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김혜자
"세상 변한 만큼 어머니 모습도 변해
온갖 가족 다 상대하려니까 힘들어"
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애들이 싹수가 없어지는 만큼 부모도 인색해지는 것 같아요." 30% 가까운 시청률로 주말 안방극장을 평정한 KBS 2TV 주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이 한 줄 대사에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전형적 어머니상'으로 불려온 김혜자(67)가 연기하는 김한자는 예전처럼 온유하고 자애롭지 않다. 하늘 같은 시아버지 앞에서도 불평을 내뱉는 데 거침이 없고 손자를 봐달라는 아들의 부탁에도 귀를 막는다. 인자한 어머니인 양 하기에는 소시민 대가족을 품고 사는 삶이 너무 팍팍하기 때문일까?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남편과 어른들에게 묵묵히 순종하던 '전원일기' 속 김회장 댁 부인은 20여 년 만에 180도 얼굴을 바꿨다.
"어머니가 만날 참아야 되나요? 자기 권리도 주장하고 할 말은 해야죠. 요즘 '전원일기' 속 어머니 같은 모습만 보여주면 사람들이 웃어요."
김혜자는 "세상이 변했으니 어머니도 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청자들은 그런 김혜자가 웅얼거리면서 가슴 속에 쌓아 올린 불만을 한 순간 폭발시킬 때, 후련하게 울고 또 웃는다. 그는 "현실에서도 자식들이 부모한테 너무 희생을 강요하면 안 된다"며 "고령화 시대라지만 길게만 살면 뭐하겠느냐? 건강해야 한다"고 했다.
김혜자는 "손자 육아만큼은 못하겠다"며 버티고 있는 한자에 대한 변호에 말이 빨라졌다. "한자는 나쁜 여자가 아니예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다 바쳐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손자까지 보라니까 더 이상은 기운 없어 못하겠다는 거죠. 어머니라는 게 참 고단해요. '전원일기'에서도 저는 혼자 속 상하면 광에 가서 소주 먹고 넋두리 하고 그랬잖아요."
현실의 김혜자도 비슷한 문제를 겪어봤을까? 그는 "며느리가 전업주부인데다 집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손자를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됐다. 또 대본도 봐야 하고 늘 공부할 게 있었다"며 웃었다.
드라마 초반, 별 볼 일 없는 줄 알았던 막내 딸의 사윗감을 냉대하다 "30평 아파트 한 채는 마련할 수 있다"고 하자 저녁상 차려준다며 호들갑을 떠는 한자의 모습은 섬세한 김혜자의 소시민 연기가 빛을 발한 순간. "귀여웠다"는 평도 많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좀 가엽지 않아요? 30평 아파트 한 채에 그렇게 낯빛이 달라지는 게…. 그 장면 촬영하고 나서 혼잣말로 '아이구 치사하고 가여워라' 그랬어요. 씁쓸해지더군요."
'후회합니다', '모래성' 등 김수현 작가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춰왔던 김혜자. 그는 "이 드라마 시작할 때 김수현씨가 '이게 좀 고단할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온갖 가족들을 혼자 다 상대하려니까 힘들다"고 했다. "생전 그런 적 없었는데 요즘은 대사도 깜빡깜빡 해요. 세상에 기가 막혀."
그는 김수현의 대사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데 공을 쏟는다. "같은 악보라도 지휘자에 따라 음악이 엄청 달라지잖아요. '잘 하는 말'을 '못 하는 말'처럼 비치게 하려고 노력해요. 김수현씨가 늘 그러거든요. '사람들이 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말 잘 한다고 흉보잖아요'라고. 박자도, 호흡도 조금씩 바꿔보려고 신경 쓰죠. 김수현씨가 그런 말 안 듣게 하려고. 하하."
"'사랑이 뭐길래'에서 지금 시아버지 이순재씨와 부부 사이였다"고 하자, "그게 뭐 중요한가? 거기에 신경 쓰는 분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볼 수 없는 분"이라고 했다.
'전원일기' 종영 이후, 김혜자는 브라운관에서 드물게 자취를 드러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게 연기"지만 "살아있는 역을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어떤 영화에서 발레리나를 꿈 꾸던 손자의 오디션 합격 통지서를 먼저 받고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살아있는 사람'을 느꼈어요. 단역이라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거죠. 요즘 저한테는 뭔가 가슴 찡한 작품이 다가오지 않았어요."
브라운관을 비운 사이, 그는 아프리카를 꾸준히 다녀왔다. 오지의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한 지 16년째. "그곳 아이들 마음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저로 인해 힘겹게 살아가는 그 아이들에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마운 일이지만, 저는 아이들과 비좁은 방에서 같이 자고 나무 그늘에 앉아 빵을 나눠먹는 게 그냥 좋을 뿐이에요."
그의 마음 속 어머니는 계속 커가고 있는 중이다.
- ▲ ‘엄마가 뿔났다’의 인기를 이끌고 있는 탤런트 김혜자. 그는“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며 웃음과 눈물을 주는, 격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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