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세상에서는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그는 그냥 나무심기에만 몰두하였다. 양치기에서 벌 기르기로 생업을 바꾸고는 전쟁이 어떻게 되든 그냥 나무심기에만 열중하였다. 작가가 다시 그를 찾았을 때 이미 기적은 시작 되고 있었다. 처음 심은 도토리나무들이 이미 열 살이 넘어 숲을 이루어 가게 되면서 숲의 폭이 10 ㎞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작가는 여전히 말 없는 엘제아르 부피에와 함께 도토리나무 숲을 산책하며 하루를 종일을 보냈다.
작가가 1915년 베르덩(Verdun) 전투에서 싸우던 기간에 심었다는 자작나무들은 이미 젊은이들처럼 꿋꿋이 서 있었다. 숲의 창조는 연달아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되었다. 골짜기에 시냇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마을 우물에 물이 고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은 너무나 천천히 일어났기에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단순하게, 소박하게, 고집스럽게 자기가 하던 일 나무심기에만 열중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고집 속에 고결한 인격이 깃들어 있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였다.
1920년 이래 작가는 해마다 한 번씩 엘제아르 부피에를 방문하곤 하였다. 어느 한 해는 한 해 동안 단풍나무 1만 그루를 심었으나 모두 죽고 말았다. 다음 해에 그는 단풍나무를 포기하고 너도밤나무를 심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이런 삶을 지나왔기에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릴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1933년 부피에에게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산림감독관이란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스스로 숲이 자란 천연 숲의 성장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으니 집밖에서 불을 피우지 말라는 통보를 들었다.
부피에는 그러마 하고 약속하고는 집에서 12㎞나 떨어진 곳에 너도밤나무를 심으러 날마다 가곤했다. 이미 75세가 된 그는 오고 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돌로 오두막 집을 짓고는 여전히 나무심기를 열중하였다. 1935년 국회의원, 산림수자원청,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정부대표단이 ‘천연의 숲’을 시찰하려 왔다. 대표단은 20㎞ 떨어진 곳에서 열심히 도토리를 심고 있는 부피에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이 소박한 노인에게 깃들고 있는 평화와 건강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운동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