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오늘밤에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 집안 식구 한 사람씩을 물고 가서 이제 남은 사람이라고는 자기 혼자뿐이라며 오늘밤에는 마지막으로 자기도 잡혀갈 것이라는 얘기였다. 젊은 선비는 그 처녀가 너무나 측은하게 여겨져서 그 괴물의 정체를 꼭 밝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선비는 처녀의 마음을 진정시킨 뒤 술 한 독과 고기며 과일을 갖춘 음식을 차리도록 부탁하여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상은 문 앞에 차려놓고 큰 촛불을 가져오게 하여 집안을 밝게 비춘 다음 명주실 한 타래를 준비하여 여러개의 고리를 만들어 방문 앞 음식상과 술독 주위에 펴놓은 뒤 처녀를 벽장 속에 숨겨두고 대청마루에 칼을 쥐고 누워 있었다.
이윽고 한밤중이 되자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불빛에 번들거리는 거대한 괴물이 지붕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혀를 널름거리며 내려오는지라 이를 본 젊은 선비는 칼을 빼어 괴물의 등을 힘차게 내리쳤더니 괴물은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명주실 고리가 목에 감긴 채 숲 속으로 사라졌고 명주실 타래도 풀려나갔다.
이윽고 한숨을 돌린 선비가 괴물과 싸우는 소리를 듣고 기절한 낭자에게 물을 끊여 먹여 소생시키고 나니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선비는 아침 밥을 든든히 먹고 명주실을 따라 숲속으로 가보니 명주실은 절 뒤 큰 바위 밑에 있는 굴로 들어 갔다. 굴을 따라 들어가려다가 굴 입구에 나무를 쌓고 불을 질렀더니 얼마 후 뜨거운 불에 못 이겨 괴성을 지르며 천둥소리와 함께 등이 그을린 큰 지네 한 마리가 굴 밖에 나와 쓰러졌다. 선비는 준비한 칼로 지네를 찔러 죽이고 낭자와 백년가약을 맺고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