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람은 바라 본 대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술을 끊었는데 술 광고를 보고 옛날 그 맛이 생각이 나서 딱 한잔만 먹겠다고 하다가 다시 술주정뱅이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뚱뚱한 여자가 아무리 살을 빼려고 하여도 살이 안 빠지더니 처녀 때 날씬하던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붙여 놓고 그것을 날마다 바라보았더니 살이 빠졌다는 일도 있습니다.
孟子 어머니는 맹자가 바라보는 대로하기 때문에 孟母三遷이란 말과 같이 세 번 이사를 하며 학교에서 글공부하는 것을 바라보게 하여 맹자를 길렀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례식 하는 것만 바라 볼 때에는 울기만 하고 장사꾼들이 장사하는 모습을 바라 볼 때에는 싸구려 소리만 하고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가서 글공부를 하는 것을 바라보니 공부를 많이 하다가 유명한 맹자가 된 것과 같이 우리도 바라 본 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혼인시킬 때에 부모와 가정환경을 보는 것은 은연중에 바라 본 대로 되어짐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보면 아들을 알 수 있고 어머니를 보면 딸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역시 목사를 보면 그 교회를 알 수가 있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목사들은 목사들이 설교 스타일이 조용기 목사와 같은 것은 항상 조 목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결과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라보는 대상을 잘 선정하고 그 바라봄을 날마다 열심히 함으로 나도 그 바라봄의 대상이 닮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정한 바라봄의 대상은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라 봄은 宣敎를 바라보고 救靈 사업을 바라보고 이 일을 열심히 할 때에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열매가 맺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서 바라 본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좋은 것을 바라보고 천국에서의 상급을 바라보고 이 일을 열심히 함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과 상급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 잘못된 것을 바라 본 결과
1. 하와의 경우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와는 생명나무를 바라보지 않고 선악과를 마귀의 말을 듣고 바라보다가 먹음직스럽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다가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리고 선악과를 먹고 죄와 저주와 사망을 인류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내가 지금 잘못 바라보고 있는 결과로 내 자손에게 그 잘못 바라본 결과가 미친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바라보고 예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롯의 아내의 경우
창세기 19장 26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어 죽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롯의 아내는 천사를 대접하고 천사의 손에 이끌려 소돔성을 탈출하고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고 뒤를 바라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어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뒤를 바라보는 사람은 명망 당함을 잊지 말고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말씀만을 믿고 그 말씀대로 앞만 바라보고 소망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노아의 아들의 경우
창세기 9장 20절 - 27절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노아는 홍수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지금도 아라랏산 눈 속에 4,500M 지점에 지진으로 두 조각으로 난 체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 후에 포도 농사를 짓고 포도주를 만들어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벌거벗은 체 잠을 잤습니다. 술에 취하여 아버지의 벌거벗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 함은 형들에게 알렸지만 형들은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벌거벗은 것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이불을 들고 들어와 덮어 드렸습니다.
