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망하자니까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구먼?”
궁녀들은 서로 모이기만 하면 수근거렸다. 그들의 눈은 헤아릴 수 없는 두려움에 가득해 있었다.
“아, 글쎄. 어젠 대낮에 여우들이 궁중으로 몰려들어 오는데 흰 여우를 앞장세우고 열을 짓고 들어오는 꼴이 꼭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 같더라니까.”
“어디 그 뿐이겠수? 다른 여우들을 거느리고 쳐들어 온 흰 여우가 쓱 한 번 둘러보더니 상좌평 어른의 책상에 떡 올라앉지 뭐유?”
상좌평이란 좌평의 우두머리로 곧 수상격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징조일까?”
“큰 소리론 말할 수 없지만 나라가 다 망해가는 징존지도 몰라요.”
“그건 또 왜?”
“여우같은 적군이 궁중에 쳐들어 와서 그 우두머리가 상좌평이 된다면 나라꼴이 다 되지 뭐유?”
그 해 四월, 이번에는 태자궁에서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태자궁 앞뜰에서 큰 암탉 한 마리가 조그만 참새와 교미를 한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징졸까?”
거듭되는 이변에 민심은 흉흉했다.
“큰 새가 작은 새와 교미를 했으니 장차 큰 나라가 작은 나라와 합친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큰 나라는 어느 나라구 작은 나라는 어느 나란구?”
“큰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당나랄 거구. 작은 나라는 우리 백제가 아니면 고구려겠지.”
“그러니까 당나라가 고구려나 백제와 합친다는 뜻이요? 그렇게 되면 오죽이나 좋겠소. 그 힘을 빌어서 저 원수 같은 신라를 쳐부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게 아니요. 당나라는 원래 우리를 미워해 왔으니까 신라와 합쳐서 우리를 치겠다는 징조겠지.”
해석은 구구했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한결같이 검은 구름이 드리웠다. 이변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 해 五월, 왕성 서남쪽 사비하에 큰 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세 길이나 되었다. 사람들은 그 큰 고기가 곧 백제의 임금을 뜻하는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그 해 九월, 가을이 깊어지자 궁중의 느티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는 마치 백제의 최후를 슬퍼하는 곡성같이 들렸다.
그러한 속에서 해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변은 역시 계속되었다. 추위가 채 가시기 전 二월 왕성안의 우물들이 모두 핏빛으로 변하고 사비하 흐르는 물들도 모두 핏빛과 같았다.
“장마철도 아닌데 어째서 강물이랑 우물물이 핏빛으로 물들었을까?”
“이제 난리가 나서 그렇게 피를 흘리게 된다는 징조겠지.”
이젠 어떠한 징조든지 불길한 것으로 말을 돌리려고 했다.
그 해 四월에는 두꺼비들이 수만 마리나 나무위로 올라갔고, 五월에는 푸우가 사납게 이어나서 천왕사(天王寺) 와 도양사(道讓寺) 두 절의 탑이 진동하고 검은 구름이 용과 같이 일어나서 동서로 갈라져 서로 싸웠다.
六월에는 개 모양을 한 들사슴 한 마리가 서쪽 사비하 언덕에 와서 궁성을 향해 짖다가 간 곳없이 사라졌고 그를 따라 왕성안의 많은 개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울부짖다가 흩어졌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모두 다 흔히 있음직한 현상일는지 모르지만 한 번 어수선해진 민심에는 그것들이 모두 깊은 뜻을 지닌 것처럼 두려울 뿐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이 어수선해지니 조정의 대신들과 왕의 마음 역시 편할 리가 없었다.
어느날 밤이었다. 한 궁인이 달려 들어오며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 귀신이 나타났습니다.”
궁인은 샛파랗게 질려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귀신이라니,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나?”
왕은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궁인의 말을 물리쳤다.
“아니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사와요. 저뿐 아니라 다른 궁인들도 다 같이 보았사와요. 갑자기 궁궐 담 위에 머리에는 뿔이 달리고 입이 귀까지 째진 것이 나타나더니 백제가 망한다. 소리치고는 땅속으로 들어갔사옵니다.”
왕은 이 소리를 듣자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 세상엔 귀신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밝혀 들뜬 민심을 가라앉히자는 생각이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 귀신이 들어갔다는 곳을 파보도록 해라. 그 곳에서 귀신이란 것이 나오면 네 말이 옳을 것이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네가 잠깐 허망한 꿈을 꾼데 지나지 않을 게다.”
이렇게 말한 왕은 즉시 사람을 시켜 귀신이 들어갔다는 자리를 파보게 했다. 깊이 석자쯤 파내려갔을 때였다. 땅 속에서 거북 한 마리가 나왔다. 그리고 그 거북의 등에는 이런 글이 써 있었다.
<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왕은 그 글의 뜻을 얼핏 새기기 어려워 무당을 불러 물었다. 그 무당은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달이 둥글다는 것은 곧 보름달을 말하는 것이옵니다. 보름달은 곧 이즈러지고 초승달은 점점 둥글게 되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이치옵니다.”
그러니 결국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다 왕은 크게 노하여 그 무당을 죽여 버렸다. 민심을 가라앉히겠다고 한 일인 데 오히려 소란하게 만들어 놓은 셈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민심을 가라앉혀 보려고 뇌심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첨 잘하는 한 신하가 나타나더니 왕의 비위를 맞춘다.
“대왕, 조금도 심려하실 것은 없을 줄로 아옵니다. 그 글발은 불길한 것이 아니오라 오히려 크게 길한 것인 줄로 아옵니다.”
“크게 길한 말이라니?”
“둥근 달은 왕성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오며 초승달은 쇠미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오니, 곧 백제의 국운은 날로 왕성해지고 신라의 군운은 날로 쇠미해진다는 징조인 줄로 아옵니다.”
그 해석을 듣고 왕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는 그 뜻을 즉시 많은 백성에게 알리도록 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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