Smith TFT ]

 

Smith TFT 를 후속하여 본진으로 투입 될 34연대도 기껏해야 며칠동안 한국에서 머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대장은 중대장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 한국에 북한군이라는 것이 쳐들어온 것 같다.  훈련도 부족하고 무기를 가진 자는 반수밖에 되지 않으니 힘 안들이고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작전은 치안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하며, 머지않아 귀환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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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도착한 34연대 본진, 이들도 아무 생각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

 

명령을 내린 상급 지휘부나 제일 먼저 실전 투입된 Smith TFT 도 한마디로 자만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생각 할 때도 미군은 너무나 대단한 존재였습니다.  불과 5년 전에 유럽의 나찌와 태평양의 일본을 동시에 상대하여, 이들을 모두 격멸하고 전후 세계 질서를 이끌어 가고 있었으며, 거기에 더해 핵폭탄이라는 필살기를 보유 한 유일무이한 국가의 군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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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들은 앞으로 이런 모습만 있을 것으로 당연시 하였습니다 ]

 

하늘을 찌르는 그들의 드높은 콧대는 미군의 모습만 보면 미개한 북한군이 겁을 먹고 알아서 도주할 것이고 그다음은 오늘날의 평화유지군처럼 전쟁이전의 상태로 복구 될 동안 단순히 치안활동만 할 것으로 여기고 있을 만큼 전투의지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북한의 군대를 훈련이 부족한 미개한 군대라고 스스럼없이 평가하였지만 제2차 대전 후 변모한 그들 스스로의 모습은 돌아다보지 않았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