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병원의 역사: 그 我와 非我에 관하여
장 기 홍 경북대 명예교수
오래 동안 경북대의 교단에 섰던 사람으로서 필자는 ‘우리 경북대학’ 혹은 ‘나의 경북대’라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대학이 잘되면 내가 잘되는 것이다. 만일 경북대 병원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그것은 대학의 손상이요 또한 나의 손상이다. 최근 경북대 병원은 그 역사의 시작이 언제냐 하는 문제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어느 해가 진정한 백주년이냐 하는 문제이다.
대한제국 황제가 현재의 경북대 병원 자리에 ‘자혜의원’을 세웠던 1910년을 이 병원의 시작으로 인정해온 관례는 이미 오랜 전통이 되어왔다. 이 전통은 대한민국이 대한제국을 이어받은 나라임에 부합 되는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십수년전부터 병원장들은 역사 부풀리기를 시작했다. 자혜의원은 동인의원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건립되었던 사실을 기화로 그들은 동인의원의 3년 역사를 보태어 병원역사를 늘이고자 시도했다. 동인의원은 일제의 침략의 마수로서 이등박문이 세운 병원이라 하니, 그 3년은 강도의 역사요 우리 민족으로서는 치욕의 역사이다. 강도를 당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였고 보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을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릇된 역사 부풀리기는 ‘나’나 ‘우리’에 대한 정체성(正體性)의 혼란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북대 병원의 역사가 대한제국 황제께서 그의 뜻 곧 ‘백성에 대한 자혜(慈惠)’로서 세웠던 자혜의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전통적 견해에 동조하며 역사 지키기를 하려는 바이다.
일제가 내건 이름 ‘同仁의원’은 매우 그럴듯한 것이었다. ‘동인’은 ‘大同仁術’을 약한 것쯤 된다. 일제의 침략 앞잡이들은 걸핏하면 大同을 말했다. 일본과 조선은 민족적으로 뿌리가 하나이므로 한 나라 한 민족으로 되돌아가 마땅하다 하여 대동(大同)이라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크게 보면 하나다 하는 뜻이다. 본래 침략자들은 선교사와 의사를 앞세워 침략의 노략질을 하는 것이 늘 쓰는 수법이다. 동인의원의 3년 역사는 결코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역사임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는 위에서 경북대 역사의 문제는 바로 ‘나’의 문제요 ‘우리’의 문제라 했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우리 민족 전체의 문제요 정의냐 불의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북대 병원의 역사가 1910에 시작되었음을 다시금 밝히는 바이다.
독립운동의 이론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역사’라 했다. 하늘은 우리에게 ‘남’과 정당(正當)한 싸움을 하여 자기를 지키기를 바라고 있다. 목숨보다 더 귀하고 아까운 것이 없지만 이순신, 안중근 등 선인들은 그토록 아까운 목숨을 던져 후손으로 하여금 바른 자아(自我)를 지키라고 바로 우리에게 그 당부를 했다. 올바른 자아를 보존하자.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재경동기회
글쓴이 : 학바우(손진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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