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장마 - 윤흥길

鶴山 徐 仁 2006. 7. 14. 09:42
1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동구 밖 어디쯤이 될까. 아마 상여를 넣어두는 빈 집이 있는 둑길 근처일 것이다. 어쩐지 거기라면 개도 여우만큼 길고 음산한 울음을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일지도 모른다. 잠시 뜸해지는 빗소리를 대신하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짬을 메우고 있었다. 그것이 저희들끼리의 무슨 군호나 되는 듯이 난리통에 몇 마리 남지 않은 동네 개들이 차례로 짖기 시작했다. 그 날 밤 따라 개들의 극성이 몹시도 유난했다. 그때 우리는 외할머니가 거처하는 건넌방에 모여 있었다. 외할머니의 심중에 뭔가 큰 변화가 생겨 우리는 그분을 위로하고 안심시켜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작은이모는 개들이 사납게 짖기 시작하면서부터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서로 외할머니의 눈치만 슬금슬금 살펴가며 모기장베가 붙어 있는 방문 쪽으로, 얼멍얼멍한 모기장베가 가린 둥 만 둥 막고 있는 어둠 저쪽으로 자꾸 눈길을 돌렸다. 나방이인지 하늘밥도둑인지 모를 날벌레 한 마리가 아까부터 날개를 발발 떨면서 방문에 붙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내 말이 틀리능가 봐라. 인제 쪼매만 있으면 모다 알게 될 것이다. 어디 내 말이 맞능가 틀리능가 봐라.”
외할머니가 낮게 중얼거렸다. 외할머니는 아침밥에 섞어 먹을 완두를 까고 있었다. 아름이나 되어 보이는 축축한 완두 줄거리를 치마폭에 잔뜩 꾸리고 앉아서 외할머니는 꼬투리를 뚝 떼어 별로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그러나 몸에 밴 익숙한 손놀림으로 속을 우볐다. 연둣빛 얼룩이 진 길쯤한 자실이 한옆으로 비어져 나오면 그걸 손바닥에 받아 무릎맡의 대바구니에 담고 빈 깍지는 도로 치마폭 안에 떨어뜨렸다. 외할머니의 말에 뭐라고 대꾸 할 기회를 놓쳐버린 어머니와 작은이모는 서로 어색한 눈짓을 나누었다. 밖에서는 다시 거세어지는 빗소리가 들리고, 거기에 질세라 개들이 더욱더 사납게 짖어대었다.
빗소리가 차차로 고비에 이르더니 뒤란 장독대 쪽에서 양철이 떨어져 곤두박질하는 소리가 났다. 벽에 걸어놓았던 두레박일 것이었다. 방문을 흔들며 갑자기 한 무더기의 비바람이 쏟아져 들어와 그렇잖아도 위태롭게 까물거리던 호롱불을 아예 죽여버렸다. 방안은 졸지에 밀어닥친 어둠과 끈끈한 공기 속에 잠기고 하늘밥도둑인지 나방이인지 모를 날벌레도 날갯소리를 멈추었다. 서너 집 건너에서 개가 짖기 시작했다. 잠자코 있던 우리 집 워리란 놈도 그 미련한 주둥이를 벌려 처음으로 웅얼거리는 소리를 했다.
사납게 짖어대는 소리가 마을 초입에서부터 우리가 사는 가운뎃말을 향하여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불을 키거라.”
하고 외할머니가 말했다.
“야가 어서 불을 키래도.”
어둠 속에서 외할머니가 부스럭거렸다.
“무신 놈으 날씨가 이 모냥인지, 원.”
내가 방구석을 더듬어 성냥을 찾아서 호롱에 불을 댕겼다. 그러자 어머니가 심지를 돋우었다. 꼬불꼬불 그을음이 피어오르면서 천장에 둥근 무늬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날이 궂었어라우.”
하고 어머니가 말참견을 했다.
“모든 게 날씨 탓이지요. 어머님이 그렇게 괜한 걱정을 하시는 것도 날씨 탓이에요.”
작은이모도 한마디 거들었다. 시골 우리 집으로 피난 내려오기 전, 외가가 서울에 있을 때, 작은 이모는 그곳에서 여학교를 나왔다.
“니다. 느덜이 모르고 허는 소리다. 이 나이 먹드락 내 꿈이 틀린 적이 어디 한 번이나 있디야?”
외할머니는 고개를 설설 흔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흔들면서도 완두 까는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저는 꿈 같은 거 절대로 안 믿어요. 길준이한테서 몸 성히 잘 있다고 편지 온 게 바로 엊그젠데…….”
“그러문요. 요새는 전투도 없고 혀서 심심허다고 편지 끄텀머리다 쓴 걸 어머님도 직접 보셨잖아요.”
“다아 소용없는 소리다. 느이 애비가 죽을 때만 혀도 나는 사날 전에 벌써 알어채렸다. 이빨이 아니라 그때는 손구락이었지만. 꿈에 엄지손구락이 옴싹 빠져서 도망가 버리드라.”
또 그놈의 꿈 얘기.
물리지도 않나 보다. 새벽잠에서 깨면서부터 줄곧 외할머니는 그놈의 꿈 얘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점심때가 지나고 해질녘이 되어도 외할머니는 여전히 잠에서 덜 깬 듯이 흐리멍덩한 상태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가 거의 빠져 합죽해진 입두덩을 끊임없이 달싹이면서 자기 신변으로 몰려오는 어떤 불길한 기운이 있음을 거듭거듭 예언하는 것이었다. 위아래를 통틀어 겨우 일곱 개밖에 남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무쇠로 만든 커다란 족집게가 입 안으로 쑥 들어오더니 기중 실하게 붙어 있던 이빨 하나를 우지끈 잦뜨려 놓고 달아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악몽에서 깨어 정신을 수습한 다음 외할머니가 맨 처음 한일은 손으로 더듬어 이를 낱낱이 점검해 보는 그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작은 이모더러 거울을 가져오래서 눈으로 다시 한 번 개수를 확인했다. 그래도 미심쩍었던지 나중에는 나를 얼굴 가까이 불러 다짐을 거푸 받았다. 딱하게도 아무리 들여다봐야 이는 일곱 개 그대로였다. 더구나 어금니 대용으로 외할머니가 애지중지해 온 아래쪽 송곳니는 온전히 제자리에 박혀 있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송곳니가 제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분의 생각은 이미 현실을 떠나 꿈 쪽에만 머물고 있었다. 딸들도 사위도 못 미더워했고, 바늘귀를 잘 맨대서 이따금 칭찬해 주던 외손자의 시력에도 이젠 의심을 품었다. 거울 같은 건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는 입안에까지 직접 들어가 개수를 확인해 보고 나온 당신의 손가락마저도 신용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그놈의 꿈 얘기만 늘어 놓으며 외할머니는 긴 여름 나절을 보냈던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외삼촌을 들먹인 사람은 어머니였다. 부주의하게도 어머니의 입에서 육군 소위를 달고 일선 소대장으로 나가 있는 외삼촌 이름이 불쑥 튀어나오자 외할머니는 갑자기 축 늘어진 양쪽 볼에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작은이모가 조심성이 없는 어머니를 나무라는 표정을 지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넘겨 버렸다. 노인 양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별 수 없다고 생각을 바꾸었는지 작은 이모도 오래지 않아 외삼촌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 이름을 끝내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놈의 꿈 얘기는 여전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부터는 입장들이 뒤바뀌어 위로하는 사람과 위로 받는 사람을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할머니의 말씨는 주술에라도 걸린 듯이 더욱 암시적이 되고, 어딘지 모르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띠기조차 했다. 반면에 어머니와 이모는 까닭 없이 안절부절못하면서 일껏 까려고 가져다 놓은 완두 줄거리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기만 했다. 결국 일감은 외할머니 앞으로 떠넘겨지고, 어머니와 이모는 심란스럽게 앉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중얼거림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난리를 겪고도 용케 살아남은 동네 개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극성맞은 그 포효로 마을을 휩싼 어둠의 장막을 갈기갈기 찢어발리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몸에 익은 손놀림으로 완두 꼬투리를 후벼서 자실은 대바구니에, 그리고 빈 깍지는 치마폭 안에 정확히 갈라놓았다. 우리 집 지천꾸러기 워리란 놈이 전에 없이 사납고 우렁찬 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발소리를 저벅거리며 이웃집 담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적어도 두셋은 될 것이었다. 물구덩이라도 잘못 디뎠는지 흙탕을 튀기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날씨를 심하게 탓하며 투덜거리는 소리까지 똑똑히 들렸다. 도대체 누구일까, 이 밤중에 억수로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마을을 활보하는 사람들은 전쟁이 북으로 물러나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빨치산들이 읍내 경찰서를 습격하고 불을 지를 만큼 어수선한 때였다. 예의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웬만큼 긴한 용무가 아니고는 해가 진 뒤에 남의 집을 방문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지금 누구네 집을 찾아가고 있을까. 대관절 무슨 짓을 하려고 밤길을 떼 뭉쳐 다니는 것일까. 어머니가 작은 이모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이모는 어머니한테 손을 내맡긴 채 모기장 베가 엉성히 가리고 있는 어둠 속 저쪽을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안방 마루 밑에서 워리란 놈이 숨 넘어가는 소리로 짖어대고 있었다. 귀가 약간 어두운 외할머니까지도 우세두세 하던 인기척이 바로 우리 집 사립짝 앞에 머물러 한동안이나 주춤거리고 있음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기연시 왔구나, 기연시 왔어.”
외할머니가 바짝 마른 소리로 중얼거렸다.
“순구.”
하고 사립 밖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순구 집에 있능가?”
안방에서 할머니가 콩콩 밭은기침을 했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려 하는 기척이 들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안방 쪽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살째기 나가볼팅게 당신은 암말도 말고 죽은디끼 있어라우.”
그러자 아버지는 방문을 열고 벌써 마루에 나가 있었다. 신발을 찾아 신으면서 아버지는 방금 어머니가 했던 것과 꼭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꼼짝도 말고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주의를 받았다. 아버지가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미친 듯이 짖어대며 날뛰던 워리 녀석이 별안간 깨갱 소리를 마지막으로 주둥이를 꾹 닫아버렸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서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요?”
“나, 이 동네 구장일세.”
“아니 자네가 이 밤중에 어떻게…….”
사립에 매달린 워낭이 딸랑딸랑 흔들렸다. 어른들이 몇 마디 서로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다음 바깥은 다시 조용해지고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만이 귀를 가득 채웠다. 방안을 서성거리던 어머니가 더 참지를 못하고 방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급히 밖으로 나서는 어머니를 작은이모가 허둥지둥 뒤따랐다. 안방에서는 우리 친할머니가 천천히 별로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완두를 까는 일에 아주 열중해 있었다. 완두 꼬투리를 손톱으로 우비면서 외할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사 뭐 암시랑토 않다. 오널 아니면 니알 중으로 틀림없이 무신 기별이 올 종 알고 있었으니께,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니께, 나사 뭐 암시랑토 않다.”
좀이 쑤셔서 곱게 앉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침내 외할머니를 혼자 놔두고 슬그머니 건넌방을 빠져 나왔다. 외할머니의 바짝 메마른 음성은 토방에까지도 들렸다.
“나사 뭐 암시랑토 않다.”
안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밖은 더 껌껌했다. 걸음을 옮길 적마다 누린내 풍기는 축축한 털북숭이가 양쪽 가랑이 사이로 척척 감겨들었다. 워리 녀석이 자꾸만 낑낑거리며 뜨뜻한 혀로 손바닥을 핥았다. 안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도 빗방울이 더 굵었다. 비는 얼굴을 뒤덮고 베잠방이를 적셔 단박에 내 몸뚱이를 물독에 빠진 새앙쥐 꼴로 만들어놓았다. 워리가 더 이상 따라오질 못하고 뒷전을 돌면서 잔뜩 겁을 먹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어른들 모습은 사립짝께로 바투 다가갔을 때에야 비로소 어렴풋하게 드러났다.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난 뒤인 듯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어른들은 그저 잠자코 있기만 했다. 군용 방수포를 머리위로 뒤집어쓴 두 사내와 이쪽을 향하고 선 구장 어른의 낯익은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버지와 작은이모는 금방 땅바닥으로 주저앉을 듯이 흐늘거리는 어머니를 양쪽에서 단단히 부축하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구장 어른이 입을 열었다.
“들어가걸랑 빙모님께 말씀이나 잘 디려 주게.”
그러자 방수포를 쓴 어느 한쪽 사내가 뒤를 이었다. 그는 매우 내키지 않는 얘기인 듯 머뭇거려서 목소리가 굉장히 수줍게 들렸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괴롭기는 저희들도 매일반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맡아 가지고 참……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시오.”
라고 아버지가 인사를 했다.
그들은 회중등으로 길을 더듬으며 사립을 빠져나갔다. 어머니의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작은이모가 어머니한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조금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앞장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를 부축하고 걸으면서 작은이모가 자꾸 소곤거렸다.
“제발 이러지 좀 말아요. 언니가 이러면 어머님은 어떻게 되겠어요. 어머님을 생각해야지, 어머님을…….”
어머니가 입 안을 주먹으로 틀어막았다. 그래서 방안에 들어설 때는 가까스로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먼저 들어온 아버지가 외할머니 앞에 앉아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거북살스런 자세로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구장 어른이 주고 갔음에 틀림없는 젖은 종이쪽이었다. 아버지는 일부러 쥐어짜 내듯이 온몸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아버지뿐이 아니라 밖에 나갔다 온 사람은 나까지 넣어 모두 몸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로 방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옷을 엷게 입은 어머니와 작은 이모는 적삼과 치마가 몸에 찰싹 늘어붙어 거의 벗은 거나 다름 없을 정도로 속살이 들여다보였다. 외할머니는 아무도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거 봐라.”
하면서 외할머니는 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 봐.”
외할머니의 거동을 아까부터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의 끊임없이 달싹거리는 합죽한 입보다는 완두를 까는 작업에 더 관심을 모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외할머니의 손놀림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달은 것이다. 같이들 방안에 있으면서도 그걸 눈치 챈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시선을 떨군 채 일에 열중해 있는 그 모습은 여전했으나 우리가 밖에 나갔다 온 뒤부터 줄곧 외할머니는 강마른 두 팔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일껏 까낸 연둣빛 싱싱한 자실을 빈 깍지가 수북이 담긴 치마폭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외할머니가 실수를 계속할까 봐서 내 마음은 몹시도 조마조마했다. 가능하다면 잘못을 깨우쳐 주고 싶어 나는 몇 번이나 기회를 벼르고 벼르다가 방안을 억누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말았다. 말려서 아궁이에 넣을 빈 깍지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제 곧 대바구니 속으로 들어갈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주름살이 두껍게 밀리는 우리 외할머니의 떨리는 손끝만을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내가 내둥 뭐라고 그러댜. 오널 중으로 틀림없이 무신 기별이 온다고 안 그러댜?”
창백하던 낯빛이 순간적으로 홍조를 띠어 갑자기 십 년은 젊어진 외할머니가 몇 마디 또 중얼거렸다. 줄거리에 붙은 새로운 꼬투리를 뚝 따내어 속을 우비면서 외할머니는 다시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이 되더니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열 살은 더 먹어버렸다. 외할머니는 무척 흥분해 있었다. 말의 마디와 마디짬에서 감추고 있던 거친 숨결이 불거져 나오고 목젖이 울릴 정도로 자주 마른침을 넘기는 것으로 보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느이 애비가 죽을 임시에도 나는 사날 전버텀 알고 있었다. 늙은이가 밥 먹고 헐일 없응게 앉어서 요사시런 소리나 씨월거린다고 느덜은 이 에미를 야속허게 생각혔을 것이다. 그런디 지내놓고 보니께 어쩌드냐. 뭐라고 말허능가 보게 어디 느덜 쇠견이나 한 번 시연이 들어봤으면 씨겄다. 어쩌냐, 시방도 에미 말이 그렇게 시덥잖게 들리냐? 그러면 못쓰느니라, 못써. 눈 어둡고 귀 어둡다고 에미까장 우숩게 알면 못쓴다. 할망구라고 혀서 허는 소리마동 다 비싼 밥 먹고 맥없이 씨워리는 소리로만 들으면 큰 잘 못이다. 이날 입때까장 내 꿈은 틀린 적이 없었니라. 무신 일이 생길 적마동 이 에미가 꾸는 꿈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니라.”
