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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북핵의 위협과 동북아의 안전보장 페러다임

鶴山 徐 仁 2007. 2. 15. 10:33
 

<북핵의 위협과 동북아의 안전보장 페러다임>


                                                     다케사다 히데시 박사


1. 북한의 핵의 위협


1990년대부터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문제로 시끄러웠다. 1994년 10월의 미․북의 합의에 따라 미국은 “북한은 경수로와 중유의 지원으로 북핵을 포기한다” 라고 믿고 북한의 태도가 변할 것이라는 가정에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북은 핵개발을 계속하였다.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을 은밀히 추진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2003년 8월 일본, 미국, 한국, 북한, 러시아, 중국 등 6개국은 북경에 모여 북의 모든 핵시설을 해체하기 위한 6개회담을 시작하여 2005년 11월 휴회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의 핵 포기 유도를 위한 한국, 중국, 러시아는 ‘선 경제지원, 후 핵포기’를 일본과 미국은 ‘선 핵포기, 후 경제지원’을 주장하여 두 그룹간의 미묘한 의견차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플루토늄형 핵개발 시설의 동결과 맞바꾸어 경수로와 중유를 공급하는 계획은 미국이 북의 체제 안전을 보증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제재와 비난이 강해질 것이다’ 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사일과 핵실험을 하였는데, 이도 “통일이 될 때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기본정책에 따라 ‘핵보유국이 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6자회담과 관련하여 북한의 공식입장 보도, 6자회담의 재개를 조건으로 요구한 내용, 군사동향 등 세가지를 보면 북의 정책중점은 세가지이다.  (1) 주한미군의 한국방위 역할 종식 (2) 남북교류 추진으로 핵포기를 요구하는 미국과 한국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 (3) 핵탄두의 소형화와 사정거리 연장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혼자서 정책의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이 세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좋다.  한미관계가 나빠지면 미국의 한국방위 의욕은 감퇴하고, 한국과 북한이 화해하면 한국은 북과 싸울 의지가 저하된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되면 ‘북에 대한의 위협’이 감소하므로 한국이 북한의 경제력을 살리면서 남북이 대등한 상태로 통일하는 것을 동의하면 그 시점에서 북한의 핵 무기는 필요가 없게될 것이다.  한국사회에 공포심을 주는 핵무기는 통일에 있어서는 마이너스가 된다.  그래도 북한이 “통일까지는 억지력을 보유 한다” 는 것은 미국을 의식하는 까닭이다.


조선노동당규약과 헌법에 의하면 북한은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하겠다’는 것 이외의 시나리오는 없다.  김일성이 추구해온 ‘북한주도의 통일’ 목표를 포기한다는 것은 김정일체제의 자기부정과 같은 것으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방위할 의사를 포기했을 때 북한에게 그들 방식으로 통일할 찬스가 온다.  북은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북의 침략을 저지할 행동을 할 것이다.  그때 북의 대량 살상무기는 미동부를 겨냥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이 군사개입을 못하도록 할 것이다.  북한 주도의 통일이 가능한 것은 이 시나리오 밖에 없다.  한․미관계 악화, 남북화해, 대량파괴 무기 개발이라는 세가지 정책목표는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세가지 기본정책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체제의 붕괴를 겁내고 38도선(휴전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38도선(휴전선) 이북 지역의 안전 확보를 우선시하고 있다.  “미국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다” 라는 설명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북한이 ‘체제’라고 말하는 것은 한반도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체제유지’란 38도선(휴전선) 북쪽뿐만이 아니고 남쪽까지 포함하여 한국을 해방한다는 뜻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체제안전이란 미군의 한국방위 의사의 종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조건하에서는 미국이 한국방위 의사를 포기 한다는 것이 어렵지만 앞의 3가지 조건이 구비되었을 때에는 미국의 핵 우산이 파괴되고 전쟁을 하지 않고도 북한 주도의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김정일의 전략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결정적 무기’ 라고 칭한다.  “개발한 것을 어떻게 포기할 것인가” 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2. 왜 통일인가


