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3월 13일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사람도 변하고, 대자연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가운데, 우리 인간은 삶을 영위해 나간다. 이 세상에 태어나 영원히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사람은 누구나 살다가 한 번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라고 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표현과도 사실은 같은 의미로 귀결될 수 동의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람들 모두는 각기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느냐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죽음으로 향해 가고 있는 터이니, 같은 길을 가다보면 어쩌다 지나는 길목에서 함께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재산가의 집안이나 권문세도가의 집안에서 태어나면 좋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세상만사가 어찌 자신의 뜻대로 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두고, 출생의 운이라고나 해야 할 까? 전생에서 쌓은 공덕이라고나 해야 할 것인 가? 하지만, 부잣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권력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행복이 담보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한 세상을 살다가 보면 알게 될 테니, 주역에 밝고, 역술에 능한 자들이 있다고 한들, 저들 자신의 앞가름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것을 보면, 그놈의 팔자라는 것도 제대로 맞추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니 팔자소관이라 하기보다는 세상에 왔으면 저마다 잠재력은 있을 터이니, 태어날 때 받은 저마다의 잠재력을 살려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모두가 함께 걸어가며 죽음의 길목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제 몫은 할 텐데, 자신에게 맡겨진 달란트는 팽개쳐 버린 채, 다른 사람의 몫을 탐하려 하니, 산다는 생각보다는 죽어간다는 생각으로 살 수밖에 없는 힘든 여정 속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쫓아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존경 받는 직업도 돈 잘버는 직업도 한결 같지 않으니, 그렇게 오랜 역사가 아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의사가 대우를 받던 직업이던가? 현대에도 이웃 나라 중국에선 경찰이 우리나라에서처럼 날마다 폭력시위대와 정치꾼들에게 이래저래 당하기만 하는 동네북이 아니라, 아주 센 힘을 가지고 있는 가 하면, 멀지 않은 나라인 필립핀에서는 의사면허 소지자가 택시기사로 돈을 벌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 까 싶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죽음으로 가는 길임에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데, 자기 갈 길을 마다하고 남이 가는 길을 따르다간 힘은 힘대로 들어서 지치기만 할 뿐이지, 결코, 행복은 붙잡을 수 없을텐데 왜들 남이 가는 길만 쫓으려 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 보기엔 아스팔트 길이 훨씬 좋을 것 같고, 편히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길로 가면서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달리다 보면 죽음의 문턱까지도 남보다 수월하게 빨리 달려가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살면서 자주 보게 됨을 교훈으로 삼지 않고,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어찌 망각해 버리고 마는 지, 모두 죽음의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가고 있다는 걸 명심합시다. 명상곡: Celebration /S. Gar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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