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간 이메일·전화 금지…
최종 후보 5명 이름은 암호명 사용 비밀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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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벨상의 계절이다. 노벨 문학상은 1901년 첫 수상자를 배출한 이래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위기 등을 겪으며 올해로 100회를 맞았다. 노벨 문학상은 10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 영광의 열매를 맛보지 못했다. 한국 문학의 비원이자 우리 문학이 세계의 문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선정 기준과 과정, 올해 노벨 문학상의 화두, 한국의 수상 가능성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노벨 문학상 대 해부 시리즈를 연재한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를 대표하는 호라세 앵달(Horace Engdahl)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수상자 발표(11일)를 앞두고 지난 3일 스톡홀름의 집무실에서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앵달 총장은 “노벨문학상 심사기준은 인류의 자기성찰에 기여하면서 100년 뒤에도 읽히는 문학”이라며 “올해 최종심 후보에 오른 작가는 5명”이라고 밝혔다.
앵달 총장은 “최종심 후보 명단을 밝힐 수 없다”면서 사견임을 전제로 “고은 시인은 오늘날 세계문학에서 선도적 시인들(leading poets) 중의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 ▲ 호라세 앵달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 해마다 기자들 앞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스웨덴 한림원 제공
―올해 노벨문학상이 한국 작가에게 안겨질 가능성이 있는가.
“한국 작가가 최종심 명단에 올랐는지에 대해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매년 약 200명의 후보를 추천 받는 우리는 그 중 20명을 추려낸 뒤 3개월여 동안 심사위원들이 읽은 끝에 최종심 후보 명단을 만든다. 올해 최종심 후보에 오른 작가는 5명이고, 그 명단은 비밀이다. 하지만 한국작가들도 약 200명이나 되는 긴 명단에 들어 있었고, 우리의 검토 대상이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고은 시인이 유력 후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은은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저명한 한국 문인이다. 이미 스웨덴어로 몇 권의 시집이 번역됐고, 가장 최근에는 그의 소설도 출간됐다. 어린 승려가 걷는 구도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는 주목할 만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스웨덴어로 번역된 고은 시인의 책들은 시집 ‘만인보’ ‘순간의 꽃’ ‘선시집’, 그리고 장편소설 ‘화엄경’이다.)
―고은 시인 이외에 다른 한국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나는 다른 한국 작가들 작품도 이미 읽어봤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한국 문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우리 규정에 어긋나는 듯하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고은 시인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나는 누가 유력 후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가능한 한 짧게 언급하자면, 나는 스웨덴어와 독일어로 번역된 고은의 모든 작품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분명히 오늘날 세계문학에서 선도적 시인들 중의 한 명이다.”
―고은 시인이 유럽 문학과는 다른 아시아 문학의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인가.
“한국어로 뭐라 부르는지 모르지만, 나는 고은이 수년 동안 만난 사람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한자리에 모으려는 기획(시집 ‘만인보’)을 좋아한다. 유럽 작가들 중에도 그런 작업을 한 경우가 있다. 고은은 처음에 한국적 전통에 기반을 뒀지만, 점차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고은의 작품은 분명히 서구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가 될 수 있는 기준이라면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장거리 여행을 견뎌야 한다. 번역을 거쳐 원형을 크게 잃지 않으면서 멀리 떨어진 문화권에서도 이해돼야 한다. 보편성을 따진다면, 고은의 경우 아무 문제가 없다.”
“최종 후보 이름은 고문해도 안밝혀
매년 200명 추천받아 3개월간 심사 인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 뽑아”
―공식 발표 이전까지 수상자 이름을 비밀에 부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과거에 사전 누설된 적이 있지만, 내가 1999년 사무총장에 취임한 뒤 비밀 유지 시스템을 강화했다. 심사독회가 끝나면 심사위원들은 후보자 이름 등이 적힌 서류를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고 나가야 한다. 전화 통화나 이메일을 통해 심사위원들끼리 후보자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심사위원들이 레스토랑에서 식사 도중 불가피하게 후보자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경우 우리는 후보자에게 암호명을 붙인다. 예를 들면, 해롤드 핀터(2005년 수상자)의 암호명은 ‘해리 포터’였다. 한림원 관계자와 도서관 직원들도 비밀을 지킨다. 고문을 당해도 그들은 불지 않을 것이다, 하하.”
―지난 10여 년 동안 수상자가 유럽에 편중됐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포르투갈 폴란드 헝가리 작가들에 이어 지난해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의 조국 터키도 유럽에 속하지 않는가.
“터키는 유럽의 일부지만, 오리엔트에 더 가깝다. 아무튼 유럽 문학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은 많은 분야에서 몰락했다.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지배력을 잃었다. (웃으면서) 유럽이 주도하는 분야는 축구와 문학뿐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해마다 노벨문학상 결과에 실망하고 있다.
“아랍인들도 마찬가지다. 이집트의 나집 마흐푸즈가 상을 받았지만 아랍인들은 더 많은 수상자를 원한다. 한국만 바라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진짜 중국 작가가 받아야 한다며 기다리고 있고, 아프리카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대륙, 어느 민족, 어느 언어에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린다. 그러니 작가의 국적을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세계문학에서 노벨문학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노벨문학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전쟁이나 재난, 기아에 관한 뉴스에 밀리기 마련이다. 출판사의 마케팅에 의해 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오기는 하지만, 본격 문학은 여전히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읽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 언론이 일 년에 딱 한번만이라도 주목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일반 독자들에게 본격문학을 읽어야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노벨문학상 심사 경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문학은 늘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학의 변화에 뒤처진다면 노벨문학상의 위상이 낮아진다. 우리는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힐 수 있는 작가를 찾는다. 본격문학은 1시간짜리 위안을 주는 오락문학과는 달리, 인류의 자기 성찰에 기여하면서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당신은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인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심사위원들이 6개월마다 돌아가면서 위원장을 맡는 독특한 시스템을 운영한다. 심사위원장은 심사를 진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권한이 없다. 심사위원 모두 동등하게 한 표씩 행사한다.”이 사람 입에서 나온다
앵달 사무총장, 매년 수상자 발표
호라세 앵달(59)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문학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스톡홀름대학에서 문학사를 전공한 그는 스웨덴 낭만주의문학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모국어 이외에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1997년 한림원 회원이 된 그는 1999년 사무총장을 맡아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기자들 앞에서 발표한다. 한림원 사무총장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그는 “나이 70세가 넘으면 그만 두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앵달 총장은 “프랑스 문학 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를 좋아한다”면서 “문학이 무엇을 말하느냐는 것보다 문학 언어 내부의 어조(tone)를 중시한다”는 비평관을 밝혔다. 저서로는 ‘문체와 행복’ ‘터치의 ABC’ 등이 있다. 무용 평론도 쓰는 그는 “무용은 문학비평가에게 좋은 영감을 제공한다”며 문학과 무용의 상관관계를 강조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0/07/20071007007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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