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스크랩] 십자가를 질 수 있나?

鶴山 徐 仁 2008. 3. 20. 18:18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마태복음 10장 37절 - 39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예수님은 세 종류의 사람은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합당치 않다는 말은 알맞지 않다는 말로 영어로는 WORTHY 라고 말합니다.

가치가 없는 자로 구원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참례하기에 알맞지 않다는 거절의 의미가 있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말입니다.

1. 아비나 어미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2. 아들이나 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구원에 참례하기에 합당치 아니하고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지 않는 사람도 역시 천국 백성이 되는데 합당치

    않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데서 사랑의 순서가 뒤바뀐 사람들이기에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크고 첫째 되게 사랑하여야 하고,

영혼을 사랑하여야 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사랑의 순서입니다.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여도 안 되고, 아무리 귀여운 자식이라 하여도 하나님보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여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나도 과거에는 이 말씀이 상당히 이해가 안 되고 어렵더니, 이제 나이가 들면서, 이 말씀에 동감하고, 자식을 사랑해보아야 헛것이라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의 중점의 말씀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지 않는 사람도 합당치 않다는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자기의 십자가가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을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로마, 그리스, 갈대아 지방(이락지방)에서 사용되었던 열십자(十) 모양의 사람을 사형 시켜 죽이는 사형 틀입니다.

  예수님이 이 십자가의 형틀에서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오늘날은 구원을 나타내는 구원의 상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적십자는 전쟁이나 재난에서 고통당하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단체가 적십자이요

사람의 생명을 질병에서 구하는 곳이 병원이요, 병원은 십자가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녹십자는 안전을 말하는 것으로 일하다가 사고로 죽지 말고 조심하여 생명을 구하라는 의미로 녹십자를 공사장에 새겨 놓고 있고, 교회의 종탑위에 있는 십자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곳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교회에 십자가를 달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실 때에 이미 성막이 십자가의 상징을 성막의 기구들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성막에서 죄 사함을 받고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성막입니다.  이는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성막 제도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내가 질 수 있을까를 상고하겠습니다.


1. 십자가는 육신의 고통을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이마에서 따갑게 흐르는 피를 겪으면서, 양손과 발에 대 못이 박혀서, 피를 흘리며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오른손과 왼 손에 뼈를 뚫고 박힌 못을 생각하면 상당히 지금도 소름이 끼치는 끔찍스러움이 울려옵니다. 

두 발목을 포개 놓고 박은 대못은 정말로 체중을 감당하기에 너무 힘겨운 고통을 더하여, 더욱 아픔이 가득 찹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최고의 고통을 당하면서 죽이는 사람이 만든 최대의 비장한 사형 법입니다.

오랜 시간을 최악의 고통을 당하며 사람을 죽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피를 많이 흘리어 목마름이 극도에 달하셨고, 쏟아지는 육체의 고통을 십자가에서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육신의 고통을 당하면서, 속죄 제물이 되시어 나를 위한 희생을 하신 주님이십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내 죄를 사하시는 제물이 되어 당하시는 죽음의 고통,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고통,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기 위하여, 육신의 처참한 고통을 감수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당하시었고, 주님을 쫓을 때에는 고통의 십자가가 있고, 이를 감당하고,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흔히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안일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 와서 예배하기를 포기한 일도 솔직히 인정합니다.

  내 몸이 조금 불편하고 나의 기분이 안 좋다고 하여 주님의 일을 하기를 싫어하고 거절한 일도 있습니다.

  내 육신이 고단하여 예배를 거부한 일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내게 당한 십자가를 거절한 가장 쉬운 예에 불과 합니다.

 

  십자가는 항상 고통이 따라옵니다.


1. 가시 면류관의 고통이 있습니다.

  머리에 쓰인 가시 면류관은 가시에 질린 따가움과 쓰라림의 고통입니다.  머리에 고통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집에서 있을 때보다 더 머리가 아픈 일이 많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의 부흥이 더디고, 재정은 적자가 생기고, 쓸데없는 말들이 돌아다니고, 헐뜯는 말, 멸시 당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머리 아픈 일을 당하여 한번은 사모와 함께 Pay Check Stoup을 가져다 놓고 둘이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였다면 한 달에 5,000 딸라는 넉넉히 벌면서 편하게 살터인데, 목회를 하느라 이런 말 저런 일 등, 머리 아픈 일이 너무 많음을 탄식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데 머리가 아픈 고통이 없다면 이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의 일을 하면 반드시 머리 아픈 일들이, 십자가를 지면 머리의 고통이 있습니다.

