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원들도 '죽음'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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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릭 삐리릭.”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달 30일 밤 10시쯤 전화벨 소리가 두 평 남짓한 상담 부스에 울려퍼졌다. “네, 생명의 전화입니다.” 상담원
임애규씨와 붙어 앉은 기자는 제2의 수화기를 들어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무슨 고민이 있어 전화하셨나요?”…. 30초쯤 흐른 뒤에 쉬고 갈라진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저기요… 죽고 싶다는 말도 자꾸만 하면 버릇이 된다는데…. 그래도 정말 죽고 싶어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죽다니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 주변에 계신 분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힘들더라도 열심히 사셔야죠.” 통화는 45분간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의 목소리는 조금씩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임씨는 “고민이 더 생기면 또 전화하세요”라며 친절하게 인사말을 했다.
자살 막았을때 보람 “인생 새로 배우죠”
생활고 가장많아 “해결책 못주니 답답”
1976년 생명의 전화가 출범한 이후 지난해까지 전국 17개 지부에서 받은 전화는 200만 통이 넘는다. 이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문턱에서 삶으로 되돌아왔는지 구체적인 통계는 없다. 각 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5000여명의 상담원 대부분은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는
전화선의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정덕기 소장은 “최근 카드 빚이라든지 회사 부도 등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어 살기가 어렵다는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고
말했다. 상담원 성세용(61)씨는 “자살에 내몰린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외에 사실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느끼는 보람도 크다. 나선영 과장은 “자살하려고 동맥을 그은 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생명의 전화로 도움을 요청한
여성이 있었죠. 그 분이 지금 이곳에서 전화 상담자로 활동하고 있어요”라고 귀띔했다. 상담원 배동석(45)씨는 “처음엔 내가 힘든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도움을 받은 건 나였다”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을 통해서 지금 내 모습을 되돌아보고 바로잡을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상담원들은 무보수다. 한 달에 2번 이상 근무한다. 하루 5교대,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3시간30분씩이다. 밤근무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다. 상담원이 되기 위해서는 1년에 60시간 이상의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네~ 생명의 전화입니다.” “네~ 생명의 전화입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7시. 서울 방이동 엠마뉴엘 교회에 모인 30기 교육생 80여
명이 강사의 지시에 따라 전화 인사말을 따라하다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강사인 생명의 전화 하상훈 원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상대방은 어쩌면
생의 마지막 전화라고 생각하고 통화를 원할 수도 있어요. 정성을 다해 받아야 합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부터 젊은 여성들까지 교육생은
다양했다.
교육생 조옥경씨는 “신체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많은 혜택을 받은 거죠. 그런 만큼 제가 받은 것들을 가지고
남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베풀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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