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내 운명을 바꾼 말

鶴山 徐 仁 2006. 5. 28. 18:43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1) - 로버트 레드포드
부모·친지·동료·스승 등으로부터 격려와 용기를 받고, 힘겨운 시절을 극복. 오늘날의 부와 명성을 얻은 엔터테인먼트 장르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유명인들의 무명시절 이야기로부터 ‘그들의 삶도 우리와 비슷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힘겨운 상황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경기 씨의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에서 발췌한 것이다.
관리자 
로버트 레드포드 (Charles Robert Redford Jr.)
“희망과 인내는 만병을 다스리는 두 가지 치료약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자리이자 가장 부드러운 방석이다.”
(Hope and patience are two sovereign remedies for all. The surest reposals, the softest cushions to lean on in adversity.)


Destiny words : 희망과 인내는 만병을 다스리는 두 가지 치료약이다.


그는 1980년에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남모르는 비애를 다룬 <보통사람들>로 전격 감독 겸업 선언을 한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타내면서 원숙한 영화의 열정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사실 그는 영화보다는 그림에 더욱 관심이 많은 화가 지망생이었다.

대학 1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파리 노트르담 거리에서 오가는 관광객의 즉석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열정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열의만큼 손님이 많지 않아 미국인들이 즐겨 찾는 클럽이나 바를 전전하면서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배고픈 시절을 보낸다.

파리에서의 생활에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자 체계적인 회화를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품고 이태리 플로렌스로 건너간다. 청운의 꿈을 품고 미술학교에 등록하지만 그의 그림을 본 지도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비판을 가한다. 그림을 그려서 성공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칩거 상태에서 매일 술만 마셔댔고 급기야 거의 자폐증 환자와 같은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암울한 시절 그에게 따사로운 봄 햇살과도 같은 구원의 손길이 비춘다. 청년 레드포드의 방탕한 생활을 남몰래 지켜본 주인공은 그의 2층에 하숙을 하고 있던 금발 미녀 롤라 폰 와제넌.그녀는 의욕을 상실한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친구가 되어준다.

그리고 어느날 로버트 버틴의 저서 『우울의 해부Anatomy of Melancholy』를 선물한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골방에 처박혀 대낮부터 술에 만취돼 있던 그는 롤라가 건네준 책자를 무심히 넘긴다. 그때 그가 한 문구를 읽게 된다.

‘희망과 인내는 만병을 다스리는 두 가지 치료약이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자리이자 가장 부드러운 방석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에게 인생 목표를 정립하는 계기를 주게 된다. 일순간 자포자기 삶을 벗어버린 레드포드는 롤라의 권유를 받고 뉴욕 프래트 인스티튜트에 입학해 미술 공부를 재개한다. 이때 교양과목으로 ‘연극 디자인’을 공부하다 지도교수로부터 연기를 이수해볼 것을 권유받는다.

그는 아메리칸 드라마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 자기에게 그림보다는 연기가 더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력을 쏟아 결국 할리우드를 석권하는 개성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서부 무법자 선댄스 키드 역으로 뭇 여성들의 애간장을 태운 그는 극중 배역을 딴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를 지난 1980년대부터 주최, 재기 발랄한 미래의 영화 인재를 육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화가가 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젊은 시절 한동안 방황했던 레드포드는 결국 한 여인이 건네준 책자와 자신의 감추어져 있는 재능을 발견하면서 폭발력을 갖춘 연기자로 대성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격려와 명구가 담겨 있는 책자를 선물하는 등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던 롤라는 그 후 레드포드의 아내가 되어 스타 배우를 만들어내는 숨은 내조자가 된다.


로버트 레드포드(Charles Robert Redford Jr.)

미국 중산층이 가장 선호하는 미남 배우 겸 감독
1937년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 태생.
콜로라도 대학에서 아마추어 야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음주문제로 퇴출당하고, 대학 졸업 후 프라트 예술연구소에서 그림을 전공한 뒤 유럽에서 무명 화가로 잠시 활동한다.

뉴욕 아메리칸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를 이수한 후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모를 바탕으로 TV와 연극에서 경력을 쌓아 나간다.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서부 무법 영웅을 묘사한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에서 선댄스 키드 역을 맡아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어 <추억The Way We Were, 1973> <스팅The Sting, 1973> 등으로 할리우드 최고 흥행배우 타이틀을 부여받는다.

