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비교. 통계자료

1년 6개월간 18번의 여론조사로 본 대선 구도

鶴山 徐 仁 2007. 12. 12. 15:05

1년 넘게 ‘우파의 독주’…

유권자 40%는 아직 票心 유동적
1년 6개월간 18번의 여론조사로 본 대선 구도
1월 고건 퇴장 이후 20% 넘는 범여권 후보 없어
북핵실험·한나라 경선·이회창 출마때 판도 출렁

홍영림 기자

 

 

이번 대선에서는 오늘(12일)까지 실시한 후보 지지율 조사만 선거일 전에 공표할 수 있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실시한 18번의 여론조사를 종합해 보면 대선 구도는 작년 10월 북핵실험 직후, 올해 8월 한나라당 경선, 11월 이회창 후보 출마 등에 의해 세 차례 크게 출렁였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또는 이회창 후보를 합한 지지율이 60% 내외를 유지하는 ‘우파 내전(內戰)’ 양상은 최근 1년간 지속됐다. 범여권에서는 지난 1월 고건 전 총리 퇴장 이후 20%의 벽을 넘어선 후보가 없었다.


 

◆3강(强) 경합에서 고건 전 총리 불출마까지

2005년 중반까지는 고전 전 총리가 유일하게 30%대를 기록하며 2·3위였던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후보에게 20%포인트 가량의 차이로 단독 선두를 달렸다.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후보가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05년 10월 청계천 복원이 마무리되던 시점이었다. 줄곧 10%대에 머물던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 복원사업 완료와 함께 처음으로 20%를 돌파했고 박근혜 전 대표도 비슷한 시기에 10·26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며 20%대에 진입하면서 고 전 총리와 함께 3강(强)을 형성했다. 이후 1년가량 3파전이 지속되다, 2006년 10월 무렵부터 이명박 후보가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독주체제에 나섰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상승세는 ‘북한 핵실험과 부동산 대란 이후 안보 및 경제현안 해결 적임자론’이 이유로 꼽혔다. 지지율이 15%까지 떨어진 고 전 총리는 올해 1월 16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명박 대 박근혜

지난 1월 중순부터 8월 19일 한나라당 경선까지 7개월 동안은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의 불꽃 튀는 대결이었다. 처음에 30%포인트까지 벌어져 있던 두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경선이 다가올수록 줄어들었다. 7월 말 한나라당 후보검증 청문회 직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40% 미만으로 하락하면서 경선 직전에는 박 전 대표와 10%포인트 이내로 좁혀졌다. 최종 결과는 박 전 대표에게 당원, 대의원 등 선거인단 투표에서 뒤지고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만회한 이명박 후보의 1.5%포인트(2452표) 신승(辛勝)이었다.

한나라당에서 빅3를 형성했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3월 19일 탈당했는데, 당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그 배경 중 하나로 작용했다. 고건 전 총리 퇴장 이후 여론조사기관들이 손 전 지사를 범여권 범주에 넣고 후보 적합도를 조사하자 단숨에 범여권 1위에 올랐다. 손 전 지사는 신당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10월 15일 정동영 후보에게 고배(苦杯)를 마셨다.

◆이회창 후보 출마와 BBK 수사

한나라당 경선 이후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 지지층 대부분을 흡수하면서 지지율이 55~60%로 수직 상승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도 경쟁자였던 손학규 전 지사와 이해찬 전 총리 등의 지지층을 끌어 모으면서 선두 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하지만 11월 7일 이회창 후보의 무소속 출마로 대선 구도는 선거일을 40여 일 앞두고 크게 요동쳤다. 이회창 후보는 출마를 선언하자마자 20%대 지지율로 순식간에 2위로 올라섰다.

올해 대선 최대 뇌관으로 꼽혔던 ‘BBK 사건’의 김경준씨가 11월 16일 국내로 송환되자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30%대로 하락하면서 대세론에 빨간불이 켜졌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이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고자 하는 부동층(浮動層)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11월 27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 이후에도 이런 흐름이 지속됐다. 지난 5일 검찰의 ‘BBK 사건’ 수사발표 이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40%대로 반등했고 정동영 후보는 소폭 오른 반면 이회창 후보는 소폭 하락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없는 부동층은 15% 안팎이다. 앞으로도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유권자(25%)까지 합하면 전체 유권자 10명 중 4명가량이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지를 확실히 정하지 못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선택이 마지막 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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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공표금지 22일→6일로 단축

선거 막바지 ‘허풍 선전戰’ 불가능해져

홍영림 기자

 

 

이번 대선에서는 2005년 8월 선거법 개정에 따라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대선 전 22일에서 6일로 크게 단축됐다. 처음으로 ‘깜깜이 대선’에서 벗어난 셈이다. 유권자들이 후보 간 지지율 추이를 지켜볼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짐으로써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지지 후보를 선택할 기회를 얻게 됐다는 뜻이다.

1997년 대선의 경우 우파 성향 유권자들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중 어느 쪽에 표를 몰아 줘야 승산이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투표소로 향했다. 양측 후보 진영도 여론조사 공표금지를 이용해 “우리 후보 쪽으로 판세가 기울었다”는 선전전을 벌여 유권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1992년 대선 때도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측은 선거 막판까지 “김영삼 민자당, 김대중 민주당 후보와 3강 구도를 형성했다”고 주장했고, 상당수 유권자들도 정 후보가 만만치 않은 표를 얻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16%대 득표율에 그쳤다.

만약 올해 대선도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22일로 유지됐다면 이와 비슷한 일이 재연됐을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들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30%대 후반 지지율,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20% 내외 지지율로 나타난 공식선거운동 직전(11월 27일) 여론조사 결과만 아는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됐을 것이다. 그 이후 검찰조사 결과가 각 후보 지지율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각 후보 진영의 선전전도 요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문가들은 “과거 대선에서는 각 후보 진영이 여론조사 공표금지를 악용해서 허위정보를 흘리며 유권자들을 현혹했지만 이제는 그런 게 통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유권자들은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지 후보를 정해야 하는데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 축소는 그런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상일 TNS코리아 이사는 “정치권이 여론조사 결과를 다른 후보의 사퇴 압박 등 구도 변화를 위해서 활용하고 있다”며 “공표금지 축소의 순기능이 정치권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