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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통계자료

[집중취재 | 여론조사 전문가 7인 분석-정당 지지도의 허와 실] 한나라당은 왜 30% 정당인가?

鶴山 徐 仁 2005. 11. 29. 16:20
[집중취재 | 여론조사 전문가 7인 분석-정당 지지도의 허와 실] 한나라당은 왜 30% 정당인가?
“嶺南 텃밭으로는 벽 못넘는다…左로 가야 ‘연패’ 설욕 가능”
박종주_월간중앙 차장(jjpark@joongang.co.kr

이명박 시장이 부인 김윤옥 씨와 함께 ‘아름다운 가게’ 행사에서 판매 봉사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정당 지지도 30%를 기록하고 있다. 4개 정당 중 1위로, 열린우리당과의 격차도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영남 중심의 보수 안정층을 뛰어넘지 못하는데다 외연 확대를 위한 전략도 부재해 이대로 가면 차기 대선 승리도 난망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사회분야 여론조사 전문가들로부터 한나라당의 지지도를 어떻게 보는지, 이명박 서울시장의 지지도 상승은 한나라당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지 등을 들어보았다.

도움말(가나다順)

김원균·리서치&리서치 사회조사본부장
김지연·미디어리서치 사회여론조사본부장
김헌태·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장
신창운·중앙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안부근·미디어리서치 상임고문
허진재·한국갤럽 연구3본부장
홍형식·한길리서치연구소장

"결국 게도 잃고 구럭도 잃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한나라당 비주류 소장파의 한 사람인 남경필(수원 팔달) 의원은 지난 10월1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광주를 넘어 대선 승리까지’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 광주 재선거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당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광주 재선거에 공천 신청한 홍사덕 전 의원을 “대통령 탄핵의 주역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지난해 3월 탄핵안 발의 때 당 원내총무를 맡았던 홍 전 의원은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를 결행했다.

공천 심사 과정에서 홍 전 의원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나오자 박근혜 대표도 “홍 전 의원을 공천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은 홍 전 의원의 선거를 도왔다는 이유로 당 소속 광주시의원 2명을 출당조치하기도 했다.

홍사덕 전 의원의 공천 탈락에는 당내 중진들의 거부감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전 의원은 16대 국회에서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중진으로, 이번에 당선되면 6선이 된다. 현재 한나라당에서는 강재섭 원내대표, 박희태 국회부의장, 김덕룡 전 원내대표, 이상배 의원 등 4명의 5선의원이 최고참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홍 전 의원이 금배지를 달고 돌아오면 당내 최다선 의원이 될 판이었다. 일부 당직자와 중진들이 이 점을 꺼려했던 것이 ‘홍사덕 탈락’의 진짜 배경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지방선거보다 당 미래에 대한 토론이 더 중요”

▶박근혜 대표가 지난 9월21일 서울 숙명여대에서 특강을 위해 강의장에 입장하면서 학생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한나라당의 지지도의 최대 10%는 박 대표의 대중적 인기 덕분에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박 대표 비서실장으로 있던 유승민(비례대표) 의원을 대구 동을 후보로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강철(전 대통령 시민사회수석) 후보와 맞설 ‘경쟁력 있는 후보’라야 한다는 이유로 공천 신청 시한을 연장하고 비례대표 의원을 사퇴시킨 뒤 지역구 후보로 내려보내는 편법까지 동원했기 때문이다.

유 의원 공천을 전후해서는 박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 간의 갈등설도 나돌았다. 강 원내대표가 “지역구도를 해소하고 선거 과열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대구 동을에는 후보를 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강 원내대표는 같은 대구·경북의 맹주 자리를 놓고 대구 출신인 박근혜 대표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는 평가를 받아온 터였다.