그 결과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바라보고 말한 결과로 흑인들의 조상이 되었고 야벳은 백인의 조상이 되어 물질이 창대케 되는 축복을 받았고 셈은 동양인으로 축복 받아 예수 그리스도가 셈의 후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한 번 잘못 바라 본 결과로 인종의 역사가 축복과 저주로 바뀐 것과 같이 우리가 지금 잘 못된 것을 바라보는 결과는 우리의 후손에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4. 다윗의 경우
사무엘하 11장 2절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 왕은 지붕 위를 거닐다가 밧세바의 벌거벗고 목욕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음란한 마음이 들 때에 마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사 하여 간음을 하게하고 심지어 이 사실을 숨기려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이는 일로 번져 갔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잘못 바라본 결과로 다윗의 집안은 억망이 되어 형제간에 살인하고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하여 난을 일으키고 처첩들이 강간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만일 다윗이 잘못된 것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왕 중에 가장 훌륭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 번 잘못 바라 본 일로 재난이 오게 되고 그 화가 오래 동안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잘못된 것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을 항상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 잘 되는 것을 바라본 결과
1. 아브라함의 경우
창세기 13장 14절 - 16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바라보라 하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할 때에 순종하여 동서남북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바라 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번성과 잘되는 축복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2. 요셉의 경우
창세기 37장 5절 - 9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바라보고 살아 갈 때에 고난도 오고 역경도 있지만 하나님은 이 꿈을 버리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 보여주신 꿈대로 하나님이 아름답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유혹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보며 굳굳이 살아가는 요셉에게 더 큰 역경이 왔지만 이를 하나님께서 그 바라 본대로 형들이 와서 절하는 일로 이루어지는 애굽의 총리가 되고 자기 형제와 가족과 여러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3. 모세의 경우
히브리서 11장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세상의 재물, 부귀영화 보다 하나님을 바라 본 모세는 하나님의 귀히 쓰임을 받는 종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마고 약속한 상급을 바라보고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충성 봉사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이 주시마한 상급을 바라보고 세상의 부귀영화 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충성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은 풍채도 없으시고 모양도 없으시고 돈도 없으시고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바라 볼 때에 십자가를 지시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으시고 고난당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를 잘못 바라보았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내게 이익만을 주는 예수로 바라 볼 때에 이 이익이 내게 주어지지 않을 때에 실망하고 실족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 볼 때에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을 바라보고 예수의 희생과 용서와 충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도 저희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도 용서의 주님을 닮아 가야 할 것이요 희생의 삶과 충성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용서하고 희생하고 충성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이 임하는 것이지 내가 이러함이 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구함으로 문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죄를 짊어지시고 내 질병을 짊어지시고 마귀가 가져다 준 모든 저주를 짊어지시고 거두어 가시며 고난당하시며 희생하신 예수를 바라보고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희생이 없이 이해관계만을 따지고 계산만을 하며 사는 사람은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손해보고 억울하여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예수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주시는 주님이심을 바라보고 그 승리의 날을 바라보고 참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승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승리는 죽는 것이 승리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선언하시었고 죽으심으로 부활의 승리가 오는 것을 명심하고 나도 죽어야 승리함을 알고 항상 죽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교만이 죽어야 하고 욕심이 죽어야 하고 내 고집이 죽고 내 죄악이 죽을 때에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영광스러운 승리는 내가 주님을 위하여 죽는 순교가 최고의 영광스러운 승리임을 알고 우리는 주를 위하여 항상 죽고 주님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치는 거룩한 영광의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도 날마다 죽을 때에,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 날마다 나를 죽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에 성도의 승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예수를 바라보고 날마다 죽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리: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고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 결말이 달라집니다. 잘못된 것, 도덕과 양심에 어긋난 것을 바라보면 그 순간 마귀에게 승리를 주는 기회가 됨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바라 볼 때에 부정적인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못한다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할 수 있다, 나는 한다. 라는 긍정적인 것을 바라보고 노력하며 나 갈 때에 주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능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하여도 기왕이면 좋은 말, 칭찬의 말,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소망의 말, 희망의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같은 현실을 보고 같은 말을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말을 하여야 합니다.
물이 컵에 절반이 담겨 있을 때에 반밖에 없다. 라고 하지 말고 절반이나 있다 하고 은연중에 하나님께 감사의 말을 포함하여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본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용서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용서를 하면 내가 손해를 보고 체면이 손상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는 큰 은혜를 더 받는 것을 바라보고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의 주님을 바라보고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과 수고를 하는 그러함이 있을 때에 희생의 대가로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최후 승리의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죽음이 성도의 가장 큰 승리임을 알고 항상 교만을 죽이며 고집을 죽이며 욕심을 죽이며 살아가다가 주님을 위하여 생명까지 죽음으로 바치는 가장 큰 순교의 죽음으로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고 이 승리의 영광을 누리는 우리가 되는 각오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의 나의 고난, 연단, 어려움이 요셉이 당하는 꿈을 가진 자의 연단으로 알고 이제 애굽의 총리다 되어 꿈을 이루는 날이 곧 다가 올 것을 생각하며 예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승리의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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