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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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석총 1길을 따라 걸으면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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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박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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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쫓기다 보면 하늘 한번 올려다볼 일이 없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가끔 무작정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에 가방을 꾸리다가도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며 다시 짐을 푸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럴 때는 1000원으로 지하철 8호선에 몸을 싣고 서울 송파구 석촌동을 찾아가 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 석촌동에서 짧은 시간 동안 느낄 수 있는 커다란 행복은 다음날을 위한 값진 휴식이 될 것이다.
[서울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 도심 속의 백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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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라촌 사이로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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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박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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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돌아보는데 15분 남짓인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은 빌라촌 사이에 있어 마치 현대의 문물이 과거의 역사를 포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직장 때문에 상경한 나는 부산 출신이라서 신라의 문화에 익숙하다. 그래서 '고분'이라는 단어를 보면 웬만한 산 하나 크기와 맞먹는 경주의신라고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낮은 봉분과 돌무지들이 아담하다는 인상을 주는 적석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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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분 너머로 현대 문명의 상징인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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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박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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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에 자리 잡은 고분군은 묘한 매력이 있다. 카메라 앵글에 고분을 담으면 뒤편으로 잠실의 고층 아파트들이 보인다. 그 속에 잡힌 천 년 전의 고분과 현대의 아파트.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가지의 조합이 묘하게도 하나의 그림처럼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먼 옛날 여기에 서 있었을 선조들이 곁에서 흐뭇한 미소를 띄며 지켜보는 듯 그렇게 백제고분은 현대에 부드럽게 녹아들어 함께 호흡하고 있다.
70년대 잠실 일대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발굴된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은 1975년 5월 27일 사적 제243호로 지정됐다. 그전까지 이 일대의 고분들은 하루빨리 세상에 나올 그날을 기대하며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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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내려다 본 토광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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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박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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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백제' 하면 떠올리게 마련인 공주가 도읍이었던 웅진시대, 부여가 도읍이었던 사비시대는 백제시대 찬란한 역사의 극히 일부분이다. 오히려 지금의 서울 송파구 일대가 도읍이었던 한성시대의 역사가 그보다 오랜 시간이었다고 하니 이렇게 다시 만난 백제가 새삼 반갑다.
고분을 따라 난 오솔길을 걸으면 봄을 맞이해 파릇파릇 피어나는 새싹들과 싱그러운 잔디들이 한껏 풀냄새를 피워댄다. 그 푸름에 취해 걷노라면 곳곳에 피어 있는 보라색 제비꽃, 진분홍 철쭉도 드문드문 얼굴을 내밀 것이다.
이곳은 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삶의 공간이다. 고분과 그를 둘러싼 오솔길은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이라는 동양의 작은 나라의 찬란한 역사다. 또 한국인에게 이곳은 역사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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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은 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삶의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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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박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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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미 공원화돼 있는 이곳에서는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하는 동네 주민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고분 길을 가로질러 등하교를 하는 아이들이나 출퇴근을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은 먼 곳에 있는 문화재가 아니라 이미 삶을 함께 하고 있는 현재의 역사인 것이다.
[Tip] 온기가 느껴지는 재래시장 가락 골목시장적석총 산책으로 슬슬 시장기가 돌면 길을 되돌아 나와 송파역 쪽으로 가보자. 가락시영아파트 쪽에서 휘황하게 새어나오는 시장 불빛을 만날 수 있다. 그곳은 일명 석촌동 골목시장. 나는 이곳을 보면 부산에 있을 때 자주 들렀던 '봉래동시장'이 떠오르는데 펼쳐놓고 파는 물품 구색이 비슷한 탓이다.
시장 어귀에 들어서면 코를 자극하는 달콤한 향을 풍기는 과일가게와 비늘에서 반짝반짝 윤이 나는 싱싱한 생선가게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들에 정신이 팔려 걷다 보면 이번엔 가난한 자취생의 미각을 한껏 자극하는 반찬가게를 맞닥뜨린다.
시장 끝쪽에 있는 만두가게에서는 1인분 2000원인 왕만두가 유명하고, 중간쯤 위치한 어묵 집에서는 1000원이란 '착한 가격'으로 다양한 어묵을 맛볼 수 있다. 작은 포장마차와 분식집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 잠시 들러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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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박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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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겨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가락 골목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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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박정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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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 익숙한 20대인 나에게도 석촌동 골목시장은 편리함과 다양함에 있어 마트에 뒤지지 않는다. 이 시장의 매력이라면 옥수수 알갱이처럼 붙어 있는 이웃 가게와 정겨운 안부를 묻는 상인들의 모습이다. 특히 저녁시간에 활기를 띠는 이곳에서는 양복차림으로 부인의 시장바구니를 대신 들어주는 남편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한적한 오후,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에서 맛있는 공기를 마시고 집에 가는 길에 골목시장을 들러보자.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보내는 하루도 분명 멋질 것이다.
/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