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김교신(金敎臣)과 성서조선(聖書朝鮮) ⑤

鶴山 徐 仁 2007. 2. 2. 20:31
 
   
   
  서정후님께 드립니다.
     
김교신(金敎臣)과 성서조선(聖書朝鮮) ⑤

- 김교신과 흥남질소비료공장 -

김교신 선생은 《성서조선》지 1942년 3월호에 실었던 조와(개구리의 죽음을 애도함)란 제목의 글로 인하여 《성서조선》은 폐간 되고 신앙의 동지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일년 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출옥 후 교사직에 복직할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위하여 함흥에 있는 질소비료공장의 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에 사감(舍監)으로 취직케 되었다.

함흥질소비료공장에는 5000여명의 조선 노동자들이 있어 그들을 위한 기숙사에 사감으로 들어간 것이다. 선생이 사감직을 맡고 보니 동포 노동자들의 생활이 상상 외로 무질서하고 문란하였다. 월급을 타서 술로 탕진하고 도박판을 벌리고 다툼과 시비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를 가슴 아파한 선생은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건실한 생활을 하기를 설득하며 다녔다. 새벽녘까지 도박판을 찾아다니며 때로는 울면서 그런 삶을 청산하기를 설득하였다.

노동자들이 처음에는 심히 반발하였다. 별 희한한 사감이라고 수근 대며 손가락질하고 때로는 욕설을 퍼 부으며 반발하였다. 그러나 진실은 통하기 마련이었다. 끝내는 노동자들이 김교신 선생의 진심에 감동을 받아 하나하나씩 그런 생활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복하여 새 생활을 하도록 이끈 일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