1980년 재능 있는 후배 영화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유타 주에 선댄스 연구소를 설립해서 연례 영화 축제인 ‘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을 개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독립영화 축제로 성장시킨다.

미국 중산층의 문제점을 노출시킨 <보통사람들Ordinary People,1980>로 감독 데뷔를 선언. 이 작품으로 1981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타내는 저력을 발휘한다. 또한 브래드 피트를 발굴한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rough It,1992>과 미국 공영 퀴즈 방송에서 자행되는 비리를 꼬집은 <퀴즈 쇼Quiz Show,1994>로 상당한 연출력을 갖고 있는 재능꾼임을 입증시킨다.
1970년대 폴 뉴먼과 팀워크를 이뤄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할리우드 ‘버디 무비’장르 붐을 이끌어냈던 주역이 로버트 레드포드이다.


입력 : 2006-05-08, 16:22  

 

 

 

 

 

(2) - 르네젤 위거

 

 

르네 젤위거(Renee Kathleen Zellweger)
“나는 인생의 격렬하고 잔인한 투쟁에서 삶의 기쁨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의 기쁨은 여행하는 데서 생긴다.”
(I find my joy of living in the fierce and ruthless battles of life and my pleasure.)


Destiny words : 나는 인생의 격렬하고 잔인한 투쟁에서 삶의 기쁨을 발견한다.


남북전쟁 시절의 애환을 다룬 <콜드 마운틴>으로 편당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를 챙긴 르네 젤위거.

전형적인 할리우드 미녀상은 아니지만 왠지 모를 푸근한 심성을 풍겨주는 그녀는 단번에 빠져들게 하기보다는 볼수록 상큼한 매력을 풍겨주는 주인공이다.

부친은 위스, 모친은 노르웨이 출신으로 텍사스 주 시골 소읍 카이티에서 태어났다. 돼지를 키우는 농가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찌 보면 문화생활과는 동떨어진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로 성공한 특이한 사례가 되고 있다.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LA로 건너온다.

처음에는 배우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접시를 치우고 탁자에 널브러져 있는 담뱃재 닦는 일을 해낸다.
“육체는 힘들었지만 때의 경험이 배우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식당에서 일하면서 저는 다양한 사람들, 특히 배우들의 행태를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연기 교본이 됐다고 봅니다.”

1996년 스포츠 에이전트 세계를 묘사한 <제리 맥과이어>에서 미혼모 역을 맡아 극중 탐 크루즈와 연분을 맺어가는 푸근한 역할을 열연해 주었다. 재학 시절 치어 걸, 스포츠클럽, 연극 동아리 등 다양한 체험을 한 것이 프로 연기자가 된 후 여러 배역을 순탄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며, 잠자기 전에 하루 동안 겪은 사건을 에세이로 작성하는 것도 감추어져 있는 취미 중의 하나이다.

뉴욕 최대 백화점 중의 하나인 시어즈 백화점의 화려한 풍광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이때 소감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투고했던 경험도 있다고 하는데, 채택이 안 돼 그녀의 무명 시절 글 솜씨를 훔쳐볼 수 없다는 것이 일말의 아쉬움이다.

이 시절 그녀가 잡지에서 어거스트 스트린드버그의 「미스 줄리아Miss Julia」의 서문에 기술되어 있다는 명구를 읽고 그녀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방랑벽을 자극하는 감흥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인생의 격렬하고 잔인한 투쟁에서 나의 삶의 기쁨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의 기쁨은 여행하는 데서 생긴다.’

화려하고 번잡한 나날이 늘 기다리고 있는 배우생활에서 여가는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촬영이 없는 날이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자동차를 몰고 거리를 질주하죠. 특히 아직 오염되지 않은 자연 풍광을 간직하고 있는 고향 텍사스 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가식적인 웃음을 강요하는 연예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원초적인 제 자신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자동차 여행, 근사하지 않아요?”

이런 취미생활 때문에 그녀는 여행에 관한 수필집을 늘 자동차 안에 두고 다닌다. 당연히 인생 교훈이자 전환점을 제공했다고 느끼는 경험을 여행 관련 독서를 통해 체득했다.

