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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시대 화가와 화파 /조선시대의 회화의 흐름과 작가

鶴山 徐 仁 2005. 11. 20. 15:58

조선시대 화가와 화파 1392~1910

초기

1392~1550

 

  1. 북송의 이성middot곽희파(안견

중기

1550~1700

 

  1. 남송의 마원middot하규 원체화풍(남송원체)

후기

1700~1850

 

  1. 명대의 원체화풍 / 4) 절파화풍(명 대진중심)

말기

1850~1910

 

5) 미법산수화풍(미불 미우인(북송)(고극공())

 
 

초기

곽희파: 안견, 양팽손/ 남송원체: 이상좌/ 원체+절파:강희안

미법산수: 이장손, 최숙창, 서문보/ 이암, 신사임당

중기

절파:김제, 이경윤, 이정, 김명국, 함윤덕, 윤인덕

안견파:이정근, 이흥효, 이징, 윤의립/ 김식, 조속, 조지운(영모 화조)

이정, 어몽룡, 황집중(삼절)

후기

절파: 진재해/ 전통계승+새로운 화풍: 윤두서-윤덕기-윤용,조영석,김두량

풍속화: 윤두서, 조영석, 김두량(김홍도, 신윤복, 강희언, 이인상, 유숙

변상벽(영모 화조), 박동보(묵매), 유덕장(묵죽)

진경산수: 정선, 강희언/ 산수(진경): 심사정, 이인문, 김홍도

남종 문인화가: 이인상, 강세황, 신위, 정조/ 화원화가: 김유성, 이재관

삼재: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공재 윤두서

말기

남종화풍: 김정희, 조희룡, 전기, 허유

이색화풍: 윤제홍, 김수철, 김창수,장승업(안중식, 조석진 배출)

 

초기

중기

후기

말기

안견- 몽유도원도

     사시팔경도

강희안-

     고사관수도

이상좌-

      송하보월도

김제- 동자견려도

     한림제설도

이흥효- 산수도

      산수화첩

이경윤-

      산수인물도

이정근-

      설경산수도

      미법산수도

이정- 산수도

이징- 소상팔경도

김명국-

      설중귀려도

      (middot)

       달마도

윤두서- 자화상

 

진재해-

    월하취적도

    흑구도(서양)

 

남종화

김정희- 세한도

       묵란도

 

조희룡- 매화서옥도

전기- 계산포무도

         설경산수도

허유- 산수도

진경산수

정선-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강희언- 인왕산도

정수영- 청룡담도

심사정-

         강상야박도

이인문-

          강산무진도

김홍도

          무이귀도도(군전도 서직수 초상)

최숙창- 산수도

양팽손- 산수도

신사임당- 초충도

월하고주도(절파)

영모화조

남종화

이색화풍

김식- 우도

조속- 노수서작도

이인상-

        송하관폭도

강세황-

          벽오청서도

백석담도

정조- 파초도

김수철- 송계한담도

홍세섭- 유압도

야압도

장승업- 삼인문년도

산수도

호취도

쌍치도

풍속화

김홍도- 서당도

       씨름도

김득신- 파적도

신윤복-

     연당야유도

     미인도

조선시대의 회화의 흐름과 작가

 


<김명국-달마도:중기 designtimesp=5112>

이 시대의 미술 중에서도 회화는 우리 나라 미술사상 가장 크게 발전하였다. 고려시대 회화의 전통을 발판으로 건국 초부터 도화원(圖畵圓)이 설치되었고, 중국의 다양한 화법을 받아들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회화미술이 꽃피게 되었다. 사대부와 화원들이 이 시대 회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대나무, 산수, 인물, 화초 등 다양한 소재들이 다루어졌으나 감상을 위한 산수가 대종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초상화는 동양의 삼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인물의 정확한 묘사와 미묘한 정신 세계의 표출은 괄목할 만하다.

조선 시대의 회화는 화풍의 변천에 따라 초기(1392년∼약1550년), 중기(약1550년∼약1700년), 후기(약 1700년∼약1850년), 말기(약1850년∼1910년)로 나누어지는데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1)초기(1392년∼약1550년)

조선 초기 회화는 북송의 곽희파 화풍을 받아들여 그것을 우리나름의 새로운 양식으로 개성있게 창조한 화가 안견에 의한 안견파 화풍이 주류를 이루면서 명대의 원체 화풍과 절파浙派 화풍의 유입과 이상좌에 의한 남송의 마하파馬夏派류의 화풍이 전개되었고 이장손과 서문보의 그림에서 보이는 미법산수화풍 米法山水畵風도 보인다.



