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우리나라 畵壇

[스크랩]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 (1)

鶴山 徐 仁 2005. 11. 20. 15:43
    남보다 더 많이 살았고 남보다 더 많이 그렸다
    요 몇 해 동안 줄곧 건강이 나빠져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나를 따르던 제자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무등산 그늘로 병든 나를 찾아와 준다
     
    나는 그들에게 춘설차 한 잔을 권한다
    차를 마시고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며 내 한평생이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를 생각하고 얼굴을 붉히곤 한다
     
    50년 동안 원 없이 그리고 갈 때도 되었다
    죽어서도 화가로 태어나고 싶다.
    -의재 허백련(毅齋許百鍊) 선생-
     
    산과 하나가 된 아름다운 공간
     
    해마다 이맘때면 남도 지방을 중심으로 어린 찻잎을 채취하는 소식이 들려온다. 광주 무등산 증심사 계곡에서도 은은한 녹차 향기를 전해왔다. 이곳에서 나는 차를 특별히‘춘설차’ 라고 부른단다.
     
    춘설향을 따라 20여분을 오르니 무등산처럼 순하고 온화한 경사로에 산을 닮은 건물이 보인다. 참으로 특이하다. 산중에 작지 않은 규모의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으니. 오래된 팽나무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미술관’의 정취에 빠져보자.
     
     
    미술관을 비롯해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까. 의재 미술관이 어딜까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등산로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어가기만 해도 좋다.
     
    입구부터 이곳의 터줏대감인 진순이가 길안내를 맡는다. 미술관 주변엔 백구와 황구 두 마리의 진돗개가 있는데 어릴 때 진도에서 이곳 무등산으로 와서 지금은 할머니가 다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들도 소치 허련 선생님이 계셨던 진도 ‘운림산방’ 어디께서 의재 선생님의 자취를 따라 왔나 보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걸어가면 어느새 미술관 로비가 나오고 또 다시 완만한 경사로를 가다 보면 전시실이 나온다. 미술관의 동선이 산등성이와 호흡을 맞춰선 입구부터 전시실 기타 대부분의 시설들이 완만한 선으로 연결된다.
     
    주변 자연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여 10년의 계획 끝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줍게 고풍스런 건물을 흉내낸 것도 아니고 단순하고 세련되면서도 산과 물과 의재 선생님의 작품들이 완벽히 어울리는 미술관을 만들어 내어 <2001 한국 건축문화대상>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때마침 학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로비에서 뭔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산수 병풍에 둘러 싸이다
     
     
    미술관 전면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면을 통해 바라본 바깥 풍경은 그 자체가 산수화다.
    ’ 아~ 무등산의 경관과 기운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구나! ’
    자세히 보니 유리면도 그 짜여진 모양이 세로로 여럿 나눠져 있는 게 꼭 병풍 모양새를 갖추었다. 바깥엔 병풍 모양의 건물이 있고 전시실에는 의재 선생의 여덟 폭 수묵 병풍 <산수사시병풍(山水四時屛風)>* 이 있다.
     
     
    현재 의재 미술관에서는 선생의 소장품들을 재정립하는 의미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상설 전시실에는 의재 선생의 작품들이 해마다 새로운 기획을 가지고 전시되고, 기획 전시실에선 1년에 네 번 다른 작가, 다른 작품들의 전시가 이어진다고 한다.
     
    의재 선생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놓을까...
    고백하건데 서울에서 광주 무등산으로 향할 때만 해도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전통 회화에 어찌 접근을 해야 하나. 필자의 부족한 식견으로 이야기를 어찌 풀어 나갈까. 선생의 일대기부터 종고조(從高祖)인 소치 허련 선생과 진도의 ‘운림산방’이야기, 남종화와 선생의 그림 이야기,‘춘설차’ 이야기 등 지면을 빌어 이야기 하기엔 그 배경 사상과 역사가 너무 깊다.
     
    필자가 지금 이렇게 떠들고 있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정도로 깊고도 깊은 이야기들이다.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풀어내 보련다.
     