주님께 합당한 자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 이러한 고통을 당하며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살아 갈 때에는 항상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이 갈림 길에서 바로 선택하고 성공하는 비결은 어느 곳에 더 큰 십자가가 있는 가를 바라보고 큰 십자가를 선택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자가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에, 롯은 아름답고 기름진 땅을 선택하여 십자가가 없는 땅을 선택하였지만, 롯은 결국 소돔 성에 살다가 구원은 받았지만 약속된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자기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딸이 아버지의 아들을 낳아, 모압 족속, 암몬 족속이 되어 이스라엘과 원수로 싸우며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더 큰 십자가가 있는가를 먼저 바라보고 큰 십자가를 골라서 갈 때에 아브라함의 축복, 부활 생명의 축복이 따라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십자가는 양손이 나무에 못 박힌 고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0절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십자가는 양손을 십자가에 못을 밖아 버려 아픔도 극심하지만, 손을 움직일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양손이 자유가 없는 사람을 생각하여 본 일이 있습니까?

  등이 가려워도 긁을 수가 없고, 먹을 것을 주어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 양손의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은 손은 도적질하는 손이 될 수 없고, 남을 손가락질하는 손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을 해치는 손도 될 수가 없습니다. 

은밀하게 구제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기도하며 예배하는 손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은 사람은 손의 자유가 없습니다.

오직 선한 일에 힘쓰는 손이 되고, 눈물을 씻겨 주는 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손, 손을 얹어 병자를 고치는 손이 됩니다. 

우리는 손의 고통을 무릅쓰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 손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교회를 봉사하며, 기도하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 하는 손은 찍어 버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명심하고, 항상 범죄를 하려 하는 손을 십자가에 못 박아, 손의 자유를 결박하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십자가는 양발을 포개 놓고 대못을 박아 십자가에 달리게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발을 예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려야 합니다. 

나의 발걸음을 제한하여 안 가야 할 곳은 가지 말고, 가야 할 곳은 가야 하는 발에도 십자가의 못을 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발길을 쫓아서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 하면서 발길을 삼가지 않고 자기의 원하는 대로 다니는 사람은 발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나를 삼가서 갈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삼가서 다니는 우리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4.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의 가슴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된 후에는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생깁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가슴에 창에 찔리는 일을 한두 번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고 가슴이 메어지고 터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배당에 다니기 때문에 당하는 조롱과 고통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가슴에 창을 받은 일과 같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우리가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당하는 육신적인 고통이 있어야,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을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거절하고, 세상 사람과 동일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영광으로, 기쁨으로 생각하며, 나의 십자가를 잘 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2. 십자가는 혼의 고통, 정신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육신의 고통은 얼마만큼 참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은 육신적인 고통보다 열 배나 더 심한 고통입니다.

  우리가 보건대 팔이 하나 없는 사람, 다리가 하나 없는 사람, 양손과 다리가 없이 몸뚱이만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육신의 지체가 없어서 불편은 당하고 살지만, 미친 사람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다 있으면서도 정신적인 고통이 심하여지니 사람이 미쳐 버리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정신병원에는 불구자는 거의 없고, 멀쩡한 사지를 가진 허우대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극심하면 사람이 실성하고 미쳐 버립니다.

심한 모멸을 당했을 때에나, 배신을 당하였을 때에, 사람은 미쳐 버립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당하신 육신의 고통도 끔찍하고 심히 아픈 고통이지만, 이 보다 더한 주님이 당한 십자가의 고통은 정신적으로 당한 고통입니다.


1. 제자들의 배신입니다.

  12 제자 중에 하나는 예수를 은 30을 받고, 노예 한사람 값을 받고 팔아먹고, 수제자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며 저주하였고, 다른 열 제자들은 무서워서 모두 피신하여 도망갔습니다.

  저녁 먹을 때까지만 하여도 선생님과 같이 감옥에도 같이 가고 같이 죽겠다고 말하던 제자들이, 3년 동안이나 함께 생활하면서 가르치고 양육한 제자들이 모두 배신하여 버렸습니다.