<제리 맥과이어> 이후 노처녀의 결혼 해프닝극 <브릿지 존스의 일기 1,2> 그리고 육감적인 시카고 나이트클럽 댄서 역으로 출연했던 <시카고> 등 짧은 배우생활 동안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아직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배우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아요. 다른 연기자들처럼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요. 이 때문에 어찌 보면 지금까지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지금의 명예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지금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있습니다.”


르네 젤위거(Renee Kathleen Zellweger)

“목표를 세워 놓았다고 해서 인생이 그 목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때문에 저는 종착역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흘러가는 방랑자처럼 살고 싶습니다.”

1969년 텍사스 주 카이티 태생. 푸근한 외모에서 우러나오는 곰살맞은 연기로 남성 팬들에게높은 관심을 얻어내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뒤 <텍사스 체인 살인사건4The Return of the Texas Chainsaw Massacre 4, 1994>에서 단역을 맡는다. 이 시기 매튜 맥커너히를 만나 그의 주선으로 <러브 앤 A 45Love and a 45, 1994>에 출연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아내고,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눈에 띄어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 1996>에 출연하면서 단번에 시선을 끄는 신예 배우로 주목받는다.

<미, 마이셀프, 아이린Me, Myself & Irene, 2000>에서 짐 캐리와 컴비 연기를 통해 코미디 배우로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너스베티Nurse Betty, 2000>에서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간호 보조원 역으로 골든 글로브 여우상을 수여받는다.

이어 <브릿지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2001>에서 30대 초반 노처녀의 결혼 갈망기를 보여주어 전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들어낸다. <시카고Chicago, 2002>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 2003> 등으로 취월장하는 연기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입력 : 2006-05-08, 16:53  

 

 

 

 

 

(3) - 멜 깁슨
부모·친지·동료·스승 등으로부터 격려와 용기를 받고, 힘겨운 시절을 극복. 오늘날의 부와 명성을 얻은 엔터테인먼트 장르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유명인들의 무명시절 이야기로부터 ‘그들의 삶도 우리와 비슷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힘겨운 상황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경기 씨의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에서 발췌한 것이다
관리자 
멜 깁슨(Mel Jelald Gibson)
“종교는 신을 찾으려는 인간성의 반응이다.”
Religion is the reaction of human nature to its search of God.

Destiny words : 종교는 신을 찾으려는 인간성의 반응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명장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과 팀워크를 이뤄 세익스피어 원작의 <햄릿>에 출연한 멜 깁슨. 이때부터 그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친의 억울한 죽음을 응징하는 햄릿 왕자 역을 맡으면서 흡사 자신이 극중 주인공과 같은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감정에 휩싸였다.

“동양에서 말하는 빙의라고나 할까요? 하여간 몇 년 동안을 사후 세계는 어떠할까? 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가? 내 영화 인생의 진정한 목적과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에 골몰해 있었죠.”

<매드 맥스 > <리셀 웨폰> 시리즈의 히트로 흥행 배우 타이틀을 얻은 그는 화려한 성공의
뒤안길에서 삶의 좌표를 잃은 듯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된다. 이런 갈등 속에서 그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종교와 가족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의무적인 종교생활을 해왔다고 한다면, 30대 후반부터 종교는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존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죠.”

종교의 가치를 새삼 인식해가고 있을 무렵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저서 『과학과 현대세계』를 탐독하다 자신의 잠언으로 암송하게 되는 문구를 발견한다.
‘종교는 신을 찾으려는 인간성의 반응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호주와 미국을 오가면서 1급 스타로 대접받기 시작한 멜 깁슨. 밖에서 보면 진정한 행복 속에 갇혀 있는 이 사나이의 내면에는 “암에 걸린 중병 환자였다”고 고백한다. 햄릿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신앙심을 다시 시작한 뒤 그가 천착한 것은 바로 예수의 박해 받은 생애이다.

제작 과정에서부터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바로 이 시기부터 제작을 구상한 장대한 프로젝트였다. 13세기 영국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펼쳤던 스코틀랜드 민족 영웅 윌리암 왈리스의 비극적 인생을 다룬 <브레이브하트>에 이어, 직접 메가폰을 잡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에 박혀 처형당하는 최후 순간의 행적을 다룬 종교극이다.