<안견 - 몽유 도원도 designtimesp=5127>

조선 시대의 회화 발달과 관련하여 맨 먼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초기, 그 중에서도 세종 때를 중심으로 한 15세기가 된다. 이 시기에 이미 안견과 강희안을 비롯한 거장들이 배출되어 격조 높은 한국적 화풍을 성취하고, 후대의 회화 발전을 위한 토대를 굳건히 하였다. 이 때에 형성된 한국 화풍의 전통은 초기의 성종 때를 거쳐, 명종 초년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후로도 중기 회화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시대 축적되었던 중국의 화적이 다수 전승된 것 외에, 연경을 중심으로 한 명과의 회화 교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주요 학풍들이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한국적 화풍의 형성에 토대가 되었다.

먼저 북송의 이성과 곽희,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이룩한 소위 이곽파 또는 곽희파 화풍이, 두 번째는 남송의 화원 마원과 하규가 형성한 마하파 화풍을 위시한 원체화풍이, 세 번째는 명대의 원체 화풍이 전래되었으며, 네 번째는 절강성 출신인 대진을 중심으로 명초에 이룩된 절파 화풍이, 다섯 번째는 북송의 미불, 미우인 부자에 의해 창시되고, 원대의 고극공등에 의해 발전된 미법 산수화풍이 전래되었다.

조선 초기의 화가들은 이러한 화풍들을 철저히 소화하고 수용하여, 중국 회화와는 완연히 구분되는 특색있는 독자적 양식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이렇게 몇 가지 화풍을 토대로 한국적 화풍이 형성되었다. 16세기에 이르면 산수의 형태는 더욱 다듬어지고 공간은 더욱 넓어지며, 필벽(筆癖)은 토속화되는 한국적 준법의 발생을 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16세기의 화가들은 이미 한국화된 15세기의 화풍에 집착하는 전통주의 경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세종 때 이래의 조선 초기의 문화가 뿌리를 내렸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믿어진다.또한 조선 초기에는 금강산도, 삼각산도 등이 화원들에 의해 활발하게 제작되어 실경산수의 전통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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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화가들

도화서(직업화가 양성, 관리)

前期 - 壬辰亂 이전(14세기말 ∼ 16세기말)

안견(현동자)

'몽유도원도' , '적벽도'

강희안(인재)

'산수인물도' , '고사관수도'

이상좌(학보)

화원 출신의 화가 '송하보월도'

이 암

영모화, '모견도' , '모자구도'

신사임당

'초충도' , '포도도'



(2) 중 기(1550∼1700)



<정선 - 금강 전도 designtimesp=5144>

이 시기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대란이 잇달아 생기고 사색붕당이 계속되어 정치적으로도 매우 불안한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색있는 한국적 화풍이 뚜렷하게 형성되었다.

이 시대에는 첫째 조선 초기 강희안 등에 의해 수용되기 시작한 절파계 화풍이 김시, 이경윤, 김명국 등에 의해 크게 유행하였고, 둘째 이정근, 이홍효, 이징 등에 의해 조선 초기의 안견파 학풍이 추종되고 있었으며, 셋째 이암, 김식, 조속 등에 의해 영모나 화조화 부분에 애틋한 서정적 세계의 한국화가 발전하게 되었고, 넷째 묵죽, 묵매, 묵포도 등에서도 이정, 어몽룡, 황집중 등의 대가들이 꽃을 피웠다.

이 밖에도 중국 남종 문인화가 전래되어 소극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조선 중기에 이처럼 회화가 발전될 수 있었던 까닭은 조선 초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어진다. 사실 중기의 화가들은 안견파 화풍을 비롯한 조선 초기의 회화 전통에 집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이면서도 전통의 토대 위에 수용하였다. 또한 이 시대의 화가들은 한가지 화풍에만 집착하기보다는 두서너 가지의 화풍을 수용하여 그리는 경향을 현저하게 나타냈다. 이 밖에도 이 시대에는 사대부와 화원들 중에 화가 집안을 형성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조선 중기의 회화도 조선 초기 회화의 전통을 잇고 새로운 화풍을 가미하면서 조선 중기 특유의 양식도 발달시켰다. 이 시대는 수묵화의 전성기라고 지칭해도 좋을만큼 묵법에서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다. 다양한 주제의 구사, 상이한 화풍의 수용, 변화있는 필묵법 등은 이 시대의 회화에서 쉽게 엿볼 수 있는 현상들로 주목된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과 보수적 경향 때문이었는데 이미 들어와 있던 남종화풍은 아직 적극적으로 유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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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화가들

정선(겸재)

진경산수화법의 창시자,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심사정(현재)

'하마선인도', '추경산수도', '선인도'

김명국(연담)

활달한 필치 '달마도'



(3) 후기(약 1700년∼약1850년)



