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스크랩] 다시올린 종운이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가을 편지"

鶴山 徐 仁 2006. 10. 8. 10:09

게시글들을 뒤지다가 작년 오늘(2005. 10. 7)에 종운이가 올렸던 "친구들에게 보내는 가을 편지"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해서 올린다. 친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례적인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그 친구의 과거 역사에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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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이종운이야.

세상을 복잡하게 살아온 내 탓일테니 자수해야겠군!

 

40여년 전, 고교시절은 기억도 잘 안나는군. 이목 선생님이 체포되시던 날, 마루운동하다가 잘 못 떨어
져서 고생한 일, 유도반 송인문 선생님이 나만 집어던지시는 통에 회전낙법 하나는 확실히 배웠던 기억,
마지막 담임선생님은 김재경 선생님이 셨다는 것... 뭐 그런 것들이 생각나네. 대학과 ROTC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로 오니 참담하기만 했었지. 가정교사 자리를 얻어 연명하면서도 미래의 꿈을 접지 않았던
명동 '설파다방'의 친구들, 세운상가 '덕화성'의 생맥주의 위로를 받던 시절, 결국 한국을 탈출할 결심을
하던 때가 생각나는군. 지구본을 들여다보며 어디로 도망갈까 망설이던일, 그래도 한국과 이탈리아가
제일 멋지게 생겼다고 감탄하면서 자연과 음악과 멋이있어보이던 뷔엔나를 찍은 것은 외국잡지에서 오
려낸 그림 한 장 때문이었지. 가스등 아래의 까만 마차, 그 속의 우아한 두 사람... 당시로서는 신비롭기
만 한 그림, 그리고 그냥 들어온 얕은 상식들이 마지막 결심을 하게 만들었고 100달러 들고 나갔었지.
당시로서는 천신만고 끝에... 7년간의 알프스 야생동물 생활은 지금도 돌아가고싶은 생활이었지. 어려서
부터 좋아하던 자연 속에서 뒹굴다가 완벽하게 단절되었던 고국으로 돌아올 생각을ㄹ 한 것도 고향, 친
구, 가족같은 단어들을 희망 행복 등의 추상명사로 착각했었기 때문이었어. 어설픈 모습으로 귀국하자
세상을 바꿀만큼 큰 일을 하겠다고 설치다가 눈을 다쳤고 결국 외로운 길을 걷게 된거야. 한 때는 더 이
상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많은 은인들과 친구들에 의해 자신을 추스르게 되었고,
밖이 잘 안보이면 안이 더 잘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철학자들이 말하는 초월성(transcendens)
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어. 난 자네를 찾아갈 수가 없다네. 운전도 못하게 되었고, 혼자서는 맘대로 돌
아다니지도 못하거든. 언제나 도우미가 필요하고, 덕분에마누라랑 팔장끼고 다니는 잉꼬부부(?)가 되었
지. 그래도 E-메일, 인터넷, 워드 정도는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산다네.

친구야,

내가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지나칠 때 들린다면 진한 커피는 끓일 줄 알지. 날씨가 좋다면 정원에서 바베
큐도 할 수 있다네. 향기로운 술도 한 잔 나누며 피곤했던 인생 얘기도 길게 나누고 싶다.

이종운

E-메일: curi@yu.ac.kr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재경동기회
글쓴이 : 카페지기(여정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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