때문에 강 원내대표의 ‘무공천’ 주장이 박 대표에 대한 견제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았던 것. 박 대표가 측근인 유 의원을 대구로 내려보낸 것을 강 원내대표에 대한 견제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남경필 의원은 공천을 둘러싸고 빚어진 일련의 난맥상을 거론하면서 “당 대표가 공천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막바지에 지도부의 영향력이 일정부분 공천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면서 박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남 의원은 이어 “중요한 것은 당의 미래 방향에 대한 토론과 거기에 어울리는 인물 발굴과 영입”이라면서 “지방선거는 ‘추수’가 아니라 ‘파종’임에 합의할 때 대선 승리가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재·보선이라는 작은 싸움에 매달리기보다 대선이라는 큰 승부에 대비한 노력이 더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두 차례나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과연 대선 승리를 향해 가고 있을까? 제1야당으로서 유권자들의 지지에 부합하는 경쟁력은 지니고 있는 것일까?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론조사 전문가들로부터 이에 대한 답을 찾아 보기로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는 국내의 대표적 여론조사 기관의 대표 또는 실무책임자 7명이었다. 기사에 나오는 영문 이니셜은 직업의 성격상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사견(私見)을 밝히기 꺼려하는 당사자들을 익명으로 처리하기 위해 임의로 붙인 것으로, 실제 성명과는 무관한 것임을 밝혀둔다.

35%만 얻어도 50% 지지 의미

조사기관과 시기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근래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다. 양당 간의 격차는 평균 10%포인트 안팎으로 보면 합리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17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이 10%대 초반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그 뒤를 잇고, 민주당도 4~5%의 지지를 얻으며 ‘4당체제’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지도 1위 정당’인 한나라당이 얻고 있는 30%의 지지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조사 전문가들 대부분은 30%의 수치를 ‘나름대로 합당한 지지’로 평가했다.
정당 지지도는 복수 정당을 대상으로 하는 상대평가다. 대다수 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이 30% 안팎에 달한다. 유의미한 응답은 70%에 그친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는 35%만 얻어도 실질적으로는 50%의 지지를 의미한다는 것이 조사기관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나라당이 얻고 있는 30%대 초반의 지지도를 ‘합당한 결과’로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다. A씨는 “응답자들이 지지 정당을 명확히 밝히는 경향이 높아지는 선거 전후 1개월, 집권 초기의 여당 등 제한적인 시기에 40%대의 정당 지지도가 나타나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정상적인 정치상황에서 정당 지지도가 40%를 넘기란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A씨는 “특단의 상황에서는 정당 지지도가 이례적으로 폭등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며 지난해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를 예로 들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46.8%(갤럽 조사)라는 폭발적 지지도를 앞세워 총선에서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얻었다.

“30%대의 지지는 여론조사의 속성과 우리 정치권의 4당체제를 감안하면 상당히 평가할 만한 결과며, 한나라당이 나름대로 좋은 정책을 제시하는 등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도 이론상으로 보면 지지도가 35% 이상 올라가기 힘들다”는 것이 A씨의 결론이다.

B씨는 우리나라의 정당 지지도를 이해하는 유용한 틀로 ‘4:4:2 구조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영남 원적자(原籍者)들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전체 인구의 40% 정도 된다는 것. 이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반면 지역적으로는 호남 원적자들이 중심이 된 가운데 진보 또는 개혁적 성향의 유권자 역시 40%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앞의 40%와는 다른 정치·사회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20%는 앞선 두 부류의 40%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돌아가는 기존 질서와 정치체제에 거부감을 갖는 층이다. 이들은 뚜렷한 대안은 없어도 늘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성향이라는 것.


“지지도의 최고 10%는 박근혜 대표의 공”

B씨는 ‘4:4:2 구조’는 투표율이 최소 70%대에 달하는 대선에서 곧잘 나타난다며 1997년 대선을 전형적인 사례로 들었다. 당시 선거 결과는 김대중 후보 40.2%, 이회창 후보 38.7%, 이인제 후보 19.2%의 순이었다. 당시 대선은 “20%대의 득표력을 지닌 제3후보가 나오면 1위와 2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경우이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때의 후보별 득표는 노무현 후보 48.9%, 이회창 후보 46.6%, 권영길 후보 3.8% 등이었다. B씨는 이를 ‘제3후보’의 득표력이 전보다 현저히 떨어지면서 ‘4:4:2 구조’가 ‘4.5:4.5:1.0’으로 일시적으로 조정된 것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후 민주노동당이 안정된 10%대의 지지도를 유지하면서 다시 원래의 4:4:2 구조가 복원되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 B씨의 분석이다.

