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敎育.學事 關係

[시론] 영재 교육의 빛과 그늘

鶴山 徐 仁 2007. 12. 5. 19:16

전봉관 KAIST 인문과학부 교수·국문학

 

 

대학시절 네 살 어린 선배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학습능력이 출중했던 그 선배는 수준에 맞지 않는 학교를 일찌감치 집어치우고 검정고시를 거쳐 또래들이 중학교에 다닐 나이에 ‘명문’ 대학 입학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너무나 ‘가족적’인 분위기였던 나의 모교는 대학에 입학한 순으로 ‘형’ ‘아우’가 결정되었다. 나와 같은 재수생 출신에겐 고등학교 시절 한 학년이었던 1년 선배를 ‘형’이라 부르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는데, 하물며 네 살 어린 선배를 ‘형’이라 불러야 한다니! 그렇다고 학교의 관례를 거스를 수도 없어 존댓말을 쓰되 호칭을 부르지 않거나 얼버무렸고, 웬만하면 어린 선배 근처에 가지 않았다. 그가 먼저 ‘형’이라 부르며 살갑게 다가왔다면 어쩌면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린 선배는 불행히도 나이 많은 둔재(鈍才)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린 선배는 졸업할 때까지 자기보다 어린 후배를 만나지 못했고, 나이 많은 후배들은 어린 선배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어린 선배는 대학시절 내도록 외톨이로 지내다 평범한 학생으로 졸업했다. 대학시절 그 흔한 미팅 한번, 연애 한번 못해 봤고, 졸업 후 입대 영장이 나올 때까지 1년을 백수로 기다려야 했다.

한동안 뜸하던 ‘천재소년’ 송유근군 이야기가 또다시 언론에 오르내린다. 조기 입학한 대학생활이 본인의 희망, 주위의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송유근군이 좋은 교육을 받고 본인이 그렇게 희망하는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세상에 그 많은 둔재가 있는 것을 보면, 천재가 한두 명쯤 태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분명 축복이지만, 그 재능 때문에 행복해진 천재는 드물다. 둔재들의 세상에서 둔재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수학과 물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영재가 있다면, 아까운 능력을 썩히지 않도록 사회가 나서서 교육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영재가 둔재들 틈에서 상처받지 않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면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다. 수학과 물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고 수학과 물리만 가지고 친구를 사귀고, 이성과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수는 없다. 재능은 재능대로 키워 가면서, 둔재들의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천재들의 삶은 늘 외롭고 고달픈 법이다.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영재는 있었다. 어떤 아이가 또래들보다 일찍 천자문을 떼면, 훈장은 다음 진도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나가 놀라고 했다. 늦된 아이들이 천자문을 익히는 동안 그 아이는 고사리도 캐고, 가재도 잡고, 시장 구경도 다니며 세상을 배웠다. 사서삼경을 배울 때까지 영재와 둔재는 학습 진도가 똑같았지만, 영재는 둔재보다 세상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배웠고, 세상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었다.

통섭(統攝)이니 학문의 융합이니 하는 것이 별 말이 아니다. 넓고 깊게 배우라는 것이다.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서 어쩌면 물리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음악을 듣거나 소설을 읽으며 인간과 세상에 대해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천재란 남들보다 지식을 10년 먼저 배운 사람이 아니라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생산해 내는 사람이다. 나는 송유근군이 국가와 인류에 기여할 인재로 성장하지 못한 이 땅의 수많은 ‘신동’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 수학과 물리 공부만큼이나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쌓을 것을 당부한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보다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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