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말만 많은 것들과 선택

鶴山 徐 仁 2007. 12. 5. 19:30
조선닷컴에 가입하신 현명한 사람(Wise People) 회원님께 드리는 '와플레터(WapleLetter)' 서비스 입니다

  •  


  • “허구한 날 대선 타령, 오늘 이 자리에서만은 대선 얘기를 꺼내기 없기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만장일치. 5분이 지납니다. 그래도 모두들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면, 장담컨대 한쪽 구석에서 “에이 독한 인간들아, 그래 대선이 어떻게 될 것 같아?”라고 터져 나오지요.

    요즘 밥 먹고 술 마시는 자리마다, 입 안으로 그 반찬과 안주가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몰라도,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틀림없이 ‘대선’입니다. 저마다 막 떠들지만, 어느 한 구절 버릴 데가 없지요. 그 논리 정연함은 마치 합숙 공부를 한 듯합니다. 비록 먹고사는 데 빠듯해도, 우리 모두는 이 땅의 정치 전문가들로 타고난 것이지요.

    귀가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고 온 한 시집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들/말 안 해도 되는 것들/말하나 마나 한 것들

    말하고 나면 후회할 것들/말 안 하면 우습게 보는 것들

    기어코 말해야 하는 것들/굳이 말 안 해도 되는 것들

    말만 많은 것들/한 말 또 하고 또 하는 것들/그 말이 그 말인 것들

    말 들으나 마나 한 것들/말만 잘하는 것들/닳고닳은 것들

    말 없이는 안 되는 것들/말로는 안 되는 것들

    할 말 안 할 말 막하는 것들/말 없어도 되는 것들…”〈박용하: 입김〉


    오늘 12월 첫날입니다. 이 마지막 달에는 ‘말 안 해도 되는 말들’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말들이 더욱 많아지겠지요. 한 해의 묵은 말만이 아니라, 어쩌면 5년간 썩히고 발효된 말들이 장승업의 군마도(群馬圖)처럼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 말들은 그 말들끼리 서로 다투고 부딪치고 몰아내고 파묻히고 혹은 발광(發狂)하겠지요. 말들과 말들 속에서 우리의 한 해는 정녕 가버릴 것입니다.

    평소 한 푼 두 푼에도 쩨쩨하고, 주머니 속을 잘 따지는 사람들은 대선 철만 되면 ‘연산(演算)’능력을 잃은 듯합니다.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면 갑자기 당신에게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요.

    아마도 그 후보의 근방에서 얼쩡거렸던 정치지망생들(혹은 건달), 눈치 보고 줄을 바꿔선 국회의원과 고급관료들, 시민단체 운동가들, 교수들, 기업주들, 문화인들 등 한 줌의 무리이거나, 혹은 이들과 사돈 팔촌으로 연결된 또 몇 줌의 무리들에게는 뭔가 ‘고물’이 떨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 바닥의 숱한 서민들이 과연 저 몇 줌의 무리 속에나 들어갈까요. 무슨 연줄이라도 있나요. 직접 덕 볼 일이 있을까요. 정권이 몇 번 바뀌었지만 그런 혜택을 입어본 적이 있었나요.

    당신이 그렇게 열렬히 지지했고 표를 던졌다는 걸 그분이 알까요. 마치 처음 짝사랑할 때 눈멀고 귀 먼 것처럼, 이들은 대선 후보보다 더 달아오릅니다. 간혹 사생결단이라도 해보일 태세이지요. 이런 ‘비합리적인’ 열정과 환각(幻覺)이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지탱해온 것인지 모릅니다. 소위 지도자란 추종자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지요. 지도자가 추종자들을 끌어오는 게 아니라, 이런 추종자들이 몰려들어 지도자를 만들고 움직인다고 합니다.

    지금 거리의 벽보에는 후보들이 온갖 ‘교태’를 다 떨고 있습니다. ‘좋은’ 대통령, ‘실천하는’ 대통령, ‘반듯한’ 대통령, ‘바꾸는’ 대통령, ‘부지런한’ 대통령, ‘믿을 수 있는’ 대통령…. 그럼에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느 추종자에도 끼지 못해 선거일까지 불안합니다. 몰래 심정적 동조자가 되는 것조차 마음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절실하게 깨닫는 것은 우리가 해온 선택에서 최선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지요. ‘차선’(次善)이면 황감하게 여길 최선이고, 그럴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면 ‘차악’(次惡)이라도 고를 수밖에 없었지요. 더욱이 그때 최상의 선택이라고 여겨도 나중에는 분명 후회할 일이 생기고, 마뜩찮게 선택한 것이 오히려 기대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게 삶이지요.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                                                                                          
                                                                                        최보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