‘유대인들의 수수방관으로 예수가 죽음을 맞게 됐다’는 것을 비롯해 ‘과도한 폭력 묘사’, ‘예수를 지나치게 소심한 인물로 그린 것’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제작 및 상영 중단 압력’을 받는 고초를 겪는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요한 바오로 2세가 특별 시사를 가진 직후 ‘예수의 최후 행적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는 격려의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리고 일반 공개 후 전 세계 교단과 신도들로부터 격찬과 감사의 메시지가 쇄도하는 등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뒤늦게 종교의 가치에 대해 깨우치게 된 멜 깁슨은 “종교는 당장 우리를 구원해주는 대상은 아니다. 단지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벨트가 되어준다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고 본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감독과 배우로 출세 가도를 달려가고 있는 그가 말하는 영화의 효용성이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글쎄요? 상당히 난해한 질문인데….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제가 왜 영화에 출연하고, 만들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 목적을 밝힌다면 자연스런 답변이 될 것 같군요. 저는 관객들이 제가 출연하거나 만든 영화를 관람하면서 현실의 어려움이나 폭력적 상황에서 벗어나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나 서정성에 푹 빠져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때요. 이렇게 생각하면 영화라는 매체가 정말 근사한 예술 형식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지 않나요?”

제작 전후 그리고 공개 이후 영화 내용과 예수 행적에 대한 묘사를 놓고 종교인과 비종교인 간의 치열한 찬반 격론에 휘말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48세 중년의 멜 깁슨에게 제2의 인생을 가늠하게 만들어준 의미 있는 작품이 됐다.

대부분은 어린 시절, 스승이나 동료 아니면 독서나 경험 등을 통해 인생의 가치관을 재정립해보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런데 매우 순탄하게 성장한 깁슨은 인생 사춘기 시절 영화 한 편으로 삶의 목표와 영화 인생의 방향타를 다시 조준하게 됐다고 밝힌다. 그 바탕 위에서 영화 제작을 통해 관객들에게 믿음, 사랑, 희망 그리고 타인에게 용서의 가치를 각성시켜주는 것이 그가 오늘도 영화 현장을 누비는 사명감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멜 깁슨은 현대에 살아 있는 또 한 명의 ‘그리스도의 열정을 간직한 사나이’라고 평가한다면 너무 지나친 아부성 격찬일까?


멜 깁슨(Mel Jelald Gibson)

중후한 남성미를 풍겨주는 감독 겸 배우 1956년 뉴욕 주 피크스킬 태생. 미국에서 출생했지만 호주에서의 명성을 등에 업고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철도 노동자였던 부친을 따라 호주로 이주, 시드니에 위치한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을 졸업한다. 졸업 후 국립 드라마 예술 연구소에서 체계적인 연기 실기와 이론 공부를 전수받는다. <크라잉 게임>의 주디 데이비스, <샤인>의 제프리 러시 등이 동기 동창.

졸업 후 연극 무대와 TV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활동하다 미래 묵시록적인 내용을 담은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Mad Max, 1979>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다. 이어 <갈리폴리Gallipoli, 1981> <리셀 웨폰Lethal Weapon, 1987> 시리즈로 흥행 배우 타이틀을 부여 받는다. 감독, 주연을 겸해 스코틀랜드 민족 영웅 윌리암 왈리스의 독립운동을 다룬 <브레이브하트Braveheart, 1995>를 발표,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거둔다. 예수의 최후 행적을 다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를 두번째 연출작으로 공개, 전 세계 흥행 시장에서 무려 4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얻어낸다.


입력 : 2006-05-10, 10:13 

 

 

 

 

(4) - 멜 브룩스

 

멜 브룩스(Mel Brooks)
“이봐 멜, 자네가 종이 있는 데까지 올라갔다면 그 종을 울리고 와야 하는 것 아냐!”
Hey, Mel. If you are going to step up to the bell, ring it.

Destiny words : 종이 있는 데까지 올라갔다면 그 종을 울리고 와야 하는 것 아냐!

‘패러디의 대가, 상식의 허를 찌르는 영상 문법을 보여주고 있는 연출자.’
감독 멜 브룩스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갖게 되는 가치관을 철저하게 조롱하는 영화를 단골로 만들고 있는 감독이다.

