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영 대한 네트워크병의원협회 사무총장·의사
피부과를 운영하는 필자는 오는 5월 미국 LA 베벌리힐스에 분점(分店) 병원을 열려고 준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콜 센터 운영 문제로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 관리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향후 미국 전역에 100개 이상의 네트워크병원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경제분야 차관보는 "펜실베이니아 주에 미국 본부를 설립해주면 다양한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의 제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투자금의 10%를 무상으로 지원해 주고, 둘째는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고, 셋째로 향후 사업자금도 주정부가 장기저리로 대출해준다는 것이다. 그 밖에 그는 직원 교육 비용과 IT 장비 서버 구입, 미국 내 의료계의 협조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양의 이국 땅에서 온 낯선 나에게 그 같은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까닭을 물어보자,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닥터 안,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료서비스업이야말로 고용창출의 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펜실베이니아에 본부가 있는 아메리칸 레이저센터의 콜 센터에만 300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기에 당신 네트워크 병원의 본부를 설립해서 고용을 많이 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말은 내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현재 한국 경제는 저(低)성장과 실업의 악순환이 진행 중이다. 제조업을 통한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학계와 재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필자는 서비스 산업 가운데 경쟁력과 고용창출 효과가 있으면서도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은 영역이 의료서비스라고 확신한다. 의료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3.3배의 고용창출 효과를 갖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특히 여성인력에 대한 고용창출에 매우 효과적인 산업이다. 여러 분점을 갖고 운영되는 네트워크 병원의 경우 직원의 90%가 20~30대 여성이다. 기업과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장기 근속자가 많다는 이점도 있다.
이미 싱가포르는 2002년 기준으로 의료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8%까지 끌어올렸다. 싱가포르는 그 과정에서 의료서비스 분야의 고용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의료산업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고용창출 산업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잠재 역량을 가진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서비스가 산업으로 발전하기 매우 어렵다. 반(反)산업적인 법과 규제 때문이다. 의사나 비(非)영리법인이 아니면 의료기관에 투자할 수 없다. 자본이 없으니 대부분의 병·의원들은 영세한 규모에 머물러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과감한 규제철폐와 의료시장 개방을 통해 의료기관들이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심지어 영리병원을 만들면 3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그 덕에 중국 전역에 기업형 병원들이 운영되고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물론 의료의 공공재적 성격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료와 민영의료에 대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의료는 국가가 담당하고 민영의료는 다각적인 투자 허용을 통해 다른 산업분야의 기업들처럼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도 생기고 회계와 경영도 투명해진다. 이렇게 되면 공공의료체계가 무너질까 염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민간부문을 자율화한 만큼 공공의료를 국가가 더 강화하는 정책을 펴면 된다고 본다.
비교적 고용률이 높은 미국도 인센티브까지 주면서 서비스산업 발전을 유도하는데 우리나라는 있는 의료 자원과 기술력도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24/20080224006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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