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스크랩] 배내골에 살고있는 부부화가

鶴山 徐 仁 2006. 5. 26. 09:40
경남 양산 배내골 이한식·윤옥자씨 전원의 삶

가지산 배내골에 살고 있는 이한식·윤옥자씨 부부는 화가이자

조각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다할 구분은 없다  매사가 공동 작업인 까닭이다.

장승, 솟대, 옹기 그리고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꽃과 과실나무로

가득 찬 그들만의 ‘궁전’에 들어가 보았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 길을 찾는 사람이 드나드는 집


양산의 가지산을 마주 두고 동편에는 통도사가 있고 그 반대쪽에 그들 부부가 살고 있는 ‘길찾사’
집이 있다. 길찾사는 ‘길을 찾는 사람들’의 줄임말이다. 길은 곧 도(道)를 뜻한다. 집 초입, 큼직
한 옹기 항아리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 집 초입, 큼직한 옹기 항아리에 글귀가 씌어 있다.

한 사람의 고통이 그 시대의 아픔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비를 맞는 이가 그대 곁에 있다면 한번쯤우산보다 그 비를 함께 맞으며 같이 걸어줄 사람이 그 이상의 아름다움입니다.’

아마 그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지어낸
글솜씨가 아닌가 싶다.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줄 사람.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지만 실제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 마치 아담한 공원을 연상케 하는 뜨락.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참으로 한갓진 곳이다.
낙동강 하구에서 조금 역류하여 물금, 원동을 지나자 갑자기 산길로 접어든다.
골이 깊다. 배내골이라 한다.

배꽃이 흐르는 골짜기를 이르는 말일 게다.
어설픈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길섶에 장승과 솟대들이 서로 키 재기를 하듯 우뚝우뚝 서 있다.
하지만 집채는 잠자는 황소 마냥 조용히 누워 있다.

▲ 안채로 들어서는 여닫이 문. 담쟁이 넝쿨이 싱그럽다.

흙집이었다.
굳이 채 나눔을 한다면 길을 찾는 사람
들이 쉬어 가는 별채, 스무 평도 채 안
되는 안채, 그리고 그 아래채가 있다.
원래는 농가와 창고가 있던 터를 이리
저리 손질을 했다고 한다.

4년에 걸친 공든 작업 끝에 오늘의 모
습을 띄게 되었다.
흙, 대나무, 홍송(紅松) 등이 집의 골
격을 이루는 대부분의 재질이다.

특이한 게 창틀이다. 전면창도, 그렇다
고 쪽창도 아니다.
앉아서나 누워서, 그리고 서서도 바깥
풍경을 훤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리 보
인다. 방문 또한 마찬가지다.
통풍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 이들 부부에게 팔짱이라도 껴보라 했더니 씩 웃고 만다.

사방은 청산,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울도 담도 없는 시골집이라 그런지 텃밭까지 합치면 2천여 평 남짓하다.
뜰에는 장승, 솟대, 옹기가 제각각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장승은 지킴이고 솟대는 소원성취를 비는 장대요, 항아리는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집은 사람이 입는 옷이나 매 한가지다.
그런 옷을 입고 사는 집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우선 바깥주인 이한식씨부터 만나보자.

한때는 작곡가였고 지금은 화가이자, 남의 집을 지어주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는 왼팔다리가 없다.

열 두 살이 되던 해에 폭탄을 가지고 놀다가 이지(二肢)를 파편에 날려버린 것이다. 작곡가가 된 사
연은 이렇다. 9남매나 되는 가난한 집안, 잃어버린 왼팔다리, 그러나 믿고 의지할 것은 자신밖에 없
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독학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이 그러하
듯이.

상실감,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공부였지만 1963년에 아세아 레코드사의 전속 작곡
가가 되기에 이른다. 김상희, 나훈아, 김하정 등 기라성 같은 가수들에게 곡을 써주기도 했다. 그리
고 독집 앨범을 내기까지 했다.

