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스크랩] 우리 이 가을에는 편지를 쓰자 / 달구벌 시론(2006.10.2.월)

鶴山 徐 仁 2006. 10. 8. 10:11

 
    우리 이 가을에는 편지를 쓰자 김철진(시인, 예술촌 촌장) 뉴스를 봐도 신문을 봐도 어느 한구석 살맛나는 기사가 없다. 그만 자려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불을 켠다.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쓰려고 하니 편지를 쓸 곳이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편지를 쓸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쓴다는 일이 이미 낯설어진 지가 오래이기 때문에 편지 쓰는 일에서 너무 멀리 떠나와 있는 것이다. 내가 편지를 써 본 것이 언제였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컴퓨터를 사용하고부터는 모두 메일로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부분 전화로 이야기하고 어쩌다 필요할 때만 메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내오지 않았던가. 군에 복무할 때만 해도 시골 학교의 한 여선생에게 엽서 백 장을 일주일에 다 써서 부치기도 했었다. 그 이후 사회 생활을 하면서부터 편지 쓰는 일이 뜸해졌지만, 컴퓨터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친구들에게 가끔 엽서라도 부치곤 했었는데 가슴의 정서가 말라가는 데 비례해서 그만큼 편지 쓰는 일을 아예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이것이 비단 필자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편지를 받아 본 기억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을에는 편지를 써야 겠다. 세상이 각박해져 사람 냄새가 사라질수록 가슴에 인정의 샘물을 지니고 살려면 편지쓰기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얼마전에 한 시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봉투를 뜯어 보니 두꺼운 한지로 만든 카드 형태의 편지였는데 연잎 세 개와 활짝 핀 연꽃 한송이와 연꽃 봉오리 두 송이을 오려 붙였을 뿐 정작 카드 안쪽에 있어야 할 사연의 자리에는 하얀 백지만 붙어 있었다. 그 시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할말이 없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할말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혼자만 생각을 굴리다가 '백지 편지'라는 아주 짤막한 시 한 수를 지었다. '마음 / 글로는 / 적을 수 없어 // 연꽃 / 세 송이 / 오려 붙여 보낸 / 백지 편지 / 한 / 통'(졸시 '백지 편지' 전문) 그렇다. 서양화의 꽉 채워진 화폭보다 동양화의 부족한듯한 화폭의 여백을 더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백지 편지에서 오히려 더 많은 사연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도 내 답장은 인터넷의 메일로 발송되었었다. 어쩌면 이제는 종이에 글자를 쓰기보다는 자판을 두드리는 데 더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로 주고받는 메일에는 어딘가 모르게 인간미가 부족한 것 같다. 역시 편지는 종이에 정성들여 글씨를 써서 보내고 받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오늘 따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내가 사는 봉화에는 우체국에 갤러리가 만들어져 있어 봉화송이축제 행사의 하나로 올해 벌써 다섯 번째인 '천치들의 이야기.다섯' 시서화(詩書畵) 전시회를 '우체국 작은 갤러리'에서 열고 있기 때문에 우체국 앞에 놓인 빨간 우체통을 더 유심히 본 때문이다. 그 빨간 우체통도 이젠 사라져 가고 있지만 남아 있는 우체통마저도 입을 벌리고 늘 배고파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 1월부터 한달에 두 번씩 한심스런 세상 두고 시론은 써 오면서도 지기에게 아니면 그리운 이에게 편지 한 통도 못 써 보낸 스스로에 대한 매서운 책망이 이 시간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그래, 오늘은 기필코 누구에게든 편지를 써야 겠다. 우리 이 가을에는 편지를 쓰자, 엽서 한 장이라도. 누른 빛깔을 넘어 빨간 빛깔로 변해가는 이 땅에서 편지를 쓰면서 말라가는 마음의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고 잃어가는 인간미를 되찾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만이라도 살맛나는 세상을 가꿔 나가자.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재경동기회
글쓴이 : 村長(김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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