<신윤복 - 야안도 designtimesp=5161>

한국적 화풍이 더욱 뚜렷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세종 때부터 꽃피웠던 조선 초기의 회화와 비교되는 훌륭한 것이다. 초기의 회화가 송, 원대 회화의 영향을 바탕으로 한국적 특성을 형성했던 데 반하여, 후기의 회화는 명, 청대 회화를 수용하면서 보다 뚜렷한 민족적 자아 의식을 발현했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의 회화가 발전하게 된 것은 새로운 회화 기법과 사상의 수용 및 시대적 배경에 연유한다. 영조와 정조 연간에 자아의식을 토대로 크게 대두되었던 실학의 발전은, 조선 후기의 문화 전반에 걸쳐 매우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산천과 한국인의 생활상을 소재로 삼아 다룬 조선 후기의 회화는 실학의 추이와 매우 유사함을 보여준다.

이시대는 가장 한국적이고도 민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풍들이 이 시대에 풍미하였다. 이러한 후기의 회화는 새로운 화법의 전개와 새로운 회화관의 탄생이 기반을 둔 이 시대 회화의 조류로는 첫째 조선 중기이래 유행했던 절파계 화풍이 쇠퇴하고, 그 대신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점이다. 둘째, 남종화법을 토대로 한반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천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가 겸재 정선일파를 중심으로 해 크게 발달한 점이다. 셋째, 조선 후기인들의 생활상과 애정을 해학적으로 다룬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등에 의해 풍미하게 된 점이며, 넷째 서양화법이 전래되어 어느 정도 수용되기 시작했던 사실등을 들 수 있다.

남종 화법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전대에 전래되어 있었던 것이나 본격적인 유행을 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다. 이 남종화법의 유행은 조선 후기의 회화가 종래의 북종화 기법을 탈피하여, 새로운 화풍을 창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켜 주었다. 또한 남종화법의 전개에는 남종 문인화론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이 형사(形似)보다는 사의(寫意)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대두되어, 역시 참신한 화풍의 태동을 가능케 하였다. 후기의 강세황, 이인상, 신위, 그리고 말기의 김정희 등은 남종화의 유행을 부채질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4) 말 기(약1850년∼1910년)



<허유 - 방석 도산수도 designtimesp=5176>

이 시기에는 후기에 유행한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쇠퇴하고 그 대신 김정희 일파를 중심으로 남종화가 더욱 큰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또한 개성이 강한 화가들이 나타나 참신하고 이색적인 화풍을 창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경향은 김정희와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조희룡, 허유, 전기 등 이른바 추사파와 윤제홍, 김수철, 김창수 등의 학산파 그리고 홍세섭 등의 작품에서 전형적으로 간주된다. 김정희 일파가 남종화법을 다져놓는데 기여했다면 윤제홍 일파와 홍세섭 등은 남종화법을 토대로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이색 화풍을 형성하는데 그 공로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남종화법의 토착화는 한국 근대 및 현대의 수묵화가 외향적으로는 남종화 일변도의 조류를 형성케 한 계기가 되었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회화는 중국 청대 후반기 회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18세기 조선후기 회화의 전통을 이어 전 시대 못지않게 뚜렷한 성격의 화풍을 형성하였고, 또 근대 회화의 모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었다.

조선 말기 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현상은 김정희 일파를 중심으로 남종화가 이 시대의 화단을 풍미했다는 사실이다. 김정희는 금석학과 고증학에 뛰어났으며, 서예에서는 파격적인 추사체를 이루어 우리나라 서체를 일변시켰고 회화에서는 남종화 지상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한국적인 화풍이 크게 발달하였던 조선 후기를 거쳐 말기에 이르면, 추사 김정희와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에 의해 남종문인화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후기의 토속적인 진경산수나 풍속화는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김정희의 제자로서 호남화단의 기초를 다진 소치 허련과 함께 오원 장승업이 배출되어 개성이 강한 화풍을 형성하고 제자들인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등을 통해 현대 화단으로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화풍이 중국적 성향을 강하게 띤 점은 아쉽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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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화가들

김홍도(단원)

서민적 풍속화가, '신선도', '춤추는 아이','서당' '씨름도'

신윤복(혜원)

귀족적 풍속화가 ' 연당의 여인', '미인도','단오', '뱃놀이'

변상벽(화재)

동물화, 초상화에 능함, '묘작도',
'군계도'

최북(호생관)

'표훈사도'

김득신(긍재)

풍속화의 계승, '파적', '대장간도'

강세황(표암)

새로운 화법을 묘사(홍세섭, 김수철)

장승업(오원)

남종문인화풍 '호취도', '군마도'


 
출처 : .. |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