머리를 뒤로 잦혀 한껏 고자세를 하고 앉아서 외할머니는 자기 선견지명을 그제까지 몰라준 두 딸에게 잠시 면박을 주었다.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 있었다. 딸들을 바라보는 충혈된 두 눈에 가득 담긴 것은 희열 바로 그것이었다. 자기 예감이 적중된 것을 누구한테나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 역연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의기양양해하고 있는 그 표정을 오래 보고 있자니까 주술에 가까운 어떤 강렬한 기운이 가슴 속에 뜨겁게 전달되어 와서 외할머리란 사람이 내게는 별안간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극이 덮쳐올 때마다 매번 그것을 점쟁이처럼 신통하게 알아맞혔다는 외할머니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때 우리 외할머니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하나의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둔 셈인데, 그러고도 모자라서 우리들마저 못살게 굴 만큼 아직도 노인다운 끈기와 옹고집에 충분한 여력이 있는 듯이 보였고, 그것이 외손자인 내게는 감히 누구도 범접 못할 불가사의한 힘으로 느껴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강렬한 감동을 주었다.
어머니는 알게 모르게 울음소리를 점차로 높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가늘디가늘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웬만큼 소리를 높여봐도 역시 상관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중에는 아예 마음놓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모기 한 마리가 이모의 백지장처럼 하얀 목덜미에 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모기란 놈이 앵두알처럼 통통하게 배를 불리며 피를 빨아먹는데도 이모는 꼼짝을 않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방문이 활짝 열러진 채로였다. 열린 문으로 모기떼들이 꾸역꾸역 몰려드는데도 누구 하나 닫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곳곳에서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로 군용 방수포를 둘러쓴 사람들이 마을 어디쯤을 가고 있는가를 가만히 앉아서도 빤히 어림할 수 있었다. 그들이 들어올 때와는 정반대로 개 짖는 소리가 마을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하여 점점 멀어지고 작아지고 차츰 뜸해지더니 이윽고는 아주 잠잠해져 버렸다.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한 마리의 까만 날벌레가 방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아까부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하마터면 호롱불까지 끌 뻔해 가면서 온 방 안을 몇 바퀴씩이나 휘젓고 다니던 끝에 그것은 내 손에 붙잡혔다. 하늘밥도둑이었다. 나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여 그것은 자꾸만 꼼지락거렸다. 흙을 헤집을 때 삽으로 쓰는 튼튼한 앞발을 힘차게 버둥거리며 한사코 내 손아귀에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까짓 저항이 내게 무슨 상관이냐, 그것이 죽고 사는 것은 내 마음먹기 하나에 달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살릴 수도 있었다. 나는 하늘밥도둑을 쥔 두 개의 손가락에 지그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때 외할머니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나사 뭐 암시랑토 않다. 진작서부텀 이럴 종 알고 있었응게 나사 뭐 암시랑토 않다.”
그러자 어머니의 울음이 별안간 절정에 이르러 방안이 온통 뼛속까지 갉는 듯한 아픈 소리로 가득 차 버렸다.
“불싸앙헌 우리이 준이이 아이고 우리 기일준이가아 아하이고 아이고오 따른 집 자석들은 기피도 잘 허동마안 워쩌자고 우리이 준이느은 허지 말라는 소대장인가 그 웬수녀르 밥티긴가를 달어가지이고 이 지경이 되었느은고 아이고 아하이고 이 일을 어쩌다아냐아…….”
방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도는 어머니의 진한 핏빛 울음은 어느덧 두루마기 멍석이 되어 어둠에 잠긴 마당 쪽으로 끝없이 풀려 나가고, 그 위로 꺼끔해졌다 되 거세어지는 장맛비가 소리를 지르면서 두텁디두텁게 깔리고 또 깔렸다.

2
 
작은 언덕과 작은 언덕, 그리고 낮은 산과 낮은 산들을 앞에 주욱 거느린 채 그 세모꼴의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고 선 건지산은 언제 보아도 모습이 의젓했다. 하기야 늘 의젓이만 보아온 그 건지산이 갑자기 그럴 줄 몰랐다고 느껴지던 우스꽝스런 한 때도 있긴 있었다. 밤이면 어른들이 거기 모여 불장난을 한다. 어떤 때는 훤한 대낮에도 산봉우리에서 몽개몽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다. 밤마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오줌을 지리는 것일까. 어머니의 강압에 못 이겨 키를 쓰고 동네를 한 바퀴 돈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건지산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마을 앞 시냇물을 일단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제까지 점잖은 촌노인처럼 그저 묵중히만 서 있던 산이 갑자기 연기와 불길을 내뿜는 것부터가 장난 같았다. 어른들 놀이치고는 너무 유치하고 어리석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보면 아주 평화스럽게 보이는 장난이었다. 봉홧불과 무수한 살상과의 상관 관계를 나는 미쳐 깨닫지 못했다. 왜 건지산에서 불길이 오르고 난 다음이면 꼭 읍내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고 꼭 어느 고을 어떤 동네가 쑥대밭이 되어야만 하는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설사 그런 문제를 일찍이 이해해 버렸다 해도 결과는 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난생 처음 봉홧불을 구경하던 당시의 망측스런 상상에도 불구하고 내 의식 속에서의 건지산은 어느 틈에 그 의젓한 모습을 되찾고 날이 지남에 따라 더욱더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그 건지산 허리 윗부분이 검은 구름으로 친친 감겨 있었다. 비는 그쳐 있었으나 건지산이 있는 동쪽 하늘자락을 완전히 덮고 있는 시커먼 구름을 보면 그것이 여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비를 새롭게 장만하고 있음을 얼른 알 수 있었다. 이따금씩 하늘 어두운 구석에서 번개가 튀어나와 그 언젠가 마을 앞 둑길에서 어떤 사내가 어떤 사내의 가슴에 쑤셔 박던 그 때의 그 죽창처럼 건지산 아니면 그 근처 어딘가를 무섭게 찔러댔다. 그리고 그럴 적마다 찔린 산이 지르는 비명과도 같은 천둥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그만한 덩치에 그만큼 아픈 찔림을 당한다면 내 입에서도 그 정도의 비명쯤 당연히 나오겠다 싶은 처참한 소리를 지르곤 했다. 이른 아침부터 건지산이 하늘에 부대끼는 모양을 멀리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외할머니의 발소리는 다른 사람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무게가 전혀 없는 사람처럼 겨우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만 내면서 가볍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처럼 용의주도하게 다가와서는 갑자기 묘한 냄새를 풍겼다. 오래 된 장롱이나 무슨 골동품 따위, 또는 흘러 들어오기만 했지 빠져나갈 데라곤 없는 깊은 방죽 같은 데서나 맡을 수 있는 참으로 이상한 냄새였다. 먼먼 옛날로부터 오늘을 향해 부는 바람에 묻어오는 냄새와 치마 스치는 소리로 구별되는 할머니, 우리 외할머니가 조심조심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건넌방에 누워서 잠든 시늉을 하고 있었다. 외할머니란 사람이 전에 없이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한 뒤부터 내게는 자주 잠든 시늉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낮잠 자는 외손자를 깨우지 않을 양으로 외할머니는 다른 날보다 더 조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마에 와 닿는 외할머니의 미지근한 숨결 속에서 독특한 그 냄새를 이미 싫도록 맡았고, 이제 곧 외할머니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를 충분히 짐작해 버렸다. 아니나다를까, 외할머니의 강마른 손이 내 아랫도리를 벗기기 시작했다. 어디 이놈 잠지 좀 만져 보자. 다른 때 같으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또 이렇게도 말했을 것이다. 즈이 오삼촌 타겨서 붕알도 꼭 왜솔방울맹키로 생겼지. 그런데 외할머니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손만 놀리면서 언제까지고 내 샅을 주무르는 것이었다. 외가가 우리 집으로 피난 오면서부터 시작된 그것은 내겐 크나큰 고역이요 굉장히 모욕적인 장난이기도 했다. 잠방이 속으로 들어오는 외할머니의 손을 단 한 번이라도 좋은 기분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다면 나는 내 입을 찢어도 아무 말 않겠다. 국민학교 삼학년 나이에 아직도 코흘리개로 취급받기를 바라는 애들이 얼마나 될는지는 모르지만 이만하면 철이 들 대로 든 셈이며 다 큰 거나 마찬가지라고 자부하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뿌리치면 외할머니가 대단히 섭섭해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수모를 모두 참아내는 도리밖에 없긴 했지만서도.
긴 한숨과 함께 외할머니의 손이 샅을 빠져나갔다. 손을 거두고 나서도 외할머니는 한참이나 더 내 얼굴을 내려다보는 눈치였다.
“불쌍헌 것…….”
혼잣말을 남기면서 외할머니는 내 곁을 떠났다. 구겨진 무명 치맛자락을 소리 없이 끌면서 마루로 나서는 외할머니의 뒷모습을 나는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방금 그 중얼거림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모른다. 불쌍한 사람은 내 주위에 너무 많았다. 우선 일선에서 전사한 외삼촌이 그렇고, 사실은 나 역시도 몹시 불쌍한 처지에 있었다. 형사한테서 양과자를 얻어 먹은 사건 이후로 나는 근 달 소수간이나 줄곧 울안에만 틀어박혀 근신하면서 근신할 것을 명령한 아버지와 용서할 권한을 가진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는 신세였다. 그러나 가장 불쌍한 사람은 바로 외할머니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루 끝에 앉아서 구름에 덮인 건지산 근방을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몹시도 허전해 보였다. 전사통지서를 받던 날 저녁에 본 강하고 두렵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젠 시들 대로 시들어 먼산바라기로 오두마니 앉아 있는 초라한 할멈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고역에서 해방된 기분은 그 측은한 모습으로 하여 금세 지워지고 말았다.
외삼촌의 죽음이 알려지고 나서 며칠 동안은 집안 꼴이 엉망이었다. 누구나 다 그랬지만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제일 심했다. 어머니는 학교 운동회 때 우리가 그랬듯이 흰 헝겊을 머리에 질끈 동이고서 방바닥을 쳐가며 한 차례씩 서럽게 울고 나서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러다 끼니때만 되면 슬그머니 일어나 이모가 들어다 주는 꽁보리밥 한 그릇을 다급하게 비우고는 숟갈을 놓자마자 밥상머리에서 또 한 차례 서럽게 운 다음 다시 자리에 눕는 것이었다. 누워서 한다는 소리가 늘, 누구를 양자로 데려다가 끊어진 대를 이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거기에 비해 이모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이모는 끝내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았다. 누구하고 말 한 마디 나누는 법도 없고,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면서 전에 어머니가 하던 일을 도맡아 혼자 밥도 짓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했다. 사흘째 되는 날, 울안 샘에서 물동이를 들다가 벌렁 나자빠지는 걸 볼 때까지 나는 이모가 뒤란 대밭 속이나 침침한 부엌 안에서 우리 몰래 뭔가를 먹는 줄로만 알았다. 독하고 엉큼스런 구석이 있는 이모가 설마 사흘을 내리 굶지야 않겠지, 생각하고 안심했었다.
어머니와 이모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간의 불화였다. 외삼촌과 이모를 공부시키기 위해 살림을 정리해서 서울로 떠났던 외가가 어느 날 보퉁이를 꾸려들고 느닷없이 우리들 눈앞에 나타났을 때, 사랑채를 비우고 같이 지내기를 먼저 권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난리가 끝나는 날까지 늙은이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자는 말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돈댁은 사실 말다툼 한번 없이 의좋게 지내왔었다. 수복이 되어 완장을 두르고 설치던 삼촌이 인민군을 따라 어디론지 쫓겨가 버리고 그 때까지 대밭 속에 굴을 파고 숨어 의용군을 피하던 외삼촌이 국군에 입대하게 되어 양쪽에 다 각기 입장을 달리하는 근심거리가 생긴 뒤로도 겉에 두드러진 변화는 없었다. 그러던 두 분 사이에 얼추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저 사건―내가 낯모르는 사람의 꼬임에 빠져 과자를 얻어먹은 일로 할머니의 분노를 사면서부터였다. 할머니의 말을 옮기자면, 나는 짐승만도 못한, 과자 한 조각에 제 삼촌을 팔아먹은, 천하에 무지막지한 사람백정이었다. 외할머니가 유일한 내 편이 되어 궁지에 몰린 외손자를 감싸고 역성드는 바람에 할머니는 그때 단단히 비위가 상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두 분을 아주 갈라서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전사통지서를 받은 그 이튿날에 왔다. 먼저 복장을 지른 쪽은 외할머니였다. 그날 오후도 장대 같은 벼락불이 건지산 날망으로 푹푹 꽂히는 험한 날씨였는데, 마루 끝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별안간 무서운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더 쏟아져라! 어서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새에 숨은 뿔갱이 마자 다 씰어 가그라! 한 번 더, 한 번 더, 옳지! 하늘님 고오맙습니다!”
소리를 듣고 식구들이 마루로 몰려들었으나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외할머니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벼락에 맞아 죽어 넘어지는 하나하나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인다는 듯이 외할머니는 더욱 기가 나서 빨치산이 득실거린다는 건지산에 대고 자꾸 저주를 쏟았다.
“저 늙다리 예펜네가 뒤질라고 환장혔댜?”
그러자 안방 문이 우당탕 열리면서 악의를 그득 담은 할머니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외할머니를 능히 필적할 만한 인물이 그제까지 집안 한쪽에 도사리고 있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닫고 긴장했다.
“여그가 시방 누집인 종 알고 저 지랄이랴, 지랄이?”
옆에서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갑자기 잠꼬대를 그친 사람처럼 외할머니는 멍멍한 눈길로 주위를 잠깐 둘러보았다.
“보자 보자 허니께 참말로 눈꼴시어서 볼 수가 없네. 은혜를 웬수로 갚는다드니 그 말이 거그를 두고 허는 말이고만. 올디 갈디 없는 신세 하도 불쌍혀서 들어앉혀 농게로 인자는 아도 으런도 몰라보고 갖인 야냥개를 다 부리네그랴.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그렇게 숭악시런 맘을 먹으면은 벱대로 거그한티 날베락이 내리는 벱여.”
당장 메어꽂을 듯한 기세로 상대방의 서슬을 다잡고 나더니 할머니는 사뭇 훈계조가 되었다.
“아아니, 거그가 그런다고 죽은 자석이 살어나고 산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성부른가? 어림 반푼도 없는 소리 빛감도 말어. 인명은 재천이랬다고, 다아 저 타고난 명대로 살다가 가는 게여. 그러고 자석이 부모보담 먼처 가는 것은 부모 죄여. 부모들이 전생에 죄가 많었기 땜시 자석놈을 앞시워 놓고는 뒤에 남어서 그 고통을 다아 감당허게 맹근 게여. 애시당초 자기 팔자소관이 그런 걸 가지고 누구를 탓허고 마잘 것이 없어. 낫살이 저만치 예순줄에 앉어 있음시나 조께 부끄런 종도 알어야지.”
“그려. 나는 전생에 죄가 많어서 아덜놈 먼첨 보냈다 치자. 그럼 누구는 복을 휘여지게 짊어지고 나와서 아덜 농사를 그 따우로 지었다냐?”
하고 외할머니도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저놈으 예펜네 말하는 것 점 보소이. 참말로 죽을라고 환장혔능개비. 내 아덜이 왜 어디가 어쩌간디 그려?”
“생각혀 보면 알 것이구만.”
“저 죽은 댐이 지사 지내 줄 놈 한나 없응게 남덜도 모다 그런 종 아는가분디…….”
“고만덜 혀둬요!”
“우리 순철이는 끈덕도 없다, 끈덕도 없어. 무신 일이 생겨야만 쇡이 시연헐 티지만 순철이 갸는 쏘내기 새도 요리조리 뚫고 댕길 아여.”
“어따 구만덜 허라니께요!”
하고 아버지가 한 번 더 짜증을 부렸다.
아까부터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허벅지를 자꾸만 집어뜯고 있었다.
