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3장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 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사람마다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다르고 민족마다 다르고 남자와 여자 간에도 각기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다릅니다.
동양의 사랑의 표현 방법과 서양의 사랑 표현 방법도 다름으로 동양에서 자라다가 이민 온 우리는 가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보고 미소를 지을 때에는 동양에서는 상당히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지만 미국에서는 아무나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미소를 먼저 여자가 남자에게 보냅니다. 한국에서 관광을 온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어느 아름다운 아가씨가 자기를 보고 미소를 보내어 자기를 무척 좋아하는 줄 알고 손을 잡았다가 봉변을 당한 일도 있습니다.
문화의 차이로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다르고 같은 문화권이라 하여도 연령에 따라서 사랑의 표현의 방법이 달라집니다.
어린아이를 사랑할 때에 다 큰 아이를 사랑할 때의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사랑 할 때와 이삭을 사랑 할 때와 야곱을 사랑 할 때와 요셉을 사랑 할 때의 사랑의 표현이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고난과 시련을 주면서 사랑하시다가 결국 만민의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삭을 사랑할 때에는 이삭에게는 별다른 시험과 역경이 없이 사랑하시어 거부가 되게 하시고 농사를 지으면 다른 사람은 흉년이 들어도 이삭은 100 배나 수확하고, 파는 우물마다 물이 나오는 축복으로 사랑을 하시었습니다.
야곱을 사랑하실 때에는 무진 고난과 고생을 당하게 하면서 사랑하시어 번성의 축복을 받게 하시었습니다.
요셉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요셉을 어려서 고생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하는 어려움을 겪게 하시다가 갑자기 애굽의 2인자가 되는 축복으로 사랑하시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각 성도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다름을 알고 네가 이렇게 사랑을 받았으니 나도 똑같은 사랑을 받겠다고 하지 말고 각자 개성 있는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랑을 받는 성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으로 나에게 가장 합당한 사랑의 표현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계심을 믿고 그 사랑을 감격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없이 많은 사랑의 표현 가운데 오늘은 잠잠히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살펴보겠습니다.
잠잠하다는 말은 아무 말이 없이 조용하다는 뜻입니다. 잠잠한 사랑은 남성적이고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을 사랑 할 때에 이러한 사랑을 사용합니다.
백날이나 돌쟁이 어린아이에게 잠잠한 사랑을 준다면 어린아이는 사랑을 느끼지 못함으로 함께 웃고 까불고 하는 사랑, 똑딱이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도 역시 아들이 있고 자식이 셋 이나 있음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식이 무엇을 합당한 것을 요구하면 나는 어렵고 힘들어도 자식에는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신을 고치며 먼지를 쓰고 한 푼 두 푼 씩 벌은 돈, 다른 사람의 더러운 옷을 빨아 주고 뜨거운 다리미로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벌은 돈이지만 자식이 요구 할 때에는 아무리 힘들게 벌은 돈이라 하여도 아낌없이 주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성장도에 따라서 사랑의 표현이 다릅니다.
우리는 미국 사람같이 전화를 끊을 때마다 I Love You 라는 말을 안 하여도 동양 사람들은 부부간에 더 정이 깊어 이혼도 잘 안하고 살지만 미국 사람들은 전화 할 때마다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여도 이혼율은 40 %를 웃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잠잠하신 사랑을 깨닫고 더욱 성장한 사람으로, 성장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의 방법은 말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 사랑해요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요한 복음 14장 2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성장한 믿음의 아들들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매시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안 하여도 하나님의 계명을 항상 쫓으며 살아가는 것은 나도 잠잠한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사랑 관심밖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나를 잠잠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 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은 내가 믿음을 갖고 잠잠히 묵묵히 순종의 삶을 살 때에는 기뻐하시며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즐거이 내 이름을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러한 잠잠한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1. 햇빛같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시편 84편 11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은 해와 같이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첫째로 해는 빛을 밝게 비추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살 때에는 어두움의 권세, 흑암 권세 아래에서 마귀의 종으로 살며 죄를 지어도 죄 인줄을 모르고 죄를 느끼지도 못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빛 되신 하나님의 자녀로 죄를 멀리하며 죄를 회개하며 닦아 내며 살고 있습니다.
