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스크랩] 신앙 여정

鶴山 徐 仁 2007. 3. 23. 09:01
 
신앙 여정


  민수기 9장 15절 - 23절

  18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세상 모든 만물은 셋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광물, 식물, 동물로 나누어지고 액체, 기체, 고체로 나누어지고 있듯 사람의 성장기도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로 나눌 수 있고 우리의 몸도 육체와 혼과 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태아 때에는 머리를 땅으로 향하고 있는 식물과 같은 때이고, 유아기에는 땅만을 바라보며 기어다니며 철모르게 행동을 할 때이고, 청년기는 걸어 다니며 옆을 보며 살아가는 때이고, 노년기는 죽어서 하늘을 바라보고 누어있는 때입니다.


  나무는 머리를 땅에 박고 살고 있는 수하적인 생물이고, 머리를 옆으로 하고 있는 수평적인 동물이 있고,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사는 수직적인 사람, 인간이 있습니다.

  사람 중에 머리를 땅에 박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땅의 것만이 모든 것인 줄을 알고 세상 재미를 땅에다가 두고 자기만을 알고 돈과 재물을 땅에다가만 쌓고 쓰고 땅만 바라보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땅 투기를 잘하는 사람,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차, 좋은 집, 명품만을 찾는 사람 등 세상의 좋은 최고품만을 찾고 이러한 땅의 것을 아끼지 않고 찾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땅에다 머리를 박고 사는 수하적인 사람입니다.


  다음은 짐승과 같이 머리를 옆으로 두고 옆만 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땅에다가 머리를 박고 사는 사람들보다 더 인간적이고, 의리도 있고, 도덕도 있고, 사회봉사도 하며, 문학가나 시인이나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등 인간관계를 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머리를 옆으로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로는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땅의 것 보다, 인간관계 보다는 위에 계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더 중히 여기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도 없고, 인간관계도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히 여김으로 땅의 것이나 인간관계를 멀리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세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1. 땅에다 머리를 박고 사는 사람 

  땅의 것, 눈에 보이는 것만을 찾으며 나는 하나님 같은 것을 모른다 하며 땅의 것을 전부로 삼고 사는 사람, 땅의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면 아주 싫어하며 쫓아 버리는 사람입니다.  돈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2. 수평적인 일에만 열중하는 사람

  머리를 옆으로만 보며 사는 사람들과 인간관계, 친구 관계, 사람끼리의 모든 관계를 제일로 생각하고 의리를 중히 여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안 계신 것 같기도 하여 예수를 믿어도 인간적인 면을 우선으로 두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3. 수직적인 사람으로 하늘을 보며 사는 사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1. 창세기 32장 11절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야곱이 어려운 일을 당하였습니다.  뒤로는 라반과의 약속 때문에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 

앞에는 400인의 군사를 데리고 치러 오는 에서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을 때에, 進退兩難의 때입니다.  야곱은 수평적인 것으로는 도무지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수직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솔직한 기도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솔직한 기도를 야곱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솔직하지 못하고 수식과 과시가 많이 포함되어 있음으로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솔직한 기도는 깨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위에 계신 하나님이여 하는 수식어가 필요 없이 하나님 살려 주시요 하는 염치도 없고 체면도 없고 애걸하는 기도를 현실 그대로 과장하지 않고 숨김없이 털어놓는 기도를 하며 부르짖는 것이 수직으로 올라가는 기도입니다.

  수평의 방법을 버리고 내 수단과 내 재주를 버리고 내 자존심과 명예도 버리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수직적인 삶, 기도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내는 것입니다.  야곱은 수직의 기도를 한 후에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2. 여호수아 7장 9절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수직적인 행동의 삶을 살았을 때에 금성 철벽같은 여리고성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무혈점령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조그마한 아이 성을 대할 때에는 수직적인 방법을 버리고 수평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생각과 상식대로 3000명의 군대가 가면 점령을 하리라 하고 군대를 보냈다가 아이 성에서 패하고 마음들이 물과 같이 녹아져 버렸습니다.

  이 때에 여호수아는 수평의 방법을 버리고 수직적인 방법을 택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회개를 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도 할 때에 아간을 잡아내게 하시고 죄를 없이한 후에 하나님께서 수직으로 향한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을 점령하게 하고 가나안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하게 하여 주시었습니다.

