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松廣寺) 가는길에 세워진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僧寶宗刹曹溪山松廣寺) 비문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전남 순천 조계산 산행길에 나섰다가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한국불교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의
고즈넉한 산사를 뒤로 하고, 산행이 끝나는 대가람 조계산 송광사에 닿아 우리 불교문화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조계산의 부드러움과 함께 이자리에 펼쳐 보이면서 조계산과의 추억을 떠올리고자 한다.
반나절 동안에 조계산행을 겸한 송광사. 선암사를 찾아야만 했던 부족한 시간속에 담은것이라
송광사의 진면목을 전혀 나타내지 못한점 널리 이해하시기 바라며, 그래도...
편안한 마음으로 보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간이 허락되면 직접 찾아봄이 가장 좋을 듯 하다.
송광사 대웅보전(松廣寺 大雄寶殿)
좌로부터 박물관, 승보전, 대웅보전
송광사 [松廣寺]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종찰(僧寶宗刹)로서, 전남 순천시 송광면(松光面) 조계산(曹溪山)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한국불교에는 일찍부터 세 가지 보배를 가리키는 3대 사찰이 있는데, 이를 佛(부처님), 法(가르침), 僧(승가),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 한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이곳 전남 순천의 송광사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불보사찰(佛寶寺刹),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 한다.
승보전(僧寶殿)
지장전(地藏殿)
조계산에서 하산하여 송광사 경내에 들어서기 전 길가에 세워진
달을 씻는 집 - 세월각(洗月閣)과 오른쪽은 구슬을 닦는 집 - 척주당(滌珠堂) 남자를 구슬로, 여자를 달로 표현하며 만든 이 건물의 명칭도 참 낭만적인듯 하다. 영가(靈駕)가 천도재를 지내러 절에 들어가기 전 하룻밤 지내면서 속세의 욕망과 허물을 벗는 곳이라 하며,
또한 제주들이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이곳에서 깨끗한 제복으로 갈아 입는 곳이라 한다.
세월각과 척주당을 지나 송광사 경내로 들어서는 곳의 교상누각(橋上樓閣)인 우화각(羽化閣)
우화각(羽化閣)에서 바라본 전경.
들어설 때는 교상누각 우화각으로..경내를 둘러보고 나올 때는 앞에 보이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종고루(鐘鼓樓)
송광사 봄까치풀
송광사 경내 전경
無念門(무념문)
송광사의 3가지 명물중의 하나라는 '비사리 구시'
연못과 함께하는 독특한 송광사 해우소(解憂所)를 담으면서 대가람 송광사를 뒤로한다.
송광사 경내 산수유/ 그래 봄인가 보다...
주차장으로 내려서며 세월의 흔적 부도탑을 바라본다.
선암사와 마찬가지로 이곳 송광사 가는길에도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나그네는 선암사에서 미리 내려 조계산 능선을 따라 흘러 흘러 왔으니...
송광사 대웅보전 뒤의 오래된 건물인듯한 설법전(說法殿)으로 오르는 진여문(眞如門) 돌계단과
흙,돌담장, 세월의 그림자가 묻어 있고, 하늘높이 근엄하게 솟은 굳게 닫힌 진여문을 활짝 열고 싶었다.
하룻동안 숨가쁘게, 산행중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도 만났고 푸른하늘 흰구름도 올려다 본 뜻 깊은 조계산 산행과
산등성이를 경계로 동서로 펼쳐진 거찰 선암사, 송광사와의 만남을 여기서 접고자 한다. (END)
송광사(松廣寺)는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처음에 이렇게 창건된 뒤 고려 인종(仁宗) 3년(1125)에
석조(釋照)가 대찰을 세울 뜻을 품은 채 세상을 뜨자, 1197년(명종 27) 승려 수우(守愚)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曹溪山)은 이 때까지는 송광산이라고 했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曹溪宗)의 중흥도량(中興道場)이 되면서부터 조계산(曹溪山)이라고 고쳐 불렀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肅宗) 2년(1097)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구별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그 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경내에는 이들 16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따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뒤에 응선(應禪)을 비롯한 승려들이 복원하고
부휴(浮休)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三尊佛)·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을 건졌다.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설월(雪月)·율암(栗庵)이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고, 1943∼1956년에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하여 옛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는데, 그후 승려 취봉(翠峰)·금당(錦堂)의 노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이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僧寶宗刹)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계산 내 암자로는 광원암(廣遠庵)·천자암(天子庵)·감로암(甘露庵)·부도암(浮屠庵)·불일암(佛日庵)·판와암(板瓦庵)과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悟道庵) 및 탑전(塔殿:寂光殿) 등이 있고, 56개의 말사와 수련원·성보보수교습원 등의
부설기관이 있다.
또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國師殿:국보 56)을 비롯해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
(보물 90), 경질(經帙:보물 134), 경패(經牌:보물 175), 금동요령(金銅搖鈴:보물 179),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보물 204),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
(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205),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206),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보물 207),
하사당(下舍堂:보물 263), 약사전(藥師殿:보물 302), 영산전(靈山殿:보물 303), 《고려문서》 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보물 572)가 있다. 이 밖에도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지방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첩(書帖), 영조(英祖)의 어필(御筆), 흥선대원군의 난초 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사내(寺內)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이 있는 곳이다. (자료출처 : NAVER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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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2007/03/16 1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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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山 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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