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1909년판
한국의 <사회학>
개론입니다.
사회학의
첫걸음이자 근본적인 질문이 바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입니다.
개인들은
어떻게/왜
사회를 만들거나 변화시키고,
사회는
개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구속하는지를 따지는 것이지요.
18세기
유럽 사회학자들은 주로 개인이 사회를 만들게 된 까닭과 과정을 이해하려고 했고 19세기의
학자들은 사회가 개인을 구속하는 방식을 따져나갔었습니다.
20세기
중반 너머서는 드디어 그 두 가지 과정을 한꺼번에 노력하는 편이지만요.
이
글은 아마도 한국에서는 근대 사회학적 관점에서 쓰인 공식적인 첫 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출처는
1909년
7월
20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논설입니다.
(평) 한 사람과 한 사회의 관계 천지가
넓고 넓지만 내 한 몸은 이 한 모퉁이에서 붙어살고 있습니다.
고금이
멀고멀지만 나 한 사람은 마침 이때에 태어나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작고 희미한 내 존재가 슬프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한 세상이 흰 망아지가 터진 틈을 지나가는 것 같이 빠르다고 하면서 그 동안이라도 베개를 높게 하고 내키는 대로 마음껏 살기를 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 한 몸 세상에 사는 것이 이가 옷에 붙은 것 같다고 하면서 술이나 마시고 노래를 불러서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고도
합니다.
물론
그런 것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작은 것만 보고 사람의 큰 것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작고
작은 일곱 자 몸에 국가의 편안하고 위태한 것을 실은 사람도 있고,
짧고
짧은 한치 혀로 시국의 형세를 돌려놓는 사람도 있고,
혈혈한
일개 학자로서 세계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도 있고 ...
...
효효한
일개 필부로서 만세의 인심을 얻어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프랑스에서
몇백 년에 걸친 참혹한 압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치를 세우게 한 것은 루소 학사 한 사람의 붓이고,
부패한
이태리를 개혁하여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한 것은 마치니 한 소년의 혀로 이루어진 일이니,
한
사람이 한 나라 사회에서 떨치는 힘이 얼마나 큽니까?
또
생각해 보십시오.
공자께서
혀가 둘이 아니고 눈이 넷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아시아 동부에서 많은 사람이 그가 끼친 교화를 입어서 마음이 유교 사상으로
젖었고,
예수는
몸이 셋이 아니고 팔이 여섯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각국에서 그 종교를 신봉하여 사람 정신의 주인으로 삼고
있으니,
한
사람이 한 사회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큽니까?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 보잘 것 없는 몸을 슬퍼하면서 세상일을 등한히 하고, 천지간의 거품 속에서나 왔다갔다하고, 세상의 어지러운 꿈에나 머물고 따르면서 몇...
...십
년을 지낸다면 이는 이름만 세상 사람이지 실상은 물위의 마름과 다름이 없으며 명색만 국민이지 언덕에 구르는 돌과 다름이 없어서 사회세력의 노예나
되고 말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자기 한 몸의 위치를 깨닫고 인류의 책임을 담당하며 사회의 중심점을 차지하여 거기서
활동하기를 시험한다면 시세를 만드는 사람도 '나'이고,
인민의
풍속을 인도하는 사람도 '나'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늘이 사랑하는 아들딸도 되고,
국민의
어진 스승도 되고,
사회의
지도자도 되어서 하늘을 뒤집고 땅을 돌릴 수도 있고 용을 붙들고 범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뜻 있는 사람들이여 사회세력의 노예가 되기를 즐겨하지 말고 풍속개량의 선봉이 되기를 구하십시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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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적으로
"사람은
(우주가
수증기 한 방울로도 넉넉히 죽여 버릴 수 있는)
갈대
같은 존재"라는
파스칼의 비유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사람의
작은 것'을
따지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파스칼이나 이 논설의 저자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큰 것'이
따로 있어서 위대함을 발휘하게 된다는 겁니다.