  믿는 자의 신앙의 실패는 수직적인 방법을 떠나고, 수평적인 방법을 택하여 살 때에 신앙의 실패가 오는 것입니다.


3. 사무엘 상 17장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과 골리앗을 수평적인 관계를 보고 인간적인 관계로 비교를 하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장수하고 어린 소년하고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수직적인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골리앗을 비교하며 나갈 때에 위에 계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골리앗을 이기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수평적으로 볼 때에는 해결이 불가능하여 지지만 세상과의 문제를 수직으로 해결 할 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으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4. 마가 복음 5장 25절 - 34절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12 해를 자궁출혈로 고생을 하던 여인이 의원도 많이 찾아다니고 좋다는 약을 다 쓰면서 재산을 허비하며 수평적인 방법으로 병을 치료를 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돈만 허비하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가서 수직적인 방법으로 병 고침을 받으려고 예수님의 옷가를 만지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수평적인 법으로 해결을 하여 보려고 노력하다가 안 될 때에 수직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받는 일을 많이 보고 있고 우리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질병 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등 모든 문제를 수직으로 해결하려다가 안 되니 기도원에 와서 기도를 함으로 수직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받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수직적인 믿음을 보일 때에 질병, 문제는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이 임하여 해결을 받습니다.

  믿음이란 것은 바로 首下的인 방법이나 수평적인 방법을 버리고, 首上的으로. 수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나는 어느 상태의 믿음에 이르러 있는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서 구원을 얻었다고는 말하지만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 간 사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를 할 때에는 하나님도 모르고 그저 땅에다 머리를 박고 사는 종으로 먹고 자고 일하고 자손을 번성시키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모세를 따라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낼 때에 율법도 배우고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하였지만 지금 자기의 좌우에 보이는 환경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먹을 것이, 마실 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살았고 우상을 만들기도 한 것입니다.


  수평적인 사람들이 광야 40년 동안에 모두 죽고 이제 남은 이스라엘 백성은 수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 말씀만을 순종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간이 애굽에서 종으로 살 때에 도적질하고 감추는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만 보고 사는 단계에 이르렀어도 도적질하고 감추고 불순종을 하니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입니다.

  사도 시대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초신자들처럼 믿음이 없을 때에 헌금하는 돈을 떼어 내고, 거짓말을 하였어도, 벌을 받지는 안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거짓말을 할 때에 벌을 받아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육에 속하여 있는 사람이거나 혼에 속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도 진노의 형벌을 받거나 징계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영에 속한 사람이 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된 후에도 육에 속한 자나 혼에 속한 자와 같이 살아가면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와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강도가 강도질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대학교 교수가 강도질을 하면 이는 큰 지탄과 벌을 받는 것입니다.

요사이 인터넷으로 음란물, 사진을 보는 것은 흔한 일로 청소년들이나 성인 남녀들이 모두 다 보고 듣고 하는 흔한 일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교 학장님이 자기 방에 있는 컴퓨터로 이러한 음란물을 보고 지우지 않고 그냥 남겨 두었다가 발각이 되어 문제가 되어 신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수직적인 교제를 하며 살아가는 영에 속한 사람이 이제는 다시 수평으로나 수하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오직 주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교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아간이나 삽비라와 같이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신앙의 세 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 병고침을 받는 단계

  누가 복음 8장 2절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우리 신앙의 첫 단계는 예수를 만나는 단계입니다.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모세를 보내어 기적과 이사를 경험하게 합니다.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오래 믿은 고목나무 신자들 보다 모든 면에서 쉽게 기적이 나타납니다.  병도 잘 고쳐지고 성령도 쉽게 받는 것을 경험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병이 걸려 있고 일곱 귀신에 사로 잡혀 있었지만 예수를 만나니 병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 나감을 받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병이 떨어지고 귀신이 쫓겨 나가는 일은 예수를 만난 자들이 경험하는 일로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은 계속 되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초보적인 신앙의 단계에서 이러한 일이 예수를 만날 때에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일을 흔히 착각하여 이러한 일이 있으면 예수를 믿는 것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것은 예수를 만나는 과정일 뿐입니다.

