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스크랩] 흥남철수 / 굳세어라 금순아 -현인

鶴山 徐 仁 2006. 6. 25. 09:17


 원문출처 : 흥남철수 그날 밤…

흥남철수 그날 밤…
‘기적같은 구조’ 펼친 러니씨의 회고
“숨쉴 틈 없이 들어찬 화물칸
서로 안아주며 떨고있는 피란민
아!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 로버트 러니
“그저 한국말로 ‘빨리 빨리’란 말만 외쳐댔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고 안간힘을 썼죠.”

1950년 12월22일 함경남도 흥남부두 철수의 주역은 긴박한 순간을 회고했다. 당시 23세의 나이로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79·변호사·사진)씨. 그는 1만4000명을 구조해 ‘기적의 배’로 기네스북에 오른 빅토리호 신화의 주역이었다.

“피란민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서있었습니다. 노인들, 목발을 짚고 있는 불구자들, 엄마 젖을 빨고 있는 아이들, 들것에 실려온 부상자들…. 영하 20도의 눈보라 속에서 승선하는 데만 16시간이 걸렸죠.” 그 밤의 흥남부두는 아비규환이었다. 중공군이 저 멀리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었고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피란민들은 육지의 마지막인 부두까지 몰렸다.





“갑판 위에는 더 이상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뒤늦게 승선한 한 어린아이는 갑판에 자리가 없어 치마끈을 이어 묶은 줄에 매달려 화물칸으로 내려졌습니다.”

당시 7600t급 빅토리호의 화물칸은 끝없이 밀려드는 피란민으로 채워졌다. 1만4000명이 탔다. 러니씨는 “피란민들 중 갑판에 있던 사람들은 그나마 운이 좋았고 화물칸에는 신선한 공기는커녕 움직일 틈조차 없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배에는 마실 물도, 화장실도 없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로 꼭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어머니들은 아기를, 아버지들은 아이를 품에 꼭 안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감정이 북받쳐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빅토리호는 기뢰밭을 뚫고 3일간의 항해 끝에 크리스마스인 12월25일 거제도에 도착했다.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고, 배 위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가위조차 없어 이로 탯줄을 끊었다.

러니씨는 흥남철수에서 본 한국인을 이렇게 평가했다. “가는 곳마다 죽음과 파괴가 나를 철저히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완전한 절망감으로 그저 전쟁이 지겹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끝없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함께 고통을 감수하는 한국인들의 놀라운 용기에 한없이 감동했습니다.”

이 미국의 은인에게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56년만에 보은(報恩)했다. 재향군인회는 23일 이국 땅에서 목숨을 걸고 수많은 인명을 구조한 빅토리호 선원들의 은혜에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러니씨에게 향군 대휘장을 수여했다.

미군 유해발굴을 위해 1997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던 러니씨는 “다시는 6·25전쟁과 같은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과 북한이 하나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입력 : 2006.02.23 19:10 13' / 수정 : 2006.02.24 03:5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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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반세기 넘어선 세월 속에 모든 전쟁의 참화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지만,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여 예쁜 여선생님이 뒷 걸음질로 열의 맨 앞 학생의 손을 잡고 하나, 둘 구령을 하시면서 나가면 그에 맞춰, 셋, 넷을 웨치며 막 녹음이 우거져 가던 운동장을 돌던 시절에 예기치 못했던 북괴의 남침으로 온 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고 말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젖으려 한다.

30여 년의 세월을 타향에서 보내다 고향으로 돌아 온 후 희미한 추억 속에 간직되어 있던 '약산구민학교'를 찾았드니, 세월의 변화에 밀려 학교의 이름은 이미 살아지고 '대구광역시 학생야영장'이라는 생소한 현판이 걸려 있었다.

아직도 어른들의 틈에 끼어 자그마한 개나리 봇짐을 지고 마을 뒤 산으로 피신하여, 어느 날 새벽녘에 논공면 위천과 고령 성산면을 연결해 주던 낙동강 다리를 밀려오는 북괴군을 지연시키고자 미공군기가 폭탄을 투하하여 파괴하는 그 엄청난 굉음은 지금도 뇌리에 선하다.

한 때 가야대에 출강 하면서도 매번 88고속도 이용을 하지 않고 늘 국도로 화원과 논공을 경유하여 고령까지 다닌적이 있었다.

오늘이 한국전쟁 발발 56주년이라니, 정말 그 동안 많은 세월이 흐르고, 세상도 너무 많이 변화 되었슴을 실감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다니던 학교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당시 어미가 떠나고 외톨이가 된 조카를 처녀인 몸으로 당신이 근무하고 계시던 학교에 조기입학시켜 데리고 계셨던 그 고모님도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모든 게 묻혀서 사라지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세월 속에 모든 게 흐르는 물처럼 역사 가운데 오고 가는 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