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國際.經濟 關係

"빈부차 생기느니 다 같이 못살자" 거덜난 경제

鶴山 徐 仁 2008. 2. 25. 20:09

"라울은 경제 개혁할것" 카리브해 '변화' 싹트나

카스트로 이후 쿠바는 어디로…
"그 형에 그 동생일 뿐… 큰변화 없을 것" 전망도

아바나(쿠바)=최우석 특파원

 

 

쿠바의 새 의회가 개원한 24일 오전 10시(한국시각 24일 밤 12시), 수도 아바나를 감싸고 도는 해안도로 말레콘가(街)에는 휴일을 맞아 수만 명이 쏟아져 나왔다. 여느 휴일처럼,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여기저기서들 몸을 흔들어 댔다.

그러나 이날 의회에선 614명의 의원들이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가 49년간 맡아 온 최고원수 직인 '국가평의회' 의장 직을 누구에게 넘길지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쿠바=피델 카스트로'라는 명제가 역사의 뒤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전날 저녁 8시의 국영 TV 뉴스에서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매일같이 뉴스 끝에 방송되던 카스트로의 대(對)국민 메시지가 사라졌다. '아프리카를 돕자' '일을 더 열심히 하자' 등등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Granma)'에 카스트로가 기고한 것을 읽어주는 코너였다.
 
아바나 구(舊)시가지의 '무기의 광장'(Plaza de Armas)에 늘어선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국가평의회의 새 의장으로 예상되는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Raul·76)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다. 비록 점진적이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을 모방한 경제개혁을 주창하며, 형보다는 '개방적'이라고들 얘기했다. 10여 년째 중고 서적 가판대를 운영하는 알폰소는 "라울이 작년 말에도 노동자들을 상대로 건의 사항을 접수하는 등 쿠바 경제의 문제점을 청취했다"며 "1990년대 자영업을 허용한 라울이 의장이 되면 경제부터 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체 노동인구의 3%인 이들 자영업자들은 '변화의 바람'을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인구 1100만명인 쿠바의 현실은 참담하다. 노동자 평균임금이 15달러, 의사 등 전문직 월급도 24달러(약 2만원) 수준이다. 경작지의 절반은 놀고 있다. 모든 생필품은 다 부족하다.
 
피델 카스트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당장 24일자 '그란마'의 1면 톱 기사는 "아직 작별을 고하는 것이 아니다"는 그의 사임연설이었다. 그래서 형 피델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동생 라울이 얼마나 개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하다. 그가 병상의 형을 대신해 19개월간 평의회 의장 직을 수행하면서 보인 개혁도 미온적이었다. 그 자신도 "모든 변화는 사회주의 틀 안에서 일어날 것이며, 해법은 점진적으로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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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린 '카스트로 49년'… 쿠바는 지금 ①
전국민 醫保 자랑했지만 약국엔 藥이 없어
허가없인 새차도 못사 50년된 고물차 득실

아바나(쿠바)=최우석 특파원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자동차로 30분쯤 떨어진 안토니아 기타레 지역은 쿠바의 평범한 시민들이 사는 교외 지역이다. 23일 오후 허름한 4층짜리 아파트와 주택들이 들어선 이곳을 들어서자, 찌든 가난이 배어났다. 도로는 곳곳이 움푹 패여 곡예운전이 불가피했고, 정리가 안 된 가로수는 정글을 연상케 했다. 물론 건물은 곳곳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갔다.

◆생필품 턱없이 부족=쿠바에선 식량뿐 아니라, 의약품과 생필품, 심지어 자동차 부품까지 모든 것이 부족하다. 마리아(82) 할머니는 "손자가 턱을 다쳤는데, 약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고 말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치적(治績)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을 꼽는데, 정작 약이 없었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제 봉쇄가 쿠바 경제난의 한 원인이 됐지만, 대학에서 타악기를 가르친다는 레이날도 교수는 "꼭 미국 탓에 경제가 피폐해진 것도 아니다"고 했다. 한 쿠바인은 "피델의 49년 통치가 남긴 현실"이라고 말했다.
▲ 23일 오후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한 청과물 가판대. 라울이 1990년대부터 자영업을 허용하면서, 길거리 곳곳에는 크고 작은 청과물 가판대가 들어섰다. /아바나(쿠바)=최우석 특파원
◆눈에 띄는 한국 기업들=현대중공업은 2005년 8억 달러 상당의 디젤발전기 설치 사업을 수주해, 1.7㎿짜리 디젤발전기 600여 개를 쿠바 전역에 설치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엔진사업본부 변재욱 부장은 "화력발전소보다는, 허리케인의 피해 규모가 작은 소규모 디젤발전기를 운영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쿠바 전력 생산의 30%가 현대중공업 사업에서 나온다.

