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수출하는 개발도상국 국민의 43%는 하루 소득 2달러 이하의 극빈생활 막대한 오일달러가 정치부패, 빈부격차 만들고 경쟁력 있는 제조업 성장에 방해 | ||||
아프리카 중서부의 내륙국가 차드는 산유국이 된 지 이제 겨우 3년이다. 1975년 석유가 처음 발견됐지만 ‘송유관 건설 비용을 감안하면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 12억배럴로 추정되는 매장량은 그 동안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3년 세계은행의 주선으로 차드의 도바(Doba) 분지에서 이웃 연안국가 카메룬의 크리비(Kribi)항까지 1070㎞의 송유관이 완성되면서 석유 생산이 가능해졌다. 차드는 하루 17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해서 수출 3년 만에 이미 4억달러를 벌어 들였다.
세계은행은 차드-카메룬 송유관 건설을 주선하면서 차드 정부에 ‘빈곤퇴치에 앞장설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차드 정부는 1998년 석유수익관리법을 제정, “석유 수익의 85%를 보건·교육·농촌개발 등에 사용하고 10%는 미래 세대를 위한 펀드로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단 석유수출이 가능해지자 차드 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올해 초 이드리스 데비(Idriss Deby) 대통령은 “석유 수익의 일부로 반군과 싸우기 위한 무기를 사겠다”고 선언했다. 세계은행은 “차드 정부가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런던에 예치된 석유 수익금을 동결했지만 차드 정부는 “석유 수익을 맘대로 쓸 수 없다면 차라리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4월 미국의 중재로 세계은행은 석유 수익의 30%가 차드 정부의 금고로 들어가는 데 동의했다. 1990년 이후 16년간 대통령의 권좌를 내놓지 않은 데비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3선에 성공했다. 데비 대통령은 작년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20세기 초·중반부터 석유를 생산해온 다른 석유수출국의 국민 복지는 신생 산유국인 차드보다는 낫지만 차드와 마찬가지로 ‘석유로 인해 국민이 행복해졌다’는 말을 듣기는 어렵다. 하루 870만배럴을 수출하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2005년에만 석유 수출로 1533억달러를 벌어 들였다. 작년 경제 성장률은 6.2%로 2000년대 초반의 ‘0% 성장의 늪’에서 겨우 벗어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은 석유 수익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국민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대 2만6000달러 수준에서 2004년 1만430달러로 절반으로 떨어졌다. 석유산업 이외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실업률은 25%에 달하며 실업자는 대부분 20~30대다. 주요 도시 곳곳에는 슬럼가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2년 10월에야 사상 처음으로 빈곤의 실체를 인정하고 원인과 대책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막대한 석유 수익은 왕족과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 직원 그리고 공무원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간다. 미국의 중동 전문가 로버트 베어가 쓴 ‘악마와의 동침’에 따르면 무려 3만명에 달하는 왕자들은 매달 1만9000달러에서 27만달러에 이르는 왕족 수당을 받는다. 하루 219만배럴을 수출하는 아프리카 1위(세계 8위)의 석유 수출국인 나이지리아는 1970~1999년 석유로 231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나 같은 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64달러에서 250달러로 오히려 감소했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나이지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4년 현재 390달러에 불과하다. 국민의 70%는 하루 1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고 있다. 40년 전 이 비율은 27%였다. 1999년 취임한 올루세군 오바산조(Olusegun Obassanjo)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나이지리아 전력(電力)을 인구 수로 나누면 30W짜리 전구 하나도 제대로 켜지 못할 정도”라고 개탄했지만 현재도 그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인구의 75%가 전기의 혜택을 못 받고 있고 전기 없는 어둠 속에서 사는 게 나이지리아의 일상이 돼 버렸다. 유전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니제르 삼각주 지역은 무장반군의 주활동 무대다. 반군은 “나이지리아의 석유 수익을 부패 정권과 다국적 기업이 가져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6월 초 한국인 근로자 5명을 납치한 나이지리아 반군은 석방조건 중 하나로 석유 수익금 배분을 요구하기도 했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원유를 빼가는 일이 다반사다. 지난 5월 12일에는 수도 라고스 인근에서 송유관을 뚫고 기름을 훔치다 폭발이 일어나 200여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1위(세계 5위)의 석유 수출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평균(6280달러)에 못 미치는 4020달러에 불과하다. 2000~2004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1.3%로 뒷걸음질쳤다. 우고 차베스(Hugo Chavez) 대통령은 1998년 집권한 이후 석유 수익을 빈곤층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빈곤층 비율은 여전히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 중 40%가 문을 닫고 해외로 나가는 국부 유출 현상이 일어났다. 차베스 대통령은 4월 1일 아예 모든 자원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20세기 초반부터 석유를 대량 생산했던 베네수엘라는 벌써 수차례 석유산업의 국유화와 민영화를 반복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높을 때 국유화를 통해 석유를 팔아 얻은 부로 대형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국영회사의 임금을 올려주는 등 흥청망청 쓰다가 유가 하락으로 타격을 받으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거나 국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재정을 메워왔다. 