▲ 별채 위층의 누마루는 길손들의 쉼터가 된다.

그는 트럼펫 연주에 능숙하다.
한 손으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악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씨는 작곡가의 길을
접고 만다.
음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바
닥의 아귀다툼에 넌덜머리가 난
때문이다.

이씨는 자신이 장애인이었던 까
닭에 음악을 할 당시 장애인 돕
기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큰 일을 벌인 적이 있다.
‘걸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45
일의 대장정에 오른 것이다.

왼쪽다리에 의족을 한 채. 그리고 틈만 나면 트럼펫을 불면서 전국을 누비며 장애인들의 딱한 처지
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씨는 말한다. 진정 장애인을 돕는 일은 물질적인 것보다 따뜻한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라고.


▲ 창문이라기보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잃어버린 ‘나의 왼팔’과 같은 부인 윤옥자씨

그때 이씨는 잃어버린 ‘나의 왼팔’을 찾았다.
지금의 부인 윤옥자씨를 만난 것이다.

당시 윤씨는 자선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고 숙부에게서 전각(篆刻)을 전수 받은 터였다.
이러한 두 사람의 만남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화가와 조각가라는 연결고리가 튼실하다.

음악을 그만 둔 이씨가 화가로 ‘전업’했기 때문이다.
물론 독학이지만 남들이 뭐하고 하든 개인전을 두 차례 연 엄연한 화가이다.
97년에는 풍자성이 강한 유화 소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부인 윤씨는 주로 장승을 조각한다. 밑그림은 남편이 그리고 윤씨는 끌과 망치로 형상을 빚어낸다.
이들은 지난 99년 4월에 ‘이한식·윤옥자의 장승, 솟대, 옹기와의 만남 전(展)’을 가지기도 했다.
이 작품전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지리도 때 묵어 애달파 빛나는 것들의 해후. 인위적인 것들이 모든 가치의 잣대가 된 지 오
래... 편리한의 속성이 큰 기치에 짐짓 놀라 도망 오듯 내내골에 작은 움막을 지었다. 도로가 아닌
진정 길을 찾아 나서는 뭇 군상들을 만나고픈 덜 떨어진 그리움으로 구차한 육신을 꼼짝거려 새벽이
슬 맞고 올 사람내음과 길가에서 맞닥뜨린 것들을 빚어 보았다. 울 할배, 할매, 그리고 새, 돌부리,
장독대, 그리고 나까지...’

▲ 이제 막 감은 머리결을 아내가 만져주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 부부의 집을 기웃
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들고 있다.
오가다 ‘씨래기국’한 그릇 먹으러 오는 사
람들, 차 한 잔 마시러 오는 이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이런 집을 짓고 싶다며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씨는 흙집을 몇 채 지어주기도 했고
양산 통도사의 미술관 건립의 총책임을 맡았
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건축업자가 된 셈.
그 집을 들른 사람 중의 어떤 이는 그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길을 찾는 이 / 배꽃 흐르는 배내 깊은 산골에머무르니 / 문 앞에 장승 세우고 / 창가에 말탄 담쟁이 오월 장미꽃 잎은 붉은 호수에 뜨네 / 목이 길어 슬픈 여인의 노래처럼 마당에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 부엉이 우는 밤도 그대는 외롭지 않겠네

/ 왜 사느냐면 말총머리 총각님 / 소이부답(笑而不答) / 마음이 한가하니 사방은 청산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 이젤에 짐 지어 콧노래 부르면 / 선녀는 달 같은 웃음 맞장구치고 / 구름도 흥에 겨워 바람 옆에 고개를 넘으면 /

달빛에 키 자란 장승도 덩실덩실 춤을 추네 / 내 좋은 사람과 함께 바뀐 계절에 배내(梨川)에 오면 / 줄 선 배부른 항아리 같은 마음으로장미홍 짙은 향기 잠시 빌려 주겠소 / 길을 찾는 궁전의 주인님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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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정하 -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출처 : 흙집마을
글쓴이 : 비즈니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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