거의
맨 앞부부에 나오는 '흰
망아지가 터진 틈을 지나가는 것 같다'는
표현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북유편(知北遊篇)에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사는 것은 워낙 빨라서 벽에 난 틈으로 횐 망아지가 달려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人生 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는
말이 나오지요.
여기에서
'인생이
(덧없이)
빨리
지나감'을
가리키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이
표현은 사기(史記)의
유후세가(留候世家)에도
나오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도 강유(姜維)가
하는 말로 나오는데,
모두
장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썼습니다.
때로
백구(白駒)를
백마(白馬)로
바꾸는 정도의 변화는 있었지만요.
또
더러는 극구광음(隙駒光陰)이라는
말로 바꿔 쓰기도 했더군요.
장자가
왜 굳이 '흰
망아지'라는
말을 썼을까 궁금했습니다.
망아지라서
빠르다는 걸까요?
하얘서
신기하다는 걸까요?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흰
망아지가 빨리 달려간다는 소리에 신기해서 쳐다보려고 벽 틈을 바라보는데 휙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지요.
인생이
그와 같다는 겁니다.
한편
조선의 이황 선생은 이 표현을 빌어다가 과장을 좀 하셨더군요.
<퇴도언행론(退陶言行錄)>에는
퇴계가 아들 준(寯)에게
보낸 편지가 여럿 실려 있는데,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삼동의
긴 밤에는 열심히 수고하여 책을 읽어라.
지금
열심히 수고하여 학업을 쌓지 않으면,
세월이란
네 마리 말이 한 수레를 끌며 달려가는 것을 창 틈으로 언뜻 보는 것처럼 빠른 것이니,
한번
가버리면 뒤쫓아가기가 어렵다.
천번만번
마음에 새겨서 소홀하지 말거라,
소홀하지
말거라.
(三冬長夜 勤苦讀書 今不勤苦做業
隙駟光陰
一去難追
千萬刻念
毋忽毋忽)"
퇴계는
장자의 '망아지(駒)'를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말(駟)'로
바꿨습니다.
그러니까
이를 장자식 표현으로 되고치면
'백사과극(白駟過隙)'이
되겠지요.
흰
망아지 한 마리가 백마 네 마리로 변했습니다.
훨씬
장관일뿐더러 굉장히 빨라지지 않았겠습니까?
'인생이
덧없이 빨리 지나간다'는
뜻을 더욱 더 강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장자가
썼던 원래 표현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으므로,
암만
그래도 모방에 머문 것이기는 합니다만...
"옷에
붙은 이"라는
표현은 주로 불가(佛家)에서
환생(還生)의
인연을 비유할 때 즐겨 쓰는 표현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기억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옷에 붙은 이를 돼지에게 옮겨줬는데,
다음
생에 태어나 보니까 아내가 숯장수 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나 버렸다는 겁니다.
지나가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까 전생의 이가 현생의 아내로 환생했고 전생의 돼지가 숯장수로 환생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실,
저는
이게 무슨 교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생에
인연이 있으면 후생에는 바람을 피워도 된다는 걸까요?
아니면,
아무리
귀찮은 이라도 후생을 걱정해서 돼지에게 줘버리면 안 된다는 걸까요?
허허...
여기서는
그런 불교적 맥락과는 상관없이 '넓은
세상에 붙어사는 귀찮은 존재'
정도의
뜻으로 쓰인 것이라고 봅니다.
한편,
지난
글에서도 본 것처럼,
독립신문의
논설자가 숫자에는 퍽 약한 것 같습니다.
"작고
작은 일곱 자 몸"이라고
했는데,
이게
좀 그렇습니다.
한자는
30.3센티미터니까,
일곱
자면 2미터1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 거구가 돼 버리지요.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여전히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데는 변함이 없기는 하겠습니다만.^^
"짧고
짧은 한 치 혀"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의 혀는 길이가 약 10센티미터쯤
됩니다.
(지금
다들 혀를 빼물고 자로 재 보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 논설자는
'한치 혀'라고
했습니다.