B씨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정당 지지도는 평소에는 최대 30% 안팎으로 결집해 있다 대선 등 선거가 다가오면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가운데 40%대로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면서 “30%대 초반인 한나라당의 지지도를 합당한 것으로 보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D씨도 “정당으로서의 능력이나 업적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의 지지도 30%는 합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과한 측면과 모자라는 측면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지도 30%를 ‘실제보다 과한 것’으로 보는 이유는 ‘박근혜 요인’ 때문이라고 D씨는 분석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얻고 있는 지지도 가운데 적게는 5%, 많게는 10%는 박 대표가 기여한 부분”이라고 풀이했다. 박 대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치라는 점에서 현재의 한나라당 지지도 30%는 실제보다 과하다는 평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양김시대를 돌아보면 DJ(혹은 DJ당)의 지지도는 YS(혹은 YS당)의 지지도에 비해 견고했다고 평가한 D씨는 “한나라당 지지도도 연령·이념·지역 등을 살펴볼 때 나름대로 견고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따라서 지지도 제고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해나가면 지금보다 더 높은 지지도도 가능한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30%의 지지도는 실제보다 모자라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지지도가 30%대 초반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사 전문가들의 답변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이 좀처럼 지지 정당을 바꾸지 않는 한국적 투표 행태다.

C씨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투표시 출신 지역과 부모나 가족 등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러한 상황에서 행한 첫 투표의 기억을 뒤에 가서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시하고 참신한 후보가 출마해도 지지하지 않던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탄핵을 밀어붙였다 지지도가 15.8%(갤럽 조사)로 추락하면서 존립 자체를 위험받는 지경까지 내몰렸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30%대 지지는 엄청난 약진이 아닐 수 없다. 지지 정당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라면, 불과 1년6개월 사이에 지지도가 이처럼 급상승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02년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이회창 총재. 한나라당의 변화 시도는 미래가 아닌 과거와의 단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정답은 바로 ‘지지 유보층’이다. 속으로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만 탄핵을 밀어붙여 엄청난 비난을 받거나, 실정을 거듭해 국민의 평가가 엉망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일시적으로 지지를 철회하고 ‘무응답층’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지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을 뿐이지, 상대 정당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 때가 되면 다시 원래 지지하던 당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이 떠나 있던 지지층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점.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난해 총선 막판에 있었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을 대표적 사례로 든다. 당시 언론은 정 의장의 발언에 분노한 노년층 유권자(대부분은 한나라당 지지층이었다)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향한 것이 한나라당의 막판 지지도 상승의 직접적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여전한 ‘영남 의존형 정당구조’

하지만 조사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진실’은 다른 데 있었다. 대통령을 내쫓으려고 한 당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하기 쑥스럽고 자존심 상했던 사람들이 정 의장의 발언을 명분 삼아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C씨는 “정동영 의장의 발언이 정말 노인층 유권자들을 화나게 했다면 호남이나 충청권에서도 노인들이 투표하지 않거나 열린우리당 지지에서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섰어야 맞는데,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은 선거 막판에 야당 지지층이 결집하는 한국적 투표 행태가 재현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비록 제2당이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은 그런 상황 속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사 전문가들은 지난해 총선 이후 한나라당으로 복귀한 주된 지지층은 연령상으로는 40대, 지역적으로는 서울 거주자로 분석했다. 고학력층, 화이트칼라 중심인 이들은 급진 진보적이기보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원칙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수구적 이미지에 마음을 돌렸다가 박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당이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새로운 보수의 가능성도 열어준다는 판단에서 한나라당 지지로 복귀했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서울에서 한나라당 지지세 확산 추세가 두드러진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풀이다.

기사회생을 넘어 지지도 1위 정당으로 받돋움했지만, 핵심 지지층이 보수층인데다 지역적으로는 영남에 치우쳐 있는 점은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여전한 숙제로 지적된다. B씨는 이와 관련해 “영남권 유권자와, 영남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영남 원적자를 다 합치면 현재 한나라당이 얻고 있는 지지도와 거의 맞아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한길리서치연구소가 지난 9월2일 실시한 ‘지역별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한나라당은 대구·경북(41.7%)과 부산·경남(45.2%)에서는 정상적인 정치상황에서는 얻기 힘들다는 40%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서울(26.3%), 경기·인천(27.4%), 충청(28.4%) 등에서는 비교적 고른 지지를 얻었지만 전국평균 지지도 29.3%보다 조금씩 낮았다.