“느그 시엄씨 허는 소리 들었냐? 명색이 그리도 사분인디, 나보고 시상에 지사 지내 줄 놈 한나 없는 년이란다. 자석 한나 있는 것 나라에다 바친 것만도 분하고 원통헌디, 명색이 자기 사분한티 헌다는 소리가 그 모냥이구나. 자석 잃고 쇡이 뒤집힌 에미가 무신 소린들 못 허겄냐. 그런디 말 한 마디 어덕 잡어 가지고 불쌍한 늙은이 앞에서 똑 아덜자식 여럿 둔 위세를 혀야만 쓰겄냐? 너도 입이 있으면 어디 말 좀 혀 봐라, 야야.”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돌아보며 통사정을 하고, 어머니는 울상이 되어 한쪽 눈을 연방 쫑긋거려 가며 외할머니의 다리를 꼬집었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아버지를 붙들고 늘어졌다.
“야, 애비야. 니 동상 어서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예펜네를 내가 조께 혼내줬기로 너까지 한 통속이 되어 목 매달 게 뭐냐. 너한티는 장몬지 뭣인지 모르지만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꼴 못 본다. 당장 어떻게 하지 않으면 내가 이 집을 나갈랑게 알어서 혀라.”
“나갈란다! 그러잖아도 드럽고 챙피시러서 나갈란다! 차라리 길가티서 굶어죽는 게 낫지 이런 집서는 더 있으라도 안 있을란다! 이런 뿔갱이집…….”
외할머니의 격한 음성이 갑자기 뚝 멎었다. 외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아버지를 멀거니 건너다보았다. ‘뿔갱이집서는…….’ 하고 하다 만 말의 뒤끝을, 그러나 매우 자신 없는 어조로 간신히 흘리면서 이번에는 어머니 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나를 한참 동안 눈여겨보고 나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시선을 떨구는 것이었다. 쏟아져 내리는 그 시선이 대바구니 속에 무겁게 담겼다. 그 대바구니를 잠자코 무릎마디로 끌어당겨 그림자처럼 조용한 몸놀림으로 한 개의 완두 줄거리를 집어올렸다. 외할머니의 얼굴은 어제나 그제 죽은 사람 모양으로 완전한 잿빛이었다.
외할머니의 말 한 마디가 집안에 던진 파문은 의외로 심각했다. 외할머니의 입에서 ‘뿔갱이’란 말이 엉겁결에 튀어나왔을 때 식구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넋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숨소리조차 제대로 못 내면서 오직 느릿느릿 변화하는 외할머니의 동작만을 시종일관 주목할 따름이었다. 여태까지 삼촌 때문에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치안대와 경찰로부터 시달림을 당해 오면서 가족들 간에 절대로 써서는 안 될 말로 묵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금기는 연주창에 새우젓을 가리듯이 아주 철저하게 지켜져 왔었다. 그런데 이토록 무서운 말을 함부로 입 밖에 쏟다니. 외할머니의 과오는 어떤 변명으로도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가족들의 놀라움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발설 당자였다. 외할머니는 구태여 변명을 늘어 놓지 않았다. 변명해 봤자 소용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할머니가 무슨 못 들을 소리를 해도 꾹 참고 견디는 것으로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분노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길길이 뛰다가 거품을 물고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이모를, 경우에 따라서는 어머니까지도 내보낼 것을 아버지한테 거듭 다짐받으려 했다.
“오널 중으로 내쫓아야 된다. 그러고 저것들이 삽짝을 나서기 전에 짐보팅이를 잘 조사혀라. 메칠 전에 내 은비네가 없어졌는디, 어떤 년 손버릇인지 다 알 만헌 소행이니께.”
이모가 소리 없이 사랑채로 건너가 버렸다. 해댈 만큼 해대고 나서 할머니는 지쳐 드러눕고, 잠시 깃들인 정적을 어머니의 허겁스런 통곡이 또 물리쳐 버렸다. 그러자 아버지의 벽력 같은 고함이 떨어졌다.
“그놈으 주둥빼기 안 오므릴래!”
정적은 차라리 소란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고문이었다. 아버지는 씨엉씨엉 집을 나갔다. 외할머니는 밤늦도록 혼자 마루에 남아 파들파들 떨리는 앙상한 손으로 줄창 완두만 까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고주망태가 되어 입에서 감내를 펑펑 풍기며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먹구름에 덮인 건지산 날망으로 연거푸 시퍼런 벼락이 꽂히고 있었다. 전에는 거의 매일 밤 볼 수 있던 봉홧불이 장마가 시작되며부터는 숫체 자취를 감추었다. 이따금 건지산 쪽에 눈을 주면서 마루 끝에 앉아 있는 외할머니의 뒷모습은 너무도 허전해 보였다. 그때나 다름없이 떨어지는 벼락불을 보고도 외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사돈끼리 한다래끼 단단히 벌인 뒤로 무슨 일에나 여간해서는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완두를 까는 것만이 죽는 날까지 자기가 맡은 유일한 일이라는 듯 대바구니를 앞에 하고 외할머니는 끊임없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3
 
이북에서 우리 마을로 피난온 지 얼마 안 되는 아이 하나가 맥고자를 눌러쓴 어떤 사내와 함께 우리들 노는 장소에 나타났다. 온 얼굴이 버짐투성이인 그 아이는 한여름인데도 때가 까맣게 낀 장구통배를 득득 긁던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키면서 사내에게 뭐라고 짤막한 말을 했다. 그러자 사내가 윗얼굴을 깊숙이 가린 넓은 챙 밑으로 나를 유심히 쏘아보았다. 이북아이는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꺼내주는 무엇인가를 받아쥐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토끼처럼 달아나 버렸다. 맥고자의 키 큰 사내가 똑바로 나를 향하고 다가왔다. 검게 그을린 살갗, 날카롭게 굴리는 부리부리한 눈방울, 그리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곧장 목표물을 향하는 대담한 그 걸음걸이가 내게는 어쩐지 위압적이었다.
“녀석 참 귀엽게도 생겼다.”
사내의 눈이 갑자기 가늘어지는가 했더니 뜻밖에도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상냥한 웃음이 얼굴 가득히 만들어졌다. 사내는 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내렸다.
“아저씨가 묻는 말에 잘만 대답하면 정말로 귀여울 텐데…….”
사내의 태도는 나를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내의 눈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공연히 손바닥만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고개를 박고 서 있었다. 내 손아귀엔 할머니의 은비녀가 쥐어져 있었고, 그것은 돌확에다 갈아서 끝이 뾰족한 대못으로 개조했기 때문에 못치기 놀이를 할 때 동네 애들이 아무리 큰 못으로 쳐도 넘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성함이 김순구씨지?”
사내는 흰 남방 셔츠의 단추를 끌렀다.
“그렇다면 김순철씨는 네 삼촌이 되겠구나. 그렇지?”
사내는 맥고자를 벗어 들었다. 그때까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내는 이렇게 엉너리를 치는 것이었다.
“역시 그렇구나. 착한 애라서 대답도 썩썩 잘 하는구나.”
사내는 맥고자를 부채마냥 흔들어 남방 속으로 바람을 불어 넣었다.
“아저씨는 삼촌 친구란다. 굉장히 친한 친군데 서로 떨어져서 오랫동안 만나질 못했다. 만나서 꼭 상의할 얘기가 있는데, 지금 네 삼촌 어디 있지?”
생전 처음 보는 그 사내는 우리 작은이모처럼 깨끗한 서울 말씨를 썼다.
“어이 더워! 여긴 굉장히 덥구나. 아저씨하구 저쪽 시원한 데로 가서 얘기 좀 할까?”
같이 놀던 애들은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이 안 보이는 마을 당산 위 나무그늘 밑에 이르자 사내는 걸음을 멈추고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삼촌한테 꼭 전할 말이 있어서 그래. 삼촌이 어디 있는지 얘기만 하면 내 이걸 주지.”
은딱지에 싼 다섯 개의 납작한 물건을 놓으면서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하나를 껍질을 벗겨 내 코앞에 디밀었다.
“너 이런 거 먹어 본 적 있어?”
윤기 흐르는 흑갈색의 그것에서 먹음직스런 향기가 풍겼다.
“쪼꼴렛이다. 아저씨가 묻는 말에 대답만 잘 하면 이걸 너한테 몽땅 주겠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그 이상한 과자 위에 시선이 머물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꿀꺽꿀꺽 넘어가는 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뭐 조금도 부끄러워할 것 없다. 착한 아이는 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단다. 어떠냐, 대답하겠니? 네 대답 한마디면 아저씨는 친구를 만나서 좋고, 너는 이 맛있는 쪼꼴렛을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무엇 때문에 내가 망설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받아서 좋을 것인가, 아니면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될 것인가를 결정 짓지 못해서였을까. 혹은 그런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그 나이의 시골애답게 모르는 사람에 대한 낯가림 때문에 그랬을까. 확실한 것은 별로 기억에 없다. 아무튼 나는 꽤 오래 시간을 끌었던 것 같다.
“싫어?”
사내가 재촉했다.
“싫단 말이지?”
사내는 몹시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별수 없구나. 착하게 굴면 이걸 꼭 너한테 주려고 했는데 이젠 하는 수 없다. 나한텐 필요 없는 물건야. 자, 봐라. 아깝지만 이렇게 내버리는 수밖에…….”
실제로 사내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땅바닥에 던졌다. 던졌을 뿐만이 아니고 구두 뒤축으로 싹싹 밟아 뭉개어 버렸다. 내 표정을 흘끗 읽고 나서 그는 또 한 개를 내던졌다.
“난 네가 굉장히 똑똑한 앤 줄 알았는데…… 참 안됐구나.”
그는 또 한 개를 구둣발로 짓밟아 놓았다. 벌써 세 개째였다. 사내의 손 안엔 이제 두 개의 과자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사내의 태도로 보아 나머지 두 개마저도 충분히 짓밟고 남을 사람이었다. 사내가 별안간 껄걸 웃었다.
“너 이 녀석 우는구나. 못난 녀석 같으니라구. 애, 꼬마야, 이제라도 늦진 않아. 잘 생각해 봐. 삼촌이 집에 다녀갔었지? 그게 언제지?”
어른의 비상한 수완을 나로서는 도저히 당해 낼 재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아저씨는 진짜로 삼촌의 친구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막 시작할 때의 첫 마디가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일단 얘기를 꺼낸 다음부터는 연자새에 감긴 실처럼 전날 밤의 기억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유월 뙤약볕 속을 삼십 리 밖 산골에 사는 고모가 우리 집에 왔다. 시국이 어수선한 동안에도 예고 없이 찾아와서 하루나 이틀쯤 묵어간 적이 종종 있으므로 고모의 갑작스런 출현이 그 날 따라 부자연스럽게 보일 특별한 이유라곤 없었다. 그런데, 고모를 모시고 안방으로 들어갔던 어머니가 별안간 얼굴색이 노래져 뛰어 나오면서부터 사정은 눈에 보이게 달라졌다. 나를 심부름시키지 않고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아버지를 부르러 달려나갔다. 논에서 지심(김)을 매던 아버지가 흙탕에 젖은 옷차림 그대로 돌아와 우물도 거치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아버지 뒤를 바짝 쫓아 들어온 어머니가 멀쩡한 대낮에 사립문을 닫아걸었다. 모두들 온전한 정신이 아닌 듯했다. 나와 외갓집 식구들만 따돌려 놓은 안방에서는 해질 무렵이 되기까지 긴 쑥덕공론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따돌림을 받던 내가 숟갈을 놓을 때쯤 되어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어둠이 깔린 사립 밖으로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널은 일찍 자거라.”
할머니 앉은 자리 바로 옆에다 요를 펴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아직 초저녁인데 모두 나를 어거지로라도 재울 작정들이었다.
“웃방에다 재우지 그려라우?”
나를 턱으로 가리키며 고모가 어머니한테 말했다.
“아매 괭기찮을 것이다.”
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쟈는 눈만 깜었다 하면 누가 띠며 가도 모르는 아다.”
“죙일 노니라고 대간헐 틴디 어서어서 자거라. 니알 아적까장 눈도 뜨지 말고 죽은디끼 자빠져 자야 된다. 알겄냐?”
어머니가 내게 단단히 일렀다.
누구네 집에 밤마을을 간 것도 아니다. 틀림없이 어떤 긴한 용무를 띠고 나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가능한 한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있고 싶었다. 어른들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것인지 기어이 밝혀낼 심산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자라는 분부에 싫어도 따르는 척할 필요가 있었다. 눈을 감자마자 걷잡을 수 없이 덮쳐오는 졸음과 싸워가며 나는 방 안 동정에 귀를 곤두세웠다. 그러나 어른들 입에서는 단서가 될 만한 말이 전연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정작 눈을 떴어야 될 중요한 시간에 이미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방바닥에 부딪는 둔중한 어떤 소리가 잠든 나를 얼핏 깨웠다.
“아구메나! 그게 폭발탄 아니냐?”
나는 그 순간 겁에 질린 할머니의 음성을 들었다. 양쪽에서 내 시야를 답답하게 가로막고 앉은 사람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두 덩치의 커다란 몸체 사이로 호롱불이 침침하게 비쳐 들었다.
“괴춤에 찬 것도 마자 끌러라.”
아버지가 방 안의 누군가를 향해 명령조의 말을 했다. 잠시 머뭇머뭇하는 기색이더니 아버지의 맞은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곤총을 두 자루썩이나…….”
“숭칙도 혀라!”
어머니와 할머니가 동시에 중얼거렸다. 잠은 벌써 천리만리나 도망가 버렸고, 선뜩한 기운이 움직이는 뱀처럼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관심의 대상에서 내가 일단 벗어나 있다 해도 안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한 치 시선을 옮기는 데 여간만 수고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옹색한 시야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온 신경을 모았다. 그러자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동만이는 내가 온다는 걸 모르고 잠들었는가요?”
아버지가 옆으로 약간 돌아앉으려는 낌새여서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그늘이 확 물러나면서 눈뚜껑 위로 불빛이 따갑게 쏟아져 내렸다.
“부러 귀뜸을 안 혔어라우.”
하고 어머니가 그것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얘기했다.
“염려할 거 없다. 저 녀석은 눈만 붙였다 허면 시상 모르게 자는 아다.”
라고 할머니도 말을 거들었다.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아무도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 삭막한 분위기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귓속엔 권총과 수류탄을 찬 채 밤중 몰래 숨어 들어온 사람의 그 굵은 음성이 아직 쟁쟁했다. 바로 그가 몇 달 전에 집을 나간 후 소식을 몰라 식구 모두가 애타하던 삼촌임에 틀림없다면, 유감이지만 삼촌의 목소리는 내가 첫귀에 거의 못 알아들을 만큼 무섭게 변모해 있었다. 자갈바탕에 함부로 굴린 질항아리처럼 그렇게 거칠 수가 없고, 어떤 일에도 신명이 안 난다는 투의 그런 무심한 음색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 우리 삼촌은 아무 자리에나 끼여 버릇 없이 너털웃음을 잘 웃고 자기와는 전혀 이해 상관이 없는 남의 일에도 곧잘 뛰어들어 판세를 될수록 시끌짝하게 유도하면서 까닭 없이 흥분하고 쉽게 감동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금 전의 그 소리는 어김없는 삼촌의 음성이었다. 소리의 변모만큼이나 험상궂어 있을 삼촌의 얼굴 모양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자 별안간 오금이 가려워오기 시작했다. 이 가려움증은 삽시에 전신으로 번져 꼭 개미집이 많은 풀밭에 누웠기나 한 듯이 등 복판이나 겨드랑 밑 아니면 발가락 사이 같은, 하필 누운 채로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고 손을 뻗어 용이하게 긁을 수 없는 부위들만 심하게 물것을 타는 것처럼 스물거리는 것이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기침까지 나오려고 목줄띠가 근질거리고 자꾸만 입 안에 침이 괴었다.
산에서의 생활이 제일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가를 할머니는 요모조모로 따지고 캐물었다. ‘예’ 아니면 ‘아니오’ 정도로 삼촌은 대답을 극히 간단히 끝맺곤 했는데, 그만한 대화를 꾸리는데도 때로는 약간 짜증스런 기색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 눈치도 없이 밤이 이슥하도록 질문을 혼자 도맡고 있었다.
“니 말로는 사람이 많다고는 혀드라만, 혀 봤자 맨나 남정네들뿐일 틴디 끄니때마동 밥이라 국이랑은 누가 끼리냐?”
“즈이들이죠, 뭐.”
“짐치나 너물 같은 겅건이도?”