한
치는 한 자의 십분의 일이니까 약 3센티미터가
약간 넘는 길이입니다.
'한
치 혀'라는
표현은 과장법일까요?
아니면
별 생각 없이 그냥 쓴말일까요?
아무튼
'세
치 혀'라는
표현에 익숙해 진 사람들은 이 표현을 보고 이해는 하면서도 웃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혈혈한
일개 학자"의
"혈혈(孑孑)하다"는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세 가지로 풀 수 있는 말입니다.
1. 우뚝하게
외로이 서 있다.
2.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롭다.
3. 아주
작다.
이중에서
두 번째나 세 번째로 풀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효효하다"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국어사전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다산(茶山)이 을축년(1805년) 겨울에 아암선사(兒菴禪師)에게 차를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썼던 걸명소(乞茗疏,
1805)에 보면 차를 끓일 때 보이는 다양다기한 모양을
묘사하면서 '효효하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기는 합니다. 그때의 '효효'는 '밝을 효(흰 백(白)자를 세 개나 겹쳐놓은
글자)를 두 번 연달아 쓴 것으로 희고 가볍게 일어나는 모양을 그린 의태어입니다.
아침 햇살 받으며 끓이는 찻빛은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밝게 일어나는 듯
하고,
낮잠에서 막 깨어 달이는 차는 밝은 달이 푸른 냇물
속에서 일렁이는 듯 하다.
(朝華始起 浮雲효효於晴天, 午睡初醒 明月離離乎碧澗)
(인터넷이 밝을 효자를 소화해 주지
못하는군요^^)
그러니 걸명소의
'효효'와 독립신문 논설의 '효효'가 같은 뜻일 리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한자의 다른 효자를 쓰는 표현이었을까요? 아래아 한 글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한자 사전의 모든 '효'자를 뒤져 봤는데, 뜻으로 그나마 가장 가까운 글자가 있다면 "빌 효"자 정도입니다. 그게 맞다면 여기서의 '효효한 일개 필부'는 '텅텅 빈, 즉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평범한 남자'라는 뜻이 되겠지요. 하지만, 한마디로 고백하자면, "효효한 일개 필부"의 '효효하다'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공자께서 혀가 둘이 아니고 눈이 넷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예수도 몸이 셋이 아니고 팔이 여섯이 아니었"다는 표현이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의미가 심상치 않습니다. 일단 공자와 예수를 비교하면서 인류에 미친 그들의 큰 업적을 둘 다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제국 시기의 이른바 선각자들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펴기 위해 유교가 편만했던 분위기를 대항하기 보다는 거스리지 않고 편승하려고 했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유교, 그리고 예수와 공자를 마냥 동등하게 소개한 것은 아닙니다. 아주 미묘하게나마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예컨대, 공자의 교화는 "마음"에 대한 것이지만, 예수의 교화는 "정신"에 대한 것임을 지적한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오늘날은 마음이나 정신이나 비슷한말로 점점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만, 1백여년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몸(신체)-맘(지정의)-넋(혼백, 정신)의 삼분법이 엄격히 지켜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중에서 넋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넋이 맘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마름"이란 '옛날 초가지붕을 엮기 위해 묶어 둔 지푸라기'를 가리킵니다. '세상의 사람'과 '물위의 마름'을 절묘하게 대비시킨 것인데, 저는 읽으면서 이 표현이 죽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마지막 부분에 "사회 세력"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이는 요즘 용법대로 "사회 안에서 힘있는 사람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봅니다. 요즘 말로 바꾸면 "사회 구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사회 구조의 희생물이 되지 말고, 사회 구조를 바꾸어 나가는 역동력 있는 개인이 되라"는 권고가 되는 셈입니다. 이른바 '제3의 길'이라는 표현으로 한때 한국에서도 유명해 졌었던 잉국 사회학자 앤쏘니 기든스의 구조화이론의 핵심이 여기
이미 드러나 있는 셈입니다.^^
평미레 옮기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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