북한은 1948년 건국이래 통일을 최우선시 해왔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군사력과 협상력을 육성했다. 북한이 군사력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시기는 건국후의 5년간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500명의 미군 군사고문단 밖에 없었다.  1950년 6월에 북은 남침을 개시했다.  그때는 북한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미군이 개입하였고 북한은 아픈 상처를 입었다.  그 이후 북한은 ‘미국과는 싸우지 않는다’ 라는 전략을 원칙으로 하였다.  미국과 싸우지 않고 경제적 부흥과 군사력 회복에 중점을 두었다.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로 한․미간을 이간시키는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남북대화 는 1972년의 7․4 공동성명으로 결실을 거두었다.  그 이후 북한은 한국과는 대화를 추진하고 미국에게는 평화협정체결을 여러번 제안했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해도 재차 개입할 수 있는 조직과 장비가 있으면 북한의 그 시나리오는 그림의 떡이된다.  미국의 개입을 체념케 하려는 것은 핵으로 위협하는 것으로서 미국의 중추부를 위협해서 개입의 의사를 허물어 뜨린다는 것을 목표로 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동부를 사정거리안에 둘 때 북의 핵억지력이 완성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과는 전쟁을 회피하고 남북간에는 화해를 진척시키며, 핵무기를 완성해서 통일이 된다면 그것은 ‘자주적 평화통일’이 된다는 것이다.  핵무기는 북한이 일관되게 통일을 추구해온 기사회생의 수단인데 이러한 통일을 위한 민족의 염원이 장롱속의 무기가 된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받아드릴 수 없는 사안이다.


90년대말이 되어서 한국의 김대중 정권은 북한을 ‘통일을 향해서 걷는 동반자’라고 부르면서 대화를 통한 통일을 구상했다.  한국은 남북한이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지 북한 주도의 통일,  즉 ‘김정일 대통령 코리아’의 북한 출신의 국방장관, 외무장관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  화합만으로서는 북한 주도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조선인민군은 100만 이상의 정규군과 10만의 특수목적의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의 핵전략으로써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최종목표는 1만 5천 Km를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의 완성과 탄두의 소형화 일 것이다.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고 있는 영변에 있는 플루토늄형의 핵개발 시설들은 외부에 잘 알려져 있어 상황에 따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통일을 지향한 핵전략을 가지고 있는 한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7월 5일 미사일실험을 하고 국제사회 비난을 받은 뒤에도 10월 9일 핵실험을 강행했다.  미국의 부시정권이 핵실험 중지를 요구했고 핵실험을 했을 때에는 대북제제가 강화된다는 것을 명백히 한 때이다.  일․중, 한․일 수뇌 회담을 하던 한국, 중국이 즉각 대응하기에 곤란한 때에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대량살상 무기 개발에 따른 risk와 cost’ 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3. 미국․일본․한국


북의 핵실험 뒤 미국의 정책에 미묘한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2003년 5월 31일에 부시대통령이 폴란드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을 제안하고 나서 확산방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10월의 핵실험 뒤에는 중국과의 협의를 중시하고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도 “북한 문제는 시간을 갖고 대처한다” 라고 하는 입장이다.  이행시기를 제시하고 핵 문제해결에 압력을 강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만큼 북핵포기의 압력 수순에 있어서 한국․중국․러시아 등의 지지가 기대한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일본은 납치문제에서는 국내여론이 일치해 있었고 정책의 일관성을 갖고 있었다. 