이렇듯 석유 수출국들이 경제발전에 뒤처지고 국민의 삶의 질도 향상시키지 못하는 것은 우연히 한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부러워하는 일이지만 많은 석유 수출국들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검은 황금(Black Gold)’이라는 석유가 국민에게는 축복이 되지 않는 역설을 ‘석유의 저주(Oil Curse)’라 한다. 세계은행 등에 따르면 50여개의 개발도상국이 석유, 가스 등의 생산에 정부 재정을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나라의 인구는 35억명에 달한다. 그 중 43%인 약 15억명이 하루에 2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는 2004년 8월 “석유 수출국 34개국 중 12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를 넘지 못하고, 3분의 2는 민주적인 정부가 없다”고 보도했다. 2004년 현재 석유 수출국 34개국 중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평균(6280달러)을 넘는 나라는 8개국에 불과했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만은 최근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기고문에서 “국제유가가 오르면 언론의 자유, 자유선거 등 산유국의 자유도는 감소하는 역관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마이클 로스(Michael Ross) UCLA 교수가 석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20개국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위 6개국 중 앙골라, 예멘, 콩고 민주공화국 등 3개국이 세계은행 기준의 극빈국(Highly-indebted poor country)에 속했다. 또 20개국 중 5개국에서 1990년대에 내전이 일어났다.
1960년대 이전 세계 석유시장을 BP, 엑슨, 모빌(엑슨모빌로 합병), 로열 더치 셸, 셰브론, 텍사코(셰브론텍사코로 합병), 걸프 등 석유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던 때에는 ‘산유국의 부(富)를 이들 메이저가 가져가 산유국이 경제발전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높았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자원 민족주의가 등장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등이 석유산업을 국유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나라가 ‘석유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석유의 저주’를 실감했던 때는 1980~1990년대였다.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를 통해 막대한 오일머니를 축적한 산유국들은 고속도로 등 하드웨어 투자에 많은 돈을 썼다. 거대한 정부청사, 도서관, 병원 등이 세워졌다. 하지만 정부가 투자를 주도하면서 민간의 성장은 미미했고 결국 ‘석유 수출, 소비재 수입’의 무역구조가 고착화됐다. 경쟁력 있는 제조업은 육성되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배럴당 8달러까지 유가가 급락하자 석유 수익에 의존한 산유국들의 재정은 급격하게 악화됐고 기반시설 투자를 위한 재원은 외채를 끌어다가 메워야 했다. 1998년에 다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선까지 떨어졌을 때는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조차 파산 직전까지 갔다. 민간엔 일자리가 없어 실업률이 급증했다. 석유 수출국들은 2002년 들어 국제유가가 흑자 재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배럴당 25달러 선을 회복하자 겨우 숨을 돌렸다. ‘석유의 저주’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 우선 자본집약적인 석유산업의 구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석유산업은 농업과 달리 미숙련 노동력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또 석유는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기술과 석유채굴지를 가진 소수만이 부를 획득할 수 있다. 붐이 일어도 그 이익이 경제 전체로 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았고 사회가 투명하지 않은 후진 산유국 정부는 당연히 부패하기도 쉽다. 산유국 정부는 세금이나 국유화를 통해서 용이하게 석유 수익을 획득할 수 있으므로 석유기업과 정치인은 막대한 석유 수익을 두고 담합하기 쉽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원가는 배럴당 1.5~2달러에 불과하다. 올 6월 현재 OPEC의 원유 기준가는 배럴당 60달러 선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26억달러의 국가수입이 늘어난다. 이런 막대한 수입을 두고 정치권은 ‘내 입맛대로 석유 수익을 쓰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후진 산유국에서 독재자를 위한 기념물 건립이나 무기 구입 등 비생산적인 부분에 석유 수익을 쓰는 일이 잦다. 국제 시민단체(NGO)들은 “산유국이 ‘석유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석유 자금이 생산적인 부분에 쓰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산유국 정부와 석유기업의 자금 흐름이 투명하게 밝혀지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는 2002년 이 같은 내용으로 채취산업투명성기구(EITI)의 설립을 제안했고 현재도 그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콩고, 가나, 키르기스, 나이지리아, 사웅토메프린시페(서부 아프리카의 소국), 동티모르, 트리니다드토바고 등이 EITI의 공개 기준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세계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후원해서 2002년 설립된 ‘원유 수입 지불액 공개(Publish What You Pay)’ 캠페인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방현철 주간조선 기자(banghc@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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