‘사회 암적 요소인 불한당을 제압하는 데 온 열정을 바치고 있는 카우보이, 우수에 젖은 표정, 수많은 악의 무리를 단숨에 제압해 버리는 날렵한 총 솜씨, 뭇 여성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외모와 세련된 매너.’
이것이 서부극에서 보여준 정의 편에 서 있는 총잡이다. 그렇다면 멜 브룩스가 패러디 서부극을 표방하며 선보인 <불타는 안장Blazing Saddles, 1973>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담배를 피우면서 침을 뱉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시시덕거린다. 건장한 패거리들을 패고 도망치는 서부 사나이들은 이번에는 뼈만 앙상한 노인을 붙잡고 주먹과 발길질을 가한다.파격적이고 도발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시도는 어찌 보면 이단아를 자처한 멜 브룩스만이 시도할 수 있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걱정이요? 말할 수 없이 크죠. 대다수 관객에게 각인된 어떤 이미지를 단숨에 깨트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시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잖아요. 특히 미국인들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부 사나이들의 표상을 우스꽝스럽고 소심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석유통을 짊어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무모한 행동인지도 모르죠.”

발표하는 작품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의 영화는 왜 이렇게 삐딱한 시선을 고수하고 있을까?

“우리가 체면을 앞세워 바라보는 시선이 세상의 모든 면은 아니잖아요. 인간끼리 부딪치면서 벌어지는 풍속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를 들추어내자, 이거죠. 신사복을 입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배우가 일상생활에서도 늘 깔끔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보여준 규격화된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일상에서는 상상을 깨는 일탈된 행동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발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영화는 애초 우려를 뛰어 넘어 공개 즉시 뜨거운 이슈를 만들어낸다. 아마 관객들도 체면과 형식을 벗어버린 멜
브룩스 표 영화를 은연중에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멜 브룩스의 심술은 그 뒤에도 지속된다. <영 프랑켄슈타인>에서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진 와일더)의 약혼녀 엘리자베스(마델린 칸) 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박사가 만들어낸 실패한 괴물(피터 보일)에게 성적 공격을 받는다. 음에는 공포감에 떨던 그녀가 괴물의 짙은 애무가 더해지자 이번에는 “이제야 내 인생을 달콤하게 해준 존재를 찾게 됐군요!”라고 유혹의 언어를 던진다.

“사실 영화를 공개할 때마다 ‘저, 감독, 미친 것 아냐?’라는 비난의 소리가 쏟아질 것 같아 조마조마 하죠. 그렇지만 지금까지 경험상 관객들은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용감하게 영화를 만들어주는 감독을 은연중 갈망해왔던 것 같습니다. 저의 작품에 환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이런 잠재된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상식의 허를 찌르는 연출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불타는 안장>에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프로듀서 마이클 허츠버그와 작가 앤드류 버그만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문제되지나 않을까? 비판이 가해질 것 같은데?”
로케이션 현장에서 남모르는 고충을 토로할 때 제작 전반을 지휘하고 있던 마이클 허츠버그는 전폭적인 신뢰를 말로 표현했다.

“이봐 멜, 자네가 종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면 그 종을 울리고 와야 하는 것 아냐!”

“마이클의 말은‘이왕 시도를 했으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일단 밀어붙여 승부를 걸어보자’는 것이죠. 잠시 주춤했던 저의 소심함이 막 나갈 수 있는 대범함을 갖출 수 있도록 한 것은 단연 마이클의 이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오늘날 패러디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멜 브룩스. 그는 후배 영화인들에게 틈날 때마다 이런 주문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슈퍼맨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시민들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 해주기 때문 아닌가? 이처럼 관객들도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이탈된 시도를 해내는 감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식을 털어버리고 미쳤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광적인 감독이 되십시오!”


멜 브룩스(Mel Brooks)

기존 관습을 뛰어넘는 패러디 1인자.
1926년 뉴욕 주 브룩클린 태생. 유태인들에게 전래되고 있는 유머와 잠언을 극중 대사로 즐겨 차용하고 있다.
그는 극중 악인들에게 턱수염과 구레나룻를 하고 등장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다. 모든 주인공은 남자로 설정돼 있다. 주인공이 등장해 옆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그 사람이 주인공에게 다시 분노감을 섞어서 응답하는 방식이 그만의 스토리 전개 방법이 되고 있다. 이어 여러 히트작 장면을 교묘하게 풍자하는 방식을 단골로 쓰고 있다.
<프로듀서The Producers, 1968> <영 프랑켄슈타인Young Frankenstein, 1974> <로빈 훗Robin Hood : Men in Tights, 1993> 등의 히트작이 있다.