반면 전통적인 취약지역인 호남에서의 지지도는 4.8%에 그쳤다. 영남에서 얻은 일방적 지지로 다른 지역의 부족분을 채우면서 살림을 꾸려가는 ‘영남 의존형 정당’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4개 정당 가운데 지역별 지지도 편차가 가장 심한 정당도 한나라당이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30%대 초반에서, 그것도 지역적 편중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점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한 전문가들의 좀 더 세밀한 분석을 들어보자.

▶지난해 3월 탄핵 후폭풍 속에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과 당직자들이 여의도 한강 둔치에 천막을 치고 당의 개혁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E씨는 먼저 ‘안티 한나라당’의 존재를 들었다.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정당별 호불호를 조사해 보면 한나라당은 열성 지지층과 강력한 거부층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E씨는 그 비율을 50:50으로 봤다.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려면 반감을 지닌 사람이 적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적대적’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만큼 강한 거부감을 지닌 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당 이름만 듣고도 ‘5공의 후신’ ‘차떼기당’ 등으로 백안시하는 거부층은 한나라당의 외연 확대를 막는 거대한 장애물로 여겨진다.

E씨는 대선 같은 큰 선거판이 벌어지면 곧잘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의 구도가 형성되는 것도 거대한 안티세력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2002년 대선을 ‘노무현과 이회창’이 아니라 ‘이회창과 반 이회창’의 대결이었다고 진단하는 전문가가 많다. 이러한 강한 거부 정서가 존재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다음 대선에서도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구도가 나타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됐다.

E씨는 “한나라당은 어떻게든 대선에서 단독으로 50% 득표가 가능하도록 외연을 넓혀야 희망이 있다”면서 “당 지지도가 열린우리당을 앞서고 재·보궐선거에서 판판이 승리한다고 표정관리나 할 때가 아니다”고 말한다.

과거와의 단절에 급급한 ‘변화 시도’

이처럼 제약요인이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나라당은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 자체가 부족하고 노력의 초점도 잘못 맞춰져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가장 자주 지적되는 점은 변화를 위한 노력의 질과 관련된 문제다. 앞서 살펴본 4:4:2 구도를 전제로 살필 때 한나라당이 외연을 넓히려면 ‘좌(左: 진보나 개혁)’를 공략해야 마땅하다. 표나게 좌로 가기 어렵다면 우선 경계선상에 있는 20%를 향해서라도 가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가보안법 개정 논란 등에서 보듯 한나라당은 이념문제가 이슈가 되면 좌로 향하기보다 우로 갈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영남권의 정서와 당내 일부 보수 성향 의원들이 금방 제동을 걸고 나오기 때문에 좀처럼 우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한나라당은 선거철이 되면 제발로 걸어들어 올 ‘단골고객’을 상대로 판촉활동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는 것. 몇 안 되는 당내 개혁 성향의 소장파가 정치적으로 ‘매우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좌로 가는 흉내조차 못 내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로 곧잘 지적된다.

한나라당은 탄핵 후폭풍에 호되게 당한 뒤 ‘변해야 산다’는 공감대에서 좌로 가는 것을 포함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하는지 일반 유권자들은 잘 모른다. 조사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은 밖으로 무엇을 홍보하는 노력과 기술 모두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마케팅 경험 부족은 때로 진정성을 갖고 임하는 노력조차 어색한 쇼처럼 비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변화를 위한 노력이 ‘미래’보다 ‘과거와의 단절’에 집중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수구골통’ ‘차떼기당’ 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 되다 보니 ‘미래’와 연관시킬 수 있는 이미지 변신이나 메시지 개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탄핵 이미지’를 이유로 홍사덕 전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왜 집권당이 돼야 하는지, 집권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이 부분은 한나라당 지지도의 일정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과 연관돼 곧잘 도마에 오른다. “콘텐츠가 없다”는 지적은 박 대표와 한나라당 모두에게 던져지는 의문이자 아쉬움이라는 것이다.