한국은 북한의 핵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것인가.  10월 3일 북한 외무성은 성명에서 “우리들의 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의 침략위협에 맞서 국가의 최고이익과 우리민족의 안전을 지킨다” 라고 하였다.  ‘우리민족의 안전’이라고 하는 것은 북의 핵무기가 미국으로부터 남북한을 지키고 있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은 우리들이 비핵화 이념을 내걸고 우리민족이 선택한 이상과 제도를 고립, 압살하는 것에 악용했다.” 라는 부분은 1992년 2월에 발효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을 말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핵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핵개발을 한다” 라는 발상도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한국 국민 사이에는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이 원인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북한의 핵무기를 군사전력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적다.  11월 하순 한국육군사관학교의 한회의에 참석하였는데 한국의 30대와 40대의 연구자들은 “북의 핵 전략이란 없다, 북은 파괴력이 큰 것을 가진 것처럼 해서 북한의 붕괴를 피하려고 필사적이다” 라고 설명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김정일에게 핵전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다.” 라는 설명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가 은퇴한 뒤에 한국사회의 이러한 다수의견을 배경으로 한국의 현정부는 “북한을 자극하면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라는 정책을 갖고 있다.


7월에 북이 미사일 실험을 했을 때 대통령(청와대) 홈페이지에 “감히 일본과 같이 새벽부터 크게 떠들 필요가 없다.  이번 사태(7월 미사일 실험)는 정치적 문제이지 안보상의 비상사태는 아니다” 라고 써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 현 정권의 “북한의 핵은 군사적이기 보다 생존을 위한 교섭력이라는 의미가 맞다” 라는 인식과 일치한다.


그러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핵개발을 그만두라고 설득할 때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조선중앙통신이 10월 9일 지하핵실험 보도를 할때 “핵실험은 100% 우리들의 지혜와 기술로써 행해진 것으로서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 온 우리 군과 인민에게 큰 고무와 기쁨을 주는 역사적인 일이다” 라는 기사가 있었다. 북한은 60년대부터 국방의 자립화를 추구해왔기 때문에 핵무기로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북한이 그냥 중국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핵전략의 성패는 중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핵실험 8일전 노동신문은 10월 1일 논설에서 “북․중 친선을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당과 조선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라고 배려했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인 것은 핵실험 직후에 북한이 6자회담의 재개를 중국에 의뢰할 때 중국은 ‘대북제재의 총론은 찬성, 각론은 반대’를 결정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를 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환경은 2005년 9월의 6자회담 공동성명 때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북의 대포동 2호발사와 핵실험이라는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그결과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써의 대우’를 요구한 것이 변화이다.


4. 위험 시나리오와 일본


한반도에는 아직도 위험한 안보구조가 남아있다. 

제1은 단기적으로 보아서 대북재재 활동과 관련되어 있는 엄격한 선박검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의 가능성이다.  선박검사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찰요인이 상승하면 소규모 군사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2는 미국에 의한 군사적 선택도 있을 수 있다.  6자회담 재개노력을 지속하지만 고착상태가 계속될 때에는 북한의 핵의혹 해결을 위한 미국의 결단에 따라  군사행동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이다.  그때는 중국․한국의 입장이 열쇠가 될 것이다. 


제3은 북이 핵전략을 배경으로 적화통일의 행동을 실행할 때에 분쟁이 일어난다.  남북공동사업이 진척되면서 한국사회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으로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방위의 한국화가 촉진된다. 북이 대량살상무기를 완성할 때 주한미군이 없는 상태를 가정한 것이지만 장기전략으로써는 배제할 수가 없다.  화평의 시나리오로서는 첫째로 핵포기 제안을 북한이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김정일 총비서가 리비아 카다피식의 선택을 할때이다.  둘째는 미국이 대한반도 정책을 전환하여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를 내놓을 때는 핵개발문제의 근본 해결에 도달하지 못해도 제재를 일방적으로 해제하고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을 종식시킬 때이다.  세번째는 남북이 합의해서 통일 코리아가 평화적으로 경제건설에 종사할 때로서 이것은 최선의 시나리오지만 한국과 북한의 어느 쪽이 통일 코리아의 모체가 되느냐 하는 큰 부분이 불분명해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남북간의 대립이 심화되는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이상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동북아 각국에게 요구되는 바가 있다.

