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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鶴山 徐 仁 2007. 11. 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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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 세상에서 가장 빨리 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일이 빨리 벌어지고 빨리 자취를 감춘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우리말도 ‘빨리 빨리’이고 한국인이 많이 찾는 해외 관광지에서도 ‘빨리 빨리’가 유행이다. 작년에 이집트에 가보니 심지어는 시나이 산의 낙타 몰이꾼들도 한국 단체 관광객을 향해 ‘빨리 빨리’를 외치고 있었다.

    빠른 변화는 이번 대선에서도 감지된다. 작년부터 수십 차례 진행되어온 여론 조사 결과도 5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은 정치 관련자들의 몫일 뿐 대다수 국민의 머릿속엔 경제, 일자리에 대한 생각이 들어차 있는 듯하다.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여권 후보 모두를 합한 것보다도 높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5년 사이에 우리가 또 변한 것이다.

    그런데 변화는 기업에게 더 절실한 화두다. “변해야 산다, 머물면 죽는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기업들에게 변화는 승리 이전에 생존의 화두가 되었다. 기업들은 많은 돈을 들여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소비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사한다. 변화가 감지되면 전략을 바꾸고 제품에 반영한다. 그런데 24년간이나 기업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광고 일을 해왔음에도 나는 ‘변화’라는 말이 싫고 불편하다. 우리가 변화를 이해하고 행하는 방식이 그렇다.

    ‘변화’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바깥으로 안테나를 세운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보고 있다가 얼른 그 방향으로 올라타고 내리는 것을 변화로 이해한다. 하루 빨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걸 추구하기보다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사업 계획서나 마케팅 기획서같이 정확한 해법을 담아야 할 전략도 유행을 따르기는 마찬가지다. 보보스(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미국의 30~40대 새로운 상류계층) 콘셉트가 유행이면 모든 기획서가 보보스를 말하고 블루 오션이 화두면 모두들 블루 오션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수그러들면 기획서는 또 다른 곳을 향한다. 스스로 시간을 들여 발견한 자신의 관점이나 해법이 아니므로 버리기도 쉬운 것이다. 그때그때의 화두를 채용하면 그뿐, 자신의 관점은 거기에 없다. 아이디어조차 렌트를 하는 것일까. 세상은 자신의 생각을 갖지 않은 ‘인용족’(引用族)들로 넘쳐난다.

    하면, 진정한 변화란 어떤 것일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대로 변화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세계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자기 생각과 방식으로 일하고 살다가 한계에 부딪히거나 혹은 자신을 뛰어 넘고 싶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진짜 변화라고. 또한 이렇게도 말해보고 싶다. 세상의 흐름을 좇아 재빨리 변신하며 살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그러니 자신을 세상에 다 내주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고.

    마루야마 겐지라는 일본 소설가가 있다. 그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살기 위해, 종속 변수가 아니라 독립 변수로 살기 위해, 사는 방법부터 달리 한 사람이다. 일체의 부업을 하지 않고 오로지 주업인 소설만 써서도 생활이 되도록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나가노현(縣) 산 속에서 수도승처럼 산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에 매이지 않아야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것 저것 얽매인 것이 많아서야 어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며 개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앞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씩은 걸어 온 길을 돌아보기도 해야 한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빨리 변화하는 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그래야 한다. 세상 따라잡기만 하다가는 엉뚱한 곳에 가 있게 될지도 모르며, 내가 원한 삶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기 십상이니까. 어디로 난 길을 가고 있는지, 가을엔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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