  병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 나가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일 뿐입니다.  병 고치는 것은 어떤 큰 능력이 아니요 누구나 믿는 자는 다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김철웅씨 부부가, 예수를 처음으로 믿는 부부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예수를 안 믿다가 미국에 와서 교회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다가 믿음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초신자입니다.

  이민 초기에 힘든 일을 하다 보니 어렵고 가난하게 살며 항상 몸이 피곤하고 아프며 살게 됩니다.  어느 날 남편이 머리가 몹시 아파서 진통제를 먹어도 머리가 아픈 것이 가시지를 않아서 밤중이라 약을 사러 갈 수도 없어서 걱정을 하다가 목사님이 환자들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니 금새 낫는 것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하자하고 아내가 남편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할 줄 모르고 목사님 흉내 내는 것 같아 낄낄거리며 웃으며 머리 안 아프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하고 났더니 어쩐 일인지 남편이 당장 머리가 안 아프다고 하여 그것 참 신통하다 하며 다음 주일에 나를 만나서 이러이러했는데 괞챦나고 물어 보아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답하였습니다.

  병 고치는 일, 귀신 쫓아내는 일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할 수 있는 일이요,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는 것이 비정상입니다.

  병 고침을 받고 귀신 쫓아냄을 받고 예수를 만나는 과정이 있습니다.


2. 십자가 곁에 가는 단계

  요한복음 19장 25절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고 병 고침을 받고 일곱 귀신을 쫓아냄을 받아 건강을 찾고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후에 너무나도 감사하여 예수님을 접대하며 말씀을 듣고 자주 집으로 모시고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접대하며 살았습니다.

  때가 되어 예수님은 십자가에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고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대부분이 무서워하며 멀리 달아나 버렸지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와 사도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끝까지 예수님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생각하며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까지 쫓아온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은혜와 사랑을 입었으면 십자가 곁에까지 와서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십자가는 고난을 말하고 희생을 말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고난을 나누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마음을 같이 하는 심적 교제와 고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은 하나의 십자가의 곁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고난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못 박히고 죽어 가는 모습을 가까이 보는 것은 오히려 당사자보다 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 것입니다.

  자식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 마리아의 마음도 우리가 헤아려야 합니다. 

자기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준 자기의 은인이 죽어 가는 모습을 곁에서 보는 마음도 우리가 생각하여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서 이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자식이 고통 중에 죽어 갈 때에 어머니의 마음은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듯 우리도 이러한 마음은 갖지 못하여도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의 고통과 같은 십자가로 인한 고통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십자가의 고통이 없이 살은 사람은 나중에 주님 앞에서 불법을 행한 자라는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고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면 반드시 십자가 곁에서 고난을 나누는 과정과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3. 부활 주님을 만나는 단계

  요한복음 20장 16절 - 18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새벽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 주기 위하여 혼자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공동 묘지에 혼자서 새벽에 지나가는 것도 스산한 일인데 직접 시체에 향유를 발라 주기 위하여 새벽에 혼자서 찾아가는 막달라 마리아의 담대한 믿음과 사랑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합니다.

  이 세 번째의 단계는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자기를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단계입니다.

주님께 행동으로 사랑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담대한 믿음과 사랑을 갖고 주님을 찾아 나서는 자에게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가장 먼저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주시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과 사랑을 갖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아직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은 변화를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옛날과는 아주 다른 변화 된 단계의 신앙, 강하고 담대한 믿음과 사랑을 갖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러한 신앙을 갖는 것을 성령을 받는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믿음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성령을 받아 강한 믿음과 사랑으로 부활 주님을 만나고 이를 전하는 복음 전파자가 되는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정리 :

  나는 지금 어느 단계의 신앙에 올라와 있는가를 생각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땅에다가 머리를 박고 사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수평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수직적인 삶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향한 강하고 담대한 믿음과 사랑을 드리며 살아가는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퇴보하는 자는 싫어하시고 버리십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택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살고 있으니 우리의 삶의 기준도 날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성결과 믿음의 수준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수준으로 높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좌우를 둘러보며 인간적인 계산을 하며 살던 우리의 삶에서 벗어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문제와 여호와 하나님과 비료하며 살아가는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항상 승리하는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과 같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담대히 나아가고

  야곱과 같이 밤새워 기도하여 축복을 받아 내고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

 


출처 : 은혜(恩惠)
글쓴이 : 은혜 (恩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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