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6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3일부터 5일까지 전국 200개 대학 총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에서 개최한 하계 총장 세미나는 대학사회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민하는 대학 총장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교육환경 변화와 대학의 경쟁력 제고’라는 세미나 주제처럼 대학 총장들은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거론하며 “이제 대학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들어섰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03학년도부터 고교 졸업생 수보다 대입 모집 정원이 많아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미충원 인원이 8만5853명이나 됐다. 정원의 50%를 채우지 못한 대학이 32개대나 되고 지방대는 그나마 입학한 학생들도 편입학 등으로 빠져나가 학교가 텅 비어가고 있다.
더 큰 걱정은 이런 추세가 2011년까지 계속된다는 전망이고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제환경을 감안하면 상당수의 대학이 존립 자체가 어려워 ‘연쇄 도산’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학들이 말로는 위기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태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울대부터 지방의 작은 대학까지 학과 개설이나 교육과정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점이나 너도나도 ‘연구중심 대학’만 내세우고 있는 점이 그렇다.
“옛날에는 칠판하고 분필만 있으면 학생들이 저절로 들어와서 등록금 꼬박꼬박 내는데 무슨 노력을 했겠어요. 그때 돈벌어 공룡처럼 덩치만 키운 결과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겁니다.”(지방 K대 총장)
호남대 최인기(崔仁基) 총장도 “모든 대학이 다 정원을 늘려놓고는 이제 와서 학생 자원의 부족에 직면해 존폐의 위기라고 걱정한다. 근본 문제는 정원 축소 등 과감한 구조조정밖에 없다”며 대학의 각성을 촉구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대학 교육에 투자하는 ‘고등교육재정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대학들의 자구노력 없이 돈만 지원한다고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대학들은 유사학과 통폐합이나 대학간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서두를 것 같았지만 실제로 성사된 것은 거의 없다. 교수 교직원들이 학생의 교육보다는 자신의 자리가 없어질 것을 우려해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오늘의 위기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해하는 한 우리 대학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했으면 한다.
이인철 <동아일보 사회1부 차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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