G씨는 한나라당이 가장 자주 얘기하는 ‘민생 챙기기’를 걸고넘어졌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의 연정 제의를 거부할 때도 “지금은 민생을 챙길 때”라는 말을 꺼냈다. G씨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민생을 챙기겠다고 하는 것은 ‘나는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것만큼이나 막연한 이야기”라고 비판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서 민생을 챙기겠다는 내용물을 내놓든지, 그것도 아니면 ‘민생’이라는 키워드라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문이었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5공화국 시절의 민정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의 다선 중진들 가운데는 5공화국 때부터 요직에 있던 사람이 여럿 된다. 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민주화세력’이 대거 수혈됐던 15대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진보 성향의 인사들도 다수 들어왔다. 탄핵 후폭풍 속에서 치러진 지난해 총선 공천 때는 법조계와 관계에서 전문직 출신이 많이 영입돼 들어왔다. 그렇다 보니 지금의 한나라당은 좋게 말하면 ‘스펙트럼이 다양한 정당’,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총천연색당’이 돼버렸다.

사정이 이런 만큼 같은 사안을 놓고서도 의원들 간에 견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현안이 발생했을 때 당력을 한쪽으로 모으기가 쉽지 않다. 의원들 사이에도 적잖은 거리감이 느껴진다. ‘지난 시절’의 중진들은 소장파들을 당에 대한 고마움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고는 찾기 힘든 ‘웰빙족’으로 평가절하한다. 소장파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대하는 선배들을 ‘한나라당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기는 듯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놓고 서로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해결책을 찾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는 필요한 논쟁조차 ‘당내 갈등’으로 여겨 백안시해 버리는 분위기도 문제로 지적된다. H씨의 말이다.

“한나라당에는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씨의 경선 불복 때문에 패했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당시의 경험 이후 한나라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이 분열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 것을 키워 왔다. 토론이나 논쟁보다 화합과 일사불란이 강조되는 문화도 그래서 생겼다. 야당은 정책과 노선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야 역동성을 띨 수 있는데, 한나라당에는 그게 없다. 명색이 제1야당이라면서 야성(野性)은 고사하고 생명력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는 “한나라당은 영남을 벗어나야 하고, 이념적으로는 좌가 아니면 좌와 우의 경계선 쪽으로라도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외연을 넓혀 집권당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글자 그대로 ‘환골탈태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복잡한 당내 구성 등을 감안하면 그러한 큰 변화를 도모하다가는 정말 당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고민이자 모순”이라고 말했다.

‘역동성 없는 죽은 정당’으로 치부될 때가 많았던 한나라당이 역동성을 강제당할 수도 있는 변수가 떠올랐다. 박근혜 대표와 더불어 잠재적 대선 후보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지지도 약진이다. 이 시장은 청계천 복원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던 지난 8월부터 지지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복원 이후의 청계천이 연일 화제가 되면서 지지도상으로 박 대표를 추월하는 조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지난 10월5일 실시된 리서치&리서치의 ‘대통령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이 시장은 18.9%의 지지를 얻어 13.2%의 박 대표를 따돌렸다. 1위는 33.7%의 고건 전 총리였다. ‘한나라당의 차기 대통령 선호 후보’ 조사에서도 이 시장은 35.7%를 얻어 28.6%를 얻는 데 그친 박 대표를 제쳤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박 대표(41.3%)가 이 시장(39.8%)을 근소한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장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남성(41.1%), 고학력층(대재 이상:43.1%), 자영업자(44.5%), 서울 거주자(48.9%) 및 서울 출신자(46.3%)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박 대표를 선호한다는 응답층은 여성(34.1%), 저학력층(중졸 이하:35.1), 주부(36.4%), 부산·울산·제주 거주자(40.1%)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취재에 응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명박 시장의 지지도 상승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호각을 이루는 복수의 후보를 확보함으로써 대선 승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점이 우선 지적된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아들의 병역문제 등 문제점을 지닌 후보를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었던 지난 두 차례 대선의 아픔을 생각하면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원인 중 하나는 민주당의 국민경선에 견줄 만한 ‘드라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선두권의 두 후보를 동시에 확보하게 됐다는 것은 축복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과연 누가 후보가 될 것이냐’는 관심만으로도 충분한 흥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사 전문가들도 이명박 시장의 지지도 상승이 한나라당에 대한 관심을 높여 지지도 상승에도 일정한 기여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관심은 이 시장의 지지도가 과연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느냐는 쪽으로 모아진다. ‘청계천 효과’로 일컬어지는 반짝인기에 그칠지, 아니면 일정한 파괴력을 띨 것인지 여부다. D씨는 이에 대해 “이 시장의 지지도에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들어 있다”고 답했다. 여론조사, 그 가운데서도 지지도 조사에서는 청계천과 같은 이벤트 효과가 쉽게 반영되기 때문이라는 것. 청계천 효과가 의미 있는 상승세의 계기가 된 측면도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계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D씨의 평가였다.