“예.”
“시상에나! 이 에미가 저티 있었드라면 지때 간이라도 맞춰주고 헐 것인디…….”
“…….”
“그래 입에 맞기나 허디야?”
“괜찮어요.”
“남정네 손으로 맹근 것이 오직허겄냐만 들을시록 시장시러서 그런다.”
“괜찮다니께요.”
“이리저리 처소를 욍겨 댕기느라면 끄니를 걸르고 헐 때는 없냐?”
“아니오.”
“아무리 급혀도 너 쌩쌀을 집어 먹어서는 못 쓴다. 그러다 곽란이라도 나는 날이면 큰일이다. 산중으로 의원을 부르겄냐, 약한 첩이들 대리겄냐, 에미 말 명심혀야 된다.”
“염려 마세요.”
“그리고 산말랭이라니께 말이 하절이지 밤중에는 엄동이나 진배 없을 틴디 아랫두리 개릴 이불 한 쪽이나 지대로 천신허냐?”
“그럼요.”
“소캐도 들을 만큼 들고?”
“…….”
“치운 디서 너무 오래 있지 마라. 그러고 얼음 백힌 디는 까짓대가 질이다. 까짓대를 푹 삶아서 그 물에다가 한참썩 수족을 정구고 나면 고닥 풀리느니라. 에미가 저티 있으면 조석으로…….”
“글씨, 염려 마시랑게요!”
“니 손발을 보닝게 이 에미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어서 그런다. 아무리 시상이 험하다고는 혀도 그래도 귀동으로 키운 자석인디 손이 그게 뭐냐.”
“에이 참 어머니도!”
그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삼촌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인자 구만 좀 혀 두세요.”
기회를 봐서 아버지도 한 마디 했다.
“손구락이 얼어 터져서 떨어져 나가도 에미보고 걱정허지 말란 말이냐?”
할머니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당신 딴엔 여전히 심각하고 절실한 어조였다. 그러자 아버지 역시 못지 않게 언성을 높였다.
“조매만 있으면 날이 샐 참인디 한가허게 앉어서 그런 소리나 혀야만 똑 쓰겄소? 사람이 사느냐 죽느냐 허는 판국에 시방 짐치 걱정 이불 걱정 허게 생겼냔 말요!”
할머니는 아무 소리도 못했다. 물론 할 얘기야 얼마든지 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대꾸 속에 담긴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 구석이 극성스런 노인 양반을 그처럼 몬존하도록 만들었으리라.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냐?”
한동안 뜸을 들인 후에 아버지는 이렇게 물었다. 삼촌을 향해 서였다.
“뭘 말이유?”
“산에서 끝까지 버틸 작정이냐?”
대답이 없자 아버지는 또, 자수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오래 두고 별러온 말인 듯 아버지는 천천히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늘 쫓기기만 하는 생활의 비참함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자수를 해서 고향에 돌아와 다시 농사를 지으며 편히 산다는 아무아무개를 예로 들면서 삼촌도 그렇게 하라고 간곡히 권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개죽음’이란 말을 자주 들먹였다. 개죽음, 개죽음, 개죽음, 개죽음…….
“성님은 어찌서 자꼬 그것이 개죽음이라고 그러시오?”
삼촌이 갑자기 볼멘소리를 했다. 머지 않아 인민군이 다시 내려오기로 되어 있다고 삼촌은 장담을 했다. 그날까지 그저 악착같이 버티는 거라고 말하면서, 세상이 다시 뒤바뀌는 날 화를 당하지 않도록 모든 일을 알아서 조처하라고 오히려 아버지한테 되씌우기조차 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삼촌의 변모를 또 한 번 실감할 수가 있었다. 말이 아주 청산유수였다. 옛날의 삼촌한테서 그처럼 차분한 설교조의 말씨를 기대한다는 건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자기 주장을 상대방에게 조리 있게 전달할 재간이 없어 걸핏하면 우격다짐을 벌이던 사람이었다. 날이 밝기 전에 산을 타야 된다면서 삼촌은 주섬주섬 뭘 챙기기 시작했다. 총과 수류탄일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일단 집 안에 돌아온 이상 니 맘대로는 못 나간다!”
마침내 나는 눈을 떴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소동 속에서 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는 걸 부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삼촌은 얼굴이 온통 수염투성이였다. 아랫목에 벽을 등대고 앉은 삼촌을 아버지와 고모 둘이서 껴안다시피 붙잡고 있었다. 고모가 붙잡고 있던 한쪽 팔을 빼앗아 흔들면서 할머니가 말했다.
“야 말만 듣고 나는 니가 어디 가서 펜안히 지내는 종만 알었다. 작년 그 때맹키로 면사무소 의자에 버티고 앉어서 밀주 단속반이나 잡어다가 죅치고 그러는 종 알었다. 그런디 오널사 알고 보니께 그게 아니구나. 사정을 죄다 알었응게 인자는 죽었으면 죽었지 너를 그 험헌 디로는 안 보낼란다.”
삼촌의 손을 연방 자기 뺨에 대고 비비면서 할머니는 느껴 울었다.
“에미가 따러가서 끄니랑 잠자리랑 일일이 수발을 하면 행결 맘이 뇌겄지만 그럴 순 없다니 너를 인자는 저티다 꼭 붙들어 앉혀놓고 내 눈으로 지켜볼란다. 집에 있음서 농새나 짓고 그러다가 장개를 가서 이 에미한티 니 속에서 난 새끼들도 조깨 안어보게 허고 그러면 얼매나 좋겄냐?”
오랜만에 고모도 입을 열어 가정을 가진 사람만이 갖는 재미를 이야기하고, 어머니도 은근히 맞장구를 놓았다. 아버지가 재차 타이르기 시작했다. 전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인민군의 헛약속에 속고 있음을 깨우치려 애를 썼다. 경찰에 아는 사람이 더러 있으니까 줄을 대면 몸을 상하지 않고도 빠져 나올 방법이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삼촌은 끝내,
“성님마자 날 쇡이기유?”
아버지의 손을 홱 뿌리쳐 버렸다.
“쇡이다니?”
“들어서 다아 알고 있어요.”
삐라를 주워 읽고 귀순하러 내려간 사람을 경찰이 마구잡이로 죽였다는 것이다. 과거를 무조건 용서 하고 자유를 준다는 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요 속임수라는 것이다.
“그런디 성님마자도 날더러 자수를 허라니…….”
“뭐여?”
이 때 아버지의 팔이 위로 번쩍 들렸다. 그리고 삼촌의 귀싸대기에서 철썩 소리가 났다.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 아버지는 삼촌을 무섭게 째려보았다.
“내가 그럼 이놈아, 너를 이놈아, 죽을 구뎅이로 몰아 는단 말이냐? 하나배끼 없는 동상놈을 못 쥑여서 환장이라도 했단 말이냐, 이놈아?”
“야가 불쌍헌 아를 패고 야단이냐!”
가슴으로 삼촌을 감싸안으면서 할머니가 소리 내어 울었다. 아버지가 담배통을 앞으로 끄집어 다렸다. 풋초를 말아 쥐는 두 손이 발발 떨렸다. 삼촌이 고개를 떨구었다.
닭이 첫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장닭의 긴 울음을 듣고 삼촌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식구들을 둘러보았다. 짧은 여름밤이 이제 곧 새려 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어요.”
무거운 짐을 부리고는 주저앉는 사람처럼 허탈한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렇게 해서 삼촌은 결국 자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참으로 긴긴 설득이었고 삼촌이 마음을 돌리기까지 아버지가 보인 인내심은 내 보기에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모든 일이 아버지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잘 이루어진 셈이며, 그래도 뭔가 못 미더워하는 삼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아버지는 확실한 보장을 받을 때까지 한 이틀 여유를 두고 동정을 살피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그 동안 삼촌은 전에 외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대밭 속에서 숨어 지낼 참이었다.
이야기는 다 끝났고, 이제 남은 일이란 날이 완전히 밝기까지 눈이라도 잠깐 붙여두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때였다. 웃옷을 벗으려던 삼촌이 느닷없이 몸을 엎드리면서 방바닥에 귀를 대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질겁을 했다.
“무신 일이냐?”
“쉬잇!”
삼촌이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대고는 눈으로 방문 쪽을 가리켰다. 대번에 얼굴색들이 달라지면서 덩달아 바깥쪽으로 귀를 모았다.
“소리가 났어요.”
그러나 내 귀엔 아무 소리도 잡히지 않았다. 멀리서 우는 풀벌레 소리라면 몰라도 인기척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삼촌은 방바닥에 잔뜩 귀를 붙인 채 일어날 생각을 아니했다. 숨막힐 듯한 긴장 속에서 쿵쿵 울리는 심장의 고동만 듣고 있던 나도 마침내 삼촌이 얘기하는 어떤 소리를 붙들었다. 심장의 고동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그 소리는 매우 느린 간격으로 땅을 살금살금 밟고 있었다. 너무도 꼼꼼하고 신중해서 가까이 오고 있는지 점점 멀어져 가는 중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밖에 거 누구요!”
 아버지가 소리는 작으나 엄하게 꾸짖는 말투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움직이는 소리가 뚝 그쳤다.
불현듯 그것이 어디선가 많이 귀에 익은, 어쩌면 내가 잘 아는 사람의 발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게 누구일까고 다급히 생각해 보았다.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빨리 움직이는 듯했다. 삼촌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시커먼 몸뚱이가 내 앉은키를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뒷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고 삼촌의 커다란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을 했다. 어느새 삼촌은 대밭 속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찌나 동작이 날렵하던지 누가 붙잡고 말 한마디 건넬 여가도 없었다. 삼촌이 망가뜨리고 간 뒷문을 통해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부엌 옆을 돌아 안마당으로 달렸다. 혼자였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마당에서부터 텃밭을 지나 대문간까지 울바자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한눈에 살폈으나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러나 불이 꺼진 사랑채에 시선이 머물자 그곳에서 나는 절반쯤 열려 있던 방문이 희부연 여명을 밀어내며 소리 없이 닫히는 걸 보았다. 이 발견으로 하여 나는 크나큰 희열을 맛볼 수가 있었다. 그렇다, 역시 그것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의 귀에 익은 발소리였다.
“일이 이렇게 될 종 알었드라면 진작에 다 챙겨 놀 것인디…… 먹을 것 한나 입을 것 한나 못 쥐여 보내고…… 누가 알었어야지……. 뜨뜻한 밥 한 그럭 지대로 못 멕여 보내다니……누가 알었어야지…….”
가슴을 뜯으며 흐느끼는 할머니 옆에서 고모가 내 손목을 꼬옥 잡아 한쪽으로 끌었다. 이어서 고모는 뜨거운 입김을 내 귓속에 불어 넣었다.
“삼춘이 집에 댕겨갔다는 얘기 누구한티도 혀서는 안 되야. 알겄냐? 그런 얘기는 함부로 하다가는 왼 집안이 큰일난다. 잽혀 가, 알었냐? 알었냐?」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대문 앞을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그렇게들 모여 서서 웅성거리며 대문 안을 넘어다보려고 열심이었다. 당산 근처까지 들리던 여인네들의 통곡은 바로 우리 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내가 다가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나를 턱으로 가리키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의미심장한 눈짓을 나누고는 또 쑤군거렸다. 사람들이 이내 좌우로 갈라지면서 가운데로 길이 뚫렸다. 낯선 사내가 앞장서 걸어나오고 바로 뒤를 이어 아버지가 따라나왔다. 그리고 한 걸음 떨어져 맥고자의 사내가 보였다. 그는 아버지의 팔을 뒤로 결박한 오라의 한쪽을 손에 감아쥐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는 헤벌쭉 웃으며 한 눈을 찡긋해 보였다. 내 앞에서 아버지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는 몹시 안타까워하는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보며 한참이나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는 잠자코 도로 발을 떼기 시작했다. 대문간에서는 어머니와 고모 그리고 할머니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자빠지고 고부라져 가며 통곡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내게도 어떤 고통의 감정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맥고자한테 나를 일러준 그 이북 아이를 찾아 동네 안팎을 무작정 뒤지고 다니는 동안, 그것은 일종의 배신감과 어울려 갈수록 무서운 분노로 변했고, 때로는 감당 못할 큰 슬픔이 되어 눈을 후비고 가슴을 찌르기도 했다. 맥고자의 그 사내는 나한테 그런 얘길 들었다는 걸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한 바 있었다. 그것은 그때 나이의 내겐 어른들에 의해서 기록된 최초의 치명적인 배신이었다.
그 날 밤부터 나는 온전한 외할머니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나와 외할머니 사이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잘못을 저지른 자들끼리 갖는 공통의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온갖 구박 속에서도 서로 등을 기대고 견딜 수 있는 귀중한 힘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할머니는 성깔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쩌다 집안에서 얼굴이라도 마주치는 날이면 뱀이나 밟은 듯이 질색을 했고, 이야기는 물론 나하고 한 방에서 밥먹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해 버렸다.
아버지는 꼬박 일주일 만에야 풀려 나왔다. 먹을 걸 차입하느라고 그간 읍내를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어머니가 대문턱을 넘어서는 아버지 머리 위로 연방 소금을 뿌리면서 눈물을 질금거리고 있었다. 끌려가기 전과는 딴판으로 아버지는 얼굴이 영 말씀이 아니었다. 눈자위는 우묵 꺼지고 그 대신 광대뼈만 눈에 띄게 솟아 마치 갓 마름질한 옥양목처럼 희푸른 낯빛이 말할 수 없이 초췌해 보였다. 나를 더구나 외면하게 만든 것은 걸음을 옮길 적마다 오른쪽 다리를 절름거리며 짓는 몹시 괴로운 표정이었다. 집에 돌아온 첫 저녁, 아버지는 당시 마을에서 구하기 힘든 두부를 한꺼번에 세 모나 날것으로 먹어치웠다. 본디 입이 무거운 양반인 줄은 알지만 그 날 따라 아버지는 더욱 말이 없었다. 가끔 내 얼굴을 멀거니 내려다보며 금방 무슨 말을 꺼낼 듯 하다가도 도로 시선을 거두어버리곤 했다. 아버지가 만약 매를 든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달아나지 않기로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손만 뻗으면 넉넉히 잡을 만한 거리에 목침이 있고 등경걸이가 있었다. 뭔가 속 시원한 꼴을 보지 않고는 너무 찜찜해서 아버지 앞을 도저히 물러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정중히 무릎을 꿇고 앉아 이제나저제나 하며 나는 기다렸다. 그러나 지나간 일에 대해서 아버지는 끝끝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만 잠들기 전에 이런 말 한 마디를 남기는 건 잊지 않았다.
“동만이 너 니알부터 내 허가 없이 밖으로 나댕겼다가는 다리 몽생이가 분질러질 팅게 그리 알어라!”
아아, 그 때 우리 아버지가 미친 듯이 매를 휘둘러 줬더라면 마지막 말을 남기며 나는 얼마나 행복한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인가. 아버님, 제가 잘못했어요, 라고.

4
 
계속해서 비는 내렸다. 어쩌다 한나절씩 빗발을 긋는 것으로 하늘은 잠시 선심을 쓰는 척했고, 그러면서도 찌무룩한 상태는 여전하여 낮게 뜬 그 철회색 구름으로 억누르는 손의 무게를 더 한층 단도리하는 것이었고, 그러다가도 갑자기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는 듯이 악의에 찬 빗줄기를 주룩주룩 흘리곤했다. 아무데나 손가락으로 그저 꾹 찌르기만 하면 대꾸라도 하는 양 선명한 물기가 배어 나왔다. 토방이 그랬고 방바닥이 그랬고 벽이 그랬다. 세상이 온통 물바다요 수렁 속이었다. 쉬임 없이 붓는 물로 우물은 거의 구정물이나 마찬가지여서 팔팔 끓이지 않고는 한 모금도 목으로 넘길 수가 없고, 밤새 아궁이 밑바닥엔 물이 흥건해 괴어 불을 지필 적마다 어머니가 울상을 지으며 봇도랑을 푸듯 양재기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세상이 하도 빗소리 천지여서 심지어는 아버지가 뀌는 방귀마저도 그놈의 빗소리로 들릴 지경이라는 객쩍은 농담 끝에 어머니가 딱 한 차례 웃는 걸 본 적이 있다.
