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다
김철진(시인, 예술촌 촌장)
인도의 시성(詩聖) R.타고르(1861~1941)의
'동방(東方)의 등불'에 나오는 시구(詩句)가 생각난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그런데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동방의 밝은 빛'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어둠 속 천 길 만 길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나라의 정치는 실험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관성 있는 정책도 없이
국민을 볼모로 정치 실험을 계속하고만 있다.
그 결과로 나라 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러다 보니 빈부 격차는 더욱 커져서 양극화 현상만 심화시키고 있다.
시방 온 나라가 부동산 문제로 난리를 치는 데도
정부 정책은 우왕좌왕하며 똥 오줌을 못 가리고 있고,
정부가 그러하니 서민들은 오리무중 답답한 가슴만 쥐어뜯고 있다.
정부는 2004년 2월 확정 발표하고, 지난 20일만 해도 거듭 확인하며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던 아파트 후분양제를
하루만인 21일 재검토키로 했고,
시중은행들은 지난 17일 주택담보대출을 전격 중단했다가
사흘만인 20일 다시 재개하는 등
정책 혼선만 국민들에게 내보임으로써
국민들의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조장하고 있다.
이 모두가 철저한 사전 준비가 없는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정책 때문이다. 그뿐인가.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 역시
정부 여당 내에서조차 기본 입장이 엇갈리며
서로 다른 목소리들을 쏟아내고 있으니
국민들이 과연 어느 말을 믿고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날이 갈수록 이 땅에 왜 정부가 필요한지
그 존재 이유를 알 수가 없어진다.
상일동 고덕주공4단지 16평형이 5억 2000만 원에서 6억 원 선이고,
서울 강남 지역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 값이 9억여 원이라니,
서민들이 평생 뼈빠지게 고생한다 해도
월급 받아 생활하고 자녀 교육시키며
언제 그런 돈을 모아 내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겠는가?
누가 올렸는지는 몰라도 지난 5월 청와대가
'집값에 거품이 끼었다'고 지목한
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용인 평촌 등 세칭 '버블 세븐'에 산다는
청와대 직원 리스트가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이 리스트를 보면 얼마전 사임한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서
수석비서관 2명, 보좌관 3명, 비서관 11명 등 모두 17명의
청와대 전현직 참모 실명이 주소와 함께 올라 있다.
국민들에게는 투기하지 말라 하면서
코드 인사로 청와대에 들어간 자신들은
버블 세븐을 찾아가 투기를 하고 있으니
이 나라꼴이 뭐가 제대로 되겠는가.
물론 청와대 직원이라고 버블 세븐에 살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그 정도의 위치에 있다면
적어도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말쯤은 알고 처신했어야 하는데
그것도 오비이락(烏飛梨落)이 아닌 것 같으니 더욱 문제인 것이다.
다음달 종합부동산세 과세를 앞두고
이 버블 세븐에 사는 주민들은
'종부세 저항' 서명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아파트값내리기모임,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등에서는
집값 폭등과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 등
근본적인 부동산 대책 마련 촉구를 위한 시민대회를 열고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라 하니
여기서도 양극화 현상의 한 단면을 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러고만 있을 것인지 걱정의 도를 넘어서고 있다.
조선 시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자리에 나아갔던
선조 한 분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고을 원으로 부임해 가면서 나귀 한 마리만 끌고 갔는데,
그 나귀가 임지에 있는 동안 새끼를 여러 마리 나았다.
그런데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새끼는 거기서 난 것이라 그냥 두고
끌고 갔던 늙은 나귀만 데리고 왔다는 일화이다.
이것이 청렴한 목민관의 올바른 삶이다.
요즘 세상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한결같이 바보라 하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이기에
선조의 이 일화는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론을 써야 하니 글을 쓰기는 쓰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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