아바나 거리에서는 현대자동차도 곧잘 눈에 띈다. 현대차를 독점 수입 판매하는 토크마크잔 그룹의 이상열 부장은 "연간 2000대씩 판매해, 현대차는 쿠바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40%)"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대부분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렌터카 회사에 팔린다.

이밖에 LG 에어콘, 한국 타이어 등이 쿠바 시장에서 인기다. 한국의 대(對)쿠바 수출은 2005년까지만 해도 연간 4000만 달러(약 380억원) 수준이었으나 2007년에 2억 달러(약 1900억원)로 급증했다. 덕분에 한국에 대한 쿠바 국민들의 호감은 상당하다.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현대중공업 간부들을 만나, "쿠바가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갈팡질팡 땜질식 개혁=쿠바의 가장 큰 문제는 갈팡질팡 땜질식 개혁이다. 1990년대 자영업을 활성화시키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민박 사업을 허용했다. 하루 숙박비는 40달러(약 3만8000원) 정도. 하루에 외국인 두 명만 받아도 한 달 월급을 벌 수 있다. 그러자 '신흥 재벌'들이 생겨났고, 급기야 피델 카스트로는 "빈부격차가 생기느니 다같이 못살자"며, 하루아침에 민박업에 철퇴를 가했다.

1990년대부터 달러화 사용을 허용했다가, 쿠바 경제의 달러 의존도가 높아지자 달러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쿠바 정부는 또 '적국' 통화인 미 달러화에 대해선 20%의 환전 수수료를 부과한다. 500달러를 바꾸면 무려 100달러를 수수료로 내는 셈이다. 한 지식인은 "쿠바계 미국인들이 송금하는 연간 20억~30억달러에 세금을 부과하려고 이 같은 교묘한 규제를 고안해냈다"고 힐난했다.

자동차도 소득을 증명할 수 없으면, 소유할 수 없다. 단, 1959년 혁명 이전에 개인이 소유했던 승용차는 소유권을 인정해준다. 쿠바에 50~60년 된 수많은 '고물 자동차'들이 어떻게든 돌아다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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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물러나자 살아나는 쿠바 골프

체 게바라에 진 뒤 "금지령"… 라울, 골프장 재건 적극나서

이석호 기자

 

 

쿠바에서 '친(親)자본주의' 스포츠로 여겨져 탄압받던 '골프'가 부활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골프 부활'은 그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주도한다. 골프 관광객을 유치해, 고사(枯死) 직전인 쿠바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쿠바 정부는 이미 10여 개의 골프장 건설 계획 발표했고, 외국계 건설회사들도 대규모 해양·골프 리조트 건설 계획을 앞다퉈 발표한다.

쿠바에서 애초 골프가 쇠락한 배경과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1962년 말 남미 좌파 게릴라 지도자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Che Guevara)와 카스트로의 골프 대결이 쿠바 내 골프의 운명에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 군복 차림으로 골프를 즐기고 있는 남미 좌파 게릴라 지도자 체 게바라. /조선일보 DB
두 혁명 지도자는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 10월) 직후 가진 골프 게임을 통해, 당시 미 대통령인 존 F 케네디(Kennedy)에게 '친선 골프'를 제안하고자 했다. 카스트로는 자신의 개인 서기인 로렌조 푸엔테스(Fuentes)에게 다음날 신문기사 제목이 '카스트로, 케네디에게 친선 골프 제안'이라고 나오게 글을 쓰라고 지시했다고 WSJ는 전했다.

그러나 막상 카스트로와 체 게베라의 골프는 서로 지기 싫어하는 두 사람 간 경쟁으로 변했고, 혁명가가 되기 전에 아르헨티나에서 골프 캐디를 했던 체 게베라의 승리로 끝났다. 푸엔테스는 카스트로의 '패배'를 그대로 보도했고, 뒤이어 해고됐다.

카스트로는 이후 수도 아바나의 골프장들을 군사학교와 예술학교로 바꿨고, 야구·배구·육상·권투 등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면서도 '미 제국주의' 냄새가 나는 골프는 억압했다고 WSJ는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