(5) - 빌 코스비
빌 코스비(Bill Cosby)
빌 코스비(Bill Cosby)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You are more important to yourself than you think you are.

Destiny words :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뿐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들도 ‘학창 시절 선생님의 한마디 말씀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성장과정에서 스승의 칭찬 한마디는 그 어떤 자양분보다도 강력한효과를 발휘한다.

시트콤 ‘코스비 가족’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흑인 코미디언 겸 연기자 빌 코스비는 1940년대 펜실베이니아 주 초등학교 4학년 재학 시절 사라 맥킨니 선생이 들려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라는 격려의 말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조언으로 흔쾌히 꼽고 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코스비가 성장하던 1940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 전역에서는 흑인과 백인 간의 인종 차별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 흑인 학생들이 생각하기에 대다수 백인 선생들은 백인보다는 흑인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사랑의 매’라는 명분을 걸고 가해지는 체벌은 거의 구타 수준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인간에 대해 증오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국어 수업시간에 유명한 명언을 학습하게 된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이 명구는 ‘좋은 지적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실행시키기는 어렵다’라든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평양 감사도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생에게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지적받은 코스비는 “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말이 냇가에 가서 목을 축이지 않았을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 물이 더럽거나 오물이 둥둥 떠다니는 경우 그런 거부 행동을 나타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 말이 자신을 물가로 데려온 사람 자체가 싫어 물을 마시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당돌하지만 어찌 보면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코스비의 해석에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과 학생들은 놀라움과 함께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체벌을 가하는 선생들에 대한 깊은 반감이 결국 그런 식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잠언이 있듯이 백인 선생들이 사사로운 감정을 섞어 흑인 학생들에게 가한 정도를 넘는 폭력은 이토록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세상사는 음지가 있으면 그만큼 밝은 양지가 있는 법, 인간에 대한 불만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코스비의 응어리진 마음을 단번에 풀어준 스승이 바로 사라
선생이었다.

사회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나 아니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소시민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나 마음 한편에서는 자신의 성장과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 한두 명쯤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학창 시절 교사가 여러 학생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인 망신을 주었을 경우 자존심이 상해 며칠 동안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회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을 단순히 성장통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당사자에게 던져주는 정신적 상흔은 매우 크다.

코스비가 영원한 스승으로 주저하지 않고 꼽는 사라 선생은 흑백 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체벌을 가해야 할 경우 반드시 “너, 외투 보관소로 와!”라는 단호한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외투 보관소는 사라 선생이 자신의 상의를 걸어 놓고 있는 교무실 뒤편 인적이 드문 조그만 공간이었다. 이곳으로 호출받은 학생들은
“너 또 그런 행동을 할래? 네가 벌을 받고 있는 이유를 알겠지?”라고
조목조목 지적을 받은 후 엉덩이를 맞았다. 그리고 사라 선생은 반드시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라는 자기애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격려의 말을 건냈다.

그의 존재를 알려준 시트콤 ‘코스비 가족’을 통해서 늘 반복하는 대사 중의 하나가 “존경하는 선생님, 제자들에게 잔소리라고 느낄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해주십시오. 혹시 반응이 없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시고 10년, 20년, 아니 30년 칭찬을 해주십시오. 저는 선생님의 그 같은 기대감을 충족시켜 드려야겠다는 일념이 머릿속에 각인돼 지금 유명 코미디언으로 선생님을 웃겨 드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다.


빌 코스비(Bill Cosby)

시트콤 장르를 정착시킨 미국 최고의 흑인 코미디언.
1937년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태생.
TV 시트콤 ‘코스비 쇼’로 무려 30여 년 이상 인기를 누렸던 엔터테이너 겸 코미디언.
템플 대학 재학 시절 파트타임으로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바에서 재담을 가미한 스탠딩 개그를 시도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룩해낸다. 또한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면서 재능을 인정받는다.
<아이 스파이I Spy, 1965>로 에미상 남우상을 수여받는다. 이어 <빌 코스비 쇼The Bill Cosby Show, 1969>에서 능청스런 교사 역을 열연해 확고한 스타덤에 오른다. 여세를 몰아 영화 <업타운 새터데이 나이트Uptown Saturday Night, 1974>에 출연하면서 상업적 호응 지수를 확대해나간다.


입력 : 2006-05-1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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