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일본 기업을 추월한 시점은 2000년대 초반이다. 삼성전자는 2002년, LG전자는 2003년에 각각 일본 기업을 넘어선 것으로 얘기된다.
사실 이 시기 우리 전자 업체들이 일본을 추월하는 데는 환율이 큰 도움이 됐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1달러당 780원까지 내려갔던 환율은 2000년대 초반 5년간 1000~1300원 사이를 꾸준히 유지했다. 1달러어치의 물건을 수출해 버는 원화가 780원에서 1000~1300원으로 30~70%나 늘어난 것이다. 수익성이 크게 좋아진 것이다. 역으로 같은 값의 물건을 세계시장에 내놓으면 달러 표시 가격이 크게 저렴해지는 효과가 있다.
기업 총수들은 환율로 인해 번 돈을 '독(毒)'으로 간주하고 경계한다. 임직원들이 환율로 인해 부쩍 좋아진 경영 성적표를 경쟁력이 높아진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4년 "환율로 번 돈은 진정한 경쟁력이 아니다"는 '환율착시론'을 들고 나온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환율로 인해 늘어난 이익을 '나쁜 이익'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하지만 환율 호기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00년대 초반 환율로 늘어난 이익의 상당 부분을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 마케팅 경쟁 등에 쏟아부으며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일본 기업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 부문 역시 이 시기에 고질적이었던 국산차 품질 문제를 해결했다. 현대차는 당시 엄청난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조립라인을 세우는 모험을 감행했다. 환율에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반면, '나쁜 이익'에 안주했던 기업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한때 10대 그룹의 반열에 올랐던 그룹의 상당수가 신흥 그룹에 추월당했고, 일부는 30대 그룹 밖으로 밀려나는 참담한 신세가 되기도 했다.
새 정부 들어 환율이 지난 3년간의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 다시 상승세(원화 약세)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1달러당 900원 아래로 추락할 조짐까지 보였지만, 3월 이후 970~990원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환율 황금기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성급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 정부 경제팀도 환율 관리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이다. 연일 외환시장을 향해 구두 개입을 거듭하며 환율 상승세를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