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05. 12. 13. 19:56
 

[로그인]
신규회원가입




















 

(12월 13일)


 [1937 년] 난징(南京) 대학살

난징(南京) 대학살 현장

나치조차도 ‘야수의 행위’라고 비난한 ‘난징(南京) 대학살’이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양쯔강 남안의 도시 난징(南京) 전역에서 자행됐다.
1937년 7월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톈진(天津), 베이징(北京) 등을 점령한 후,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항저우(杭州)와 상하이(上海)까지 점령한다. 12월 10일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중지나방면군(中支那方面軍) 사령관의 공격 명령을 신호탄으로 일본군 6개 사단 20여만명은 3개방면에서 난징을 향해 진격해 들어간다. 결사항전을 외치던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3일 전 이미 충칭(重慶)으로 탈출한 상태.
12월 13일 마침내 난징은 함락되고 대학살의 서막이 시작된다. 무차별 사격,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는 등 잔인한 학살방법은 모두 동원됐다. 여자들은 소녀, 노파 할 것 없이 무차별로 강간당한 뒤 살해됐고, 젊은 남자들은 총검술훈련으로 베어졌다. 12월 13일자 도쿄(東京)일일신문에는 ‘중국인 참수(斬首)시합에 참가해 106명과 105명을 참수’한 두 소위의 사진과 찬양기사가 실렸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이 30여만명. 당시 난징의 총 인구는 70여만명이었다.
마쓰이는 전후 도쿄극동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처형됐으나 일본인들은 그를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과 함께 ‘순국칠사(殉國七士)’로 추앙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의 우익들은 이 사건을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밖에 무슨일이 ...   총 83 건 
* 표시된 상세내용을 조회할 경우 1건당 100원의 요금이 부과됩니다.

2003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 생포 
2002년 부시대통령, 김대통령에 전화 '여중생사망' 직접사과
1997년 EU, 11개국 회원국 가입 결정
1996년 유엔 사무총장에 코피 아난 피선 
1996년 구총독부 건물 완전 해체
1991년 중요무형 문화재 제90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 예능보유자 장보배씨 별세
1991년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화해와 불가침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1990년 노태우 대통령,소련을 공식방문(-17일)
1986년 말誌 '보도지침' 관련, 김태홍(민언협사무국장), 신홍범(민언협실행위원), 김주언(한국일보 기자) 구속 
1983년 대법원, 가정파괴범에 사형 확정
1982년 실명제 수정안 국회재무위 통과
1981년 폴란드 전역에 계엄령 선포 
1979년 신현확 제13대 국무총리 취임
1978년 주한미군 철수부대 1진 출발
1969년 리비아주둔 영국군 철수 결정


[ 1 2 3 4 5 6 ]


   

Copyright (c) 1999 The Chosunilbo All rights reserved.
Contact db@chosun.com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