    그곳엔 춘설향 은은하게 베어 있는 그림이 있다
     
    무등산은 일제 시대부터 유명한 차 생산지였다고 한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차 밭을 인수한 것이 ‘삼애다원’이고 이곳에서 생산한 차에는 ‘춘설’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한다. 의재 선생은 생전에 우리 차에 각별한 애정으로 차를 직접 재배 하시고 차문화 보급에 힘쓰셨다고 한다.
     
    춘설향이 은은하게 뭍어날 것 같은 작품을 한 점 발견했다. 글씨와 그림 <다로경권(茶爐經卷)> 이다. 차 끓이는 화로와 몇 권의 책이라... 여간 소박하고 멋스러울 수가 없다.
    이처럼 멋스러운 선생의 그림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히 풀어보겠다.
     
                           < 다로경권(茶爐經卷)> (글씨와그림, 1960년)
     
    어느 게으른 조각가의 고백
     
    이곳에 도착해서 미술관 뿐만 아니라 춘설차 문화관인 ‘삼애헌’과 ‘문향정’ 그리고 선생이 생전에 기거하시던 화방인 ‘춘설헌’ 등 증심사 계곡 일대의 유적들을 찬찬히 둘러 보았다.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비록 작품의 뜻은 속속들이 풀이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 깊이 무언의 의미가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선생의 삶의 행적을 이해하려고 하니 자연 그림도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나 보다. 그림을 보되 마음으로 보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학문이나 법칙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매번 다짐하지만 잘 되질 않는다.
     
    미술관 로비에 앉아 춘설차 한 모금을 마시며 유리에 비친 무등산 줄기를 바라보았다.
     
    “차 맛이 어떤가. 우리 것 참 좋제?”
    “작품 하다가 맘 사나울 때 또 나 보러 와야혀?”
     
    마치 의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간의 게으름을 돌이켜 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시는 것 같았다. 
    무등산과 여덟 폭 병풍, 춘설차, 삼애헌, 문향정, 진순이까지···.
    명작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의재 허백련 선생님의 작품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 선생
    목포에는 남농 허건, 진도에는 소치 허련, 광주에는 의재 허백련이 있었다. 우리나라 남종 문인화의 마자막 대가로 일컬어지는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선생은 추사 김정희, 소치 허유(허련) 등의 옛 문인들을 통해 이어 받은 남종화의 전통으로, 오랜 여행에서 얻은 폭넓은 경험과 두루 익힌 동양의 고전을 바탕으로 일찍이 예술가로서의 일가를 이루었다.
     
    활달하면서도 힘찬 필묵과 깊고도 맑은 동양사상, 부드러운 남도의 풍취와 시적인 흥취, 이런 모든 것이 의재 선생님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의재 선생님은 올곧은 정신과 비범한 예술혼으로 1920년대에 최고의 남화가로 인정 받았다. 선생님은 일찍 이룬 예술가로서의 세속적 성공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등산 계곡에 은거한다. 그래서 겸허하고 청빈한 사상가, 실천적 계몽가로서의 삶을 사시게 된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사상(三愛思想)’을 실천하셨다. 그는 차와 그 정신을 알리고 농촌 부흥에 힘쓰면서 농업 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단군의 홍익 인간 이념을 알리고자 끝까지 노력하셨다.
     
    * <산수사시병풍(山水四時屛風)> (1960년)
    일 년의 계절의 흐름을 그려내는 것은 산수화의 전통. 여덟 폭 그림을 다 합하면 한 해의 순환이 된다. 이것은 자연을 스승으로 섬긴 선비들에게 그림으로 펼쳐 놓은 교리이자 철학과도 같은 것이다. 또 사철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화법들을 모두 섭렵하는 것이다.
     
    의재 선생의 이 작품은 봄 그림 화법,여름 그림 화법,가을 그림 화법,겨울 그림 화법이 모두 다르다. 각 폭이 모두 조금씩 다른 화법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러 대가의 화법들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가능한 작품이다.
     
    * 취재에 도움을 주신 의재미술관 큐레이터 강보선님께 감사드립니다.
    * 참고문헌: 심세중님의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
     
    [김수진] 조각가, 컬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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