얼굴에 숯검정이 묻었을 때에 캄캄한 밤중에 거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자기의 숯검정이 보이지 않지만 촛불을 켜고 촛불 밑에서 보면 큰 검정이 보이게 되어 닦아 내게 되고 전깃불 아래로 가면 더 잘 보여 작은 검정까지 닦아 냅니다. 그러다가 밝은 태양 빛 아래에 나아가면 내 얼굴의 검정은 물론 주근깨까지도 환하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닦아주고 알려주어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에 하여 주십니다.
둘째로 해는 우리를 따뜻하게 하여 줍니다.
해가 지구 가까이 오고 햇볕을 쪼여 주는 시간이 길면 봄이 되고 만물이 싱그럽게 자라는 여름이 되지만 태양이 멀어지면 가을이 되고 추운 겨울이 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해가 되셔 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은혜 안에 살며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이 나와 가까워지면 우리가 신앙이 좋다고, 뜨겁다고 말하게 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지만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람은 추운 겨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햇빛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무심하게 고마움을 모르고 의례히 그러려니 하고 무심하게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해와 같이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빛을 비추고 따뜻하게 하여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디를 가든 내가 알고 느끼기 어려운 잠잠한 사랑을 항상 주시고 계십니다.
햇빛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느낄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잠잠한 사랑은 들리지 않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를 느끼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였을 때에 보이지 않는 손길의 도움을 받아 살아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듣는 간증입니다. 보통 때에는 모르다가 위급한 일을 당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보호하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좌우상하에서 잠잠히 나를 사랑하시고 지키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 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2. 원수의 꾀를 폐하여 버리시며 나를 보호하시며 사랑하십니다.
느헤미야서 4장 15절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 하였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어려운 고비를 당하는 일이 많이 있을 때에 어려운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지 않게 숨으시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 도우시는 방법의 하나가 원수의 꾀를 폐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운이 좋아서, 내가 잘하여서 성공한 것으로 착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으로 내가 이기고 승리하여 출세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 듯하지만 다 보시고 도우시고 계십니다.
욥기 11장 11절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하나님은 잠잠히 계시며 내가 느끼지 못하도록 섭리하시며 도우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달리시어 큰 고통 중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며 큰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이 잠잠히 계셨지만 사람 보기에 잠잠히 계신 하나님이신 것이지 하나님은 그 순간에 우리를 위하여 아담이 범죄한 후부터 정하신 일을 이루시며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큰 일을 하시고 계시었던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가 십자가에 죽어 갈 때에 원수 마귀가 승리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겠지만 실상은 저의 꾀를 폐하여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것은 인간의 사소한 일까지 간섭하시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잠잠히 옆에서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시작 할 때에 부모가 미리 장애물이 되는 것을 다 치워 주고 혼자서 걷게 하고 넘어져도 혼자서 일어나게 하며 상관하지 않는 듯하지만 마음은 자식이 혼자서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를 할 때에 대견해 하시며 기뻐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나의 장애물을 모두 미리 치워놓으신 후에 내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행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간섭할 뜻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믿음의 성장함을 보여주는 자녀가 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험도 내가 담당 할만한 시험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잠잠히, 침묵으로 사랑을 하시며 나를 도우시고 원수의 모든 꾀를 폐하여 버려 놓고 능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기다리시고 이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3. 구하기 전에 미리 알고 계시니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마태 복음 6장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꼭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시지만 이 보다 더 먼저 하여야 할 중요한 일을 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일을 할 때까지 하나님은 잠잠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일은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이 짧아서가 아니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만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기 전까지는 축복을 받지 못하였지만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부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모든 면에서 복을 주시었습니다.
