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정훈 스포츠부장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0년대 초반부터 스포츠 진흥 정책에 힘을 쏟았다. 방향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우수 선수 육성을 통한 국위 선양이었고, 다른 하나는 체육을 통한 국민건강 증진이었다. 태릉선수촌 건립과 학교 체육 지원 등 일련의 노력들은 스포츠 국제 경쟁력 제고(提高)와 국민 체력 향상의 밑거름이 됐다.
박 대통령의 어록(語錄)집을 보면 "강인한 체력은 바로 국력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1966년 전국체육대회 치사를 비롯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 말이다. 그 시절 사람들은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모 제약회사의 종합비타민 광고 카피였던 이 문구는 당시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한 시대를 관통하는 슬로건이 됐다.
그러다 1972년에 체력장이 등장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리는 일등공신이었던 체력장은 1994년 폐지됐다. 군사정권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과 간헐적인 체력장 관련 사망사고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체육 전문가들은 체력장 폐지가 '국민 약골(弱骨)' 증가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의 2009년 국민체력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20대는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체력이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악력(握力)은 40대 초반의 손아귀 힘에도 못 미쳤다. 연구원 측은 "요즘 젊은 층은 중·고등학교 때 체력이 부실한 상태에서 대학이나 사회로 나가느라 체력관리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체력장이 사라지면서 학교 체육과 학생 체력 관리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체육시간은 국·영·수 과목을 보충하는 시간으로 변질됐고,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내몰렸다. 땅값 폭등과 시설물 증축으로 학교 운동장도 반토막이 났다. 서울시내 초등학교 가운데 100m 달리기를 할 수 있는 학교가 전체 584개 중 7.2%(42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 2년 반 사이 운동장이 줄거나 사라져버린 학교가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399개, 중학교 194개, 고등학교 109개나 된다. 전국 초등학교 교원 중 여성 비율이 75.1%나 되다 보니 정상적인 체육지도도 쉽지 않다.
학생들의 체력 관련 통계는 '비만·약골 공화국'으로 추락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09년 학생 신체능력검사 급수별 통계에 따르면 중·고교생의 45%가 체력 최저(最低)등급을 받았다. 서울교육통계연보를 보면 2000~2009년 사이에 초·중·고생들은 키가 2~3㎝ 커졌고, 몸무게도 2~3㎏ 늘었다. 하지만 오래달리기·50m달리기·제자리멀리뛰기 기록은 나빠졌다. 중2 남학생들을 기준으로 보면 2000년에는 1600m를 평균 8분44초에 달렸지만, 9년 뒤에는 39초가 더 걸렸다. '체격은 짱, 체력은 꽝'이 된 것이다.
2011 세계육상선수권이 오늘 대구에서 막을 올린다. 한국은 월드컵축구, 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 등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는 7번째 국가가 됐다. 국제 스포츠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물렁살, 유리뼈'로 변해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몸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공짜 밥'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구촌 건각(健脚)들이 총출동하는 대구 세계육상대회를 통해 건강의 소중함, 운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 아직도 '체력은 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