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스크랩] 그리하면 살리라

鶴山 徐 仁 2005. 12. 28. 23:24
그리하면 살리라

 

  아모스 5장 4절 - 8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오늘은 너희가 살고자 하느냐 하는 문제를 갖고 말씀을 성삼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살기를 원하고 있고 살아도 오래 살고 건강하게, 평안히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면에서 세상의 다른 나라 사람보다는 육신적으로는 잘 먹고 사회 보장 제도가 잘 된 나라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면에서만 잘 살아간다고 잘 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영혼육이 모두 잘 되고 잘 살고 있을 때에 진정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적인 문제를 잘 살게 하기 위하여 문화라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나 책이나 TV를 보면서 음악을 듣고 예술을 보고 느낌으로 어느 정도 혼적인 면을 만족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이 있는 만물의 영장임으로 영적인 만족이 없이는 아무리 육신 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잘 살고 있어도 항상 부족함으로 채우지 못한 공허가 남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때나 아모스가 살고 있던 수천년전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때에 이스라엘은 번영이 극치에 달하였습니다.  살롬왕의 치세 때에는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장 보유하였습니다.  다메섹을 취하고 모압을 정복하여 강대한 나라,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가가 부유하여지고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잘 살게 되면 타락하는 것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그 타락은 영적인 타락으로 영적인 기갈이 오는 것입니다.  부유는 방탕과 무절제와 죄를 더하는 것이 됨으로 예수님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혼적으로는 잘 살았지만 영적으로는 잘 되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인 면에서는 죽은 자와 같이 된 것입니다.

아모스 5장 4절 - 5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우리가 진정으로 사는 길은 이렇게 할 때에 참 된 삶이 있는 것입니다.


1. 벧엘을 찾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형님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가다가 밤에 하나님을 만나고 제단을 쌓고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고 이름한 곳입니다.  벧엘이란 뜻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지만 나중에 여로보암 왕이 그 곳에 우상을, 금송아지를 세우고 금송아지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금송아지를 제사하는 곳으로 당시에 벧엘이라고 부를 때에는 우상 숭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는 데에 열심이었습니다.  매일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고 만사를 젖히고 우상을 섬기는 일을 제일 먼저 하였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일은 열심이었지만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아무런 제사나, 예배를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는 일에만 열심을 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역시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황금이 만능이라 생각하고 돈이 제일이라고 하고 돈을 버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는 사람들,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더 열심을 내는 일이 오늘날의 금송아지 우상입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우상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벧엘은 인기 있는 배우나 가수가 우상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의 우상은 물질과 명예가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가 주어지는 일이라면 돈을 얼마든지 투자하여 명예를, 감투를, 박사 학위를 사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열심히 섬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벧엘입니다.  이러한 벧엘을 찾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망하게 됨으로 벧엘을 찾지 말라고 아모스 선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2. 길갈로 들어가지 말라 하였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처음 들어와 진을 치고 거기서 할례를 하며 첫 유월절을 가나안 땅에서 지킨 곳으로 여호수아 당시에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중심지이며 축복의 중심지로 이스라엘의 본 진이 길갈에 있었습니다.

  길갈로 들어가지 말라는 뜻은 건망증에 걸려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망각하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며 범죄를 자청하며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길갈로 들어간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예수를 믿으며 큰 은혜를 받고 교회에 열심이었던 사람들이 길갈의 건망증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악에 빠져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도 지금 길갈에 빠져 있습니다.  청교도 때의 하나님의 축복을 잊어버리고 길갈에 빠져 점점 죄악으로 빠져 가고 있습니다.

  매년 예수를 믿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잘살고 육신이 편하고 문화가 발달하니 길갈에 빠져들어 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망각하는 일은 미국만 아니라 한국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중국 교회도 지금 처음 믿음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망각하여 물질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길갈에 빠진 사람은 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 생명을 얻기를 원한다면 길갈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받은바 은혜를 잊어버리는 까마귀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주신 바 은혜를 길이 길이 간직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가 되어야 살수 있는 것입니다.


3. 브엘세바로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5절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브엘세바라는 말은 일곱 우물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이 판 우물 수를 말하며 맹세의 우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브엘세바로 가지 말라는 것은 이교 적인 미신에 빠지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미신적인 신앙에 이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먹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는 생각을 갖고 브엘세바를 찾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에도 미신적인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미신이 있습니다. 