창세기 24장 1절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복이란 반드시 행한 일의 결과로 받는 것이지 행함 없이 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하나님 보시기에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어렵고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이 잘 살고 평화롭게 기쁨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잘살기 전에 먼저 하여야 할 일을 잘 할 때에 이러한 축복의 결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솔직한 말로 우리가 재물이 많으면 이 재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전을 많이 세우고 선교를 하는 일에 재물이 사용된다면 하나님께서 재물의 복을 어찌 안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재물이 많으면 사람이 교만하게 되고 목에 힘이 들어가고 오히려 저주를 불러오는 일을, 죄악에 빠져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유익이 되고 善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재물을 주시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없이 축복을 받아 잘 살 때에 우상을 섬기고 교만하여지고 음란의 길로 가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람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르호보암 왕이 나라가 부강하니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고 웃시아 왕이 부강하여지니 교만하여 제사장 이외에는 제사를 드릴 수 없는데도 자기가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다가 문둥이가 되었고 히스기야 왕도 하나님을 잘 공경하여 재물의 복과 건강의 복을 받으니 교만하여져서 재물을 자랑하다가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지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 나를 나보다도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부강하여지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저주를 자초할 것을 아심으로 나에게 적당한 것으로 날마다 채워 주시고 살아가게 합니다. 재물이 많고 축복 받아 잘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가 부강하여져도 하나님을 변하지 않고 사랑 할 수 있는 믿음이 먼저 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은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내가 잘되기를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며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알고 먼저 내가 항상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경외함과 사랑을 갖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시고 계시니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룻기 2장 16절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이 밭에서 곡식을 주어 시어머니를 공경할 때에 룻이 모르게 보아스가 자기의 일꾼들에게 룻을 위하여 곡식을 조금씩 일부러 뽑아 놓아 룻이 곡식을 많이 줏도록 하였습니다. 룻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오늘은 수입이 좋다 하였고 또 속으로 일꾼들이 왜 일을 이렇게 엉터리로 곡식을 많이 흘리며 일 하였을까도 하였을 것입니다. 룻은 자기가 부지런하고 운이 좋아서 곡식을 많이 주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미리 보아스가 다 알고 분부하여 놓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미리 아시고 준비하시고 일하여 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자기가 잘하고 운이 좋아서 성공을 하였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지 않으니 한탄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전도를 할 때에 저 사람이 예수를 받아들이고 믿겠다고 할 때에 내가 잘하여서 전도를 한 것으로 착각하지만 실상은 성령께서 이미 미리 저 사람의 마음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전도를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기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여러모로 성령을 통하여 미리 일을 하여 주시고 준비하여 두셨기 때문에 오늘 내가 그 열매를 먹으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에 3,000명이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는 것은 베드로가 설교를 잘하여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각 사람의 마음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위하여 여호와 이레로 역사 하시어 미리 준비하여 두심으로 나를 잠잠히 사랑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이레로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5.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 같이 우리를 잠잠히 기다리십니다.
누가 복음 15장에는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나누어 갖고 그 돈으로 허랑 방탕하게 허비하고 거지가 되었음을 알고도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태운 아버지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탕자가 돌아 올 때에 먼저 보시고 달려가서 아들을 반갑게 맞아 준 아버지의 잠잠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집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사랑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잠잠히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용서를 가지고 기다리는 사랑이 하나님의 잠잠하신 사랑,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정리: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잠잠하신 사랑입니다.
이 잠잠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도 같고 나를 떠나신 것으로 생각 될 때도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항상 우리 가운데 게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용서를 가지고 구원을 가지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 때에 눈에는 안 보여 지고 귀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고 만져지는 감각이 없다 하여도 여호와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시고 잠잠히 나를 사랑하시고 계신 것을 믿고 항상 두려움 없이 담대하고 강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햇빛같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시며 사랑하십니다.
소리는 없지만, 보수도 없지만 느끼게 하시며 은연중에 나를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2. 원수의 꾀를 폐하여 버림으로 나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상관 안 하시는 듯 하지만 하나님은 미리 원수의 모든 꾀를 폐하여 버림으로 내가 승리하고 성공하게 미리 역사 하십니다.
3. 구하기 전에 이미 모든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그 것을 소유할 자격을 갖추는 날을 기다리시는 잠잠히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4. 여호와 이레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도 모르게 미리 한 줌씩 뽑아서 나로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고 내가 잘하여 운이 좋아서 많이 얻었다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여 주시는 잠잠한 사랑을 주시고 계십니다.
5. 탕자를 잠잠히 기다리듯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하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이제는 장성하였으니 우리도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잠잠하신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도 하나님께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잠잠하신 사랑을 몰라서 의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시며 오늘도 잠잠히 사랑하시고 계심을 알고 감사와 찬송과 사랑 속에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 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하나님의 명령 (0) | 2006.03.03 |
---|---|
[스크랩] 신앙의 경주 (0) | 2006.03.03 |
[스크랩] 영광의 길 너 걷기전에 (0) | 2006.03.03 |
[스크랩] 바라봄의 법칙 (0) | 2006.03.01 |
[스크랩] 十字架의 道 (0) | 2006.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