이명박 시장의 지지도 상승이 청계천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복원이 가능하겠나” “복원이 무슨 큰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막상 서울 도심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는 이 시장을 ‘뭔가 이뤄내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변화가 지지도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의 약진’ 주목…박근혜인가, 이명박인가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 9월20일 저녁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주요 당직자들을 초청해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서울 청계천 복원공사 현장을 함께 둘러보고 있다.

G씨는 “이명박 사장은 현대신화, 샐러리맨신화, 청계천 복원 등을 거치면서 성공·성취 등 긍정적 이미지가 누적돼 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지지도 상승세는 그러한 긍정적 이미지가 누적되다 임계점을 넘어 대중적 지지도로 본격 확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대표는 부패하지 않은 이미지에 여성 정치인에 대한 선호도 증가라는 원군까지 있어 상당히 강력한 정치인인 것은 맞다”면서 “그러나 박 대표는 대구·경북권 중심의 ‘박정희 향수’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시장처럼 유권자들에게 내세울 만한 누적된 이미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A씨는 “그동안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며 행정의 울타리에 머물렀던 이 시장이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정치 행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6월 퇴임을 앞두고 한 차례 더 ‘성공적 시정’에 대한 홍보가 예상되기 때문에 당분간 지지도 상승세는 이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차기 후보로는 누가 더 유리할까? 조사 전문가들은 한나라당 당내 경선 때까지 두 사람은 당 지지자들의 표를 서로 나눠 가지며 경쟁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양상은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이 내려가는 시소게임을 벌여 나가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최종 승자는 누가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유보적 반응이 많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이 시장의 가능성을 크게 보는 분위기였다. G씨는 이명박 시장이 훨씬 유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은 예비 후보군이 그동안 이뤄낸 가시적 성과를 평가하려 들 것이다. 박 대표는 행정부나 자치단체를 이끌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시장의 청계천 복원이나 정동영 장관의 6자회담 성사 기여 등과 같은 가시적 성과물을 내놓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시장과 박근혜 대표만 놓고 보면 이 시장이 단연 유리하다고 본다. 박 대표가 당을 이끌어 왔기 때문에 당내 세력 분포에서도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점에서는 오히려 이 시장이 앞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

A씨는 한걸음 더 나아가 내년 중 어느 시점에 가면 ‘이명박 대세론’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 대표가 당을 잘 관리하고 특히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선은 총선이나 재·보궐선거와는 판이 다르다. 70% 이상의 투표율로 치러지는 대선에서는 박 대표의 득표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큰 싸움에서의 경쟁력이 누가 앞서는지를 놓고 한나라당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명박 시장이 부각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도 지역구도가 한층 첨예해지는 가운데 승부처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될 것이다. 서울시 행정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수도 이전 반대에도 가장 전면에 섰던 사람이 바로 이명박 시장 아닌가?

박 대표, 내년 지방선거가 대선 가도 분기점 될 듯

B씨는 박근혜 대표의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쪽이었다.
“박 대표는 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데다 총선과 재·보선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의 검증 과정을 거쳤다. 특히 선거를 치르면서 스스로 양김 이후 가장 대중성 있는 정치인임을 입증해 보였다. 여성 대통령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인식이 싹튼 가운데 자신을 유력한 차기 주자의 한 사람으로 보는 유권자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박 대표는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박 대표 정도의 대중성을 인정받은 정치인은 정치적 기반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과거처럼 줄 세우기나 측근정치를 하지 않고도 그만한 자산을 쌓으며 제1야당을 이끌어온 점은 당내 경선에서도 충분히 평가받을 것으로 본다.”

B씨는 박 대표가 차떼기 정당이라는 기존의 한나라당 이미지와 차별화된 ‘부패하지 않은 이미지’로 대구·경북권에서 확고한 지지 기반을 다진 것도 상당한 장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총선과 재·보선을 치르면서 전국의 지구당을 두루 다니면서 조직과 밑바닥 표심을 다져놓은 것도 박 대표의 경선 승리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한나라당은 내년 5월 지방선거도 다시 한번 박근혜 대표를 얼굴로 내세워 치를 전망이다.

