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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호미곶은 해맞이 명소뿐만 아니라 등대박물관과 인근 항구 그리고 빼어난 풍경으로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한반도 전체를 호랑이 형상으로 볼 때, 백두산은 호랑이 머리이고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 김정호는 국토의 동쪽 끝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 한 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고 기록하였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지리지 편에 자연 경관이 수려한 호미곶을 '대한 십경' 가운데 하나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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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호미곶 광장. 바람은 청정에너지가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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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헌종 |
| 호미곶 광장에 다가서면 육중한 풍력발전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청정 에너지를 만드는 바닷바람이 고마울 따름이다. 등대 못지 않은 명물거리다.
1903년에 준공한 국내 최대의 대보 등대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착공당시의 등대는 지금의 위치보다 남서쪽인 고금산 산등성이로 일본인들이 명당 혈을 찌르기 위해 쇠를 박은 곳이라 한다.
이때 주민들이 "범 꼬리에 불을 켜면 범이 놀라 꼬리를 쳐, 큰 천재지변이 난다"고 반대, 기초공사를 중단하고 지금의 자리에 새로 착공했다고 한다. 일본인에 의해 좌우되는 등대 건설 현장에 맞선 선조들의 항일투쟁의 역사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범 꼬리에서 구룡포 항으로 가는 해안도로는 볼거리가 많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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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배는 바다를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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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헌종 |
| 과메기, 오징어 등으로 유명한 구룡포는 범 꼬리의 동쪽 해안선이 남쪽으로 내리 달리다가 산줄기와 만나 활처럼 휘어져 항구를 이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항구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는 일본식 건축물이 눈에 띈다.
특히, 구룡포 개발에 공헌한 일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유공자 탑'이 구룡포 공원에 아직도 남아 있다. 해방 후 친일적 내용이 새겨져 있는 탑의 표면을 훼손하여 명문은 알아볼 수 없으나, 폭 1.5m, 높이 5m나 되는 자연석의 탑신은 그대로 서 있다. 후세의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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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포엔 일본식 건물을 볼 수 있다. 뒷산에 '일본 유공자 탑'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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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헌종 |
| 구룡포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용이다. 마을 이름부터 남다르다. '아홉 마리 용'의 항구, 구룡포.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시절, 장기현령이 늦봄에 각 마을에 순시하다가 지금의 용주리를 지날 때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했다고 한다.
그 중 한 마리가 떨어져 죽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친 일이 있는데,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 했다는 것이다. 구용산맥, 용두산, 용두귀운(龍頭歸雲), 용주리, 용왕당, 어용곡, 구용소 등. 산과 바위 그리고 마을 이름에도 용이 등장한다.
바닷가 사람들과 용은 어떤 사이일까?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억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에게 바다는 한낱 낭만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경외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풍어를 기원하고 삶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상징으로 용이 자주 등장한 것이 아닐까? 용과 비슷한 상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적인 동물로 자주 등장한다.
성경에도 뱀이 이브를 유혹해서 선악과를 땄다고 기록되어 있고 유럽에서는 수많은 전쟁과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이 '괴물'로 묘사된다. 이는 지배 권력이 힘의 상징으로 흉악한 용을 자주 설정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서양에 등장하는 용은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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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의 노을. 고래를 기다리는 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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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헌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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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으로 둘러쌓인 어촌집에는 아직 노을이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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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헌종 |
| 그러나 동양의 용은 공포와 신비의 대상을 넘어 바닷가 동네의 삶 속에 자리한다. 특히 바닷가는 '용왕'이란 상징으로 대표되듯, 외형은 무서워도 착한 자를 도와주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성한 동물로 등장한다.
고인돌이 있는 고래잡이 항 다목포(多木浦), '고래생태마을'로 조성할 듯
구룡포 읍에서 대보면 쪽으로 가는 길에 고래잡이 항으로 알려진 다목포가 있다. 송림 우거진 어귀에 형성된 마을이라 그렇게 이름지었다 한다. 마을 앞에 큰 모래 더미가 있었다고 '강사리'라 불린다. 울산지역 장생포 못지 않게 구룡포와 더불어 고래잡이 항구로 동해안에 이름난 항구였다고 한다.
보호를 위해 포획이 금지된 고래는 가끔씩 그물에 걸리기도 한다. 그물에 걸린 고래는 말 그대로 '바다의 로또'이다. 1월에 걸린 고래는 사천여만원에 경매되기도 했다. 혹시, 바다의 고래와 전설 속의 용이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포항시와 시민단체들이 올 해 안에 이 마을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고래생태마을'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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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리 숲 속의 바위. 인근에 고인돌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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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헌종 |
| 강사리에는 큰 바위 돌이 많이 보인다. 산등성이에는 고인돌로 판명난 것도 두 개나 된다. 최근 해안도로 확장공사 중인 곳도 유물이 다량 출토되어 해안 반대쪽에는 문화재 발굴이 한창이다. 신석기 때부터 사람들이 산 흔적이 호미곶 인근 여기저기에 발견되고 있다.
호미곶을 휘감은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또 다른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가 펼쳐진다. 풍파가 심하면 고기들이 뭍으로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까꾸리('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까꾸리 항을 지나, 영일만을 굽이치는 해안 절경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내뱉게 한다.
더욱이, 어느 곳이 바다이고 어느 곳이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는 풍경과 더불어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은 여행객들에게 주는 자연의 또 다른 '보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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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산리 선착장. 멸치잡이로 유명한 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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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헌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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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바위 너머로 노을은 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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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정헌종 |
| 해맞이 동네에서 보는 저녁 노을은 가히 새삼스런 맛을 보기에 충분하다. 붉은 노을에 탄성을 지르지 않고는 더 이상 발길을 돌릴 수 없다. 손에 잡힐 듯한 거리의 바다에는 작은 고깃배가 항구의 품으로 향하고 있고 내일의 물 작업을 준비하는 어부들의 몸놀림으로 작은 포구의 방파제 등은 더욱 환하게 비춘다. 저 멀리 포스코 야경이 아슬아슬하게 눈에 들어찬다.
꾸불꾸불한 내리막 길이 끝나자마자 '대동배'란 어촌이 보인다. 최근, 인근 해역에서 밍크 고래가 잡혔다는 안내자의 설명. 만선을 한 고깃배에서 보면 '날아가는 학' 모양과 같다고 하여 '학산'이라 불리는 산이 드넓게 해안을 품고 있다.
"산 끝자락에 보이는 저 곳이 '용치미' 입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지요."
안내한 김대창 씨의 말이다.
"뭐라고요! 여기도 아홉 마리 용 전설이 있어요?"
구룡포와 정반대인 대동배 포구에도 아홉 마리 용이 살다 승천하였다는 구룡소가 있었다.
'높이가 40∼50 미터이고 둘레는 100여 미터의 움푹 패인 기암절벽이다. 용이 살았다는 소(沼)에는 맑은 바닷물이 드나들고 바닥의 평평한 곳에 여러 형상의 바위가 솟아나 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할 때 뚫어진 9개의 굴이 있다.' - 영일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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