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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적문제로 대학을 중퇴한 장미란은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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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도의 역사를 새로 쓴 장미란 선수. 그도 어릴 때부터 장사는 아니었다. 1983년 10월 9일, 바로 한글날 태어난 그의 출생 당시 몸무게는 4.0㎏. 평균 신생아보다 약간 무게가 더 나갔지만 특별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릴 땐 힘보다 총명함이 더 빛났다. 공부를 잘 해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부모도 여느 아이들처럼 공부로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그가 너무 건강했기 때문이다.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장미란은 먹성이 좋아서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몸이 불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는 사람이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이 급속히 찌기 시작했다. 장미란의 어머니 이현자(49)씨는 “미란이가 어릴 때 아주 귀엽고 총명해 운동보다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며 “다른 집 딸처럼 예쁘고 곱게 키웠으면 하는 마음에 몸집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밥을 조금씩만 줬다”고 했다. 밥과의 전쟁은 2년 가까이 계속됐다.
“밥을 보통보다 작은 공기에 넣어서 조금만 줬더니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숟가락을 놓지 않았어요. 집에 들어오면 항상 미란이 배를 보고 밥통을 열어봤어요. 밥을 많이 먹었으면 야단도 쳤고요. 그렇게 2년 신경전을 벌이다 제가 포기했어요. 선천적으로 몸이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요.”
얼마나 밥을 더 먹고 싶었으면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했을까? 장미란은 “너무 소화가 잘 돼서 엄마가 주는 밥만 먹으면 견디기 힘들었다. 그땐 정말 엄마가 야속했다”며 웃었다.
그의 식사량 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은 것도 어린 장미란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아버지는 먹고 싶은 대로 먹으라고 했다. 장미란의 아버지 장호철(53)씨는 덩치가 좋고 몸이 탄탄해 보였다. 스포츠형 머리까지 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역도 선수들의 감독처럼 보였다. 자동차 수리업소를 운영하던 그는 젊은 시절 운동 삼아 역도를 했다. 1981년 강원도 원주시에 역도단이 창단될 때 그는 전무이사 직책을 맡아 창단 멤버로 일했다. 장미란의 어머니 이씨는 “미란이에겐 아빠를 닮았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다”며 “그래도 이 아이가 살 길은 역도라고 생각해 딸에게 역도를 권했다”고 말했다.
“아빠를 따라서 역도장에 몇 번 갔다왔는데 여자가 무슨 역도를 하냐면서 안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다 저랑 약속을 했어요. 강원도 최고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하면 역도 안 시키고 공부 시키겠다고요. 그런데 자기 생각대로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역도를 하게 된 거예요.”
장미란은 “한번 시작한 이상 남보다 더 잘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는 반항심도 생기고 역도가 싫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요. 사람은 자기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에는 편견이 개입되기 마련이에요. 그럴 때 옆에서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애정을 갖고 조언해주는 부모님이 큰 힘이 되지요.”
아버지 장호철씨는 “내가 역도를 하라고 가장 강하게 권유했지만 한창 멋 부리고 다닐 나이에 무거운 기구 들면서 매일 운동만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신장 170㎝에 체중 115㎏의 장미란은 자기 체중의 1.5배 이상을 들어올린다. 그는 지난 9월 26일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2007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여자 최중량급(75kg 이상)에서 인상 138㎏, 용상 181㎏을 들어 합계 319㎏으로 세계신기록을 달성하고 우승했다. 이로써 그는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장미란을 누르고 금메달을 딴 중국의 무솽솽(23) 선수의 합계기록도 장미란과 같지만 장미란이 20㎏ 덜 나가 규정에 의해 우승을 할 수 있었다. 날씬한 몸매 덕을 본 셈이다. 그렇지만 힘은 체중과 비례하기 때문에 이젠 체중을 늘리는 것이 관건이다. 장미란은 “제 체중이 115㎏인데 국내에선 최중량급으로는 많이 나가는 편이지만 국제무대에선 날씬한 편”이라며 “우크라이나나 서양 선수들은 저보다 40㎏ 이상 더 나가는 선수가 많다”고 말했다.
체중을 불리면 더 무거운 것을 들 가능성이 커지지만 무작정 체중을 늘릴 수는 없다. 오승우 국가대표 여자역도 감독은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적정 체중이 있기 때문에 적정체중에서 많이 벗어나면 오히려 숨이 차기도 한다”며 “장미란의 경우 120㎏이 넘으면 구보할 때 숨이 차고 몸의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때문에 무조건 살을 찌우기보다 근육량을 늘리면서 자신의 적정체중 자체를 올리는 방식으로 체중을 늘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