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4당 의원이 스크린쿼터에
대한 여론조사를 공동으로 실시 발표했습니다. 가나다 순으로 김재윤(열린우리당), 손봉숙(민주당), 정병국(한나라당), 천영세(민주노동당) 의원이
그들입니다. 14일 전화로 실시된 이번 여론조사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설계 및 분석을 담당했고, 글로벌리서치가
실사(Fieldwork)를 맡았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자료에 의하면, 주요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스크린쿼터,
“유지해야 한다” 75.6%로 압도적 - 스크린쿼터 영향력, 긍정 64% > 부정 26% - 스크린쿼터 축소 및 폐지,
“한국영화 타격을 받을 것” 67.7% - 정부의 영화산업 지원금 방안, “미봉책이다” 60% - 정부지원금, 불충분 57.5%
> 충분 29.3%
국민 여론을 수렴해 관련 정책 수립에 반영코자 하는 의원들의 시도는 높게 평가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호의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여론 수렴이 객관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론조사 역시 기존 스크린쿼터를
유지하고자 하는(그래서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실시된 것으로 보입니다. 설문내용 곳곳에서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크린쿼터 '폐지해야' 대신 '축소해야'
먼저 ‘스크린쿼터 유지 찬성 75.6%’라는 조사결과를 도출한 설문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문) 스크린쿼터 문제와 관련, 다음 중 어느 주장에 더 공감하십니까? ① 미국과의 무역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만큼 폐지해야 한다 ② 부가가치가 높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을 보호해야 하므로 유지해야 한다
①번 응답은 “폐지해야”가 아니라
“축소해야 한다”가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①번 응답을 가급적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래야 ②번 응답이 많아지겠죠).
(조사자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응답을 ‘강하게’ 표현하면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간)
응답자들은 선택항목이 없습니다. 아마 이들은 ①번과 ②번 응답으로 어정쩡하게 나뉘거나 ‘모름/무응답’으로 답해야 할 것입니다.
대신 ②번 응답은 가급적 선택을 많이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부가가치가 높은’이란 ‘호의적인’ 표현을 끼워
넣었습니다. 몇 편의 일부 영화가 그랬지만, 한국 영화산업 전체가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어떤 산업이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데 대해 누가 선뜻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엔 ‘스크린쿼터
영향력 긍정 64.2%’라는 조사결과를 도출한 설문내용입니다. 문) 스크린쿼터가 한국 영화산업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① 한국영화의 성장을 이끄는 등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 ② 상업영화만 활성화하는 등 부정적 측면이 더 크다
연합뉴스
보도자료는 응답자들의 “스크린쿼터에 대한 인지도가 77.1%로 매우 높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것은 오보입니다. ‘잘 알고 있는 편’이란 응답이
9.2%에 그치고 있고, 나머지 67.9%는 ‘대강의 내용 정도만 알고 있다’고 대답했을 뿐입니다. 인지도가 낮은 편입니다.
스크린쿼터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국민들이 그 영향력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 부정 영향력을
버젓이 묻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영향력에 대한 설명이 응답결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겠죠. 긍정적 측면에 대한 설명, 즉 한국영화의 성장을
이끄는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쿼터 영향력의 부정적 측면이 “상업영화만 활성화하는 등”이란 표현으로
적당할까요.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정부 지원 4000억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서너 편 제작비에 불과하다”는 정답 제공
‘정부의 영화산업 지원금 방안, 미봉책이다 60%’라는 조사결과를 도출한 설문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대신 영화산업에 4,000억을 지원하기로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① 영화 제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적절한 지원책이다 ② 배급과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미봉책이다
정부의 4,000억원 지원 자체에 대해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더욱 더 모를 것입니다. 400억원이 적당한지, 4조원이 적당한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영화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은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배급과 유통 문제는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도 함부로 말하기 힘든 주제
아닙니까. 과연 우리 국민 중 몇 %가 영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4,000억원 지원 의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지원금, 불충분 57.5% > 충분 29.3%’라는 조사결과는 이번 여론조사의 백미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조사자의 의도가 너무 뻔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문) 그럼,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4,000억이 우리 영화산업의 경쟁력
유지에 충분하다고 보세요,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세요? ① 100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비용으로 충분하다 ②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서너 편의 제작비 밖에 되지 않는 비용으로 불충분하다
정부의 4,000억원 지원으로 인한 한국 영화산업 경쟁력 유지
여부에 대해선 일반 국민들이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①번 응답은 요즘처럼 제작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영화를 100편 정도 만들 수
있는 비용”이라고 (불가능한 현실을) ‘과장함으로써’ 응답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②번 응답은 “서너 편 제작비
밖에 되지 않는 비용”이라고 ‘현실화함으로써’ (4,000억원이 형편 없는 금액이라는 ‘정답’을 노골적으로 알려주면서) 응답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4,000억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단어를 사용해 미국 혹은 미국 영화에 대한 나쁜 선입관이
작용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1인 릴레이 시위 등의 영향으로 설문을 유도하지 않더라도 영화 관련 종사자들에게 호의적인
여론이 도출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스크린쿼터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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