성경책을 죽은 사람과 함께 관속에 넣어 주고 장사를 지내는 것이나 목사님이 기도를 하여야만이 병이 떨어진다는 것이나 헌금을 많이 내고 이름을 밝혀야 축복을 받는다는 것 등은 기독교적인 미신입니다.

  이런 심령의 상태를 이용하여 이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때 박태선 전도관에서는 생수라는 것이 있었고 이것으로 간장을 만들고 이것으로 반찬을 찍어 먹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브엘세바로 가는 기독교적인 미신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는데 무슨 일을 하여야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브엘세바로 가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 이유도 천주교에 너무나도 많은 브엘세바가 있어 이것을 벗어난 것이 종교 개혁입니다.

  우리가 정녕 살려면 벧엘을 찾지 말고 우상을 버리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브엘세바로 나가지 말고 미신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찾으면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육신이나 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임을 알고 영이 사는 길을 항상 찾으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사는 길은 여호와를 찾는 길뿐입니다.

  아모스 5장 4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우리가 육신이 죽게 되고 혼이 죽게 되었을 때에 세상의 의사를 찾아가서 수술도 받고 치료도 합니다.  정신병 환자들은 혼이 죽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개인택시 운전사가 사람을 치어 죽이고 도망을 가다가 사람을 치어 죽이고 도망가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생각하고 다시 돌아가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일곱을 더 치어 죽이고 경찰에 잡힌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혼이 병이 든 사람입니다.

  육신이나 혼이 병이 들어도 치료를 하면 살아 날 길이 있습니다.

  영이 병이 든 사람은 예수그리스도께 나아 와야만 영이 치료를 받게 되고 영이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의 육신도 중요하고 혼도 중요하고 영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육신은 이미 70이 넘으면 다 늙어지고 쇠하여 버리고 100년도 못 살고 죽어 썩어지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혼도 역시 사람이 늙어지고 노쇠하면 활동 상태가 약하여지다가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하나님이 창조 때에 불어넣어 주신 생기임으로 생영이 된 것으로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합니다.

  영혼은 영생을 하는데 어디에서 영생을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뜨거운 불 못에서, 지옥에서 영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천국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신천신지의 낙원에서 영생 할 것인가가 다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사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찾는 길뿐입니다.

요셉은 노예 시장에 팔리는 종이 되고 노예가 되었지만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있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형제들도 요셉을 팔아 돈을 챙기며 요셉의 울부짖는 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친척 형제를 울부짖어 불러 보아야 아무런 도움이 없습니다.

  사람을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던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국무총리가 되고 좋고 편안할 때에도 요셉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은 요셉은 결국 자기 가족과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며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지는 일을 경험하고 성공하였습니다.

  오직 우리의 사는 길은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당하던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찾는 길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하여 있던지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창조자로, 나의 모든 것을 매끼고 의지하고 기도하고 믿으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2. 언제 하나님을 찾을 것인가?

1. 평안 할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가정이 형통하고 화목하고 자녀들이 잘 되고 건강 할 때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어 갈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봄에는 싹이 트고 여름에는 줄기를 맺고 꽃을 피우듯 가정이 잘 될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가을에 좋은 열매를 맺고 겨울에 잘 월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형통의 축복을 누릴 때에 더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하여 두면 반드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때에, 인생의 겨울이 다가 왔을 때에 그 때에 어렵지 않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면 지금 내가 예수를 잘 믿고 기도를 많이 하며 믿음의 모범을 보이며 살아야 그 자녀가 장차 잘 되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은 인생의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당하는 일입니다.

  젊어서 열심히 은혜의 생활을 하여 두면 노인이 되고 죽음이 다가 왔을 때에 담대하게 감사함으로 삶을 마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젊어서 선교사로 선교지에서 고생을 하다가 노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을 봅니다.


  노인이 된 선교사들은 인생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만족과 기쁨으로 주님 앞에 가는 것을 봅니다.  내가 잘 아는 선교사인 한 부선 선교사도 역시 그러함으로 소천하여 하나님께 갔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좋고 젊고 건강 할 때에 하나님을 찾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좋은 환경에서 문화생활을 하며 호강을 누리고 있을 때에 선교사들은 미개한 나라에 와서 많은 고생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의 일꾼으로 고생을 하며 평안 할 때에 하나님을 찾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갈 때에 기쁨으로 가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좋을 때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더 감사한 일입니다.


2. 범죄하고 매 맞을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일 때에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가 범죄를 하면 매를 들어 징계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없는 사람은 사생아라고 말하였습니다.  누가 자기 아들이 나쁜 일을 하는데 보고만 있을 아버지다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내 사랑하는 자녀가 나쁜 일을 크게 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일을 할 때에는 엄히 징계를 하십니다.