  나도 목회를 하면서 정말 아끼고 사랑하고 양육한 사람이 배신을 하고, 다른 교회로 가고, 다른 교회에 다니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을 빼어 가는 일을 당 할 때에, 상당한 가슴 아픈 일을 당하여 3일 동안을 잠을 자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귀가 찢어지고 온 몸이 상처가 난 아픔 속에도 잠은 제대로 잘 잤지만 마음의 고통은 잠을 자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당한 배신의 감정보다 100배, 1,000배를 더 느꼈을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던 제자들이 예수를 모른다 하고, 저주하며 다 도망갔을 때의 배신감은 상상하기에 충분한 고통입니다.


2. 무리들의 배신이 있습니다.

  오천명, 사천명, 수백명 등 떼지어 다니며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을 먹고, 육신의 양식을 기적으로 먹고, 병도 고치고 많은 가르침을 받고서도, 한 때는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던 무리들이, 강도를 내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배신의 무리들의 함성이 십자가에 달린 주님의 귀에 아직도 들리고 있을 때에, 그 배신감의 고통은 심히 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살인강도 바나바만도 못하게 여기고 있는 무리들, 떡을 얻어먹고, 병 고침을 받고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듣던 자들이 배신의 소리는 십자가의 육신의 고통을 넘어서는 고통입니다.


3. 모멸을 당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함께 달리어 십자가에 죽으면서도 주님을 욕하는 강도도 있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뛰어 내리라며 조롱하는 무리들의 소리는 모멸의 고통을 극치로, 주님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때리고, 손바닥으로 치고, 눈을 가리고 누가 때렸나 알아맞히라고 조롱하던 모멸의 고통보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기 믿겠노라는 모멸은 더욱 주님을 십자가의 고통의 극치로 이끌기에 충분합니다.

  주님은 육신의 고통도 크게 당하시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고통, 혼적인 고통은 이보다 더 심한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에 마음의 고통, 배신의 고통 등, 주님이 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 고통이 싫다 하여 주님을 따르는 일을 포기하면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끝까지 예수님같이 잠잠히 참고,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3. 십자가는 영의 고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 아사셀의 양이 되셔서 광야에 이끌려 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뒤집어 쓴 아사셀 양이 되어 버림을 당하고 맹수에게 죽임을 당하는 영적인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시고, 아사셀에게 넘기고 가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면서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영적인 말로, 방언으로 영의 고통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물론 영이 소생하여 하나님과 교제하지만, 영의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영의 고통이 없는 사람은 영이 죽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하고,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말한 것은 영의 고통을 호소한 것입니다.

  내 영은 하나님의 법을 좇아 살려고 하지만 나의 육체와 다른 환경 조건들이 그렇지 못함으로 영의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고 신앙이 깊어질수록 영의 고통은 점점 심하여 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영의 고통이 없이 살아간다면, 이 사람은 분명히 영이 죽은 자이거나, 영이 감각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교회 부흥을 위하여 불철주야 당하는 고통, 전도하면서 당하는 고통, 의롭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당하는 고통 등은 영의 고통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육신의 고통, 혼의 고통, 영의 고통이 있습니다. 

주님과 같이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통을 나누는 자가 주님께 합당한 신앙인입니다.


4. 십자가는 죽음을 가져옵니다.

  십자가에 일단 달리면 죽지 않으면 내려오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달렸어도 명이 길어 죽지 않으면, 다리를 꺾어서라도 죽여서 내리는 것이 십자가의 형벌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우리도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육신도 순교로 죽어야 하고, 마음도 죽어야 하고, 영도 죽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아작 죽지 못한 사람은 십자가의 종말에 이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육신이 죽고, 감정이 죽고, 영이 하나님 앞에 죽은 자와 같이 될 때에, 십자가를 완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리 :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고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부인하지 말고, 항상 나도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고통 속에서 자기를 죽이며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에 부활의 생명의 복이 임합니다. 

  주님은 오늘 십자가를 질 수 있나 하고 물어 보십니다.

  나는 주님이 주신 내 십자가를 지고 육신의 고통, 혼적 고통, 영적 고통을 다 이기며 끝까지 견디어 나가다가 죽어 부활의 생명의 영광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당하며 결국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자가가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자는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사람입니다. 

끝까지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고통을 이기고, 끝까지 나를 죽이고, 부활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

 


출처 : 은혜(恩惠)
글쓴이 : 은혜 (恩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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