우중인데도 읍내에서는 야음을 틈탄 또 한 차례의 습격이 있었다. 읍내와는 짱짱한 이십 리 상거인 우리 동네에까기도 콩 볶듯 어둠을 두드리는 총성이 또렷이 들릴 정도였다. 비를 무릅써가며 당산 위에 올라섰다 돌아온 아버지 말에 의하면, 밤하늘로 치솟는 시뻘건 불길을 멀리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습격 사건에 관한 소식은 하루도 채 못 되어 마을에 소상하게 전해졌다.
동생네의 안부가 걱정되어 새벽같이 읍내를 다녀온 동네 사람 하나가 이웃집 진구네 아버지와 함께 일부러 아버지를 만나러왔다. 마루에 걸터앉자마자 그는 할머니가 큰방에서 듣는 줄도 모르고 신이야 넋이야 눈치 없이 떠벌리기 시작했다. 경찰서 부근 인가들이 많이 상했고, 먼저 공격한 빨치산 쪽이 되레 혼구멍이 나게 당해서 목숨을 살려 산으로 도망친 숫자가 불과 몇 명밖에 안 될 거라는 얘기였다. 그가 전하는 내용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읍내 곳곳에 널린 빨치산 시체들을 묘사하는 대목이었다. 거적때기에 덮인 끔찍한 모습 하나하나를 설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한 가지 예로 사지가 제각기 흩어져 뒹구는 주검을 들었다. 최고로 많이 맞은 것이 세어 보니 열여섯 방인가 열일곱 방인가 되더라고도 했다. 허리 위아래가 완전히 두 겹으로 포개져 시궁창에 박혀 있었다는 시체에 흥미가 쏠렸다. 사람 몸뚱이가 마치 주머니칼이 반절로 접혀지듯 그렇게 등쪽으로 두 겹이 될 수 있다는 게 내게는 커다란 의문이었다. 정말 그렇게 되리라고는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체들을 모아 경찰서 뒤뜰에 전시해 놓았다가 연고자가 나타나면 인도해 준다더라는 소문까지 암냥해서 전했다. 그가 아버지를 만나러 온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니까 빨리 가 보는 게 좋을 거라고 넌지시 권했다. 같이 온 진구네 아버지도, 두말 말고 어서 그렇게 하라고 채근을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는 내내 참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권고에 몹시 망설거리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죽마고우인 구장 어른이 뒤늦게 찾아와 자기가 정 무엇하면 함께 따라가 주겠다고 제안하자 그제서야 아버지 얼굴에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행장을 차려 삿갓 위에 유지로 된 갈모를 받쳐 쓰고 빗속을 나서는 아버지 등뒤에서 할머니는 가소로워 죽겠다는 내색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읍내행을 할머니는 처음부터 억척스럽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 수고가 절대로 필요 없다는 주장이었다. 나중에는 하늘이 정해 놓은 일을 아직도 곧이곧 신용하지 않는 아들의 어리석음에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주장은 아주 단순했다. 읍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든 삼촌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아무리 기구한 처지에 빠진들 삼촌만은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남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아무 날 아무 시만 되면 할머니 앞에 버젓이 나타나게시리 하늘이 알아서 진즉에 다 수습해 놓았다. 그런데 동생을 찾으러 시체 구덩이를 휘젓고 다니다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할머니 혼자만은 그걸 철저히 믿고 있었다. 믿다뿐이냐, 그날에 대비하여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써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속새로 목이 길어나게 기다리고 있는 판이었다. 할머니에겐 꼭 그럴 만한 사유가 있었다. 작은아들을 창황 중에 떠나 보낸 사건이 있는 후로 할머니가 지낸 나날을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세상이었다. 밤잠을 못 자고 한술 밥이 안 넘어갈 정도로 한시도 안정을 못하면서 아들의 뒷소식이 궁금해 간장을 말리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친정에 다니러 온 고모가 자기 이웃 마을에 산다는 점쟁이 이야기를 꺼냈다. 일이 이렇게 되어 할머니는 어느 하루로 날을 받아 쌀말이나 머리에 얹고 기가 막히게 용하다는 그 소경 점쟁이를 찾아나섰던 것이다. 늦은 저녁이 되어 할머니는 갈 때와는 사람이 다르게 희색이 만면해 가지고 돌아와서는 식구 전부를 모은 자리에서 소경의 혜안을 극구 칭송한 다음 그를 대리하여 놀라운 신탁을 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손가락을 꼽아가며 고대하던 그날이, 삼촌이 집에 다시 돌아오기로 되어 있다는 그 ‘아무 날 아무 시’가 인제는 당장 며칠 눈앞의 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와 구장 어른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헛걸음을 한 것이 우리에겐 삼촌이 실제로 돌아온 거나 다름없는 경사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여느 때와 매일반으로 별로 말이 없는 게 이상했다. 아버지 얼굴에는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개의 표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적이 안심이 되는 한편 더욱 더 착잡해지기도 하는 듯한 두 개의 얼굴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며 엇갈리고 있었다. 경찰서 뒤뜰에서 시체를 못 봤다는 사실이 결과적으로 삼촌의 생존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해도 그가 겪게 될 앞날의 고초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게 아니었다. 대번에 기고만장해 가지고, 그러면 그렇지 그것 보라고, 내가 뭐라고 그러다냐고, 우리 순철이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거지반 고함을 지르듯 말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할머니는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합장한 두 손바닥을 불이 나게 비비대면서 샘 솟듯 흘러내리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늙고 추한 얼굴을 들어 꾸벅꾸벅 수없이 큰절을 해 가면서,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하고 신령님께 감사하고 조상님네들께 감사하고 터줏귀신에게 감사하면서, 번갈아 방바닥과 천장과 사면 벽을 향하여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뺑뺑이질을 치면서 미쳐 돌아가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가진 소박한 신앙과 모성애가 우리 모두의 가슴 구석구석을 뜨겁게 적시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믿기로 했다. 같이 믿어 주지 않고서야 어떻게 할머니를 진정시킬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우리 식구들은 하나같이 어떤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에 싸여 예배 의식의 한 절차처럼 서로 ‘아무 날 아무 시’란 주문을 나직이 외어가며 불사신 우리 삼촌의 무사 귀환을 신심 깊게 확인하기를 끝없이 되풀이했고, 그러다가 그날에 우리가 맞게 될 행복스런 꿈의 크기를 저마다 재기 위하여 새벽이 방문 밖에까지 와 있음을 피부로 느끼며 늦은 잠자리에 다난했던 하루를 고이 눕혔다. 그토록 벅찬 하루를 우리는 살았다.
외할머니가 거처하는 사랑방에 누워 줄창 내리는 방문 저쪽의 빗소리를 어렴풋이 가늠하고 있었다. 끊어졌다가는 이어지고 그러다가 슬그머니 되끊어지고 때로는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빗소리가 마치 귓밥을 살살 긁어내는 귀이개의 연약한 끝부리처럼 내 귀를 대고 간지럽혔다. 간밤에 얻은 피로가 미처덜 풀려 밀어닥치는 졸음과 힘겹게 겨루면서 듣는 그 빗소리는 꼭 꿈 속에서처럼 먼 세계의 일로 아련하게 들렸다. 어차피 바깥 출입을 못하도록 발이 묶여 있는 나한테 지루한 장마의 계속이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느껴질 경우가 어쩌다 있었다. 울 밖 들판과 언덕을 태우는 쨍쨍한 햇볕이 있고 정자나무를 흔드는 바람과 거기에서 하루를 특별한 놀이나 재미도 없이 꼬빡 집안에만 갇혀 지내야 할 내게는 아마 온 세상의 빛과 소리가 한층 더 저주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어쩐 일로 잠깐씩 비가 걷히는 오후같은 때면 그 짬을 놓칠세라 재빨리 패거리를 꾸며 우리 집 대문 앞 골목길을 질주하는 동네 아이들의 북새를 방 안에 앉아서도 환히 들을 수 있었다. 앞강 언저리 우북한 물푸렁이 밑이나 층계 논물목마다 훑고 다니며 히히거니는 아이들과 그들이 제각기 건져 올리는 소쿠리나 통발 안에서 은빛 비늘을 번득이는 낱낱이 살찐 붕어들이 세차게 앙탈하는 꼴을 연상할 적마다 버림받은 자의 슬픔이 울컥 되살아나곤 했다. 그들 또래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느덧 까맣게 잊혀져가고 있었다. 단, 한 번 빈말로라도 나를 부르러 우리 집 삽짝 앞에 선 때가 없었다. 세상 전부가 그들 차지인 부러움의 시각에 나는 울바자 앞 늙은 감나무 밑에 서서 다 줍고 나면 금방 두엄간에 던져버릴, 장마통에 우수수 떨어진 썩은 감꽃이나 하릴없이 주워가며 일찌감치 체념이란 걸 익혔다.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개학뿐이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문을 닫았던 학교가 다시 열릴 것이고, 그렇게만 될 양이면 아버지의 금족령도 자연 흐지부지되어 악몽 같은 세월에도 결국은 끝장이 올 것이었다.
완두를 까던 일손을 멈추고 외할머니가 허리를 쭈욱 폈다. 죽치고 들어앉아 진종일 누구와 말 한 마디 건네는 법 없이 손만 놀리는 외할머니 덕분에 거둬들인 완두는 대충 다 처분이 되었다. 그런데 헛간 구석에 아직도 남아 있는 약간의 줄거리 더미에서 탈이 생겼다. 꼬투리 속에 든 채로 습기를 잔뜩 머금은 자실에서 샛노란 싹이 포식한 구더기처럼 길게 돋아 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더 길어나기 전에 서둘러서 마저 다 까놓아야 하는 일 또한 전적으로 외할머니 책임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완두에 관한 일이라면 식구들은 무조건 외할머니 혼자 떠맡은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리고 외할머니 자신도 응당 그래야만 된다는 듯 눈곱만치도 싫은 내색 않고 그 깨끗잖은 일감을 자기 유일의 소일거리로 삼았다. 아니다. 남이 행여 손을 댈까봐 당신 혼자 한시도 쉬지 않고 오직 그것만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모두들 양보를 해버린 선의의 결과라고 해야 이야기가 더 정확해지겠다. 어쨌든 우리 외할머니는 완두만 한번 붙잡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묵묵히 손을 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둣빛 무늬의 길쭘한 자실과 함께 대바구니 속에다 흘러나오는 긴 한숨을 가끔 담곤 했다. 그렇게 열심이자니 생김새와는 다르게 참을성이나 강단이 놀라운 외할머니도 가끔씩은 허리나 옆구리 같은 데가 결리는 때도 있는 모양이었다. 대바구니를 옆으로 밀어놓은 다음 치마 앞자락을 툭툭 떨었다. 치마폭에 손을 문질러 닦고 나서 내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이마에 와 닿는 미지근한 숨결 속에서 나는 외할머니의 그 독특한 체취를 맡았다. 아니나다를까, 섬뜩할 만큼 차가운 손이 잠방이 속으로 슬금슬금 기어들기 시작했다. 사타귀를 주무르는 외할머니의 앙상한 손을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좋은 기분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즈이 오삼춘 타겨서 붕알도 꼭 왜솔방울맹키로 생겼지…….”
이모가 슬며시 홑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쓰는 걸 눈으로 안 보아도 옆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이모는 기관지가 갑작스럽게 나빠져 늘 사랑방 아랫목에 누워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외삼촌 애기가 나오면 이모는 으레 그렇게 이불을 둘러 써 버렸다.
“오삼춘이 존냐, 친삼춘이 존냐?”
외할머니가 던지는 뚱딴지 같은 질문이었다. 그런 질문만 받으면 나는 어찌할 마를 몰랐다. 우선 질문 자체가 일방적인 대답을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묻는 순서부터가 매번 외삼촌 쪽이 먼저였다. 그리고 내 처지로서는 도저히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다고 얘기할 입장이 못 되었다. 사실대로 얘기하려면 둘다 좋다고 해야 된다. 그런데 외할머니의 요구는 둘 가운데서 똑 부러지게 하나만을 가려내라는 것이다.
“오삼춘이 존냐, 친삼춘이 존냐?”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거듭되는 물음이나 대답 자체가 중요한 건 결코 아니었다. 대화를 이끌어 나가려는 열정도 별다른 감정도 개입시킴이 없이 그저 무심히 흘리는 듯한 그 질문이 실은 자기 자신의 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막연한 서두임을 나는 벌써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당황하는 것도 처음 두어 차례뿐, 이젠 잠자코 누워서 제법 능청도 떨 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못내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럴 티지, 언지든지 팔은 안으로만 휘는 벱이니께…….”
 그러나 섭섭한 표정도 잠시뿐, 외할머니는 곧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되어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니가 참말로 우리 권오문이 생질 노릇을 똑똑히 헐라면은 위선 느이 오삼춘이 어떤 사람였능가부터 알어야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디 가서 감히 권오문이가 우리 오삼춘이라고 말헐 자격이 없지 암, 없다마다.”
외할머니가 얘기하는 동안 외삼촌은 항상 축구선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 머릿속에 급조된 끝없이 넓은 상상의 운동장을 한 필의 준마처럼 종횡으로 치닫고 있었다. 멋진 폼으로 푸른 하늘을 향하여 공을 뻥뻥 차올리고 있었다. 공부도 공부지만 운동에는 아주 ‘귀신’이었다. 특히 축구를 잘해서 ‘중핵교’부터 ‘대핵교’까지 늘 선수로 뽑혀 다녔다. 외할머니가 ‘축구 차는’ 아들에 비로소 자랑을 느끼기 시작한 건 그가 중학교 오학년 되던 해 가을 난생 처음으로 공설운동장에 나가 정규 시합을 관람하고서였다. 그때까지 하나뿐인 아들을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지 않았던 외할머니는 시합이 끝나자 생판 모르는 ‘여학상’들이 떼로 찾아와 마치 며느리가 시어머니 받들 듯 허물없이 어머님이라고 부르는데 질려버렸다. 더구나 제 남편이라도 추듯 당신 아들 자랑에 자지러지는 꼴들이 하 기가 막혀 ‘호말만헌 츠녀들이 이게 다 어디서 배워먹은 버리장머리냐’고 알아듣게 혼을 내어 쫓아 보내긴 했지만, 그게 노상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 후부터 시합이 열릴 때마다 극성스럽게 뒤쫓아 다니며 귀찮게 구는 여학생들을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을 내어 돌려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그 때 니가 그걸 꼭 봤어야만 되는 건디……. 느이 오삼춘이 내질른 꽁을 안고서나 저쪽 문지기가 뒤로 벌렁 나자빠지는 꼴을 봐뒀드라면 아매 대답허기가 수월혔을 것이다. 오삼춘이 더 좋다고 말이다.”