B씨는 “이변이 없는 한 내년 지방선거도 한나라당의 승리가 점쳐진다”면서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어낼 경우 박 대표의 대권 행보에도 훨씬 탄력이 붙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997년 신한국당은 여당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를 경선을 통해 선출했다. 당 안팎의 관심 속에서 제법 흥행이 된다 싶게 치러진 경선이었지만 생각도 하지 못했던 후유증이 나타났다.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이인제 후보가 끝내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독자출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러진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패배함으로써 신한국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최초의 여당’으로 기록됐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벌써 차기 대선 후보를 결정할 한나라당 경선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경선이 치러지는 시점까지 두 사람이 대등한 지지세를 이어가다 일합을 겨루는 ‘빅 매치’가 성사되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이면에는 ‘혹시’하는 우려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경선 불복이나 경선 불참은 결코 함부로 선택할 것이 아닌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어떤 명분으로든 경선 불참을 선언하고 당을 뛰쳐나가면, 그동안 쌓아온 지지는 바로 무너지고 정치생명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경선을 치르고 나서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은 그보다 더 치명적 선택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의 일이지만, 정·부통령제 개헌 등 특단의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박근혜·이명박 양인 간의 경선은 어떤 형태로든 성사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명박 시장은 지난 10월13일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항간에 나도는 ‘독자 출마 가능성’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형식으로 경선 결과에 승복할 것임을 공언했다.<박스기사 참조>

어쨌든 양인 간의 대결은 30%대에 머물러 있는 당 지지도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가운데 7년째 야당으로 지내고 있는 한나라당의 앞날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명박 시장의 ‘이명박 무조건 출마론’ 반박

“경선 승복은 상식이자 기본…이인제 때 너무 놀란 후유증이다”


이명박 시장이 지난 10월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했다. 근래의 지지도 상승에 고무된 듯 밝은 표정의 이 시장은 패널들의 질문에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갔다.

이날 토론회 도중 한 패널이 항간에 나도는 이른바 ‘이명박 무조건 출마설’을 거론했다. “박근혜 대표가 경선에서 지면 이 시장을 돕겠지만, 이명박 시장이 패배하면 박 대표를 돕지 않고 독자 출마를 강행할 것’이라는 것이 ‘무조건 출마설’의 요지다.

이에 이 시장은 1995년 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정원식 후보에게 패했을 때를 회상하면서 우회적으로 경선 승복 의사를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한 이 시장의 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경선을 선호한다.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한 경선을 통해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1995년 조순 씨와 정원식 씨가 출마했을 때, 그때 정말 시장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정원식 씨를 시장 후보로 추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경선해야 한다며 여당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반대를 분명히 했다.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독대해 ‘반드시 경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래서 결국 경선을 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의 경선은 불공정 선거였다. 아마 김영삼 대통령도 인정할 것이다. 여론조사를 핑계로 대의원들에게 은근히 특정 후보를 찍을 것을 강요했고, 나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을 투표 전날 다 바꿔 버렸다. 그것을 보고 승복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이 나라에서 경선을 성사시킨 것만으로도 정치발전을 이룩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승복하지 않으면 우리 당 후보가 떨어질 판이었다. 나를 지지하는 청년들이 눈물을 펑펑 흘렸지만 그래도 나는 승복했다. 그 뒤에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에 갔더니 ‘이 의원은 성격상 승복 안 할 줄 알았는데, 승복하는 것을 보니 대단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펐다. 그렇게 사람 볼 줄 몰라서야 어디….

경선에 승복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자꾸 그런 것을 묻는 것은 (1997년 신한국당 경선 패배 후 독자 출마했던) 이인제 때 놀랐던 데서 아직도 못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승복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니 1995년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경선이었지만 대의를 위해 승복했던 때를 상기시켜 드리는 것이다. 달리 무슨 이야기를 하면 바로 ‘이 시장이 대통령 출마를 결심했다’고 기사를 쓸 것 같아 나도 나름대로 머리를 쓰면서 답변하는 것이다.”(웃음)


2005년 11월호 | 입력날짜 200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