제1은 김정일의 핵전략이다.  이러한 관점을 갖고 동북아 안정을 모색할 때이다.  미군주둔과 비무장지대가 그대로 지속되면 한반도에서의 분쟁 가능성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추구해온 북한의 핵전략이 있고 미국이 한국방위의 한국화에 동의하고 있으며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2는 한국이 2000년에 남북수뇌회담 이후 남북교류를 중시해왔다는 점이다.  북의 핵실험 뒤에도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2007년의 대통령선거를 향해서 한국은 더욱 더 유화적으로 될 것이다.  그러한 한국에게 북한은 “우리들의 핵으로 지킨다” 라고 까지 말할 것이다. 지금 일․미․한의 정책협조가 중요하다.  국제적으로 남북교류와 6자회담을 연계해서 대량살상 무기 확산 방지대책 강화가 과제로 되어있다.  일본으로서는 납치문제를 환기시키고 안전보장과 무역관리의 국제협력을 호소할 필요가 있다.


제3은 일본의 방위체제도 장기적인 시야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보수집능력과 미사일방위의 능력의 강화가 그것이다.  그때에는 미국과의 협력 강화가 불가피해진다.


5. 6자회담의 효용


북한에게 핵무기 개발을 단념시키기 위한 외교 교섭의 장은 6자회담 뿐이지만 현재 6자회담은 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6자회담의 성격은 흥미 있는 것으로 시작할 때에 비교하면 꽤 많이 변했다.  2002년 10월 고농축 우라늄의 핵무기 개발계획의 존재가 분명해진 다음부터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문제 해결의 목표로  ‘돌이킬 수 없는 핵시설의 완전해체’ 라고 하는 점을 강조했다.


당초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북이 1994년 10월에 합의한 약속을 위반한 것이라고 여기고 상대가 완전 해체로 향한 신제안을 하지 않는 한 북과의 직접교섭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미북합의는 “남북비핵화 공동선언(1992년 1월22일)의 취지이행을 일관해서 행한다”로  되어있고 공동선언에는 “남북은 핵무기 실험, 제조, 생산, 반입,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않는다” 로 되었있다.  미국은 북한이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단정했다.


그후 미국은 중국이 움직이는 것이나 국제여론을 고려해서 미․중․북의 3자협의에 응해 2003년 4월 북경에서 3자협의를 개최하였다.  그해 회의 중간에 북대표가 미대표에게 “우리들은 핵을 갖고 있다”라고 귓속말을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북한이 스스로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북한은 미․중․북의 3개국 협의를 일․미․한․북․중․러의 6자회담으로 확대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먼저 러시아의 입장을 타진한 후 설명하여 승낙을 얻었으며, 중국에 대해서는 6자회담의 실행 역할을 부탁했다.  이 사실은 그 시기에 참가한 국제회의에서 6자회담의 맴버국 정부고관에게서 직접 들었다.  중국은 미국, 일본, 한국, 러시아에게 이 구상을 설명했다.  2003년 5월부터 6월의 시기이다.  북은 고농축 우라늄형 핵무기개발 사실이 미국에게 감지되었다고 판단하고 미국의 ‘군사옵션’ 을 회피하기 위해 중국에 이어 한국․러시아라는 북한 이해자를 필요로 했기때문이다.  그 무렵에 북이 “타국간 협의에는 나가지 않는다” 라고 주장한 것은 본의가 아니고, 6자회담의 구상이 북으로부터 나온 안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제안이라는 것이 판명되면 북이 6자회담에 출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되기 때문이었다.


제1회 6자회담은 2003년 8월 북경에서 개최되었다.  협의에서는 미국과 북의 대립이 나타났고, 중국의 외교부부장이 행한 의장연설은 ‘평화적 해결’과 ‘북한의 안전에 대한 합리적인 관심을 고려한다’ 라는 것으로 “북한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핵무기개발을 한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라는 뜻으로 북의 주장에 중국이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런 말로 인해 북은 ‘핵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쉬워졌다.  제1회 6자회담의 내용은 미․북 대립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6자회담은 난항을 하였으나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문서에는 고농축 우라늄형 핵무기개발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모든 핵무기 그리고 기존의 핵 계획의 포기와 핵확산 방지조약 그리고 국제원자력 기구에  조기 복귀” 라는 표현으로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할 때 협의는 진전할 수 없게된다.  좀 추상적인 말로 하는 대신 미국에 의한 북의 공격의 의도가 없는 것을 약속하고 에너지자원의 구체적인 언급을 한 내용이었다.  성명은 “대북 지원을 실행한다”와 “핵을 포기한다”의 두가지 안을 절충한 것으로 보이나 “존재를 인정한 핵개발 계획의 포기라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가” 라는 근본적 의문을 남겨둔 문서였다.