평소에는 그토록 말수가 적다가도 일단 아들 이야기만 시작되면 끝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들의 자랑스런 면면을 내 마음 가운데 더욱 인상 깊게 심어주려고 외할머니는 최선을 다했다. 혹시 내가 외삼촌의 얼굴을 영영 잊어버리기라도 할까봐서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보라고 꼬치꼬치 그 특징을 캐물어 새삼스럽게 기억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외할머니의 뇌리에서 묵은 추억들이 자연스럽게 과장되고 더러는 필요 이상으로 미화되어 나타날 가능성을 충분히 참작한다 해도 그가 남달리 축구에 뛰어났다는 점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떠받듦을 당했다는 것 등은 모두 어김없는 사실들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멋쟁이였다. 볕에 장시간 내맡겨도 그을지 않을 사기처럼 하얀 얼굴 바탕에 지나치리만큼 오뚝한 콧날과 짙은 눈썹이 유난했다. 알이 총총 들어박힌 옥수수를 연상케 하는 가지런한 이를 내보이며 웃는 모습과 다리가 길고 상체는 알맞게 균형이 잡힌 해사한 몸집에서 어딘지 모르게 도회인들이 갖는 귀공자다운 면모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그가 우리 집에 들러 하루나 이틀 가량 묵었다 가는 걸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한번은 그가 배낭을 멘 친구들을 여럿 데리고 왔다. 지리산을 가는 길에 들렀다면서 사랑채에 짐을 푼 그들은 밤새껏 하모니카를 불고 기타를 퉁겼다. 그날 밤 외삼촌 친구 중 하나가 일곱 살 난 내게 여자와 입맞추는 법을 가르쳐준다며 까칠까칠한 턱을 마구 비비대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고 뛰어나온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또 한번은 어떤 이쁜 여자와 함께였다. 난리가 나기 전해인데, 그때도 먼저의 친구들이 여러 명 같이 와서 전에 없이 닷새를 놀고 먹어 우리 할머니의 눈총을 샀고, 어머니 입장이 그 때문에 한때 난처했다. 그들은 외삼촌과 여자를 늘 상전처럼 공손히 모시면서 두 사람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고 서슴지 않았다. 외삼촌 일행은 방문을 걸어 닫고 한 나절씩이나 들어앉아서 자주 무엇인가를 의논하느라고 밀담을 나누었다. 나중에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지만 그때 그들은 한참 쫓고 쫓기는 중이었다. 좌익 학생들과의 오랜 싸움 끝에 뭔가 일을 저지르고 잠시 쉬러 내려왔다는 거다. 난리가 나 대밭 땅굴 속에서 숨어 지내던 한 달 남짓을 제외하고는 그런 일들이 내가 외삼촌과 접촉한 전말의 대부분인 셈이다. 짧은 기간의 접촉을 가지면서 내가 그에게 품은 건 한 사람의 피붙이로서 느끼는 친근한 정이기보다 차라리 존경심 쪽이었다. 어린 나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들이 확실히 그에게는 있었다. 단정한 용모나 말씨에서 풍기는 섬세한 감각과 교양은 얼핏 여성적인 면이고, 무한한 기력을 배경으로 한 민첩한 동작과 차가운 결단은 과시 사내 중의 사내였다. 그만한 나이에 벌써 조직을 이끌고 활동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그의 비범한 면을 결정적으로 장식하는 후광과도 같은 구실을 했다. 한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는 갖가지 이질적인 능력의 신기한 배합이 내게는 언제나 수수께끼였다.
삼촌은 외삼촌보다 세 살 위였다. 나이는 많아도 하는 짓들이 어떻게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그가 사변 전에 밀주나 밀도살을 심하게 단속해서 마을의 원성을 산 적이 있는 사람을 용케 잡아다가 족친 이야기는 인근에서 한때 유명했다. 마을 남녀노소가 모두 모인 정자 마당에서 그는 무릎을 꿇린 단속반원에게 맹물을 한정 없이 들이켜는 희한한 벌을 주었다. 그 동안 술 단속을 철저히 한 데 대한 상이라는 것이다. 뒤통수를 겨눈 총부리 앞에서 삼촌의 가련한 그 포로는 똥물을 켜는 오뉴월 장마 개구리 꼴이 되어 한 바께쓰는 실히 넘을 거창한 양의 맹물을 꿀컥꿀컥 정신없이 퍼마셨다. 그런 다음 장구통 같은 배를 내놓고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박자를 맞춰 두들겨가며 “나는 누룩이 손자요! 나는 짐승새끼요! 우리 아버지는 소요! 돼지가 우리 어머니요!”라는 구호를 정확히 백 번 외쳤다. 그래도 성이 안 차는지 여흥으로 노래란 노래는 아무거나 죄 부르게 했는데, 목이 쉴 대로 쉬어 진짜 소새끼의 울음처럼 꺽꺽 막히는 소리가 너무도 처량하니까 그때까지 배꼽을 쥐어가며 재미있어 하던 동네 사람들도 끝판에는 아예 웃지를 않았다. 모든 일이 그런 식이었다. 이웃 마을 용상리의 소지주 최 주사를 끌어내어 혼낸 이야기도 그와 비슷했다. 그는 마을의 유명한 알건달 하나를 주례자로 내세워 이미 애어멈이 된 최 주사의 고명딸과 그야말로 엉터리 결혼식을 올렸다. 역시 정자 마당에서였고, 그 무렵의 시골에선 아주 보기 드문 하이칼라 신식 결혼이었다. 그리고 최 주사와 최 주사의 진짜 사위가 멀쩡히 보는 앞에서였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그는 주례를 본 건달에게 신부를 양보해 버리고 곧장 최주사 쪽으로 달라붙었다. 그날 최 주사는 많이 혼났다. 입으로는 깍듯이 장인 어른이라고 존대하는 불한당한테 넙치가 되도록 얻어맞고 기절해 버렸다. 최 주사네 딸을 열렬히 짝사랑하던 나머지 어느 달이 밝은 밤 술김에 담을 넘었다가 최 주사 어른에게 붙잡혀 그 집 머슴들로부터 초죽음을 당한 쓰라린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성격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성격뿐만 아니라 모든 면이 다 그랬다. 삼촌의 부역 행위가 술김에 최 주사네 담을 넘는 거와 한 가지 경우로 어떤 외부적 자극이 타고난 맹목성을 부채질하여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들어간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냥 흥청거려 본 것이라면, 외삼촌의 우익 활동이나 그 후의 장교 후보생 자원은 움직일 수 없는 주의주장 밑에 치밀한 계산과 검토를 거쳐 이루어진 결과였다.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사이가 괜찮은 편이었다. 괜찮지 않고서는 그토록 서슬이 퍼런 인공 치하에서 한 달 이상의 피신 생활이란 도저히 불가능했으리라. 붉은 완장을 차는 건 못 배우고 가난하게 큰 자기 같은 사람이나 할 짓이라고 말하면서 삼촌은 세 살이나 아래인 외삼촌을 존경하고 대우했다. 배운 사람에 대한 선망의 감정이 그런 식으로 나타난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삼촌은 숨어 지내는 젊은 사돈에 대한 존경심을 이따금 굴 속으로 들여보내는 친절과 배려 속에 표시했다. 그러는 자기 감정을 “동만이 저 녀석을 생각혀서도 그러고…… 성님이나 아짐씨 체면으로 봐서도 그러고…….” 라는 말로 어머니 앞에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삼촌은 달랐다. 아무 꾸밈새 없는 활달한 그 성품에 은근히 호감은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철딱서니 없이 덤벙거리며 돌아가는 사돈에게 늘 싸늘한 시선을 던지는 것 같았다. 결국 외삼촌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렇게나 정이 두터운 것 같던 삼촌도 끝내는 인공 치하가 물러가던 저 광란의 날 새벽에 사람들을 시켜 땅굴을 덮치게 했다. 저녁밥을 든든히 먹고 나서 식구들 아무한테도 행방을 알리지 않은 채 외삼촌이 슬그머니 잠적해 버린 몇 시간 후의 일이었다.
이모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홑이불을 들쓰고 아랫목에 반듯이 누운 채 이모는 기관지를 옥죄이는 통증을 자꾸만 기침으로 배얕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뭐라고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그놈의 빗소리도 여전히 들렸다.
“갸는 에릴 적부텀 구질털털헌 걸 원판 싫어허는 아라 죽을때도 아매 곱게 죽었을 거여. 총알도 한 방배끼 안 맞고, 딱 심장이나 머리 같은 디를 맞어서 어디가 아프고 어쩌고 헐 저를도 없이 아조 단박에…….”
전날 동네 사람이 찾아와 무책임하게 지껄이고 간 이야기들이 커다란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읍내 곳곳에 나뒹굴던 시체들의 갖가지 형태가 밤새도록 우리 집 사랑채를 넘나들며 한 불행한 노파의 꿈자리를 실컷 어지럽히고 갔는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외할머니는 아들이 기왕이면 잠자듯 곱게 누워 그지없이 평안한 자세로 전사했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악마의 총탄이 제발 급소를 건드려 조금도 고통을 안 느끼고 순간적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기를, 육신의 고통은 물론 홀어미를 남겨둔 채 먼저 떠나는 자식된 도리의 아픔도 일체 없었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죽은 후에도 시신이 온전해서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원귀들처럼 흩어진 제 몸조각은 찾아 언제까지고 산천을 방황하며 이승에 머무는, 두 번 죽는 거나 다름이 없는 불행한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고집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목소리에서 점차로 힘이 풀리고 있었다. 이모의 기침이 자꾸만 잦은 가락으로 변하는 것과 정반대였다. 외할머니의 중얼거림은 방문 저쪽으로부터 끊임없이 건너오는 빗소리의 사이사이에 옹색하게 끼여 점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5
 
소경 점쟁이가 예언했다는 그 날이 뽀작뽀작 다가오고 있었다. 날은 여전히 궂었고, 사람들은 모두 지쳤다. 할머니 혼자만은 예외로 하고 인제는 모두가 정말 지쳐버렸다. 아주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기다리는 것에도, 계속되는 장맛비에도.
우리 마을과 강 건너 마을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물에 잠긴 지는 이미 오래 전이었다. 그 후 양편 둑에 맨 굵은 동아줄에 간신히 의지하여 어른들은 혼자 힘으로, 아이들은 어른들 어깨 위에 목말을 타고 허리까지 잠기는 빠른 물살 속을 곡예를 하듯 위태롭게 건너곤 했는데, 계속 불어나는 강물로 수심이 어른의 키를 훨씬 넘어버려 이젠 그것마저도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읍내 쪽과는 교통이 두절된 셈이었다. 상류 쪽에서 떠내려오는 물건 중에 돼지도 있고 황소도 있고 뿌리째 뽑힌 소나무도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는데 아버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소문을 일축해 버렸다. 마을 자체가 섬진강의 상류에 속해 있기 때문에 웬만큼 심한 홍수가 아니고는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부와의 교통이 끊어질 만큼 장마가 심한 것만은 부인 못할 사실이어서 우리 할머니한테 색다른 근심한 가지를 더 안겨주었다.
“야가 틀림없이 읍내 쪽으로 올 챔인디 강이 저 모냥이니 야단이다.”
내가 그렇게 귀찮게 구는데도 달아나지 않고 며칠 동안을 내리 우리 집 토방에서 머무는 두꺼비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장마통에 집을 잃고 깜냥엔 비를 피해 오길 잘했다고 안심하는 성싶었다. 하지만 마루 밑으로 토방으로 그 미련하게 생긴 몸뚱이를 괜히 어정어정 밀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보기에 딱했다. 사흘째 되는 날, 허연 뱃가죽이 하늘을 향하도록 발랑 뒤집고는 똥구멍에 보릿대를 끼워 고무공만큼이나 뺑뺑하게 바람주사를 놓아 주었더니 어디로 갔는지 한나절쯤 눈에 안 띄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이 되니까 어느 틈에 되돌아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섬돌 위에 대뚝 올라앉아 퉁방울눈으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무렵, 광 속에서는 변고가 생겼다.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전부터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은밀한 가운데 진행되어 나온 변인데, 그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알고 나서의 놀라움이 더욱 컸다. 훑은 그대로 척척 쟁여놓은 겉보리 가마가 썩기 시작한 두엄더미처럼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렸던 것이다. 전에 완두가 그랬듯 엿기름으로 쓴다면 꼭 알맞게시리 애써 수확해 놓은 곡식에서 노랗게 싹이 길어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마침 쥐덫을 놓으려고 광 속에 들어갔다가 요행히 발견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우리는 가을걷이까지 앉아서 굶을 뻔했다. 갑자기 온 집안이 일손이 한창 달릴 무렵의 농번기를 시잡이로 맞이한 것처럼 부산스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보릿가마를 안전하게 건사하는 일이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광의 구조를 고쳐 바닥과 가마 사이가 뜨도록 통나무를 밑에 질러 두어 뼘 정도의 공간을 만들고 훈김을 피우는 가마니를 모조리 끌어내다가 편편한 장소를 골라 깔아 널고 말리는 등으로 법석을 떨었다. 방바닥이고 부뚜막이고 어이 가릴 것 없이 집안 구석구석에서 걸리적거리는 게 그 놈의 까끌까끌한 겉보리였다. 입짓이 까다로운 편이어서 소화도 잘 안 될 뿐더러 보리는 원래 내 성미에 안 맞았다. 그리고 퉁퉁한 알맹이 한가운데 일자로 팬 홈 자국을 볼 때마다 언젠가 할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기분이 좋질 않았다. 옛날 어떤 고을에 한 소년이 살았는데, 어느 날 아비가 불치의 난병에 걸려 유명한 의원을 찾게 되었더란다. 의원의 처방에 따라 아무나 닥치는 대로 세 사람―선비, 중, 미치광이―을 죽이고 생간을 꺼내어 달여 먹였더니 병이 깨끗이 낫더란다. 그래서 시체를 묻어 장사를 후히 지내주었는데, 이듬해 보니까 무덤 위에 이상한 열매가 맺히더란다. 그것이 오늘날의 보리이며 거기에 팬 홈은 소년이 배를 가를 때 생긴 칼자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분 나쁜 열매가 집안을 온통 차지해 버려 마음놓고 움직일 수조차 없게 사람들을 구박하는 판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만은 역시 대단한 양반이었다. 이와 간은 북새통 속에서도 할머니는 아랑곳없이 꼬박꼬박 자기 할 일을 다했다. 우선 어머니를 시켜 장롱 속에서 꺼낸 비장의 옷감으로 한복을 마르게 했다. 집안에서 입기로는 한복만큼 의젓하고 편한 옷이 없다는 얘기였다. 삼촌이 전에 즐겨 먹었다는 호박전을, 그렇게 터무니없이 많이 장만해 놓으면 이틀 후에는 몽땅 쉬어 터져 한 개도 못 먹게 된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광주리나 되게 부치게 했다. 손수 고사리나물을 무치면서, 세상이 하도 험하니까 이젠 나물마저 쓸 만한 게 별로 없더라고 억지스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상하기 쉬운 음식은 소금에 절이고 콩기름으로 튀겨 단단히 갈무리해 두었다. 준비는 대강 끝난 셈이었다. 없는 집 시골 살림으로 그만한 준비라면 웬만한 잔치쯤은 치르고도 남을 것이었다. 부엌을 둘러보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장한 일을 끝낸 사람의 긍지가 오래도록 남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할머니한테 남은 근심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야가 틀림없이 읍내 쪽으서 올 챔인디, 강이 저 모냥이니 야단이다, 야단!”
“어머님은 별 걱정도 다 허시우. 강물이 좀 짚다고 틀림없이 올 아가 못 오겄소? 장마철이면 질이 맥힌다는 걸 저도 알티닝게 석교다리로 돌아서라도 때가 되면 어련히 오겄지요.”
할머니를 안심시키려고 아버지가 대수롭잖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였다.
“돌아서라도 오기야 오겄지. 오겄지만서도 거그를 돌라면 시오리는 휘낀 더 걷는 심 아니냐? 입으로야 쉽지만 이 우중에 시오릿길을 더 돈다는 게 얼매나 그역시런 노릇이나, 더군다나 얼음이 백혀서 성치도 않은 발을 가지고.”