  징계를 받을 때에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고 하나는 이를 갈면서 뛰쳐나가서 원수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에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니 마음에 찔려 회개를 하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이를 갈며 돌을 들어 설교자를 쳐 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4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설교자가 책임 질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에 찔렸을 때에 나타나는 반응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택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하나님을 찾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억을 할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다윗은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자기의 잘못이 없는데도 사울 왕이 죽이려 하여 몇 년 동안 피하여 숨어살았습니다.

  다윗은 억울할 때에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는 것으로 일을 끝마쳤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당하여 피난을 갈 때에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욕하고 저주 할 때에 부하들이 시므이를 잡아 단칼에 목베어 죽이자고 하였지만 이를 말리며 하나님께서 내 억울함을 풀어 주시리 라며 기도함으로 그 수욕을 참을 때에 하나님은 얼마 후에 시므이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일로 갚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을 찾아서 기도를 하는 우리가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일을 반드시 해결하여 주십니다.


4. 절망의 자리에 있을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었던 모든 것이 끊어 질 때가 있습니다.

  배신을 당하고 사업이 망하고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살아 갈 길이 막막하여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 할 때에도 하나님을 찾아야 하나님께서 살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세상에 믿을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목회를 하며 사회생활을 하며 경험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살을 같이 맞대고 살며 백년해로를 하기로 여러 사람 앞에서 맹세하고 서약한 부부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요 자식도 믿을 수가 없고 친구를 믿을 수 없고 오직 영원히 변함이 없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 말씀만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배신을 당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에 오직 하나님만을 찾는 우리가 되어 이 배신의 삶에서 살아나는, 구원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5.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때는 장소가 구별이 없습니다.  잠자리에서, 일터에서, 운전 할 때에, 잠을 자면서도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과 잠을 한 호텔에서 자는데 돌아누울 때마다 주여, 아버지여 하며 잠꼬대를 많이 하여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잔일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하고 잠을 자는데 나 좀 살려. 날 살려줘 하며 잠을 자며 말하여 또 저 사람이 잠을 자다가 죽을까 하여 무서워서 잠을 못 잔일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잠꼬대를 무어라고 말합니까?

  여보 여보 합니까?  아니면 마귀에게 쫓기며 나 좀 살려 줘 합니까?

  주여, 아버지여를 잠 잘 때에도 하나님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 잘 때에 주여, 아버지를 찾는 목사님을 하나님은 사랑하시어 큰 능력의 종으로 삼고 계십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을 찾아 하루 일을 의논하고 결심하고 감사하고 열심히 낮에 일하고 저녁때에 하루의 일을 마치고 보고함이 옳은 일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든지 어느 때나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찾는 자의 심정은 어떠해야 하는가?

1.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죄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계속하여 악을 행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도적질을 하고 성실치 못하면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으로 아버지를 욕되게 하며 살수는 없습니다.  항상 의를 쫓으며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 아들답게, 하나님의 명예, 아버지의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을 닮은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내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에 가문을 보는 것도 역시 이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2. 공의로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잘 못된 것은 고치고 죄를 범하지 않기를 노력하며 세상의 법은 물론 하나님의 법까지 잘 지키며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를 노력하면서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이 만나 주시고 영원한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3. 세상을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믿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질투를 불러오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일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다른 것은 하나님 다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나님의 질투가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일이 없이 하나님만을 찾고 섬기며 사랑하며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정리:

  사람들은 누구나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고 부하게 살기를 원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기를 원하고 오래 살기를 원하고 평안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더구나 이 세상의 삶이 끝난 후에도 영원한 나라에서 더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 때에 이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우리는 벧엘로도, 길갈로도, 브엘세바로도 가지를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찾아 영원한 삶을 얻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 만날 때, 하나님 나라에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서 지금 내가 하나님을 찾고 있으며 삶의 길을 가고 있는가를 돌이며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더욱 더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예배 참석을 부지런히 하고

  말씀대로 의롭고 정직하고 바르게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힘입고 살다가 주님 나라에서 담대하게 서서 칭찬과 상급을 받고 영원한 삶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

보리밭 언덕에 종다리 하늘 높이 지지배배 거리면 아이들은 새알을 찾으러 풀숲을 헤매이면 이내 하던 일을 잊어버리고
 
출처 : 블로그 > 은혜(恩惠) | 글쓴이 : 은혜 (恩惠)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