6. 핵보유국의 자신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를 강경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금융제재의 영향이 심각하다는 것보다도 핵보유국이 된 북한에 차후에는 미국이 양보할 것이라고 판단한 까닭이다.  북한의 요구는 상승되고 평양에서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보도가 계속됐다. 11월 6일 북한이 일본은 6자회담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보도한 것은 핵 실험후 요구가 상승된 한 예이다.  한국의 보도로는 북은 11월 28일의 미․북․중의 협의,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의의 효력정지와 각국의 대북한 제재조치의 해제, 에너지 지원 등 핵폐기의 반대급부 등에 대해 언급하고 종합적인 대북지원책을 요구한 것 같다.  6자회담의 일정이 결정되지 않는 것은 핵보유국으로서의 대우와 발언권을 요구하는 북이 요구사항을 상승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미국이 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한 뒤 보다 강해진 위상으로 6자회담에 출석한다고 기대하고 핵보유국으로서 데뷰하는 무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은 북의 핵개발 포기를 향해서 일․미․중․한․러의 5개국이 지혜를 짜내고 북한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는 모양새지만 중요한 것은 다음의 5가지이다. (1) 6자회담은 북한의 아이디어로서, 6자회담은 미국의 강경 수단에 대한 북의 대항수단이었다. (2) 중국이 핵포기 설득을 시도했다고 하는 것 보다 북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북이 느끼고 있는 불안에 일리가 있다” 라고 하며 미․북 중개를 시작했다. (3) 미․중 사이에는 핵포기가 먼저냐 북의 안전보장이 우선이냐 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4) 6자회담의 계속여부는 핵계획을 지휘하고 있는 김정일의 의사에 달렸다. 회담 계속과 참가거부의 사이에서 북한 내부에서의 이견은 없다.  (5) 북의 핵무기는 외교목적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중국․한국․러시아와 군사목적과 외교적 목적의 양용으로 생각하는 미국․일본․북한의 사이에는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있다.  이런 5가지 점은 6자회담이 시작될 때와 변함이 없다.




7. 동북아의 안전보장의 모습


동북아의 정세는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만 봐도 복잡하다.  미국은 6자회담에 이전 만큼 적극 적이지 않아보인다.  UN제재에는 중국의 협력과 북이 핵을 완전포기 한다는 2가지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의 속셈은 그렇지 안타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을 갖고 북의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부시 대통령의 복안이다.  “전적으로 핵시설과 핵계획을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완전히  해체하고 시간을 정하여 북을 압박한다” 라는 정책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은 대량살상 무기 확산방지로 북핵문제 해결중점을 옮겨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일본은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가 일본에 있어서의 현안 문제이고 일․미는 항상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6자회담의 쟁점과 의의는 변해왔다. 이런 교착상태가 계속될 때 6자회담의 존재가 또한 불투명해질 가능성도 있다. 관련 6개국이 모이는 6자회담의 의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6개국은 나름대로의 입장의 일치점과 불일치점을 의논하는 유일한 장소이다. 이제부터 6자회담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회의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관점은 무엇인가.  북한은 6자회담이 미국의 강경수단을 피하는 대피장소라고 생각하고 중국․한국․러시아를 포함한 다국적간 회의로 시작한 출발점으로 돌아가 금후의 과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상의 것을 실천에 옮기고 교착상태에 빠진 6개국협의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지역의 안정과 테러대책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 등을 의논하기 위한 확대 6자회담을 검토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예컨데 인도․호주․EU를 포함하는 9자 회담을 창설하고 6자회담의 타개를 도모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