고모는 하루 전에 왔다. 와서 찬장도 열어보고 살강 위 광주리도 둘러보며 한참 수선을 떨고 나서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수고를 칭찬했다. 모든 준비가 마음에 썩 드는 눈치였다. 고모는 할머니 못지않게 삼촌의 귀환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애당초 점쟁이를 소개한 사람이 고모였다. 할머니로 하여금 점쟁이의 예언을 하늘같이 받들게 만든 것도 고모였으니 그 믿음이 오죽하랴만, 모녀간에 어쩌면 그리도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사랑채에 건너온 어머니가 은근히 험담을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삼촌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항상 말이 없는 이모나 한때 빨치산을 저주한 적이 있는 외할머니까지도 기왕이면 사돈네 집안 일이 그렇게 되기를 은연중에 바라면서 음식 장만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아 왔었다. 그러나 바란다는 것과 믿는다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나 역시 삼촌이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날이 억세게 기다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 소견에도 그런 일이 달이 지고 해가 뜨듯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삼촌이 온다면 도대체 어떤 상태에서 어디로 온단 말인가. 부엌에서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었다. 도대체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신앙이―그것은 완벽한 하나의 신앙이었다. 그리고 신앙도 아주 이만저만한 신앙이 아니었다―우리에게 남긴 뜨거운 감동에서 벗어나 한 발짝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거울 앞에 선 듯 사정이 너무도 명백해지는 것이어서 할머니와 한가지로 낙관적이 될 수 없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궁여지책으로 아버지는 어디 가서 삼촌이 이미 자수를 했을 경우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곧 자기 입으로 부인해 버렸다. 만약의 경우 정말로 그랬다면 사전에 한번쯤 경찰로부터 무슨 연락이 있었을 것 아니냐면서. 우리 집이 항상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문전을 오락가락하면서 울바자 너머로 수상쩍은 눈길을 던지는 어떤 낯선 사내를 종종 볼 수가 있었고, 그가 쳐놓은 투명한 그물에 의하여 우리는 제 발로 걸을 수는 있되 실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물고기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내가 바로 이웃인 진구네 집에 들러 우리 집 형편을 샅샅이 염탐하고 가거나 드물게는 아버지를 살그머니 불러내어 주막에 가서 같이 술을 마시는 때도 있다는 걸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사내의 모습이 눈에 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은 나였다. 그의 출현이 나한테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일껏 사그라지려던 죄책감에 대한 무서운 채찍질이면서 새로운 일깨움이었다. 과자 한 조각에 제 삼촌을 팔아먹는 사람백정이라고 소리소리 외치던 할머니의 저주가 당시 그대로의 형태로 또렷이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던지는 목침 덩이에 맞아 코피를 흘리면서 나는 그날 저녁에 벌써 죽었어야 옳은 몸이었다. 사내를 만나고 돌아온 날 밤에 짓는 아버지의 우울한 표정을 읽는 일이 내게는 죽는 것 이상으로 괴로웠다. 할머니의 저주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마지막 숨을 거두며 눈을 감는 자신의 처량한 모습을 상상을 통하여 보는 길뿐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나에게 감미로운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어린 주검을 앞에 놓고 모든 식구들이,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할머니가 남보다 서러운 소리로 많이 울어주기를 바랐다. 할머니의 후회가 크면 클수록 나는 당연하게도 더욱더 감미로운 기분에 젖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상에서 깨어보면 나는 여전히 피둥피둥하게 살아 있었고, 그래서 돌아온 삼촌의 얼굴을 다시 대할 일이 점점 꿈만 같아지는 것이었다. 내가 삼촌이 돌아오기를 누구보다도 더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이 독한 마음을 품는 건, 이를테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어느 으슥한 산골짜기 같은 데서 이미 오리 전에 싸늘한 시체로 굳어져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날이 영영 없기를 바라는 건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하루 앞으로 닥쳐온 그 <아무 날 아무 시>가 견딜 수 없이 두려웠다. 너무도 두려워 세상 끝날까지 오늘만이 한없이 계속되기를 어느 앞에나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아버지가 겪는 고통에 비기면 역시 내 괴로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리라. 부엌에서 이야기할 때 할머니의 지나친 처사에 불 먹은 소리를 하는 어머니를 애잔한 말씨로 타이르고 있었다.
“낸들 왜 몰라서 그러겄나. 임자 말자꾸로 아매 안 오기가 쉬울 게여. 그러고 천행으로 온다 혀도 어머님이 맘 잡숫는 대로 일이 그렇게는 안 될 게여. 내가 그건 자네보담 더 잘 알어. 허지만 자식된 도리로 어쩌겄나. 허라는 대로 안 혔다가 무신 꼴을 또 당헐지 누가 아냔 말여. 시방 조깨 몸살을 앓어 두는 것이 낭중에 더 험헌 일을 치르는 것보담은 낫지. 안 그런가?”
동생의 귀환이 거의 불가능하리란 것 빤히 알면서도 노인 양반의 주장에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괴로움, 그러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고 열심히 따르는 척해야만 되는 괴로움, 아버지는 그걸 말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신앙과 모성애가 한때 우리를 감동시켜 점쟁이의 예언에 다소간 기대를 걸어보도록 충동한 게 사실이라고는 해도 결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노인 양반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조심스런 배려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기대 뒤에 올 절망을, 그리고 절망 뒤에 올 무서운 결말을 일찍부터 예감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면서 그저 가는 데까지 무작정 가볼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용하기로 소문난 소경 점쟁이가 어디로 어떻게 온다는 얘기까지 일러주지 않은 것은 크나큰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덧 밤이었다. 어둠이 깔리면서부터 점차로 약해지기 시작한 빗밑이 이젠 완연히 알아보게 성글어졌다. 사립문 기둥에 달아 놓은 장명등이 뿌옇게 밝히는 빛무리의 둥그런 허공 속으로 장마도 기진했다는 듯 몽근 빗방울을 쉬엄쉬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난리를 치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익힌 습성으로 누가 등화관제를 명령하지 않더라도 저녁밥만 먹고 나면 집집마다 불을 꺼버리는 우리 마을에서 유독 우리 집 한 채만이 전에 없이 장명등을 내달아 외로운 파수병처럼 밤을 밝히고 있었다. 역시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서였다. 누가 아냐는 것이었다. 내일 진시, 그러니까 대략 오전 열 시경에 오는 것으로 되어는 있지만, 사정이 갑자기 바뀌어 오밤중에 문을 두드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채비도 없이 불시에 맞이하여 모처럼 어려운 걸음을 한 아들을 처음부터 섭섭하게 만든다는 건 결코 할머니의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다아 요런 때 쓸라고 비싼 섹우지름 애껴 놓았지.”
대문만이 아니라 처마 밑에도 장명등 하나를 더 달고 각 방마다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게 분부하면서 할머니는 여느 날과 달리 집안 전체를 대낮처럼 밝혀야 하는 이유를 매우 간단한 말로 설명했다.
“어디서 보드라도, 시오리 배까티서 보드라도, 아, 저그 불이 훤헌 디가 바로 우리 집이고나, 우리 엄니가 잠 한 소곰 안 자고 날 지달리는구나, 험서 허우단심 뜀박질허게 맹글어야 된다.”
밤이 깊었다. 밤이 깊었으나 아무도 자려 하지 않았다. 노인 양반이 그렇게 설치고 다니는 판인데, 그걸 모르는 척하고 드러누울 만한 배포를 가진 사람이 우리 집엔 없었다. 날씨마저 할머니의 비위를 맞추는 듯했다. 가랑비로 바뀌던 빗밑마저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는 기색이더니 밤이 이슥해지자 처마 아래 울리던 낙숫물 소리도 아예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습기를 옮겨 나르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기야 쏟을 만큼 쏟았으니 인제는 장마가 물러갈 때도 되긴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날씨의 변화를 재빨리 내일의 경사에 결부시켜 퍽도 유리하게 해석해 버렸다.
아마 자정은 훨씬 지났을 것이다. 나는 안채에서 사랑채로 돌아와 외할머니 곁에 누워 있었다. 이모도 외할머니도 여태 안자고 있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모는 얼굴이 천장을 향하게 반듯이 누워 있었고, 외할머니는 아랫목 벽에다 등을 붙인 채 비스듬한 앉음새로 방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내 눈은 호롱불이 까불거리며 천장에 그리는 그을음 무늬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내 귀는 방문 저편 어둠 속으로 활짝 열려 풀밭 어디쯤에서 열심히 밤을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위가 너무나 조용했다. 식구들이 모두 깨어 있는데도 그렇게 집안이 조용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조용해서 그 조용함이 오히려 어둠의 소리를 듣는 일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사위를 짓누르는 적막의 우세한 힘 앞에 청각의 기능이 꼭 마비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 귀에 들리는 저 소리들이 실제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이며 나는 지금 무엇에 홀려 가짜를 진짜처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마저 들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들어보면 마치 거대한 적막의 한 귀퉁이를 가냘프면서도 날카로운 줄칼로 참을성 좋게 썸질하는 것같이 들리는 그 소리는 나 이외의 다른 생명체가 분명히 또 있어 어둠 속에서 내처 잠들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들깨 주머니에서 참깨를 가리듯 혹은 참깨 주머니에서 들깨를 가리듯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 속에서 여치의 울음과 귀뚜라미의 울음을 따로따로 구분하여 그 소리들이 풍기는 백반처럼 시디신 맛을 나는 오래도록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데없는 소리가 중간에 뛰어들었고, 생전 처음 듣는 듯한 그 이상스런 소리는 갑자기 나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한 차례 울리고 나서 그 소리는 뚝 그쳤다. 소리의 뒤끝을 겨우 붙잡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벌써 달아나 버렸으므로, 내가 또 무엇인가에 홀려 잘못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에 그 소리는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윤곽이 아주 뚜렷했다. 결코 크다고는 할 수 없어도 잡다한 밤의 소리 속에서 그것은 가려내기가 비교적 수월했다. 병 주둥이를 입에 대고 아이들이 흔히 장난으로 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먼 바다에서 울리는 뱃고동처럼 그것은 매우 은은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애매한 소리여서 출처가 어디쯤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방문 바로 건너 우리 집 텃밭 속이 분명했다. 밤의 고요 속을 뚫고 은은히 건너오는 이상한 소리. 그 소리에 나는 정말로 홀림을 당하고 있었다. 도깨비불에 넋을 덜미 잡혀 밤새껏 공동묘지를 헤맸다는 어떤 아이처럼 은은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을 만큼 음산함이 풍겨지는 그 소리의 신비스런 가락에 이끌려 내 마음은 어느새 강언덕으로 줄달음치고 있었다.
“구렝이 우는 소리다.”
외할머니가 말했다. 앞을 떡 가로막고 서는 시커먼 그림자와도 같이 외할머니의 그 말이 별안간 귓전에서 울리는 바람에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구렝이가 비암들을 모으는 소리여.”
외할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그 자체가 바로 구렁이였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그것이 내 몸뚱이를 눈 깜짝할 사이에 친친 휘감아버려 나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대번에 식은땀이 배었다. 내 몸에 와 닿는 선뜩한 기운을 물리쳐준 사람은 고맙게도 이모였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도 나 혼자만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언제 일어나 앉았는지 이모가 내 곁에서 방문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더하려고 외할머니가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자 이모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면서 눈을 흘겼다.
“그만 두세요.”
그러자 외할머니는 자꾸만 입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이모한테서 더 핀잔을 먹지 않았더라면 외할머니는 기어코 무슨 말인가를 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제발 좀 그만 두시라니까요!”
이모가 나를 홑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다. 나는 이모의 겨드랑이 사이에 묻혀 잠시 후에 울리는 그 소리가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먼 바다에서 울리는 뱃고동 같은 그 소리가 또 한바탕 선뜩한 기운을 방 안에 잔뜩 부려놓고 갔다. 이번 역시 강언덕 근처인지 텃밭 속인지 분간 못할 애매한 소리였다. 그러고는 시간이 많이 흘렸다. 세 번째를 마지막으로 구렁이 우는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리의 여운이 늦게까지 방 안에 남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성싶었다. 특히 외할머니의 경우가 가장 심해서 방문 쪽을 향해 상체를 기울인 꾸부정한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아직도 거북살스럽게 앉아 있었다. 얼굴 표정이 몹시 동요하고 있었다. 머리라도 되게 얻어맞은 듯이 멍한 표정을 짖다가도 느닷없이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생각해 내려는 사람처럼 한껏 찡그린 눈으로 문 밖을 내다보곤 했다. 마침내 외할머니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만아.”
외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악아, 동만아.”
나하고 시선이 마주치자 외할머니는 슬며시 외면을 했다.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허고 있냐?”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진 다음 외할머니는 한참을 망설였다.
“이 외할매 땜시 느그 삼촌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허냐?”
나는 대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외할머니의 절실한 어조에 끌려 무슨 말이든 꼭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외할머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사실상 나에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고, 오직 자기 외곬수 생각에만 골몰해 있는 상태였다. 설령 내가 대답을 했다손쳐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다. 그날 저녁 일은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를 해꼬지헐라고 그런 것이 아니라 소피를 보러 나갔다가 안채에 불이 훤허고 밤중에 두런두런 얘깃소리가 들리걸래 대처나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찌꼼 구다본 것뿐이다. 일판이 그렇게 꼴 종 누가 알었냐. 내가 미쳤다고 그런 자리에 갔겄냐. 허기사 늙은이가 눈치코치도 없이 사둔네 일에 해자를 논 게 잘못은 잘못이지. 잘헌 일은 아니여. 잘헌 일은 아니지만서도, 그런다고 이 외할매만을 탓혀서는 못쓴다. 그날 저녁에 내가 아녔드라도 느네 삼춘은 오던 질을 되짚어서 도로 떠날 사람이었어. 팔자를 그렇게 타고난 거여.”
이모가 나를 가슴으로 꽉 끌어안았다. 나는 이모의 젖둔덕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는 매우 아늑한 기분으로 외할머니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그러자 매를 흠씬 얻어맞고 한바탕 섧게 울고 난 뒤끝인 듯 온몸이 나른한 가운데 걷잡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노곤한 꿈결 속에서도 이담에 크면 꼭 이모한테 장가를 들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외할머니의 중얼거림에 어렴풋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6
 
할머니가 대문간에 서서 호통을 치는 바람에 혼곤한 잠에서 깨었다. 날은 부옇게 밝았으나 아직도 꼭두새벽이었다. 가뜩이나 짧은 여름밤인데 그런 정도는 자나마나였다. 잠을 설친 탓으로 머릿속이 띠잉 울리고 눈꺼풀은 슬슬 감겼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편이었다. 여러 날 겹치는 피로와 긴장 때문에 얼굴 모양들이 모두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부황이 든 사람처럼 얼굴이 누렇게 떠 부석부석했고, 어머니는 숫제 강마른 대꼬챙이였다. 외가 식구들이라 해서 특별히 나은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만이 청청해 가지고 첫새벽부터 기진맥진한 사람들을 게으른 소 잡도리하듯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문간에 나란히 불러놓고 무섭게 닦아세우는 중이었다. 장명등이 꺼져 있었다. 기름이 아직 반나마 들어 있는데도 어느 바람이 언제 끄고 갔는지 유리갓에 물기가 촉촉했다. 장명등 일로 할머니는 몹시 심정이 상해 버렸다. 하느님이 간밤에 몰래 들어와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성을 시험하고 간 증거로 삼아버렸다. 할머니의 노여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하나밖에 없는 동생 시동생을 끝까지 돌봐줄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면서 정성의 기미가 보일 때까지 광과 장롱의 열쇠를 당신이 직접 맡아 관리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경사시런 날 아적부텀 예펜네가 집안에서 큰소리를 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벱이니께 이만침 혀두고 참는다만, 후사는 느덜이 알아서들 혀라. 나는 손구락 하나 깐닥 않고 뒷전에서 귀경만허고 있을란다.”
말을 마치고 돌아서면서 할머니는 거듭 혀를 찼다.
“큰자석이라고 있다는 것이 저 모양이니 원, 쯧쯧.”
할머니는 양쪽 팔을 홰홰 내저으며 부리나케 안채로 향했다.
“지지리 복도 못 타고난 년이지. 나만침 아덜 메누릿복이 없는 년도 드물 것이여.”
사랑채 앞을 지나면서 또 혼잣말을 했다. 말이 혼잣말이지 실상은 이웃에까지 들릴 고함에 가까운 소리였다.
할머니는 정말로 손가락 한 개도 까딱하지 않았다. 방문을 꽝 닫고 들어앉은 후로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죽이 끓든 밥이 끓든 일체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대신 봉창에 달린 작은 유리 너머로 늘 마당을 감시하면서 일일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수대로 하나씩 빗자루나 연장 같은 걸 들고 나와 감시의 눈초리를 뒤통수에 느껴가면서 마당도 쓸고 마루도 닦고 집 안팎의 거미줄도 걷었다. 고모도 나오고 이모까지 합세하여 모두들 바삐 움직인 보람이 있어 장마로 어지럽혀진 집안이 말끔히 청소되었다. 이모와 고모는 어머니를 도우러 부엌으로 들어가고 나는 아버지와 함께 대문에서 마당에 이르는 소롯길과 텃밭 사이에 깊은 도랑을 내어 물기를 빼느라고 식전부터 구슬땀을 흘렸다.
