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생(生)의 감각(感覺)

鶴山 徐 仁 2006. 7. 9. 07:30



김광섭 : 생(生)의 감각(感覺)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뚝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주었다.


집필 의도 및 감상
김광섭(金珖燮)은 1965년 4월 22일 야구 구경을 하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1주일 동안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난 경험이 있다. 담당 의사도 소생 가망이 없다고 보았고, 가족들도 각오하고 있는 중에 다행히 입원 석 달 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의 제2의 인생이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관과 시작(詩作) 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시 <생의 감각>은 발병 후 1년 만에 썼다고 하는데, 그 후 그는 <산>(1968), <성북동 비둘기>(1968), <저녁에>(1969) 등 그의 시 세계에 뛰어난 명편들을 계속 발표하게 된다. 시 <생의 감각>은 그의 참담한 투병 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에 대한 의지와 감각을 노래하고 있다. 새롭게 되찾게 된 생명 소생의 의미와 자기와 함께 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소중한 인식이 잘 형상화되었다.


기본 이해 항목
주제 : 강인한 생명 소생의 의지.
성격 : 상징적, 감각적, 의지적
심상의 종류 : 시각적, 청각적 심상
구성의 전개 : 역순적(逆順的) 구성
단락 구성 :
    제1연 ㅡ 절망적 상황을 넘어 다시 소생한 생명.
    제2연 ㅡ 삶의 자각이 있기 전의 모습.
    제3연 ㅡ 절망의 체험에서 깨달은 삶의 의미.
    제4연 ㅡ 극적인 소생 과정을 회상함.
출전 : <현대문학> (1967. 1.)


시어 및 구절 풀이
생(生)의 감각 ㅡ 이 시의 제목인 ‘생의 감각’은 생에 대한 자각인 부활이나 소생을 의미한다. 또한 이 시는 시적 자아의 소생 이후의 세계와 사물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감각적 태도로 되었다.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ㅡ ‘여명’이란 어둠의 세계인 밤에서 밝음의 세계인 아침으로 연결되는 과도기적 시간이다. 즉 시적 자아는 절망의 상황에서 벗어나 희망의 상황으로 전이(轉移)하게 됐음을 암시하고 있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 닭이 운다 / 개가 짖는다 ㅡ 죽음의 상황에서 소생한 시적 자아가 청각적, 시각적 심상인 ‘종 소리’, ‘새벽 별’, ‘닭’의 울음 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통해 생명의 부활을 감각적으로 환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같이 산다 /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ㅡ 인간의 삶은 공동체적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을 통해 시적 자아가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함께 있음을 확인한다.
제2연 ㅡ 시적 자아가 존재해야 세상이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삶은 공동체적인 데서 서로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드러나지만, 그 궁극적 의미는 개체로서의 생명 감각 또는 생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고 평론가 김재홍 교수는 이 시의 제2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ㅡ 시인이 뇌일혈로 쓰러져 의식 불명 속에 1주일 동안 사경을 헤맨 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ㅡ 시적 자아가 절망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다시 깨어나 생명이 소생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무너졌다’와 ‘깨진’은 절망의 체험을 암시한다.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ㅡ 시적 자아는 절망의 체험을 겪고 나서 삶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병중에 겪은 정신적 혼란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푸른 빛은 장마에 ~ 황야에 갔다 ㅡ ‘푸른 빛’은 생명을 상징하고, ‘장마’와 ‘흐린 강물’은 앞의 ‘깨진 하늘’과 함께 병고(病苦)의 체험을 암시한다.  즉 시적 자아는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절망의 체험을 했음을 진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절망의 체험이 진정한 생(生)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무너지는 뚝에 혼자 섰다 ㅡ ‘무너지는 뚝’은 소멸하는 ‘생’을 뜻한다. 인간 개개인은 이 땅에 홀로 던져진 숙명적인 단독자(憺者)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홀로 죽어 갈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에 대한 본질을 확인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ㅡ ‘채송화’는 소생과 부활의 생명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 핵심어이다. 즉 장마로 넘실대는 흐린 강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무더기로 핀 채송화를 보고 자포자기 상태에 있던 시적 자아가 생(生)의 의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ㅡ 투병 체험 속에서 무더기로 핀 ‘채송화’가 일깨워 준 ‘생의 감각’은 생명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이 시가 시인의 개인적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보편적 정서로 확대하여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