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 소돔성의 멸망
본문:
창세기 19장 1- 28.
누가 17장 22절
서론:
소돔성과 소알 산간에서 위험.
세상에는 위험이 많습니다. 各樣 各色의 危險이 세상에 있지만 제일 위험한 것은 소돔성과 소알 山間에서의 위험입니다.
소돔상은 우리가 성경에서 본대로 유황불로 멸망을 받은 성입니다. 그 좋은 市街, 화려하고 놀기 좋던 시가는 소금 바다가 되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팔고 사고 하면서 분주하던 성입니다.
소돔성의 주민은 遺傳에 의하면 2만명 이상의 인구가 있던 곳이다.
아브라함과 문답을 합니다. 50, 45, 40,30, 20, 10, 義人 10人도 못되는 성이다.
놋의 집에 천사가 올때 놋은 不知中에 의인인지라 자기 집에서 대화 하였다. 그 때 패역한 惡者들은 그 젊은 두 소년을 내어 놓으라 할 때에 그 딸을 대신 주마고 하였다.
이 때에 천사들은 그자들의 눈을 어둡게하여 混例케 하였다.
古日(옛날)의 일을 왜 今日에 말하냐? 여기에는 까닭이 있다.
소돔성은 今日에도 많습니다. 소돔성도 많고 고모라성도 많다. 모든 義를 저버리고 世上人의 心理는 다 소돔과 같이 되었다.
모든 各國도 다 그러하도다. 天使는 東西로 다니며 義人을 찾는다.
세상은 위험하고 악하고 冷冷하여 차기가 어름같고 殺生을 일삼는 世上이다. 强者는 弱者를, 有識者는 無識者를, 有産者는 無産者를, 약자는 강자를 원망하고 눌린자는 누른자를 욕하고 混沌 세상이다.
그러나 한가지 희망은 속죄제를 준비하여 놓고 산중으로 가라는 그 말씀은 참으로 희망이요 속히 떠나라는 천사의 재촉은 대단하다.
山中은 너무 머니 소알성으로 가게 하여 달라고 말하였다. 놋은 사위 둘을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반대 하였습니다.
現代에 놋의 사위와 같은 자가 얼마냐?
처음에는 志士와 같고 第一 信者 같더니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신들만 가 보시오하는 形便이다. 좋은 일에는 나도, 나도 하다가 낮은 일이 당면하면 자기의 무엇이, 금전, 명예가 좀 손해가 될듯하면 당신들만 하시오. 나는 모른다고 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生活上 職業 敎人이 되지 말라.
하나는 선을 행하려 할 때에 악이 함께하여 반대 방면으로 나아간다.
그런식으로 지금 우리 조선은 각 방면으로 떠나간다. 우리는 좋은 일에나 궂은 일에나 死生을 同居하자. 좀더 澈底하자. 조선 교회 장래요 형식에 있지 말고 위험에 있지 말고 다만 소알성으로 다라나는데만 있다. 朝鮮 敎會의 將來는 시온산을 향하여 다라 나는데에 있다.
먼저 행할 것은 놋의 妻를 생각하라.
우리도 어서 가자. 재촉을 하면서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소알성을 향하여 산으로 산으로 자꾸 달아났다. 롯의 처는 後見함으로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이는 제일 위험한 짓이다. 요사이는 소금 기둥이 어찌 많은지 앞집에 金서방, 뒤집에 박 서방, 어느 누님, 어느 학생, 어느 친구 모두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산으로 산으로 향하여 달아나는 길에 거침이 되어서 남아서 소알에 못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저 먼산 넘어 속죄제물을 준비하여 놓으신 이가 오시면 먼저 소금 기둥을 대청소 할 것이다. 요새는 길을 가려고하여도 소금기둥에 걸려서 길을 못 가게 되니 아~ 可憐하도다.
어떤 선교사의 말 중에 내가 공부시켜 놓은 학생이 수 십 명인데 믿는 아이가 몇 아니 되니 나는 학생을 도울 생각이 없노라고 전한다. 차라리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낫다고 전하더라.
남이 갈 길도 못 가게 하니 그는 차라리 큰 돌을 목에 달고 깊은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나으니라.
지금 남을 引導하는 자여 ~
소돔성을 향하고 있느냐 아니면 소알성을 향하여 달리고 있느나? 소금 기둥이 되기 쉬운 것이다. 롯의 처를 웃지 말라. 한번 고개를 돌려본 것이 소금 기둥이 된 원인이다.
곧 죄악 세상을 愛하는 心으로 .
오늘날 이 말세는 교인들도 발 한번 잘못, 말 한번 잘못, 한잔 마시고, 모든 일은 瞬間的이다.
롯의 妻가 몇 만명 여인중의 대표자 이다.
소돔성을 나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요 달려가는 것이 問題이다. 우리 朝鮮人들이여 肉的生을 따라서 滿洲, 서백리아, 어디를 가기는 잘하고, 떠나기는 잘하나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信仰上 正路를 가는 것이 문제로다.
믿는 것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요 생명이 끝날 때까지 信仰路로 소알산으로 향하고 가는 것이 문제이다.
뒤를 回顧치 말라.
밭을 가는 농부는 뒤를 아니 보아야 한다. 老年은 항상 자기의 경험만 자랑하고 앉았고 청년은 놋의 사위처럼 어디 잘하는 당신들이 해보시요하니 三千里 밭은 거칠고 三千萬의 심령은 주렸거늘 누가 나서서 일하겠느냐?
過去를 생각하지 말고, 돌아보지도 말고 소알성을 향하여 나아가거라.
이 성경 말씀은 소알 산성으로 빨리 인도하는 捷徑이지만 우리의 부족으로 갈길을 막는 수도 있다.
우리 朝鮮은 무엇으로나 남에게 뒤떨어져 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사업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는 마치 비오는 날 우산받고 나무신 신고 마당 출입하는 사람 말이지 -
급해서 날뛰며 가는 사람의 말은 아니다. 큰 불이 붙는데 비나 왔으면 이 불이 꺼지겠는데
하는 사람과 같다.
한국 교회만 유익이 된다고하면 한 사람의 영이 라도 구할수만 있다면 아무 사업도 좋다.
농촌사업, 학교 교육, 자선사업,의료사업, 전도사업은 물론 아무것이나 다 좋다.
하루 짤리 소알 산성으로 가자는 말씀올시다.
우리는 나아가되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불과 구름 기둥을 따라 나선 것처럼.
조선 반도는 아무것도 없이 되었지만 불기둥, 구름기둥을 따라 갑시다.
불기둥을 든 천사가 오라고 왜치는 소리를 듣습니까?
무디 선생의 말씀 중에 한번은 森林중에서 불이 일어났다. 그는 어떻게 살아가려고 기다렸다. 그때에 용기를 내어 불을 마주 놓았다. 그리고 그 불탄 자리에 자기가 서 있음으로 살았다.
은혜의 열화는 우리 강산에 붙는다. 우리는 基督의 熱愛的火로 烈烈히 뛰어 나가자.
死海는 매우 자고 쓴 바다이다.
우리의 교회도, 가정도, 교회도 어찌 단단한지 死海 以上이다.
벌써 이같이 되었다고 한숨이 나간다.
결론.
놋은 소알산에 올랐다. 한숨을 쉬고 평안히 있었다. 보니 자기처는 소금 기둥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소망성에 지달 할 때까지 뒤도, 옆에도, 아무도, 아무런 말을 듣지 말고 앞만 향하야 위험을 면하고 살길로 뛰어나가서 소알 성에 다 入하여 기쁨의 노래로 이 강산위에 불러보자
소화 6년 4월 6일 청명 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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