하늘은 아직도 흐렸다. 오랜만에 햇빛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던 날씨가 아무래도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서녘 하늘 한 귀퉁이가 빠금히 열려 있었고, 구름을 몰아가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다시 비가 내릴 기미 같은 건 어디에도 안 보였다. 그것만도 우리에겐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그러했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 집에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이 내미는 첫마디가 한결같이 날씨에 관한 얘기였다. 그리고 그 다음 차례가 삼촌 얘기였다. 그들은 날씨부터 시작해 가지고 아주 자연스럽게 아버지한테 접근했으며 아낙네들은 부엌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우리 집은 완전히 잔칫집답게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저마다 연줄을 찾아 말을 걸어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식구들은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 식구들이 어느 정도 미신을 믿고 있는가였다. 물론 그들은 미신이란 말은 입 밖에 비치지도 않았다. 점쟁이의 말 한 마디가 이만큼 일을 크게 벌여놓을 수 있었던 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속셈이 빤히 보일 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이야기 끝에 그들은, 가족들 정성에 끌려서라도 삼촌이 틀림없이 돌아올 거라는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그런 말을 하는 몇 사람의 태도에서 아버지는 그들이 우리 일을 가지고 자기네 나름으로 한창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눈치챘을 것이다. 마치 죽어 가는 환자 앞에서 금방 나을 병이니 아무 염려 말라고 위로하는 의사와 흡사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진시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늘어 우리 집은 더욱더 붐볐다. 마을 안에서 성한 발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안 빠지고 다 모인 성싶었다. 혼자 진구네 집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낯선 사내의 모습도 보였다. 장터처럼 북적거리는 속에서 우리는 아직 아침밥도 먹지 못했다. 삼촌이 오면 같이 먹는다고 할머니가 상을 못 차리게 했던 것이다. 아주 굶는 건 아니니까 진득이 참는 도리밖에 없지만, 그러자니 배가 굉장히 고팠다.
마침내 진시였다. 진시가 시작되는 여덟 시였다. 모두들 흥분에 싸여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자꾸만 시간이 흘렀다. 아홉 시가 지나고 어느덧 열 시가 다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 집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죄다 흩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점심이나 다름없는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구장 어른과 진구네 식구들만이 나중까지 남아 실의에 잠긴 우리 일가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안방에 혼자 남은 할머니를 제외하고 모두들 침통한 표정으로 건넌방에 차려진 상머리에 둘러앉았다. 뜨적뜨적 수저를 놀리는 심란한 얼굴들에 비해 반찬만은 명절날만큼이나 걸었다. 기왕 해놓은 밥이니까 먼저들 들라고 말하면서도 할머니 자신은 한사코 조반상을 거부해 버렸다. 진시가 벌써 지났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태평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애당초 말이 났을 때부터 자기는 시간 같은 건 그리 염두해 두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아무 날’이지 그까짓 ‘아무 시’ 따위는 별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주관하는 일에도 간혹 실수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이야 따져 무얼 하겠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점쟁이가 용하다고는 해도 시간만큼은 이쪽에서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할머니한테는 아직도 그날 하루가 창창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느 때 와도 기필코 올 사람이니까 그때까지 더 두고 기다렸다가 모처럼 한번 모자 겸상을 받겠다면서 할머니는 추호도 지친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마루 위에 발돋움을 하고 자꾸만 입맛을 다시면서 궁상을 떨던 워리란 놈이 갑자기 토방으로 내려섰다. 우리는 워리가 대문 쪽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함성을 들었다. 수저질을 하던 아버지의 손이 허공에서 정지하는 걸 계기로 우리는 일시에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아이들이 일제히 올리는 함성이 매우 빠른 속도로 가까이 오는 중이었다. 숟가락을 아무데나 패갱치면서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리 집 대문간이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금방 소란해졌다. 마당 한복판에서 나는 다시 기세를 올리는 아이들의 아우성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이 저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한 떼의 조무래기패였다. 그들의 손엔 돌멩이 아니면 기다란 나뭇개비 같은 것들이 골고루 들려 있었다. 우리 집 대문 안으로 짓쳐 들어오는 걸 잠시 망설이는 동안 아이들은 무기를 든 손을 흔들면서 거푸 기세만 올렸다. 그 중의 한 아이가 힘껏 돌팔매질을 했다. 돌멩이가 날아와 푹 꽂히는 땅바닥에서 나는 끝내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꿈틀꿈틀 기어오는 기다란 것이 거기에 있었다. 눈어림으로만도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한 마리의 구렁이였다. 꿈틀거림에 따라 누런 비늘가죽이 이러저리 번들거리는 그 끔찍스런 몸뚱어리를 보고는 순간, 그것의 울음소리를 듣던 간밤의 기억이 얼핏 되살아나면서 오금쟁이가 대번에 뻣뻣이 굳어 져버렸다. 그러나 나는 고함을 지르며 돌팔매질을 해대는 패거리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어린애로 재빨리 되돌아왔다. 모든 꿈틀거리는 것들에 대해서 소년들이 거의 본능적으로 품는 적의와 파괴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잽싸게 헛간으로 달려갔다. 지게 작대기를 양손으로 힘껏 거머쥐었다. 내 쪽으로 가까이 오기만 하면 단매에 요절을 낼 요량으로 작대기를 쥔 양쪽 팔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억센 힘으로 내 팔을 움켜잡는 누군가의 손이 있었다. 돌아다보니 외할머니였다. 동시에 째지는 듯한 비명이 등뒤에서 들렸다.
“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마치 헌 옷가지가 구겨져 흘러내리듯 그렇게 마루 위로 고꾸라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목격했다. 외할머니가 내 손에서 작대기를 빼앗아버렸다. 말은 없어도 외할머니의 부릅뜬 두 눈이 나한테 엄한 꾸지람을 던지고 있었다.
난데없는 구렁이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우리 집은 삽시에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큰 걱정이 할머니의 졸도였다. 식구들이 모두 안방에만 매달려 수족을 주무르고 얼굴에 찬물을 뿜어대는 등 야단법석을 떨어가며 할머니가 어서 깨어나기를 빌었다. 그 바람에 일단 물러갔던 동네 사람들이 재차 모여 들기 시작했고, 제멋대로 떼 뭉쳐 서서 떠들어대는 소리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그 북새 속에서도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는 사람은 애오라지 외할머니 혼자뿐이었다. 미리 정해 놓은 순서라도 밟듯 외할머니는 놀라우리만큼 침착한 태도로 하나씩하나씩 혼란을 수습해 나갔다. 맨 먼저 사람들을 몰아내는 일부터 서둘러 했다. 외할머니는 구장 어른과 진구네 아버지 등의 도움을 받아 집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조리 밖으로 내쫓은 다음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대문 밖에 내쫓긴 아이들과 어른들이 감나무가 있는 울바자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고비에 다다른 혼란의 사이를 틈탄 구렁이는 아욱과 상추가 자라고 있는 텃밭 이랑을 지나 어느새 감나무에 올라앉아 있었다. 감나무 가지에 누런 몸뚱이를 둘둘 감고서는 철사처럼 가늘고 긴 혓바닥을 내고 날름거렸다. 무엇에 되알지게 얻어 맞아 꼬리 부분이 거지반 동강 날 정도로 상해서 몸뚱이의 움직임과는 겉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극성이 감나무에까지 따라와 아직도 돌멩이나 나뭇개비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돌멩이를 땡기는 게 어떤 놈이냐!”
외할머니 고함은 서릿발 같았다. 팔매질이 뚝 멎었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천천히 감나무 아래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외할머니의 몸이 구렁이가 친친 감긴 늙은 감나무 바로 밑에 똑바로 서 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때까지 숨을 죽여가며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바로 머리 위에서 불티처럼 박힌 앙증스런 눈깔을 요모조모로 빛내면서 자꾸 대가리를 숙여 꺼득꺼득 위협을 주는 커다란 구렁이를 보고도 외할머니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두 손을 천천히 가슴 앞으로 모아 합장했다.
“에구 이 사람아, 집안 일이 못 잊어서 이렇게 먼 질을 찾어 왔능가?”
꼭 울어 보채는 아이한테 자장가라도 불러주는 투로 조용히 속삭이는 그 말을 듣고 누군가가 큰소리로 웃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눈이 단박에 세모꼴로 변했다.
“어떤 창사구 빠진 잡놈이 그렇게 히득거리고 섰냐. 누구냐, 어서 이리 썩 나오니라. 주리댈 놈!”
외할머니의 대갈호령에 사람들은 쥐 죽은 소리도 못 했다. 외할머니는 몸을 돌려 다시 구렁이를 상대로 했다.
“자네 보다시피 노친께서는 기력이 여전허시고 따른 식구덜도 모다덜 잘 지내고 있네. 그러니깨 집안 일일랑 아모 염려 말고 어서어서 자네 가야 헐디로 가소.”
구렁이는 움쩍도 하지 않았다. 철사도막 같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대가리만 두어 번 들었다 놓았다 했다.
“가야 헐 디가 보통 먼 길이 아닌디 여그서 이러고 충그리고만 있어서야 되겄능가. 자꼬 이러면은 못 쓰네, 못 써. 자네 심정은 내 짐작을 허겄네만 집안 식구덜 생각도 혀야지. 자네 노친양반께서 자네가 이러고 있는 꼴을 보면 얼매나 가슴이 미여지겄능가.”
외할머니는 꼭 산 사람을 대하듯 위를 올려다보면서 조용조용히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곡한 말씨로 거듭 타일러 봐도 구렁이는 좀처럼 움직일 기척을 안 보였다. 이때 울바자 너머에서 어떤 아낙네가 뱀을 쫓는 묘방을 일러주었다. 모습은 안 보이고 목소리만 들리는 그 여자는 머리카락을 태워 냄새를 피우면 된다고 소리쳤다. 외할머니의 지시에 따라 나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얻으러 안방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거의 시체나 다름이 없는 뻣뻣한 자세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숨은 경우 쉬고 있다 해도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였다. 할머니의 주변을 둘러싸고 속수 무책으로 앉아서 사색이 다 되어 그저 의원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식구들을 향해 나는 다급한 소리로 용건을 말했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아무한테나 던진 내 말이 무척 엉뚱한 소리로 들렸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이런 때 도대체 어디에 소용될 것인지를 이해가 가도록 설명하기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고모가 인사 불성이 된 할머니의 머리를 참빗으로 빗기는 덴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빗질을 여러 차례 거듭해서 얻어진 한 줌의 흰 머리카락이 내 손에 쥐어졌다. 언제 그렇게 준비를 해 왔는지 외할머니는 도래소반 위에다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차리는 중이었다. 호박전과 고사리나물이 보이고 대접에 그득 담긴 냉수도 있었다. 내가 건네주는 머리카락을 받아 땅에 내려놓은 다음 외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늙은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자네 오면 줄라고 노친께서 여러 날 들어 장만헌 것일세. 먹지는 못헐망정 눈요구라도 허고 가소. 다아 자네 노친 정성 아닌가. 내가 자네를 쫓을라고 이러는 건 아니네. 그것만은 자네도 알어야 되네. 냄새가 나드라도 너무 섭섭타 생각 말고, 집안 일일랑 아모 걱정 말고 머언 걸음 부데 펜안히 가소.”
이야기를 다 마치고 외할머니는 불씨가 담긴 그릇을 헤집었다. 그 위에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을 올려놓자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백질을 태우는 노린내가 멀리까지 진동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희한한 광경에 놀라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올렸다. 외할머니가 아무리 타일러도 그때까지 움쩍도 하지 않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버티던 그것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감나무 가지를 칭칭 감았던 몸뚱이가 스르르 풀리면서 구렁이는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린 다음 구렁이는 꿈틀꿈틀 기어 외할머니 앞으로 다가왔다. 외할머니가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길을 터 주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대로 뒤를 따라가며 외할머니는 연신 소리를 질렀다. 새막에서 참새 떼를 쫓을 때처럼, “숴이! 숴이!”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손뼉까지 쳤다. 누런 비늘가죽을 번들번들 뒤틀면서 그것은 소리 없이 땅바닥을 기었다. 안방에 있던 식구들도 마루로 몰려나와 마당 한복판을 가로질러 오는 기다란 그것을 모두 질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꼬리를 잔뜩 사려 가랑이 사이에 감춘 워리란 놈이 그래도 꼴값을 하느라고 마루 밑에서 다 죽어 가는 소리로 짖어대고 있었다. 몸뚱이의 움직임과는 여전히 따로 노는 꼬리 부분을 왼쪽으로 삐딱하게 흔들거리면서 그것은 방향을 바꾸어 헛간과 부엌 사이 공지를 천천히 지나갔다
“숴이! 숴어!”
외할머니의 쉰 목청을 뒤로 받으며 그것은 우물 곁을 거쳐 넓은 뒤란을 어느덧 완전히 통과했다. 다음은 숲이 우거진 대밭이었다.
“고맙네, 이 사람! 집안 일은 죄다 성님한티 맡기고 자네, 혼잣몸띵이나 지발 성혀서 먼 걸음 펜안히 가소. 뒷일은 아모 염려 말고 그저 펜안히 가소. 증말 고맙네, 이 사람아.”
장마철에 무성히 돋아난 죽순과 대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완전히 감추기까지 외할머니는 우물 곁에 서서 마지막 당부의 말로 구렁이를 배웅하고 있었다.
이웃 마을 용상리까지 가서 진구네 아버지가 의원을 모시고 왔다. 졸도한 지 서너 시간만에야 겨우 할머니는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서너 시간이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서너 달에 해당되는 먼 여행이었던 듯 할머니는 방안을 휘이 둘러보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온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갔냐?”
이것이 맑은 정신을 되찾고 나서 맨 처음 할머니가 꺼낸 말이었다. 고모가 말뜻을 재빨리 알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제는 안심했다는 듯이 할머니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할머니가 까무러친 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고모가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태워 감나무에서 내려오게 한 이야기, 대밭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종일관 행동을 같이하면서 바래다 준 이야기……
간혹 가다 한 대목씩 빠지거나 약간 모자란다 싶은 이야기는 어머니가 옆에서 상세히 설명을 보충해 놓았다. 할머니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두 눈에서 하염없이 솟는 눈물방울이 훌쭉한 볼고랑을 타고 베갯잇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할머니는 사돈을 큰방으로 모셔 오도록 아버지한테 분부했다. 사랑채에서 쉬고 있던 외할머니가 아버지 뒤를 따라 큰방으로 건너왔다. 외할머니로서는 벌써 오래 전에 할머니하고 한 다래끼 단단히 벌인 이후로 처음 있는 큰방 출입이었다.
“고맙소.”
정기가 꺼진 우묵한 눈을 치켜 간신히 외할머니를 올려다보면서 할머니는 목이 꽉 매었다.
“사분도 별시런 말씀을 다…….”
외할머니도 말끝을 마무리지 못했다.
“야한티서 이얘기는 다 들었소. 내가 당혀야 할 일을 사분이 대신 맡었구랴. 그 험헌 일을 다 치르노라고 얼매나 수고시렀으꼬.”
“인자는 다 지나간 일이닝깨 그런 말씀 고만 두시고 어서어서 묌이나 잘 추시리기라우.”
“고맙소, 참말로 고맙구랴.”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외할머니가 그 손을 잡았다. 손을 맞잡은 채 두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할머니 쪽에서 먼저 입을 열어 아직도 남아 있는 근심을 털어놓았다.
“탈없이 잘 가기나 혔는지 몰라라우.”
“염려 마시랑께요. 지금쯤 어디 가서 펜안히 거처험시나 사분댁 터주 노릇 퇵퇵이 하고 있을 것이요.”
그만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대번에 기운이 까라져 할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가까스로 할머니가 잠들기를 기다려 구완을 맡은 고모만을 남기고 모두들 큰방을 물러나왔다.
그 날 저녁에 할머니는 또 까무러쳤다. 의식이 없는 중에도 댓 숟갈 흘려 넣은 미음과 탕약을 입 밖으로 죄다 토해 버렸다. 그리고 이튿날부터는 마치 육체의 운동장에서 정신이란 이름의 장난꾸러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숨바꼭질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의 연속이었다. 대소변을 일일이 받아내는 고역을 치러 가면서 할머니는 꼬박 한 주일을 더 버티었다. 안에 있는 아들 보다 밖에 있는 아들을 언제나 더 생각했던 할머니는 마지막날 밤에 다 타버린 촛불이 스러지듯 그렇게 눈을 감았다. 할머니의 긴 일생 가운데서, 어떻게 생각하면,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그러고도 놀라운 기력으로 며칠 동안이나 식구들을 들볶아대면서 삼촌을 기다리던 그 짤막한 기간이 사실은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 한 순간을 확 타오르는 촛불의 찬란함과 맞먹는, 할머니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에 넘치던 시간이었었나 보다. 임종의 자리에서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내 지난날을 모두 용서해 주었다. 나도 마음 속으로 할머니의 모든 걸 용서했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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